괜찮아 걱정하지 마!
데일 카네기, 박훈 지음 | 춤추는고래
괜찮아 걱정하지 마!
데일 카네기, 박훈(엮음) 지음
춤추는 고래 / 2018년 4월 / 396쪽 / 15,000원
걱정을 대하는 마음가짐
오늘은 새로운 인생이다
1871년 봄이었다. 한 젊은이가 어떤 책을 읽다가 아주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이 문장은 그의 장래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몬트리올 종합병원 의학도였던 그는 졸업시험을 앞두고 무척 걱정이 많았다.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지, 만일 떨어지면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개업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머릿속은 온통 걱정뿐이었다.
이 젊은 의학도가 1871년에 읽은 그 한 구절은 그를 가장 유명한 의사로 만들어주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을 창립했고 영국 의사로서는 최고 명예인 옥스퍼드 대학의 명예교수직에 올랐다. 그는 영국왕실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고 사후에는 1,500쪽에 이르는 전기 두 권이 출간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을 윌리엄 오슬러로, 1871년에 읽은 책의 구절은 토머스 칼라일의 말이었는데, 그 한 마디로 그는 일생동안 온갖 걱정에서 해방되었다. 그 구절은 ‘우리는 중요한 임무란 먼 곳에 있는 희미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그로부터 42년 뒤 어느 봄날 저녁, 튤립이 활짝 핀 교정에서 윌리엄 오슬러는 예일대 학생들에게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에서 자신이 4개 대학의 교수이자 꽤 유명한 저서로 출간했으니 특별한 두뇌의 소유자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은 그가 ‘가장 평범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가 성공한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은 오슬러가 현재에 살았기 때문이었다. 즉, 현재에 충실했기 때문이라는 의미였다. 예일대에서 연설하기 두서너 달 전 오슬러 경은 기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갔다. 그 배는 선장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즉시 기계가 작동해 배의 각 부분이 차례로 닫혀 커다란 방수실로 변했다고 한다. 오슬러는 예일대 학생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그 기선보다 훨씬 훌륭한 조직체이며, 더 긴 항해를 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이 항해를 편안하게 하려면 정확히 오늘이라도 방 안에서 살아가도록 기계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배의 갑판에 올라가 보면 배를 움직이는 모든 기관이 질서정연하게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버튼을 눌러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인생에서 과거는 닫히고 이미 끝나버린 어제를 닫는 철문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버튼을 눌러 보십시오, 그것은 미래, 즉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일을 그 금속 커튼으로 닫아버립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
지나간 과거는 묻어버리십시오. 내일의 길은 가장 강한 사람조차도 좌절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미래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단단히 닫아버리십시오. 미래란 바로 오늘입니다. 내일이 아닙니다. 인간을 구제하는 것은 바로 지금입니다. 정신적 낭비, 고뇌와 번민은 내일의 일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에게 따라붙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충실하게 생활하는 습관을 익히도록 해야 합니다.”오슬러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그는 내일을 위한 최선의 준비는 오늘의 일을 위해 모든 지성과 정열을 집중하는 데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내일을 위해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미시간 주 사새기노의 세일드 부인은 자살 직전에 이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1937년, 저는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때 저는 실의에 빠진 데다가 거의 무일푼이었습니다. 밖으로 나다니면 조금이나마 우울한 기분을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혼자서 운전을 하고 혼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장사도 잘 되지 않아서 자동차 할부금도 제때 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책 한 권을 들춰보다가 발견한 한 구절 덕분에 실의에서 벗어나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현명한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생활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어제 일을 잊고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는 방법을 배운 것입니다. 이제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명한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인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걱정 상황을 해결하는 마법의 공식
공기조절장치 기업을 설립한 엔지니어이자 현재 뉴욕 캐리어 사의 사장인 윌리스 H. 캐리어가 실천했던 방법을 소개하겠다. “내가 버팔로의 주물회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 한 번은 크리스털 시에 있는 판유리공장으로 가스 정화장치를 설치하러 갔다. 그 장치는 가스에서 불순물을 제거하여 연소 때 엔진에 고장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가스를 순화하는 방법은 단 한 차례 시험과정을 거친 아주 새로운 방식이었다. 그런데 설치가 끝난 뒤에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장치 기능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우리가 보증한 것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실패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나는 걱정에 사로잡힌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운 좋게도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들어맞았다. 나는 그 뒤 30년 동안 이 방법을 써오고 있다. 이 방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것으로 다음의 3단계로 구성된다. 첫째, 먼저 상황을 솔직하게 분석하여 그 실패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예측해 보았다. 최악의 경우라고 해도 내가 감옥에 갇히거나 죽지는 않는다. 그 점만은 분명하다. 일자리를 잃게 될 수는 있다. 내 고용주는 내가 애써 장치한 기계를 떼어버리고, 지금까지 투자한 2만 달러를 손해 볼 수도 있다.
둘째, 최악의 경우를 예측해본 뒤 나는 그것을 달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이번 실패는 내 이력에 오점이 될 수도 있다. 비록 월급이 낮더라도 다른 일자리를 구하면 된다. 또 고용주 역시 가스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새로운 방법을 실험하느라 2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니 연구비라고 여기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최악의 경우를 예측하고 이것을 달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오랜만에 평화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셋째, 그 뒤부터 나는 최악의 사태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려고 내 시간과 정력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당면한 2만 달러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5천 달러짜리 부속장치를 설치하면 장치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적용한 결과 2만 달러를 손해 보는 대신 1만 5천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만일 내가 걱정만 계속했다면 아마 이런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걱정의 가장 나쁜 특징은 집중하는 능력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악의 사태를 맞았을 때 그것을 마음에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면 우리는 온갖 막연한 상상을 배제하고, 침착하게 그 문제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 일이지만 많은 도움이 되었으므로 늘 모든 일에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내 생활은 완전히 걱정에서 해방되었다.”
캐리어 씨의 마법 같은 공식은 어째서 심리적으로 귀중하며 실제적인 것일까? 그것은 걱정 탓에 눈이 어두워진 우리를 손으로 더듬으며 몸부림치던 회색빛 구름 속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땅바닥에 단단히 발을 딛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상황을 잘 알게 된다. 만일 발밑의 지면이 단단히 받쳐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각을 정리할 수가 있겠는가?
응용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만일 그가 살아있어서 이 최악에 임하는 공식을 들었더라면 그는 진심으로 찬성했을 것이다. 그가 제자들에게 했던 말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일을 기꺼이 그대로 받아들여라. 이미 일어난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불행을 이겨내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캐리어 씨도 “최악에 직면한 뒤, 나는 한결 마음이 차분해져서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던 평화로움을 만끽했다. 그 뒤부터는 사물을 제대로 생각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생을 학대해 왔다. 최악의 사태를 받아들일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고치려는 노력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자기 운명을 재건할 노력은 하지 않고 ‘경험과의 치열한 경쟁’에 몰두한 나머지 우울증에 빠진다.
걱정하는 습관을 깨는 법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라
어린 시절, 나는 미주리 주에 있는 몹시 낡은 집 다락방에서 몇몇 친구들과 놀곤 했다. 그곳에서 내려올 때는 문틀을 살짝 밟고 뛰어내리곤 했는데, 어느 날 그런 식으로 뛰어내리다 왼손에 끼었던 반지가 못에 걸려 가운데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무서웠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처가 다 나은 뒤에는 한 번도 그런 걱정을 한 적이 없었다. 걱정한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나는 피할 수 없는 결과를 받아들인 것이다. 지금 내 왼손에는 엄지손가락을 포함해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지만 한 번도 그것을 걱정한 적이 없다.
몇 년 전, 나는 뉴욕에 있는 빌딩에서 화물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왼손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왼손이 없다는 사실이 괴롭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뭐, 그런 것은 생각해본 일이 없습니다. 나는 독신입니다만, 손 하나가 없는 사실을 느끼는 것은 바늘에 실을 꿸 때뿐입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다고 판단되면 어떠한 상황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을 그 상황에 적응시키고 상황 자체를 잊어버리고 만다.
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16세기 때의 사원에 남아 있는 비석을 기억한다. 거기엔 플랑드르어가 적혀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그건 이미 그렇게 되었다. 이젠 별 수 없다.’ 우리는 오랜 인생을 사는 동안에 여러 가지 피할 수 없는 불쾌한 실패에 부딪친다.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선택의 자유가 있다. 즉, 그것을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여 자신을 그 상황에 적응시키든가, 아니면 상황을 거부하며 인생을 망치게 하든가, 또는 신경쇄약에 걸려 인생을 헛되이 보내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 존경하는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현명한 충고가 있다.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라. 일단 일어난 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행한 결과를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일상의 습관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삶을 변화시키는 생각과 행동
몇 해 전 나는 라디오 프로에서 ‘지금까지 당신이 배운 것 가운데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배운 가장 귀중한 교훈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든지 알면 당신의 인품을 알 수 있다.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즉, 정신적 태도는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근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에머슨도 ‘그가 종일 생각하고 있는 것, 그 자체가 그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문제는 옳게 생각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만일 그 목표에 성공한다면 온갖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제국을 통치한 위대한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를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의했다. “우리 인생은 우리 생각으로 만들어진다.” 즐거운 생각을 하면 즐거워질 수 있다. 비참한 생각을 하면 비참하게 된다. 또 무서운 생각을 하면 무서워진다. 병적인 생각을 하면 병에 걸린다. 그리고 실패를 생각하면 실패한다. 아울러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자기 연민에 빠지면 사람들은 그를 피하고 멀리하게 된다. 노먼 빈센트 필은 그 점을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당신의 생각 그 자체가 바로 당신이다.”
모든 문제에 무조건 낙천적인 태도를 취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걱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심하는 것과 걱정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교통이 혼잡한 뉴욕거리를 횡단할 때 나는 조심은 하지만 걱정하진 않는다. 조심한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찾아내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걱정한다는 것은 아무런 이익도 없이 원의 테두리를 빙빙 도는 것과 같다.
내가 반세기 동안의 생애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내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에머슨이 「자신」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내린 결론이다. 나는 그의 말을 되풀이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정치적 승리, 땅 값 상승, 환자의 쾌유, 또는 오랫동안 떠나 있던 친구의 귀환 등 외부적 사건은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주어 장래의 행복을 예상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결코 없다. 인간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토아학파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육체의 종양이나 농창을 제거하기보다는 마음속으로부터 나쁜 생각을 제거하도록 힘쓰라’고 했다. 에픽테투스는 이미 19세기 전에 이런 말을 했는데 현대의학도 이 말에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G. 켄비 로빈슨 박사는 존스 홉킨스 병원에 입원한 환자 5명 가운데 4명은 감정적 긴장이나 압박감이 질병의 일부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기질성 질환도 결국은 생활과 그 문제를 조절하지 못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다. “인간들은 일어난 일 때문에 상처를 입기보다 일어날 일 생각 때문에 더 상처를 받는다.” 일어날 일에 대한 생각은 전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 이 말은 어떤 의미인가? 걱정에 시달려 신경이 바늘 끝처럼 날카로워졌을 때 의지에 따라 마음 상태를 변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방법을 전수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크나큰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비결은 지극히 간단하다.
응용심리학의 최고 권위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일찍이 이렇게 설명했다. “행동은 감정을 따르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행동과 감정은 동시에 작용한다. 직접적으로 의지의 지배를 받는 행동을 규제함으로써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결심했다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감정을 즉시 바꿀 수 없지만, 행동을 변경할 수는 있다. 그리고 행동을 바꾸면 자동적으로 감정이 바뀌게 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쾌활한 기분을 잃었을 때 자력으로 그것을 되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쾌활한 상태를 되찾는 것처럼 유쾌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비결이 과연 도움이 될까? 미소를 띠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노래를 불러보라. 노래가 내키지 않으면 휘파람이라도 불어라. 휘파람도 불지 못하겠으면 부는 흉내만이라도 내보라. 그러면 윌리엄 제임스가 했던 말을 이해할 것이다. 즉, 겉으로 대단히 행복한 듯 행동하면서 사소한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연의 근본적인 진리 가운데 하나인 이것은 인생에 기적을 가져오는 법칙이기도 하다.
불행 말고 행복을 곱씹어라
《타임》지에는 과달카날에서 부상한 어느 상사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는 포탄의 파편으로 목에 부상을 입고 일곱 번이나 수혈을 받았다. ‘내가 살 수 있겠습니까?’ 그는 쪽지에 적어 군의관에서 물었다. 그러자 군의관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다시 군의관에게 글로 물었다. ‘다시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대답은 ‘그렇다’였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종이에 썼다. ‘그럼 대체 무엇을 걱정하는 것입니까?’ 마찬가지로 당신은 왜 ‘대체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가?’ 하고 반성하지 않는가? 그렇게 반성하면 걱정하는 일이 사소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