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5년 전에 꼭 해야 할 것들
전기보 지음 | 미래지식
은퇴 5년 전에 꼭 해야 할 것들
전기보 지음
미래지식 / 2018년 4월 / 316쪽 / 15,000원
은퇴 후 삶에 실패하는 이유
막연히 기대하는 사람들
많은 이들이 은퇴생활이라고 하면 재무적인 준비를 충실히 하면 되는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은퇴생활을 마치 우리가 일정 기간이 되면 성장해서 학교를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서 잘 진행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은퇴생활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은퇴하기 전에는 주어진 일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일들을 대부분 은퇴 후에 하려고 미룬다.
은퇴 후의 시간들에 대해, 그동안 짜인 틀 안에서 지냈던 것과 비교해 이제는 스스로 일상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은퇴생활에 들어서면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은퇴 첫날부터 자신이 꿈꾸던 삶으로 변화시키는 데 예상치 못한 장애가 있음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의 나’는 가족과 일에 큰 영향을 받아서 이루어진 결정체일 것이다. 은퇴생활에서의 나는 크게 다를까? 변함없는 사실은 결코 가족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족을 고려하지 않고 내 맘대로 살 수는 없다. 새롭게 하게 될 다른 일도 은퇴 전과 그 양상은 다르겠지만 여전히 나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은퇴 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할 때는 가족과의 관계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은퇴생활의 목표가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을 잃었으니 일상에 열정이 발휘될 리가 만무하다. 오히려 그동안 해 오던 활동들이 갑자기 중단된 데서 오는 허전함과 허탈함이 뒤범벅되어 혼란스러운 삶을 살게 될 공산이 크다. 대부분 은퇴 전에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절망스러운 은퇴생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놓치지 말자. 은퇴생활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주변 사람들과 다른 일 등 여러 가지 외부 환경이 은퇴생활을 조정하며 은퇴 후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은퇴한 이후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번 주는 뭘 해야 하지?’, ‘이제 더 이상 나에게는 일이 주어지지 않는 거구나.’ 은퇴생활의 현실을 알게 된 퇴직 후 첫 월요일 아침, 당황스럽기만 하다. 마치 회사에 다닐 때 잘못을 저질렀거나 회사의 방침에 맞지 않아서 일을 하지 못한 채 대기 발령을 받은 것 같다.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면, 그럼 난 어쩌지?’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되어 버린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하지만 은퇴 전에는 이러한 두려움에 빠지는 것도 상사의 명령을 받아 업무를 수행하다가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은퇴 후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은퇴생활은 직장생활과 달리 전적으로 자기 소관이다.
스스로 납득이 되면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은퇴생활이다. 즉. 은퇴생활이 행복할지 불행할지를 결정할 열쇠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같은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은퇴를 맞이한다. 주인으로서 은퇴생활을 할 수 없다면 어떨까? 그 은퇴생활은 상사를 잘못 만나 형편없는 조직과 같이 운영될 것이다. 은퇴 후의 삶은 지금껏 해 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상사가 된다. 자기 자신을 위한 멋있는 상사가 되고 싶지 않은가? 그러려면 은퇴 전에 많은 고민을 하면서 구체적인 방법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은퇴를 대비한다면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자신을 기다린다.
우리는 은퇴를 새로운 인생의 여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은퇴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쪽은 보다 새롭고 즐거울 은퇴생활을 마음 설레며 기대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하루하루 절망적으로 은퇴를 향해 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퇴를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걱정은 이렇다. ‘이제까지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직장도, 동료도 더는 없다. 나는 그렇게 아무런 직위도, 권력도 없이 무료함으로 가득한 은퇴생활을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 보라. 사실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를 받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해 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다. 우리는 은퇴를 바라보는 시각을 미래 지향적으로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멋진 은퇴생활의 기본은 무엇인가? 우선 스스로 “은퇴란 매우 행복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인생 설계는 이 같은 긍정적인 관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은퇴자들은 자신에게 다가온 새로운 기회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이는 은퇴생활을 긍정적인 활동으로 구성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이다.
한 부부는 은퇴 후 복잡한 도시를 떠나 은퇴 전에 종종 휴가를 즐겼던 휴양지로 이사했다. 그들은 은퇴생활이란 휴가가 무한정으로 확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 뒤 그들은 영원한 휴가는 무료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쳇바퀴 굴러가듯 단조로운 생활이었다. 부부는 단계적으로 가치를 높일 새로운 일을 찾아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들은 즐겁게 할 만한 파트타임 일이나 봉사활동을 찾기로 했다. 그들은 그 같은 일과 활동들을 통해서 은퇴생활을 훨씬 더 신선하고 바람직하게 만들었다. 남편의 말이다.
“내가 만약 새로운 시도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그냥 과거의 생각대로 은퇴라는 것에 만족해하며 지냈다면 어땠을까? 이 생각을 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은퇴 후에는 많은 시간이 있다. 그 많은 시간들은 은퇴 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하는 일로부터 얻는 행복감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은퇴가 뒤흔드는 것 & 은퇴가 찾아주는 것
변화하는 개인의 정체성
자아정체감은 한 개인이 자기가 누구이고, 현재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에 대해 인식해 자신을 독특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은퇴자들은 은퇴 이전에는 자신의 역할을 사회적 역할과 연결시켜 자아정체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즉, 은퇴자들은 직장과 일, 사회적 역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왔다. 그러나 실직하게 되면서 성취 중심의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자아정체감에 혼란을 겪게 된다. 심인적 갈등 현상은 직장의 상실에 의한 좌절과 불확실한 삶에 대해 참담함, 우울 증상 등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갈등의 중심에는 직장과 사회적 역할 상실에 따른 자아정체감의 혼란이 있다.
이처럼 은퇴자들의 심리적 변화에 정체성 혼란이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은퇴자들이 어떤 정체성 혼란을 겪는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에릭슨은 개인의 정체성을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으로 구분했는데, 객관적인 측면은 심리사회적 정체성을, 주관적인 측면은 개별적 정체성을 의미한다. 개별적 정체성은 다시 개인적 정체성과 자아 정체성으로 나누어진다. 개인적 정체성이란 시간이 흐르거나 상황이 바뀌어도 자기 자신이 동일한 존재라는 자기 동질성과 자기 연속성에 대한 자각을 뜻한다.
이에 비해 자아 정체성은 보다 넓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개인적 정체성인 자기 동질성과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새롭게 부딪히는 다양한 내적 충동이나 욕구들, 외적인 자극들 그리고 도덕적 가치들을 수용해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식으로 자극을 재통합한다. 이러한 통합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타인과 구별되는 고유한 존재라는 전체감 혹은 통합감을 갖게 된다. 우리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다양한 충동과 욕구, 능력, 역할, 가치 등을 통합해 추출해낸 통합된 자기구조 혹은 자기 참조적 심상들을 자아 정체성이라고 한다.
자아 정체성은 한 개인을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로 연결해주는 연속성 혹은 동질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타인과 구별해주는 독특성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강한 자아 정체성을 소유한 사람은 타인과 다른 여러 가지 개인적 특성을 소유하면서도 그런 특성을 조화롭게 통합해 나가려는 의지와 능력을 갖게 되며, 시간이 지나고 경험하는 것들이 달라져도 자기 지각이 일관성을 지니게 된다.
객관적 정체성인 심리사회적 정체성이 강하면 은퇴로 인한 심리적 상실감이 클 것이다. 반대로 주관적 정체성인 개별적 정체성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은퇴로 인한 상실감은 적을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전자는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반면에 후자는 ‘언젠가는 그만둘 회사다. 어차피 이렇게 되었으니 나에게 맞는 새로운 회사를 찾거나 새로운 즐길 거리를 찾겠다’라며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은퇴 전의 자존감과 은퇴 후의 자존감
자존감은 자기에 대한 느낌, 감정, 동기, 가치관, 인지 등이 개인의 심리현상 속에서 수용되고 조직화되는 전인격적인 의미를 지닌, 자기를 지향하는 하나의 평가적 개념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인 ‘자아존중감’을 간단히 이르는 말이다. 자아존중감이 높으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을 잘 인내한다. 처한 환경이나 사회적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소속감을 가진다. 개인적인 인생이나 직업 세계의 역경을 이겨 나갈 준비 태세를 잘 갖추며, 실패 후에도 자기 자신을 잘 일으켜 세운다.
반대로 자아존중감이 낮으면 자신을 쓸모없고 약하다고 생각해 스스로 학대하고 열등감을 가진다. 주변 사람들이 사소한 것을 가지고 거부하거나 조금이라도 비난하면 그들의 그 같은 태도에 쉽게 압도당한다. 또한 흡연, 음주, 폭력 등 자신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행동에 스스로를 방치하게 된다. 평소 자존감이 낮았다면 은퇴기에 이르렀을 때 인지적 상실, 가족과 친구의 상실, 역할 상실 등으로 인해 자존감이 더욱더 저하되어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생각하고,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잃게 된다. 즉, 자존감이 낮으면 자아상을 확립하지 못한다. 심하면 스스로를 무가치한 존재로 인식하고 자기학대까지 하게 된다. 은퇴자들이 자존감이 낮으면 결국 은둔자의 삶을 살게 된다. 그렇게 자기 스스로 갇힌 삶을 택하다 보면 삶의 질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유를 주는 은퇴
독립성은 개인의 유능함과 자급자족 능력, 심리적 안정과 행복의 의미를 포함한다. 그러나 은퇴기의 독립은 재정적 독립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자신을 구속하던 통제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했음을 강조한다. 근대 이전의 사회는 농경 사회였으므로 원칙적으로 은퇴란 없었다. 즉,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할 수 있었다. 다만 노동생산성이 떨어질 뿐이었다. 물론 현대인들이 겪는 은퇴 후 역할 상실로 인한 갑작스런 어려움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노동의 가치를 화폐로 측정하는 임금 노동시장이 출현했다. 임금 노동시장에서 최우선 가치인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근로자의 노동력의 약화나 상실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나이가 사용되었다. 이후 나이는 인간의 생산성 측정의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다.
일정 연령에 도달해 퇴직하게 되는데, 이 퇴직은 그동안 임금의 수단으로 담보하고 구속하던 직장으로부터 해방시켜 근로자들 개개인에게 독립된 삶을 부여하게 된다. 은퇴하면 구속된 직장생활에서 근무의 대가로 지급받던 급여는 포기해야 하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즐기고 가진 것을 베풀 수 있는 독립의 길이 새롭게 열리는 것이다. 특히, 일에 대한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인생 후반기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노년기에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발견할 또 다른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다.
은퇴 후에 일에 대한 염려로부터의 자유는 산업 사회에서 대부분의 은퇴자들에게 주어진 축복이 될 수 있다. 행복한 노년기란 마음의 고요함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삶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자유라는 축복으로 받아들여 역동적인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은퇴 후의 삶이 더욱더 풍성해진다. 더 나아가 자신의 사고와 활동에 대해 숙고해볼 수 있는 이때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새로운 인생 항로를 설계해보자. 그러면 노년의 생활을 즐기게 될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은퇴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1941년에 출간된 이 책은 거의 80년 후인 요즘 은퇴자들의 상황을 미리 예측한 듯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인간의 본능으로서의 자유에 대해 언급한다.
근대 사회는 프롬이 개체화(individuation)라고 부르는 현상을 동반하며 형성되었다. 프롬이 원초적 유대라 부르는 근대 이전의 혈연과 지연에 따라 결정되는 끈끈한 유대 관계는 개인의 개성을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안정감은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 사회와 함께 출현한 개체화는 개인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했던 원초적 유대에서 벗어나 그 이전의 사람들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고독과 불안이라는 감정을 집단적으로 느끼는 현상을 발생시켰다.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외부의 힘은 사람일 수도 있고 제도일 수도 있고 국가일 수도 있다. 신, 양심, 정신적 충동일 수도 있다.
절대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력하고 영원하고 화려하게 느껴지는 힘의 일부가 되어, 그 힘의 기운과 영광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아는 포기한다. 자아와 결부된 힘과 자존심을 모두 다 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으로서의 본래 모습은 잃고, 자유는 포기한다. 개인이 최초의 결합으로부터 점차 벗어나는 과정을 ‘개성화’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아기가 엄마와 생물학적으로는 분리되었지만 기능적으로는 상당 기간 엄마와 일체를 이루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완전한 개성화의 단계에 도달해 자유롭게 되면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고 안정감을 회복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서 자유의 의미도 달라진다.
개성화는 퇴직을 전후해 받게 되는 직간접의 교육과정을 통해 더욱 촉진되는데, 이 와중에 육체적ㆍ정서적ㆍ정신적으로 자아에 대한 인식이 강화된다. 이것은 개인의 정체성 측면에서 보았을 때 하나의 성장 과정이고, 은퇴를 통해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독감이 커질 수 있다. 때로는 개성을 버리고 바깥 세계에 몰입해 고독감과 무력감을 이겨 내고자 하는 충동도 생긴다. 현대 사회의 구조는 동시에 두 가지 측면에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은 보다 더 독립적ㆍ자율적ㆍ비판적으로 되었으며, 동시에 보다 더 고립되고 격리되고 공포에 떨게 되었다. 자유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이 같은 현대 사회의 양면성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은퇴의 기준으로 이야기해보자. 첫 번째 적은 계획되지 않은, 채우기도 벅찬 많은 시간이다. 여기에 더해 그동안 자신이 그들을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조차 자신의 은퇴생활에 도움보다는 장애가 되는 새로운 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자본주의는 인간을 전통적인 속박에서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자유를 증대시켜 능동적이고 비판적인, 책임을 가진 자아를 성장시키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동시에 개인을 한층 고립되고 격리된 존재로 만들면서 인생의 무의미함과 존재의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자유는 근대적 개인이 불안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지켜질 수 있지만, 근대적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유라는 부담을 피해 의존과 복종으로 되돌아가려는 퇴행의 몸짓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프롬이 주장하는 나치즘 시대의 노동자 계급이 보여준 것이다.
퇴직자들도 은퇴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속해 있던 조직에서 근대 이전의 원초적 유대 관계로부터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안정감은 잃게 된다. 고독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어렵게 획득한 자유를 버리고 더 큰 원 위에 다시 소속되려 노력하거나 훨씬 더 열악한 조건인데도 새로운 조직에 끼어들기를 희망한다. 절대적인 권위나 조직을 찾지 못한 많은 은퇴자들은 주어진 자유가 부담스럽기만 하고, 이를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다.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고독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자아를 형성해 자유를 지키려 애쓰게 된다. 이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은퇴생활에서 획득한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