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나는 기적
하오광차이 지음 | 영인미디어
당신이 만나는 기적
하오광차이 지음
영인미디어 / 2018년 3월 / 356쪽 / 15,000원
Creation -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돈은 만능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또한 맞는 말이 아닌가?
방글라데시는 인구 1억 5,000만 명에 1인당 국민 소득이 830달러인 나라다.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극빈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의 가난은 ‘춥고 배고프다’가 아니라 ‘덥고 배고프다’라는 말로 설명해야 한다. 기온이 45도까지 치솟는 무더운 여름에 작디작은 집 안에 앉아 있으면 마치 불 위에 올린 솥 안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다.
실제로 매년 수많은 사람이 열사병으로 사망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제대로 된 형태의 집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에어컨을 장만하겠는가?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살 돈이 없으며, 설령 선풍기가 생겨도 전기세를 못 내기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다. 현재 방글라데시 인구의 절반이 전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심지어 수도인 다카(Dhaka)에서도 여름에 매일 8시간씩 정전이 된다. 그것도 하루 중 가장 더울 때 말이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참을 수 없는 고온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들뿐 아니라 전 세계 약 11억에 달하는 사람이 혹독한 더위 속에서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설계사 아쉬스 폴(Ashis Paul)은 어느 날 아주 우연히 딸의 물리 선생님이 공기 팽창과 온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팽창하는 기체를 차갑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생님은 딸에게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듯이 손 위에 바람을 내뿜어 보라고 했다. 세게 불든 약하게 불든 이런 식으로 내뿜은 바람은 항상 뜨겁다. 그런 후, 선생님은 다시 입을 최대한 작게 오므리고 ‘후’ 불어 보라고 했다. 이렇게 나온 바람은 언제나 차갑다. 이것은 공기가 입을 통과할 때 입의 크기가 압력의 변화를 만들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이다. 입을 크게 벌리면 공기가 팽창해서 뜨거워지고 반대로 입을 작게 오므리면 공기가 압축되어 차가워진다. 그래서 날씨가 추워 손이 얼면 입을 크게 벌리고 열기를 내뿜고,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는 입을 작게 만들어 차가운 공기를 부는 것이다.
순간 아쉬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왜 아무도 이런 간단한 원리를 이용하지 않았던 거지? 이거야말로 돈 들이지 않고 냉방기를 만드는 방법이잖아! 그는 거의 수백 번에 걸친 실험 끝에 마침내 ‘에코 쿨러(Eco Cooler)’를 발명해 냈다. 그리고 에코 쿨러를 상용화하기 위해 그레이 다카(Grey Dhaka)와 합작하기로 했다. 그레이 다카는 전 세계 96개국에서 사업을 펼치는 다국적 광고기업 그레이 그룹(The Grey Group)이 다카에 설립한 회사다. 그는 왜 가전제품 회사가 아닌 광고 회사와 손을 잡았을까? 제작이 너무 간단해서 돈이 들지 않으므로 판매보다 광고에 더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2016년 5월 4일, 그레이 다카는 에코 쿨러의 홍보 영상을 배포했는데 여기에는 누구나 쉽게 에코 쿨러를 따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소개되었다. 창문에 에코 쿨러를 달면 실외의 뜨거운 공기가 좁은 페트병 입구를 거쳐 차갑게 변한다. 에코 쿨러는 전기도, 기계도, 돈도 필요 없다. 오로지 자연의 원리를 이용해서 실내 온도를 5도나 낮출 수 있다! 겨우 5도라고 생각하는가? 이 5도 차이에 아기들은 기분 좋게 잠들고, 학생들은 좀 더 집중해서 공부한다. 엄마는 더 편하게 집안일을 하고, 노인들도 안심하고 쉴 수 있다. 방글라데시의 빈곤층은 에코 쿨러 덕분에 더위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에코 쿨러는 분해되지 않는 페트병을 매우 효과적으로 재활용하는 방법이다.
아쉬스는 빈곤층을 돕고자 이처럼 멋진 발명품을 만들어 냈다. 그는 에코 쿨러가 히트를 친 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특허 신청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 홍보해서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그가 합작 파트너로 그레이 다카를 선택한 이유도 그레이 그룹의 기업 이념이 ‘solvertising’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각각 ‘해결’과 ‘광고’를 의미하는 ‘solve’와 ‘advertising’의 합성어로, 광고가 기업의 이윤 추구뿐 아니라 사회 및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그레이 다카는 방글라데시의 사회적 기업인 그라민 인텔 소셜 비즈니스(Grameen Intel Social Business)와 손잡고 에코 쿨러 광고를 더욱 확대했다. 그레이 다카는 동영상 광고를 책임지고, 그라민은 자원봉사자를 파견해 교육받지 못한 빈곤층에게 에코 쿨러 제작을 교육하는 일을 맡았다. 현재 이미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이 혜택을 받았으며 방글라데시 전역에서 엄청난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이 효과는 지속적인 광고를 통해 눈덩이처럼 불어나 수많은 생명을 구해 냈다.
그라민 인텔 소셜 비즈니스의 모기업은 그라민 뱅크(Grameen Bank)다.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교수가 빈민 구제를 목적으로 설립한 소액대출은행이다. 유누스 교수는 27달러를 가지고 은행을 열어 빈곤층 사람들에게 저이자 무담보 소액 대출을 해주었다. 이를 통해 수많은 가구가 가난에서 벗어났으며 특히 극빈 지역의 많은 여성의 삶이 변화했다. 에코 쿨러의 합작 파트너로 그라민보다 더 완벽한 기업은 없었다.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탄만 하는 사람은 결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아쉬스가 에코 쿨러를 발명한 것처럼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의 방법을 찾으면 된다. 돈이 필요 없는 해결책이야말로 가난 없는 사회를 만드는 진짜 방법이다!
Dream - 나의 작은 꿈이 세상에서 가장 원대한 꿈이 된다
흔히 큰 뜻을 세워야 큰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큰일이란 무엇이며, 또 작은 일이란 무엇일까?
달에 가는 것과 우주에서 사용할 볼펜을 만드는 것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큰일일까?
무중력 상태인 우주에서는 만년필이나 볼펜의 잉크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글씨를 쓸 수 없다. 이에 미국 NASA는 무려 100만 달러를 투입해 중력을 거슬러 무중력 상태에서도 글씨를 쓸 수 있는 일명 스페이스 펜을 개발했다. 미국과 치열하게 우주 경쟁을 벌이던 소련의 과학자는 이를 보고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아니, 미국 놈들은 연필을 모르나?” 그렇다. 소련은 우주에서 연필로 글씨를 쓴다. NASA가 바보같이 쓸데없는 일에 막대한 돈을 들인 걸까, 아니면 상대적으로 돈이 없는 소련의 궁여지책이 빛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참 재미있기는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미국과 소련은 모두 처음부터 우주에서 연필을 사용했다. 그런데 정말로 100만 달러를 쏟아부어서 ‘스페이스 펜’을 만든 사람은 존재한다. 바로 폴 피셔(Paul C. Fisher)이다.
미국 캔자스에서 태어난 피셔는 여섯 살 무렵부터 귀리 상자, 낡은 전선, 전기 부품 등을 이용해서 라디오를 조립하곤 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그는 대학 졸업 후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했다. 트럭 운전을 하고, 빵집에서 빵을 만들었으며, 베어링 제조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어느덧 서른한 살이 된 그는 레이놀드 펜(Reynold Pen Co.)에 입사했다. 사장은 그의 손재주를 알아보고 볼펜 개발 부서에 배치한 후, 어디 한번 완전히 새롭고 멋진 볼펜을 만들어 보라고 격려했다. 그는 마침내 잠재되어 있던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할 무대를 찾은 것이다!
피셔가 3년 동안 쉬지 않고 연구개발에 매진한 덕에 회사는 5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1946년에 500만 달러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사장은 마치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돌연 회사 문을 닫더니 돈만 가지고 멀리 떠나 버렸다. 실망한 피셔는 뜻이 맞는 직원들을 모아 직접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문을 연 피셔 펜(Fisher Pen Company)은 곧 볼펜 제조 분야에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가 직접 발명한 새로운 디자인의 볼펜들은 지금도 미국 산업 디자인 역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되어 있다.
1953년, 피셔는 모든 브랜드, 다양한 형태의 볼펜에 모두 사용이 가능한 범용 리필 카트리지를 개발했다. 이는 당시 필기구 분야에서 정말이지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그는 이와 관련한 특허로만 1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또 특수 잉크를 개발하고, 사용자가 좀 더 편안하고 우아하게 글을 쓸 수 있도록 볼펜에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적용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개발과정에 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품격 있는 멋진 볼펜 하나를 개발하려면 최소 1만 자루의 펜을 소모해야 합니다. 실패 없이는 성공할 수 없죠. 나의 성공은 수천, 수만 자루의 실패 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1966년 11월 15일, 피셔는 반(反) 중력 볼펜 ‘AG7’의 특허를 출원했다. AG7은 필기구 산업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사용하지 않을 때 AG7 안의 잉크는 젤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펜 끝의 볼이 움직이면 내부의 질소가 1제곱센티미터당 2.46킬로그램의 압력을 만들어서 잉크를 액체 상태로 변화시켜 밀어낸다. 그래서 혹한이나 폭염의 날씨에도 잉크의 흐름을 걱정할 필요 없이 부드럽게 글씨를 쓸 수 있다. AG7은 영하 46도부터 영상 205도의 환경에서도 끄떡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거꾸로 들고 천장에도 글을 쓸 수 있으며 물속, 바위 위, 엑스레이 필름 등 너무 미끄럽거나, 기름칠이 되어 있거나, 물에 젖었거나 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두 사용이 가능하다.
사실 연필은 우주에서 매우 위험한 물건이다. 사용하다가 부러진 연필심 조각이 우주선 안의 기계에 박혀서 고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연필심을 만드는 흑연이 우주선 안을 채우는 순수한 산소와 만나면 연소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1967년 1월 27일에 아폴로 1호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났는데 바로 연필심에서 시작된 불이었다. 그렇기에 피셔가 발명한 AG7은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NASA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AG7 400자루를 주문했다. 원래 가격은 한 자루에 3.98달러였지만 피셔는 40% 할인된 가격으로 2.39달러에 AG7을 납품했다. 그러니까 서두에서 언급한 100만 달러는 NASA가 쓴 돈이 아니라 피셔가 AG7을 개발하는 데 투입된 돈이었던 것이다. 얼마 후 소련도 AG7 100자루와 볼펜심 1000개를 주문했다. 이렇게 해서 치열하게 우주 경쟁을 벌이던 미국과 소련이 모두 피셔가 개발한 AG7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AG7은 ‘피셔 스페이스 펜(Fisher Space Pen)’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1969년 7월 20일, 전 세계인이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과 버즈 올드린(Buzz Aldrin)은 인류 최초로 달에 간 우주인이 되었다. 임무를 마친 두 사람은 필요 없는 장비를 버리고 다시 달착륙선에 탑승할 준비를 했다. 바로 이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달 표면의 진동 때문에 암스트롱의 배낭이 발진 스위치를 쳐서 떨어뜨린 것이다. 발진 스위치를 누르지 못하면 달착륙선을 출발시킬 수 없다. 순간 NASA의 중앙 콘트롤 센터에서는 커다란 소동이 일어났다. 절체절명의 순간, 한 엔지니어가 손에 쥐고 있던 AG7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올드린에게 가지고 있는 AG7의 압력을 이용해서 스위치를 움직여 보라고 전했다.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올드린은 AG7을 이용해 발진 스위치를 누르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두 우주인은 위기를 벗어나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AG7, 스페이스 펜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작은 펜 한 자루가 인류 최초의 달 탐사 성공에 큰 공을 세웠다.
Imagination - 상상력은 공간이 필요하다
하얗게 남겨진 곳은 빈 공간일까,
아니면 상상력의 공간일까?
TV방송국 고위직인 당신은 한 PD가 올린 프로그램 기획서를 보고 있다. 기획서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은 기차가 이동하는 경로의 풍광이다. 촬영 카메라를 달리는 기차 위에 설치하기만 하면 된다. 기자도 리포터도 필요 없으며 진행자와 게스트의 대화도 없다. 오로지 카메라의 렌즈 안에 들어오는 모습이 전부인데 무려 7~8시간을 촬영한 후 편집 없이 그대로 방영한다. 당신은 이 기획을 허락하겠는가?
2009년 11월 27일, 노르웨이의 TV 방송국 NRK2 채널이 베르겐(Bergen)-오슬로(Oslo) 구간의 철도 개통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그들은 기차 위에 네 대의 촬영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차가 이동하는 여정의 풍광을 촬영했다. 기자, 해설가, 스토리, 편집, 음향효과…… 아무것도 없었으며 기차가 출발하면서부터 도착할 때까지 지나간 풍경은 단 한 컷도 자르지 않았다. 기차가 터널을 지나갈 때는 화면도 칠흑같이 어두웠고, 터널이 너무 긴 경우에만 짧은 해설 내레이션이 더해졌다. 시청자들이 텔레비전이 고장 났다거나 TV 방송국의 송출 오류로 오인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NRK2는 7시간 14분 동안 이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 특별 프로그램은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두었다. 시청자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감상을 나누었다. 마치 모두 함께 기차여행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흔 살이 넘은 한 남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다가 기차가 종착역에 들어서며 속도를 줄이자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짐을 드는 시늉을 했다. 그는 그 바람에 머리를 창문 블라인드에 부딪쳤다고 말하며 웃었다. 재미있게도 이 프로그램이 방송되던 시간에 다른 채널에서는 노르웨이의 대선 개표 방송을 생중계했다. 하지만 대선 개표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개표 방송의 시청률은 11월의 노르웨이 기온보다 낮았다!
큰 강을 수영해서 건넌 사람은 바다를 건너려 하고, 킬리만자로에 오른 사람은 곧 에베레스트 등반을 준비하는 법이다. 뜻밖의 성공에 고무된 NRK2는 다시 한 번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열한 대의 카메라가 동원되었으며 역시 베르겐에서 출발해 시르 케네스(Kirkenes)까지 가는 긴 여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차가 아니라 배를 타고 갔다! 우편선이 항해하며 지나가는 아름다운 해안을 보여준 이 방송은 생중계로 방영되었다. 아직 놀랄 일이 더 남아 있다. 아주 특별한 이 프로그램은 놀랍게도 무려 5일 동안이나 노르웨이의 멋진 해안을 실황 중계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말하는 사람도 없고, 스토리도 없고 당연히 편집도 없었다. 오로지 카메라 렌즈가 담는 모습만 보여주었으며 배경음악이 더해졌다. 134시간 42분 동안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기네스 기록을 갱신하며 세계에서 가장 긴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이전과 달리 NRK2는 우편선의 항해 노선을 미리 공개했다. 그래서 배가 지나갈 때 많은 사람이 해안이나 항구에 와서 손을 흔들거나 친척이나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커다란 간판을 들고 흔들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휴대폰을 든 채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는 사람이 나오면 사진을 찍어 바로 SNS에 공유했다. 노르웨이 여왕까지 나와 국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춤을 추며 간단한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주 창의적인 퍼포먼스를 보인 배우들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우편선 여행을 더욱 풍부하고 감동적으로 만들어 냈다. 이 ‘무료한’ 프로그램은 놀랍게도 유료 방송이었다!
이처럼 간단하고 평범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었을까?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시청자들의 상상력이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텔레비전을 볼 때 우리의 뇌는 움직이지 않고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기만 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등장하거나 말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시청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