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
다카다 아키카즈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
다카다 아키카즈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3월 / 180쪽 / 12,800원
PART 01 당신은 예민한가요?
남들의 생각과 마음을 너무나 잘 느낀다
내가 대학교에서 일할 때 럭비부 고문을 맡은 적이 있다. 문제는 내가 실제 럭비를 해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구경도 해본 적 없었기 때문에 형식상으로만 고문이었지 선수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였다. 내가 고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선수들에게 술 한잔 사주면서 서로 깊이 교류하게 하거나 격려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고문이 이렇게 한다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웬일인지 우리 럭비부는 대회 우승까지 차지했다.
아무리 형식적인 고문이었다지만 나는 너무나 기뻤다. 그렇게 기뻐하다 마침 건물 복도에서 럭비부 주장과 마주쳤다. “주장, 축하해요!” 그런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상관없으시지 않나요?’ 실제 주장은 “아, 그렇네요.”라고 짧게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 귀에는 위의 말처럼 들렸다.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했더니 한마디 면박만이 돌아왔다.
“제발요! 자꾸 그렇게 생각하시니까 그런 뜻으로 환청이 들리는 거라고요!” 맞다. 그럴 것이다.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애당초 ‘환청’이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민한 사람들에겐 그것은 환청이나 망상, 착각이 아니다. 상대가 속으로 한 말이 또렷하게 들린다. 그리고 그들 마음에 품은 생각을 느낄 수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상대와 지금까지의 경험과 당시의 분위기, 표정의 작은 변화까지 예민하게 받아들인 후 무의식적으로 분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에게는 “감으로 알 수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게 적절하다. 이치를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직감이 착각으로 끝나기도 맞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게다가 보통 안 좋은 일일 경우 더 그랬다.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매번 느낄 수는 없지만 알 필요도 없는 상대의 감정이나 의도를 남들보다 쉽게 알아채기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오고, 감정에 과부하를 느끼곤 했다. 상대와 다른 공간에 있는데 그의 속마음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상대의 속마음을 잘 알 수 있어서인지 친구를 만드는 것이 무서웠다. 상대방이 아무리 친한 척을 해도 속으로 나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는 건 아닌지 등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올까 두려웠던 것이다.
직관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이 ‘괴로운’ 능력에도 장점은 있다. 먼저 상대의 고민이나 불만을 알아차리고 해소해줄 수 있다. 또한 상대의 악의를 빨리 간파해 인간관계가 나쁜 쪽으로 흐르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이처럼 남들의 기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질에 반드시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악의가 있는 사람을 애초에 멀리할 수 있고 주변 사람을 섬세하게 배려할 수 있어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된다. 단점을 완벽히 없앨 수 없다면, 그 반대편에 있는 장점을 더 크게 생각하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외부 자극에 너무나 빠르게 반응한다
남들보다 예민하다는 것은 자극에 쉽게 반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자극이란 눈, 코, 귀, 혀, 피부와 같은 감각기관에 작용하는 것인데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것, 냄새, 소리, 맛, 피부가 느끼는 감촉이다.
예민한 사람이 아니어도 이런 경험은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문을 여는 순간이나 모퉁이를 돌 때 사람이 나타나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비명을 지를 뿐만 아니라 소스라치며 뒤로 넘어지는 등의 극단적인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어도 이상할 것 없는 사람과 마주치더라도 마치 괴한이나 유령을 보는 듯한 행동을 보이니 상대가 오히려 놀라고 불쾌해하는 경우도 있다.
예민한 사람은 남이 볼 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도 신경을 즉각적으로 곤두세우고 격하게 반응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자극에 쉽게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자극에 쉽게 반응해서 정신적으로 피로함을 자주 호소하니 모든 자극에 일일이 반응할 수는 없다. 다만 느껴도 반응하는 모습을 안 보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까맣게 타 있다.
그리고 예민함에도 개성이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제각기 반응하는 상황도 다르다. 예를 들어 피를 보면 구역질이 나는 경우도 있고, 특정 소재의 옷을 입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징크스와는 조금 다른데 징크스의 경우 해당 상황에서는 그냥 일이 안 풀리는 것 같다는 아주 사소한 심리적 동요가 생길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예민함은 참 골치 아픈 능력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생각을 바꿔보자. 예민함은 자극에 대한 뇌의 처리능력이 높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생각의 각도만 바꿔도 느낌이 확 달라진다. 즉, 예민한 사람은 사소한 차이도 느낄 수 있어 위험을 잘 감지하며 그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바로 간파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게 따지면 예민한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은 소믈리에가 아닐까 싶다. 소믈리에가 말하는 맛과 향에 대한 평가가 맞느냐 틀리느냐를 떠나서, 직업적으로 냄새와 맛을 섬세하게 느껴야 인정받기 때문이다. 또한 눈에서도 아주 예민한 기관인 각막을 다루는 안과 의사나 0.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정밀 제품을 테스트하는 직업도 그렇다. 세상엔 예민함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내성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예민한 사람은 어릴 때부터 겁쟁이에 내성적이란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문제는 이렇게 한 번 붙은 꼬리표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도 기본적으로 ‘저 사람은 소심한 사람이네’라고 생각하며 대한다. 예민함은 어딜 가도, 누가 봐도, 대번에 그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정도 되면 자신조차도 주변의 평가가 정당한 것처럼 생각하고 만다.
사실 예민하다고 죄다 겁쟁이거나 내성적이지는 않다. 적극적이고 도전적이며 외향적으로 인간관계를 넓혀가는 사람 중에도 예민한 사람은 있다. 애초에 잘못된 꼬리표가 붙지 않았거나 그 꼬리표를 스스로 떼어내고 정당한 평가를 쟁취한 사람일 것이다. 대개 예민한 사람을 겁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작은 일에도 놀라거나 생각이 많아 일을 좀처럼 시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작은 소리에도 놀라거나 흥분하는 모습만으로 그저 단순히 겁이 많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또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은 신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성적이라는 평가도 잘못되었다. 남들과 쉽게 허물없이 지내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이 깊어 상대의 기분을 먼저 배려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남들이 줄곧 같은 소리만 하면 점차 실제 자신과 다른 성격이 되어간다. 남들이 말하는 대로 성격이 바뀌는 것이다. 또 ‘원래 이런 성격이니까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지레 포기해버린다. 단점을 뒤집으면 장점이 되고 각도를 조금만 바꾸면 훌륭한 재능이 보인다. 그러니 주변의 평가나 잘못된 꼬리표에 굴하지 말고 자신을 믿으며 살았으면 한다.
몸보다는 마음의 휴식이 필요하다
‘살기 힘들다’는 감정에 빠져 산다면 예민함이 화를 불러일으켰을 가능성이 높다. 나도 한때는 이유 없는 스트레스 때문에 하루하루 술자리를 갖고 떠들며 이런 기분을 감추고 잊으려 했던 적이 있었다. 나처럼 예민한 사람은 주변의 끊임없는 자극이 일종의 공격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독선적이고 일방적으로 일을 매듭짓곤 했다. 나름의 대책이었지만 이런 방식은 마음에 부담을 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술의 힘을 많이 빌렸다. 내가 워낙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터라 일찌감치 취해버리는 게 낫겠다 싶어 폭음을 했다. 일단 먼저 술에 취해버리면 상대가 이런저런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더라도 참을 만했다. 제대로 들리지도 않고 생각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 일단 취기가 오르면 확실히 자극에 무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 나름 효과가 있었다. 적어도 술에 취했을 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자리가 끝나면 엄청난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전투에서 패한 병사의 모습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은 안 좋고 머리는 아프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술이 깨면서 함께 마신 동료들에게 내가 민폐를 끼치진 않았는지, 주사를 피우지 않았는지, 술 먹고 잃어버린 물건은 없는지 등을 확인하면서 엄청난 후회가 밀려와 전전긍긍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해가 지면 전날의 기억은 어디에다 처박았는지 또 술자리로 달려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날이 이어졌었다. 그렇게 피로가 쌓여가니 마치 꾸역꾸역 끌어다 쓴 사채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손을 쓰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살기 힘들다’고 느끼는 원인이 예민함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당시 내게 필요했던 것은 술도 아니고 누군가와의 대화도 아니며 그저 휴식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예민한 사람은 끊임없이 자극에 노출된다. 남들이 아무렇지 않을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힘겨워한다. 예전의 나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자신과 남을 속이면서 살았었다. 자극으로 흥분된 신경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혼자서 여유롭게 쉬는 것이 가장 좋다.
나만의 시간을 최대한 만들어보자. 일주일에 닷새를 삼시세끼 마련하는 데 썼다면 주말 이틀 정도는 사람들과 싸워 방전된 몸과 마음을 충전시킬 수 있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뭔가를 하며 쉬어야 한다. 종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어도 좋다. 그게 가장 행복하다면 말이다.
PART 02 예민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민함은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예민함은 기질이다. 타고나는 것이다. 성별이나 키, 머리카락 색 등과 마찬가지로 유전자에 새겨진 정보다. 즉, 예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유전자가 다르다.
아론 박사는 자신의 책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에서 미국의 심리학자인 제롬 케이건의 실험을 소개한다. 겁쟁이 아이와 겁쟁이가 아닌 아이를 다양한 관점에서 비교한 실험인데, ‘겁쟁이’ 아이는 스트레스 여부와 상관없이 침 속의 코르티솔 양이 ‘겁쟁이가 아닌’ 아이보다 많았다고 한다. 또 ‘겁쟁이’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우뇌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결과도 나왔다. 케이건의 실험뿐만 아니라 다른 실험을 살펴봐도 예민한 사람의 경우 좌뇌보다 우뇌가 활발하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예민함은 단순히 성격이나 사고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참거나 이겨내려 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며 태곳적부터 생물의 유전자에 새겨져 면면히 이어져온 것이다.
만약 예민함이 인간에게 불필요했다면 유전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예민하지 않다면 편안하게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예민함도 당신의 가치를 완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애착장애가 예민함을 키운다
예민한 사람의 고통을 무겁게 하는 증상 중 하나가 애착장애다. 사람의 경우 생후 3개월경부터 열 살 전후에 걸쳐 애착 형성이 이루어진다. 갓난아기는 겨우 명암을 구분하는 정도의 시력을 가지지만 3개월이 지나면서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을 보고 웃어주는 사람,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을 알아챌 수 있다. 아기가 우는데 어른이 안아주지 않거나 매번 다른 사람이 아기를 돌보면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해 항상 불안에 떨어 사람과의 적절한 거리를 가늠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애착장애다.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부모가 항상 지켜준다는 애착 형성이 이루어지면 모험을 해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해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르는 물건을 만져보거나 뭐든 입에 넣어보는 행동은 현재 상황에 안심한다는 증거다.
또한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이 누군지 알면 모르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감각도 생긴다. 이것이 바로 낯가림이다. 낯가림은 원래 애착 형성이 이루어지는 시기의 아이가 항상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 이외에 다른 사람을 꺼리거나 싫어하는 모습이다. 낯가림을 하면서 자신이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을 알고 타인과 거리를 두는 방법을 배운다. 어릴 때 충분한 사랑을 받으면 애착 형성이 원만히 이루어졌다면 자신의 강한 모습과 약한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성공과 실패에 따른 분별력도 생겨 자신감이 생긴다.
예민한 사람은 어린 시절 애착장애를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예민함은 타고나는 기질이지만 그 기질을 애착장애가 좀 더 키웠다고 보면 된다. 보통 아이가 애착장애의 증상을 보일 경우, 방치나 학대가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또한 부모가 다른 형제자매를 더 챙기거나, 칭찬보다 주의를 많이 받는 등 사소한 일이 원인일 수도 있다.
남들 눈에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처럼 보이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부모의 애정이 부족했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다. 특히, 예민한 사람은 부모의 감정에도 역시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작은 일로도 애착장애에 빠지기 쉽다.
물론 예민함의 여부에 관계없이 애착장애를 보이는 사람의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서툴기 때문에 항상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남들에게 휘둘리기 쉽다. 어릴 때부터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사랑에 목마르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사랑받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강해 애정을 거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이성에게 일시적으로 빠지기도 하지만 그 사랑에 불안을 느끼고 떠나는 일도 있다.
이와 같이 예민함의 배경에 유아기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는지도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면 그 대처법을 조금이라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민함과 우울증은 다르다?
예민함과 우울증을 혼동하는 사람이 주변에 매우 많다. 우울증의 증상인 불면, 피로, 자존감 하락 등이 예민한 사람이 보이는 특징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나도 HSP를 알기 전에는 내가 우울증에 걸린 줄 알았다. 물론 전공이 다르지만 심지어 의사인 내가 그랬다.
그렇다면 예민함과 우울증이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가장 큰 차이점은 ‘발병 전후의 변화’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우울증은 평소 호기심이 왕성하고 활발했는데 갑자기 기분이 침울해져 어떤 일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거나, 평소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그냥 일하기 싫어지는 등 발병 전후가 명확히 다르다. 이에 비해 예민한 경우 기본적으로 큰 변화가 없으며 철이 들고 난 이후부터 늘 같은 고민을 끌어안는다.
또 우울증의 경우 강한 자살 충동을 느끼게 하는 증상이 있지만 예민함은 그렇지 않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자존감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절망감에 빠지기 때문에 자살 충동을 자주 느낀다. 반면 예민한 사람은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자주 들지언정 자살 충동까지 치닫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도 직접 행동에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떤 일로 인해 전전긍긍하거나 후회하고, 정작 다가올 미래에 대해 비관하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단순히 우울증이라 단정하지 말자. HSP일 가능성도 있다. 병원에서 우울증으로 진단받더라도 예민한 기질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으니 의사에게 상담받도록 하자. 우울증은 정신과의 영역이지만 예민함은 그렇지 않다. 우울증은 치유가 목표지만 예민함은 공생이 중요하다는 사실 역시 명심하자.
센서티브란 ‘섬세한’이란 뜻이다
HSP에 관한 책은 예민한 사람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해소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왠지 고통에만 초점이 맞춰진 경향이 있어 부정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것 같다. 먼저 HSP의 S인 Sensitive(센서티브)를 ‘예민한’으로 단순히 해석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면 왠지 허약해서 신중하게 대하지 않으면 상처받기 쉬운 사람, 작은 일에도 전전긍긍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