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레오 버스카글리아 지음 | 홍익출판사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레오 버스카글리아 지음
홍익출판사 / 2018년 1월 / 407쪽 / 13,800원
사랑, 태도를 변화시키는 매개체
사랑학 강의에도 실습이 있나요?
오늘 저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시 말해서 ‘사랑학 강의’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사랑학이라니, 그런 이상한 강의를 듣기 위해 저를 초청하신 여러분들은 참으로 용기 있는 분들입니다. 제가 어쩌다 사랑학 강의를 시작할 생각을 했는지 그 배경을 먼저 소개하려고 합니다. 5년 전에 저는 캘리포니아의 어느 특수교육기관에서 교육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따분한 행정직이 아니라 교수로서 다시 교단에 서고 싶다는 생각에 학장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학장님이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무슨 과목을 강의하길 원하십니까?” “사랑을 다루는 수업을 맡고 싶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저는 정말로 2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사랑학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학생 수가 200명에 달하고, 대기자가 600명이나 됩니다.
교육 정책을 다루는 위원들이 모여서 미국 교육의 장래 목표를 정할 때마다 저는 놀라곤 합니다. 그들이 모여서 정하는 첫 번째 목표는 언제나 자아실현 또는 자아 발견입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원까지의 교과과정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진정한 사명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왜 필요한가?’를 다루는 과목도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합니까? 전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사랑학’이라는 과목이 있는 곳은 우리 학교뿐이며, 그런 과목을 담당할 정신 나간 교수라곤 지구상에 저 하나뿐입니다.
오래전부터 심리학자와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이 사랑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간관계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는 이유는 바로 이 말을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칠 사람은 누구일까요? 먼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를 들 수 있겠는데,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다음으로는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부모라고 해서 언제나 최고의 가르침을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자주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을 완벽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을 그렇게 여기며 성장하다가 어느 순간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하고 분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라는 남자와 어머니라는 여자가 나와 마찬가지로 고뇌와 오해와 기쁨과 슬픔이 있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어른으로 향하는 출발점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중요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부모님과 사회로부터 이미 사랑을 충분히 배워온 사람이라면, 자신이 배운 내용을 실천하고 수정해가면서 진정한 사랑에 대해 다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된 교육의 시작은 독창성을 찾는 것부터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란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비로소 뭔가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무엇이든지 간에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언젠가 나누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지금 이곳에 있는 여러분에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친다고 해도 저는 잃는 게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은 하나도 남김없이 여전할 테니까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버리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공유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저는 여러분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겠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제가 갖고 있는 사랑의 양과 사랑할 수 있는 힘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본 바탕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저의 사랑이 신경질적이고 소유욕이 강하고 병들어 있다면, 여러분에게 신경질적이고 소유욕이 강하고 병든 사랑을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저의 지식이 풍부하고, 사랑이 넘치고, 경험이 많고, 무엇이든 넉넉하다면, 여러분은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전달받고서 그것을 토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1년 동안 제 강의를 듣고, 사회로 나가서 여러분이 본래 갖고 있던 것들에 제 선물을 보태서 좋은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나 인류학자의 관점에서 벗어나 제 나름대로 저의 강의에 대해 정의를 내리자면, 우리가 잊고 지내온 그 무엇을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 무엇이란 바로 ‘독창성’을 가리킵니다. 교육은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게 아니라 독창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그것을 계발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그것을 나누어줄 수 있는 방법을 친절히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유감스러운 일은, 우리 교육이 사람들을 모두 똑같게 만들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들을 앞에 앉혀 놓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나 너의 독창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 오직 너를 나와 똑같은 인간으로 만드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네가 얼마나 나를 닮느냐에 따라 내가 얼마나 훌륭한 교사인지 판가름이 나는 거니까.’
본래의 ‘나’로 돌아가자
사랑이란,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일
오늘의 강의 주제는 ‘상담’입니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본래의 내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상담을 몇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읽어보신 분이 계십니까? 아직 못 보신 분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정말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생텍쥐페리는 이 책에서 사랑에 대해 어린아이처럼 아주 단순하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당신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도록 돕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르침이란, 상담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 그 사람만의 독특함, 그 사람 속에 내재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말입니다.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한번은 사랑학 강의가 끝난 뒤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는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따라 주차장으로 갔는데, 글쎄 그분이 다짜고짜 저를 끌어안더니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겁니다. “며칠 전에 스물한 살인 아들 녀석이 ‘아버지, 정말 사랑해요’라는 겁니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어요. 아들 녀석이 저를 사랑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녀석이 선생님 덕분에 비로소 표현할 줄 알게 된 겁니다.”
저는 변화를 믿습니다. 교사인 우리부터 먼저 변화의 힘과 그 가능성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교육이란 끊임없이 변해가는 과정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칠 때마다 그 지식을 흡수한 상대방은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배움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모험이라는 걸 사람들이 왜 모르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배움이야말로 새로운 내가 되는 가장 확실한 과정입니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우리의 말은 어린아이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어느 꼬마가 흥분한 나머지 이렇게 외쳤다고 칩시다. “어, 어, 엄마. 밖에 아, 아, 아이스크림을 파, 파는 아저씨가 와, 왔어요!” 그러자 엄마가 말허리를 뚝 자르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잠깐! 다시 한 번 천천히 이야기해봐라. 너는 지금 말을 더듬고 있잖니.”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으면 아이는 자신이 정말로 말을 더듬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나는 말더듬’이라고 자신을 세뇌시켜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삽시간에 한 아이를 말더듬이로 만드는 겁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 ‘너는 참 예뻐, 너는 참 예뻐, 너는 참 예뻐’라고 반복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이런 소리를 듣다 보면 정말 예쁜 사람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저는 ‘사랑은 배우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사실이 그렇습니다. 사랑도, 두려움도, 편견도, 미움도, 근심도, 책임감도, 의무감도, 존경심도, 상냥함과 너그러움도 모두 사회와 가정과 인간관계 속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인간은 한 살에서 두 살 사이에 단어에 담긴 기분과 뜻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며 본격적으로 말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때 배운 언어를 통해 주변을 인식하고, 이때 배운 언어를 평생 사용하면서 언어의 노예가 되기도 하고 주인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시기는 중요합니다.
내일로 가는 다리
내가 알고 있는 ‘다리’, 다섯 살 아이가 아는 ‘다리’
오늘 강의 주제가 ‘내일로 가는 다리’라는 걸 알고,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내일이라는 말 속에는 희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다리’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틈새를 이어주는 물체. 움푹 꺼진 곳이나 장애물을 건널 수 있게 하는 길.’ 이 내용을 보고 저는 놀랐습니다. 지난 4~5년 동안 제가 해온 일이 사람들 사이의 틈을 좁히고, 움푹 꺼진 곳을 뛰어넘는 길을 만들고, 장애물을 극복하고, 제가 아는 사람들 모두가 좀 더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애를 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아무 소용없다
내일로 가는 다리를 만들기 위해 정신을 집중해서 틈을 잇고, 틈새를 좁히고, 장애물을 극복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오늘 이 시간을 모조리 바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달리 말해, 여러분 하나하나가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먼저 실행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에게로 가는 다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저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상합니다. 자기 자신조차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다리는 지금의 나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이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 순간, 여러분은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한 기분을 느끼실 겁니다. 여러분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탄생한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의 인간적인 면모를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의 엉뚱함을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의 부족함을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의 외로움을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을 찬양하십시오.
모든 건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위대한 다리는 바로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이건 아주 중요합니다. 내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또 발전할수록 주위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게 점점 더 많아집니다. 저는 지금도 열심히 공부합니다. 여러분에게 더 많은 걸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지혜를 찾아 헤맵니다. 여러분에게 삶의 진실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깨달음을 넓히고 감수성을 다지는 것은 여러분의 감수성과 깨달음을 좀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입니다. 나와 여러분을 잇는 다리는 더 견고해지고, 더 오래갑니다. 그러니 이제 ‘나’를 벗고 ‘우리’가 됩시다.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아름다운 길입니다. 거기서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나에게로 가는 다리를 건설하는 게 최우선이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커다란 다리를 건설하는 게 다음 순서입니다.
완전한 인간이 되는 기술
지금 당장 사랑한다고 말하자
오늘 밤 여러분께 강연할 주제는 제가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테마로, 이름 하여 ‘완전한 인간이 되는 기술’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기술입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제가 인간이라는 것이, 인간이 되는데 필요한 모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끔찍이도 좋습니다. 저는 교육심리학자 하임 G. 기너트의 책을 읽고 깊이 감동한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어느 선생님이 기너트에게 보내온 글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저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거기서 저는 사람으로서 차마 눈뜨고는 못 볼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유식한 공학도들이 만든 가스실, 고등교육을 받은 의사들 손에 독살당한 소년과 소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에게 총살당한 여자와 젖먹이들……. 그래서 저는 교육에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부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박식한 괴물이나 유능한 정신병자, 혹은 고등교육을 받은 폭군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읽기ㆍ쓰기ㆍ철자법ㆍ역사ㆍ수학은 학생들을 인간답게 만들고 난 다음에나 비로소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교육이 학생들에게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르쳤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가르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생’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인데도 학생들에게 인생에 대해 가르치는 학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이 되는 법과 인간이 되는 것의 의미, ‘나는 인간이다’라는 말이 뜻하는 존엄성을 가르치는 교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토크쇼를 좋아합니다.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죠. 토크쇼에 나가보면 모두들 정의를 원합니다. “버스카글리아 박사님, 사랑의 정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저는 대뜸 이렇게 대답합니다. “잘 모르겠는데요. 하지만 저를 따라오시면 사랑을 하면서 사는 게 어떤 것인지는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의 범주는 너무나 광범위해서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한계를 긋는다는 뜻이므로 그 행위 자체가 위험합니다. 오늘 밤 이 자리에는 2,000명 쯤 되는 분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중에 외로움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절망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도 없을 것입니다.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는 분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웃어본 적이 있는 사람, 삶의 진정한 기쁨을 느껴본 적이 있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비슷한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일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완전한 인간이 되려는 노력 말입니다.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최고의 경지입니다. 저는 제가 완전한 인간이 되는 데 필요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가장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저는 신이 될 수는 없지만, 온전히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 될 수는 있습니다. 이제부터 제 역할에 온전히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원론적인 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흔쾌히 ‘나는 내가 좋아’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한테 없는 걸 남에게 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우리가 먼저 가지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멋있고 독특한 사람이 되어야 모든 걸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걸 가져야 버릴 수 있고, 그때 비로소 남에게 베풀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지혜를 모르면 여러분에게 무지를 가르칠 따름입니다. 기쁨을 모르면 절망을 가르칠 따름입니다. 자유를 모르면 여러분을 새장 안에 가둘 따름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여러분께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무엇인가를 드리려면 먼저 제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