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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왜 사과하지 않나요?

해리엇 러너 지음 | 저스트북스

당신, 왜 사과하지 않나요?

해리엇 러너 지음

저스트북스 / 2017년 12월 / 236쪽 / 13,500원





“미안해”의 여러 얼굴



‘미안하다’는 말 다음에 자기 정당화가 나오면서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가 되고 마는 일은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진정성이 없거나, 어려운 상황을 쉽게 모면하려는 의도이거나, 핑계가 뒤따르는 “미안해”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훌륭한 사과가 얼마나 큰 치료 효과를 지니는지는 즉각 확인할 수 있다. 진정한 사과를 받고 나면 기분이 풀리고 편안해진다.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과를 할 때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럼 이제부터 사과의 사례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가장 단순한 단계부터 중간 수준을 거쳐 어려운 단계로 이어지는 “미안해”이다.

가장 단순한 “미안해”

가장 단순한, 그리하여 가장 하기 쉬운 “미안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일 때 나온다. 사과라기보다는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는 반응으로 사용되기도 하고(“그런 어려움을 겪었구나. 미처 몰라줘서 미안해”), 불편을 초래한 상황에 대해 언급되기도 한다(“늦어서 미안,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는 바람에 차가 꽉 막혔어”). 아무튼 여기서 “미안해”는 상대가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을 알아주고 거기에 마음을 쓰고 있다는 의사소통이다.

중간 정도로 어려운 “미안해”

사과해야 할 이유가 있고, 우리가 예전의 행동을 후회하는 경우 사과는 조금 더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너무 짧거나 가벼운, 그리고 때를 놓친 사과는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내게 상담을 받았던 데버라는 학회 발표 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막내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데버라가 정해져 있던 학회 일정을 미리 알려줬음에도 여동생은 결혼 날짜를 고를 때 이를 고려하지 않았고, 무조건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우겼다. 데버라는 학회 쪽을 선택했지만, 막상 당일에는 결혼식에 갔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이 일은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몇 년이 지나 여동생이 보고 싶어진 데버라는 충동적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말하지 못했지만, 난 네 결혼식에 가지 못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면서도 계속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걸까’ 하고 생각했단다. 그런 멍청한 결정에 대해 어떤 설명도, 변명도 할 수가 없구나.” 여동생은 “맞아, 언니. 정말 너무했어”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이메일은 사과하는 데 썩 좋은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데버라는 이메일을 주고받은 후 기분이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가장 어려운 사과 -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기

과거에 잘못했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 사과하고 대화를 다시 시작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새삼 들쑤시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 사과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상대가 얘기를 꺼내지 않는 한 이쪽에서도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후회하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대화는 일단 시작하는 것이 최선이다.

방법론을 넘어서

한층 더 사과하기 어려운 상황들도 물론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과를 상대가 요구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상처받은 사람이 그 상처의 원인이 나라고 주장하며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는 앞에서 열린 마음으로 있어 주기란 대단히 힘들다. 하지만 상대가 아무리 무례하다고 해도 내가 책임질 부분은 인정할 수 있어야 인간관계가 유지된다.



사과를 망가뜨리는 다섯 가지 방법



“그렇지만”을 덧붙이는 것

상처받은 상대는 진심 어린 사과를 듣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렇지만”이라는 말이 사과에 따라붙으면 진정성은 사라진다. 이런 말이 섞여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자칫하면 사과가 변명으로 바뀌면서 본래 메시지를 망가뜨리고 만다. “그렇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과를 망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건 “상황을 감안하면 내 잘못(무례함, 시간에 늦은 것, 비난하는 말을 한 것 등등)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잖아”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렇게 느꼈다니 미안해”라는 말

이는 자주 나타나는 또 다른 거짓 사과이다. 진정한 사과는 상대의 반응이 아닌 자신의 행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만약 ~라면’이라는 말은 상대가 자기 반응에 의문을 품도록 만든다. “내가 너무 과민했다면 미안해” 혹은 “내 말이 공격적으로 들렸다면 미안해”라고 말하지 않도록 경계하라. ‘~라면 미안해’라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혼란스러운 사과

십대 아들과 함께 상담을 받으러 왔던 어느 아버지는 욱하는 성질 때문에 아들의 사소한 실수, 예를 들어 차고 문을 제대로 닫지 않은 일에 대해 과도하게 화를 내곤 했다. 아들이 맞서 발끈하면 아버지는 “내 말이 널 그렇게 성나게 만들었다니 미안하다.”라고 사과했다. “아버지의 그런 사과가 정말 싫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를 한층 더 화나게 만들거든요.” 아들이 내게 말했다.

아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아버지의 혼란스러운 사과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과 아닌 사과는 자기방어나 책임감 회피에서 나왔다기보다 불안한 가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혼란스러운 사고가 반영된 것에 가깝다. 체계 내부의 불안 정도가 크면 클수록 그 구성원들은 자기 행동(아버지가 두통에 시달리는데도 음악 볼륨을 낮추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이 아닌, 상대의 감정과 행동(아버지에게 두통을 일으킨 것에 대한 사과)에 책임을 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전에 용서했으니 또 용서해줘!”

사과를 망가뜨리는 또 다른 방법은 사과가 자동으로 용서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다. “미안해”가 피해자에게서 용서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과로 어느 정도 마음이 풀렸다고 해도 분노와 고통을 처리할 시간 없이 성급하게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진정한 사과라면 용서와 화해는 이후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상대가 원치 않는 사과

리자는 친구 셀리나의 남편과 외도를 했다. 셀리나는 앞으로 리자의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리자를 마음에서 지우려 애쓰면서 결혼 생활을 복구하는 데 노력을 집중했다. 몇 년 후 리자는 과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사과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리자는 지인을 통해 셀리나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셀리나 남편과의 외도는 일생 최대의 실수였고, 한번 만나 차라도 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밝히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리나는 리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났고, 애써 잊어버렸던 감정이 회오리쳤다.

리자는 두 번째로 음성 메시지를 남기면서 “내 입장을 듣는다면 아마 나를 용서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을 덧붙였다. 셀리나가 응답을 하지 않자, 리자는 편지를 보냈다. 셀리나는 봉투도 뜯지 않고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자기 인생에 다시금 개입하려는 리자의 집요함이 셀리나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졌다.리자는 스스로를 용서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용서의 과정에 셀리나가 포함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과의 목적은 상처받은 상대를 달래고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데 있지, 억지로 다시 만나 자기 입장을 설명하고 죄책감을 줄이는 데 있지 않다.



관계를 망가뜨리는 사과 - 과도한 사과와 미흡한 사과



“미안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과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는 대부분 여자다. 우리 세대의 여자들은 남들에게 감정적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도록 키워졌다. 그리하여 모든 것에 신속히 책임감을 느끼곤 한다. 무엇이 과도한 사과를 이끌어내는가? 확실히는 알 수 없다. 낮은 자존감, 권리의식 부족, 비판이나 거부를 피하려는 무의식적 욕구, 상대를 만족시키려는 과도한 기대, 감춰진 수치심, 예의 바름의 과시 등등이 반영되었을 수 있다. 혹은 그저 오래전부터 “미안해”가 자동적으로 입에 붙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원인을 꼭 알아야 과도한 사과를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과도하다고 생각된다면 정도를 낮추면 된다. 샐러드 접시 건네주는 것을 잊었다고 해서 고양이를 밟기라도 한 것처럼 여러 번 사과하지는 말라.

미흡한 사과도 안 된다

사과가 미흡한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친구를 만나러 시카고에 갔을 때, 호텔 엘리베이터에 45분 동안 갇힌 적이 있었다. 한밤중이었고, 비상벨을 눌러도 응답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 엘리베이터는 처음 고장 난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나는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고, 불만 제기 편지도 보냈다. 그랬더니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답신이 왔다. “불편이라고! 한밤중에 엘리베이터에 혼자 갇혀봐야 그게 어떤 경험인지 알려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담당자의 단어 선택은 내가 보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중요한 관계에서 사과가 미흡하다면 깊고 오래가는 상처가 남는다.

충분하고 훌륭한 사과

비즈니스 전문가 존 케이더는 저서 『효과적인 사과』에서 훌륭한 사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쾌한 정의를 내린다. ‘실례나 불편 등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인정하고,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후회를 표현하며, 보상을 제안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과이다.’

자기방어에 매달리는 상대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사과하지 않으려고 작정한 사람을 바꿀 방법은 없다. 자기방어, 치욕감 등이 너무 커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상태인 사람은 결코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대가 자기방어를 강화하는 것만은 막을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내 말이 전달될 가능성을 최고로 높일 수도 있다. 방어적인 상대와의 관계에서 당신 입장을 전달할 방법에 대해 지금부터 살펴보자.

사실만을 말하라

사실을 살짝만 과장해도 상대의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지난달에 남편이 늦게 퇴근한 것이 여섯 번인데 여덟 번이나 늦었다고 비난하면, 남편은 불만을 받아들이는 대신 사실관계 정정에 초점을 맞추고, 이런 논쟁이 벌어지면 사과는 물 건너간다. 상대가 자기 행동을 돌이켜보고 사과하도록 만들려면 의사소통의 기본적인 규칙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이 아닌 행동을 비판하라는 것이다.

짧게 말하라

상처받은 사람이나 화난 사람 누구나 잘 알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아주 중요한 원칙은 바로 ‘짧게 말하라’는 것이다. 사과하지 않는 사람, 방어벽을 치는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면 더 많이 말할수록 더 적게 전달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상대의 잘못이 크든 작든 마찬가지다.

치욕감 자극은 언제나 피하라

슈퍼마켓에서 사탕 한 줌을 슬쩍해 주머니에 넣었다가 금방 엄마에게 들통난 꼬마가 혼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처음에는 대화가 잘 진행되었다. 엄마는 “남의 것을 가져가면 안 돼. 법에 어긋나는 행동이야. 자, 사탕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주인아저씨한테 사과하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들이 대답을 하지 않자, 엄마는 아들의 행동 비판(아들이 한 일)에서 인격 공격(아들이라는 존재)으로 즉각 전환했다. “이런 짓을 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 늘 네가 정직하다고 믿었는데, 이젠 신뢰하지 못하게 됐어. 너한테 정말 실망했다.” 꼬마는 갓 일곱 살이 될까 말까 했다. 아들은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하면서 “잘못했어요.”라고 말했다. 일곱 살이든 일흔 살이든 치욕감을 주며 사과를 이끌어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사과는 치욕스러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정 행동 비판에서 벗어나 안 그래도 취약한 상대의 자존감에 도끼를 휘두른다면, 상대가 자신의 가해 행동을 반성하고 내게 공감하거나 후회하며 회복하려고 애쓸 가능성이 대폭 줄어든다. 또한 치욕감은 상대와의 인간관계에 근본적인 피해를 입힌다.

두 가지 입장의 도전

사과를 하는 입장과 사과를 받으려는 입장에서 제대로 처신하려면 관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사과를 하는 입장이라면, 인과관계 용어를 사용하면서 당신 행동의 결과와 그것이 상대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을 인정하라. 이것이 당신 행동이 상대의 상처와 고통을 야기했음을 인정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반면 사과를 받으려는 입장에서, 방어적인 가해자가 자기 행동의 책임을 인정하도록 만들려면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감정을 털어놓되 상대가 그 감정을 만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지는 말아야 한다. “당신이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어요”보다는 “당신이 한 짓을 알았을 때 난 비참한 기분이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분명하고 자존감도 지키는 발언이다.

마지막 조언

사과를 요구하지 말라. 사과를 요청하는 것은 괜찮지만, 요구는 역효과만 낸다. 이와 관련해 엘런 워치텔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대에게 굴종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억지로 하는 사과는 모욕적이다. 사과를 하면서 아이가 된 듯한, 혹은 자존감 없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당신이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진심 어린 사과를 어떻게 하면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라. 그리고 좋은 의도의 사과는 너그럽게 받아들여라.



사과를 어떻게 받고 또 받지 않을 것인가



장시간 비행기를 탔다가 내린 후였다. 남편은 자동차를 렌트하기 위해 줄을 섰고, 나는 두 아들을 데리고 대기실 바닥에 짐을 놓고 주저앉았다. 배가 출출해 견과류와 초콜릿을 꺼내 아이들에게 먹였다. 바로 옆에는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간식 먹는 것을 부러운 듯 쳐다보기에 나는 별 생각 없이 한 줌 건넸다.

5분쯤 지났을 때 불현듯 여자아이 어머니에게 먹을 것을 줘도 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는 점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아이 어머니가 보면서도 개입하지 않았고, 또 어차피 물어볼 시점이 지나버린 것 같아 잠자코 있었다. 이후 조금 더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나는 사과를 하기로 했다. “좀 전에 여쭤보지도 않고 따님한테 먹을 것을 주어 죄송합니다. 미처 생각을 못 했어요.” 나는 아이 어머니가 아무 문제없다고, 혹은 괜찮다고 대답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사과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어머니가 내 사과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정중했다. 그리고 말한 것 못지않게 중요한, 말하지 않은 내용까지 전달하고 있었다. 그 어머니는 내 감정을 충분히 존중했던 것이다. 또 그 어머니는 화를 내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말투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웠다. 속마음은 아니었겠지만 나를 가르치려고 들지도 않았다. “우리 딸이 소아 당뇨나 견과류 알레르기였다면 어쩌시려고요?”라든지 “댁의 아들들이 바닥을 짚은 더러운 손을 간식 봉지에 그대로 넣지 않았나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저 한마디 “사과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내가 사과해야 할 만한 행동을 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하지만 비난은 섞이지 않은 응답이었다. 나는 커다란 교훈을 얻었고, 그 뒤로는 다른 아이에게 먹을 것을 줄 때 반드시 그 부모에게 먼저 물어보게 되었다. 또한 단순하고도 정중하게 사과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인상 깊게 기억하게 되었다.

자녀들에게 사과를 가르치는 법

자녀들에게 사과하는 법을 가르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상담치료사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대답을 했다.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필요할 때 먼저 자녀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녀에게 사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가족 상담을 진행하면서 나는 자녀들에게 사과하는 법을 가르칠 때 어른들이 지켜야 할 또 다른 규칙을 찾아냈다. “사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후 거기서 입 다무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조언이다. 사과를 발판으로 잔소리나 설교를 시작하는 것이 우리의 반사적 반응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사과를 가르치고 싶은가? 내가 공항에서 만났던 아이 엄마를 기억하라. 그 어머니를 본보기 삼아 자녀의 사과를 받아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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