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변론에서 이기게 해주는 악마의 대화법
자오좐우 지음 | 이터
모든 변론에서 이기게 해주는 악마의 대화법
자오좐우 지음
이터 / 2017년 9월 / 288쪽 / 15,000원
상대의 논리부터 파악하라
논거를 찾아라
완전한 논리 구조란 일반적으로 주장과 논거로 이루어진다. 말하는 사람은 우선 대상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태도를 정리한 다음 적절한 논거를 들어 주장의 유효성을 증명한다. 논거는 이론적인 것과 사실적인 것 모두 활용 가능하지만 어느 쪽이든 말하는 이의 주장을 단단히 뒷받침하여 듣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힘 있는 논거가 부족할 경우 주장은 신빙성을 잃게 되고, 근거가 충분하지 않아 결국 상대를 설득하는 데 실패 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논거가 충분한지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오로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만 찾는다. 마치 저 사람은 명문가 출신이니 반드시 능력이 있을 거란 식인데, 이렇게 감정에 호소하는 논리적 오류가 발생하는 까닭은 근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논거가 충분해야 설득력을 얻는다. 물론 이때는 논거의 진실성도 중요하다. 언어논리학 전문가들은 올바른 논거의 첫째 조건으로 진실성을 꼽는다. 올바른 주장이라도 뒷받침하는 논거가 거짓이면 전체 논리에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논거는 크게 사실적 논거와 이론적 논거 두 가지로 나뉜다. 사실적 논거는 사람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사실, 실제 일어난 사건을 재료로 삼는다. 과거에 일어난 사실도 좋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좋다. 자신의 경험이나 다른 사람이 겪은 일, 긍정적인 사건과 부정적인 사건 모두 활용 할 수 있다. 한편 이론적 논거로는 사회적으로 공인된 대중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상식이나 도덕, 명언, 속담 등이 있다. 다음의 예시를 보자.
? 잔인한 운명도 인간의 의지를 막을 수는 없다. 사람은 스스로의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을 향해 걸어간다. 세계적인 작곡가 베토벤도 그랬다. 운명은 그의 청각을 앗아갔지만 베토벤은 끝내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다.
? 사람은 10분마다 거짓말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살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단지 거짓말의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 강한 의지만 있다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 북산(北山)에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우공이 살고 있는 지역에 태행산과 왕옥산이라는 거대한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왕래가 불편하였다. 우공은 그 산을 깎으려 끊임없이 노력했고 감복한 신이 우공을 도와 두 산을 옮겨주었다.
? 에디슨은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땀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후천적인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 중국 속담에 “푸른 산을 남겨두면 땔나무 걱정은 없다.”는 말이 있다.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힘을 모아 기운을 차리면 언젠가 재기할 기회가 올 것이다. 다섯 가지 글 가운데 앞의 세 개는 사실적 논거이고 마지막 두 개는 이론적 논거다. 언어논리학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논거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은 첫 단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주장을 제대로 펼치려면 논거를 선택 할 때 몇 가지를 더 고려해야 한다. 첫째, 논거는 반드시 진실해야 한다. 논거의 진실성은 언어논리학의 기본이다. 유형에 관계없이 모든 논거는 실제로 확인된 사실 또는 원리여야 하며, 이 부분이 결여되면 말에 근거가 없어진다. 다시 말해 올바른 논거의 첫째 조건은 진실성이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면 논거의 진실성부터 확보해야 한다.
둘째, 논거와 주장은 일치해야 한다. 논거의 진실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진실된 논거라고 해서 반드시 주장을 증명하고 뒷받침하지는 않다. 주장의 정확성을 증명하려면 논거의 진실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논거를 통해 결론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논거와 주장이 일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주장과 근거가 일치하지 않으면 주장의 유효성을 뒷받침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리니 땅이 젖는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만, 순서를 바꿔 ‘땅이 젖었으니 비가 내린 것이다’라고 한다면 오류가 생긴다. 왜냐하면 누군가 물을 뿌렸을 수도 있고 살수차가 방금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땅이 젖었다고 해서 비가 내렸다고 추론할 수는 없다.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동문서답하듯 주장과 논거가 일치하지 않는 논리적 오류를 자주 범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 속에 숨은 함정들
순환논증에 속지 말자
어느 중학교 정치 과목 교사는 객관식 문제를 설명할 때, 이 답안은 왜 맞고 저 답안은 왜 틀린지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학생이 질문하면 그저 이렇게 대답했다 “이 답이 정답이니까 맞는 거고 그러니까 나머지는 틀린 거지.” 학생들은 선생님의 설명이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가르치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순환논증이란 동어반복이라고도 일컫는 논증 오류다. 자신이 이미 정해둔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결론을 논거로 삼아 다시 결론을 증명하는 오류로 같은 술을 계속 다른 병에 바꿔 담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변은 왜 노란색이고 모르핀은 왜 졸음이 오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소변이 노란색인 이유는 소변 안에 포함된 색소가 노랗기 때문이며 모르핀을 투입하면 잠이 오는 이유는 모르핀이 마취 작용을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면 어떤가? 이런 답변들은 질문을 반복하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우리들 역시 일상 속의 소소한 사건 속에서 순환논증의 오류를 자주 범한다. 이를테면 아이가 정말로 잘못했다는 확신도 없이 아이를 혼내는 부모는 이렇게 말한다. “봐, 넌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없잖아. 이래도 잘못하지 않았어?” 그러나 아이에게 잘못이 없다면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학생들이 쓰는 논술문에서도 순환논증의 오류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조화로운 사회 건설’이라는 논술 주제에 대해 한 학생이 이렇게 썼다.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어째서 우리의 급선무일까? 그것은 조화로운 사회 건설이 오늘날 국가 건설의 가장 시급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조화로운 사회 건설을 중요 임무로 삼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우리가 건설해야 하는 것이 바로 조화로운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학생의 글에서는 논제와 논거, 결론이 모두 비슷하다. 왜 중요한지는 설명하지 않고 조화로운 사회 건설은 중요하다는 말만 동의반복했다. 명백히 순환논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초중고 학생들의 논술에서 이런 잘못은 수도 없이 많다. 다만 지나치게 드러날 정도는 아니라 그냥 넘어가기 쉬운 것 뿐이다.
어린 학생들은 아직 지식수준이 얕고 주제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논하라고 하면 합리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논점을 증명은 해야겠으니 순환논증의 오류를 자주 범한다. 특히, 초중고 학생들의 기하학 논증에서 이런 오류가 자주 발생하는데, 중요한 시험에서 문제를 풀려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결론이 성립한다고 가정부터 한 다음 증명하려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논증이 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순환논증의 오류를 통해 채점하는 선생님의 눈을 속여 보려는 심산이다. 순환논증은 논리적으로 성립한다. 다만 전제와 결론의 관계는 완전히 성립하되 전제가 결론을 증명해낼 수는 없다. 모든 순환논증은 명제가 이미 성립한다고 가정하고 시작하므로 그런 논증 과정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니 부디 속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중부정이 긍정이라고?
삼단논법은 흔히 볼 수 있는 논증이자 추리 형식이다. 앞쪽에 놓이는 명제(일반적으로 두 단)는 전제(premise)라고도 하는데, 우리는 명제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낸다. 다음의 예를 보자. 모든 포유류는 정온동물이다. - 대전제(major premise)
고래는 포유류다. - 소전제(minor premise)
따라서 고래는 정온동물이다. - 결론
대전제와 소전제 두 명제를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 삼단논법이다. 여기서는 앞의 두 전제가 근거가 되어 결론을 연역적으로 이끌어낸다. 그런데 두 가지 전제가 모두 부정형인 경우에는 유효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 없다. 이런 오류를 가리켜 부정 전제가 두 개인 오류라고 한다. 다음의 예를 보자. 건설 인부 가운데 제빵사인 사람은 없다.
제빵사 가운데 어부는 없다.
따라서 건설 인부 가운데 어부는 없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 삼단논법은 사실 매우 비논리적이다. 만약 어부 대신 탈세자를 넣는다면 마지막 결론은 이렇게 된다. 건설 인부 가운데 탈세자는 없다. 이렇게 신뢰성 없는 명제가 도출된 이유는 논증에 사용한 전제가 모두 부정형이기 때문이다. 오류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삼단논법은 두 가지 전제와 세 번째 결론이 각각 연결되고 두 전제끼리도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두 전제가 모두 부정형일 경우 전제들이 가리키는 사실이 결론을 완전히 포함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 두 가지 전제를 어떻게 연결하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두 가지 부정형을 모두 포함하면서 참인 결론을 얻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푸딩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말라깽이다.
흡연자 가운데 일부는 푸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흡연자 가운데 일부는 말라깽이다.
위의 두 부정명제는 흡연자의 문제를 올바르게 설명하지 못한다. 만약 흡연자가 무척 말랐다면 건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푸딩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담배를 사느라 푸딩을 사먹을 돈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기꾼들은 부정 전제가 두 개인 오류를 활용할 때 사람들이 쉽게 믿을 만한 사실을 골라 설득력 있는 부정형 명제를 만든다. 언뜻 신뢰성 있어 보이는 결론이 나왔으므로 청중은 말하는 사람이 사실을 제대로 증명해 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화자가 “국가의 지도자 중 게으른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말을 시작했다고 하자 청중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물론 최대한 청중이 경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을 택하는 것 또한 그들이 애용하는 수법이다. “면직된 사람 중 꼼꼼한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말이다. 복잡하게 들리는가? 하지만 알고 보면 무척 간단하다. 두 가지 전제가 모두 부정형일 때는 유효한 결론을 얻어낼 수 없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세히 들을 필요도 없이 그것이 오류라는 사실만 알면 그만이다.
질문의 기술, 진실은 논리 뒤에 숨어 있다
질문자의 관점에서 분석하기
상대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상대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원만하게 소통이 되지 않으면 서로 묻고 답하기를 반복한 뒤에야 비로소 상대가 원하는 답변이 무엇인지 깨닫는게 되는데 이런 식의 대화는 상당한 시간이 낭비된다. 다음은 일상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황이다.
샤오류가 샤오자오에게 물었다. “곧 퇴근인데 저녁에 뭐 먹을까?”
“훠궈는 너무 덥고, 일본 음식은 속이 냉해질 것 같아. 미국식 패스트푸드는 영양가가 없을 것 같고, 중국 음식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그러니까 저녁으로 뭘 먹을 거냐고!”
“대답했잖아.”
“넌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잔뜩 나열만 했지. 아무 말도 안 한 거랑 똑같잖아. 다시 물을게. 저녁 먹으러 어디로 갈래?”“KFC는 너무 멀고, 차오장난 식당은 너무 비싸. 샤취 분식은 에어컨이 없어서 너무 덥고, 치샹가든은 요새 너무 자주 갔잖아.”“다 됐고, 그래서 우리 어디로 가냐고!”
샤오자오는 조금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여태 내가 말하지 않았나?”
샤오류는 화를 내며 말했다. “됐어. 너랑 저녁 안 먹을래.”
별것 아닌 일로 두 사람은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문제는 아주 단순하다. 샤오자오는 샤오류의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샤오류가 “저녁에 뭐 먹을까?”라고 물은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음식을 먹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샤오자오에게 메뉴를 정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샤오쟈오는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나열해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결국 얼굴마저 붉히고 말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샤오류와 샤오자오 두 사람이 서로의 질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점이 오해의 가장 큰 원인임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샤오류는 샤오자오에게 명료하게 질문하지 않았다. 둘째로 만약 샤오자오가 하나의 큰 질문을 작은 질문 여러 개로 분석해 하나하나 대답할 줄 알았다면 두 사람이 서로 불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샤오류와 샤오자오가 서로의 질문을 분석할 줄 몰랐고, 질문의 우선순위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만약 샤오류와 샤오자오가 두 회사의 대표로 만나 협상을 했고, 그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면 얼마나 큰 손실이 생겼겠는가. 언어논리의 고수가 되고 싶다면 평소 질문을 분석하는 법을 반드시 익혀야 한다. 여기에는 타인의 질문뿐만 아니라 본인이 던진 질문도 해당된다. 타인의 질문을 잘 분석하면 동문서답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고, 자신의 질문을 분석할 줄 알면 상대방이 더욱 쉽게 핵심을 파악할 수 있도록 질문할 수 있다. 이처럼 질문 분석은 우리의 의사소통을 한층 원활 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제부터 질문자의 관점에서 질문을 분석하는 법을 알아보자. 핵심은 이것이다. 답변하는 사람이 우리가 묻고 싶은 게 무엇인지 더욱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질문해야 할까? 다음의 세 가지 방면으로 시작해보자.
첫째, 질문의 방향을 정한다. 가장 간단한 의문문은 단연 5W+1H, 즉 ‘언제(When)’, ‘어디서(where)’, ‘누가(who)’, ‘무엇을(What)’, ‘왜(Why)’, ‘어떻게(How)’라고 할 수 있다. 이 의문사들은 질문의 방향을 알려주고 우리가 어떤 방면의 내용을 묻고 있는지 명확하게 짚어낸다. 예를 들어 “주말에 어디 갔었니?”는 ‘어디서’에 대한 질문이고, “어제 저녁에 누구랑 있었어?”는 ‘누가’에 대한 질문이다. “매일 어떻게 등교하는지, 궁금하다면 ‘어떻게’로 질문을 만든다. 이렇게 알고 싶은 내용에 따라 적합한 의문사를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의 과정을 알 수 있다. 질문을 분석하기에 앞서 자신의 질문이 어떤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 내용이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올바른 의문사를 써서 질문한다.
둘째, 질문의 목적을 명확히 한 다음 중요한 부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시간을 알고 싶다면 질문의 중심은 언제에 놓아야 한다.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핵심은 누가가 될 것이다. 다른 부수적인 것들은 생략하자. 그러면 질문의 목적성이 한층 강해지면서 답변이 핵심을 벗어나는 상황도 피할 수 있다. 질문할 때는 목적성이 있어야 하며 아무렇게나 묻는 것은 삼가야 한다. 질문에 명확한 목적성이 있어야 대답하는 사람도 질문자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 알 수 있고, 양측의 소통도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셋째, 하나의 문장 속에 의문사는 3개 이하가 좋다. 질문 속에 너무 많은 의문사가 들어가면 답변하는 사람은 상대가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하나의 질문에는 한 개의 의문 요소만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 하나의 질문이 단일한 방향을 가리켜야 듣는 사람이 질문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대답하기도 쉽다. 예를 들어 팀장이 샤오한에게 “어제 출근 안 하고 뭐 했어요?”라고 물었다면 샤오한은 질문을 통해 팀장이 자신이 어제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는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샤오한은 이렇게 대답한다. “죄송해요, 팀장님 어제 아파서 병원에 가느라 출근을 못했어요.” 그런데 팀장이 이렇게 물었다고 해 보자. “어제 출근 안하고 누구랑 어디 가서 뭐 했어요?” 짧은 질문 하나 속에 의문 요소가 세 개나 들어 있다. 질문을 받은 샤오한은 팀장이 대체 무엇을 묻고 있는지 얼른 파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누구? 어디서? 뭘 했냐고? 이렇게 샤오한은 어떤 방향으로 답변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진다. 하나의 질문에 너무 많은 의문사가 들어가면 듣는 사람은 대뇌의 정보수집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대뇌는 동시에 여러 개의 정보를 분석하고 답변하기 어렵다. 그러니 질문할 때는 한 번에 의문사 1개 또는 최대 2개까지만 쓰자. 3개 이상이 한 문장 안에 들어가면 대답하는 사람의 사고회로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