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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전부다

이상원 지음 | 올림



몸이 전부다

이상원 지음

올림 / 2017년 7월 / 231쪽 / 13,000원





1세트 아까운 내 청춘!



살은 찌고 또 찌고

어릴 때부터 뚱뚱한 몸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던 나의 다이어트 역사는 대학 입시에 합격하고 나서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시작되었다. 걸프전이 한창이던 1991년 1월, 나는 동네 헬스클럽에 등록하면서 살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서점에 가서 랄프 뮐러의 『보디빌딩』이라는 책도 구입했다. 이 책의 저자는 미스터 유니버스 출신으로, 몇 년 뒤 개봉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러셀 크로와 함께 검투사로 출연하기도 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헬스클럽에 나간 횟수는 열 손가락으로 충분히 셀 수 있을 정도였고, 책은 결혼 후 집을 떠나면서 버릴 때까지 책꽂이에 얌전히 꽂혀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목표를 두고 결심을 한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이제 살을 좀 빼야 하지 않나 하는 막연하고 충동적인 생각에서 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며칠이 지나면서 열기가 식는 것 또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땐 몰랐다. 이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헬스클럽을 전전하고 다이어트 책을 읽느라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될 줄은.

옆으로 자라는 몸: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동안은 살이 좀 빠지는 듯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만 하다가 대학 캠퍼스든 학교 앞 술집이든 밤낮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느라 활동량이 늘어났기 때문 아니었을까? 그러다가 졸업하기 전 잠깐 고시공부를 했고, 이후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하면서 다시 살이 찌기 시작했다. 내 몸은 그동안 활동으로 빠졌던 살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빠른 속도로 회복(?)해갔다. 오랜 시간 앉아 있고 규칙적으로 많이 먹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다 학교 앞 헬스클럽에 나가 운동을 시작했다 요즘은 집이나 회사에서 5~10분 내에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을 이용해야 다이어트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왜 그때는 학교 도서관에서 30분 넘게 떨어진 그것도 무려 수동 러닝머신(손잡이를 잡고 다리를 움직여야 작동되는)이 있던 구식 헬스클럽을 찾아갔을까? 공부보다 헬스클럽 가는 게 더 힘들었으므로 운동이 될 리 만무했다.

1999년 가을, 여의도에 있는 쌍둥이빌딩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이 되자마자 근처 헬스클럽부터 알아봤다. 헬스클럽에 스쿼시 시설이 함께 있고 장기 등록하면 라켓이랑 가방 등을 주는 것이 유행하던 때였다(한동안 TV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투명 고글을 쓰고 스쿼시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많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나도 유행을 따라서 그런 곳에 등록을 했는데, 출석했던 횟수는 한쪽 손으로 세기에도 충분했다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 운동시간을 만드는 것이 만만했겠나. 새벽같이 통근버스 타고 출근해서 라면 같은 걸로 아침을 때우고 믹스커피 마시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오전 근무 하다가 쌓인 스트레스 먹는 걸로 풀려는 듯 점심시간에 포식하고 나서 다시 믹스커피 마시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오후 근무 마치면 회식이나 접대 자리에서 주로 삼겹살에 소주, 맥주 등으로 저녁을 먹고 늦게 귀가해서 입가심으로 맥주에 과자나 라면을 먹고 나서 겨우 너댓 시간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이런 생활을 반복하면서 내 몸은 정말 사육 당하는 것처럼 쑥쑥 자라났다(?). 위로는 다 컸으니 앞으로 그리고 옆으로 자랐다.

우리 가족은 한동안 처가에서 생활을 했는데, 얼마나 잘 먹고 지냈을지 상상에 맡긴다. 결혼도 늦었고 첫아이도 늦었기 때문에 바로 이어서 연년생으로 딸아이를 낳았고 거의 3년 동안 배부르게 산 아내는 건강을 많이 해쳤고, 따라서 같이 배부르게 산 나도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 더구나 이때쯤 새로 시작한 사업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아 없던 버릇까지 생긴 탓에 몸은 점점 더 망가져갔다. 원래 술을 잘못 마셨고 지금은 거의 안 마시지만, 그때는 왜 그랬는지 거의 매일 저녁 맥주 한두 캔에 과자, 라면 등을 먹고 잠들곤 했다. 그렇게 사육하듯이 몸을 키우는 사이 시간은 흘렀다.

약 20년 넘게 지겹게 반복해온 다이어트 실패 스토리를 학창 시절, 직장 시절, 결혼 시절로 간략하게 줄여서 이야기했다. 짧게 줄여서 그렇지 실제로는 시도하고 실패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를 반복한 것이 앞에서 밝힌 것의 몇 배는 된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생활은 점점 더 바쁘고 각박해져 몸을 챙길 여유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공개하기로 했다. 성공 경험과 비결뿐 아니라 고생하고 실패했던 경험까지 공유하는 것이 쓸데없는 시간 낭비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



2세트 드디어, 몸을 바꾸다



그럼 그렇지, 쉬울 리가 있나

따라주지 않는 몸: 의욕과는 관계없이 운동은 첫날부터 쉽지 않았다. 보통 근육운동과 유산소운동을 병행한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유산소운동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트레이너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PT를 받는 회원들에게 뭔가 느낌이 팍팍 오는 것을 가르쳐줘야 한다. 회원을 러닝머신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 수업시간에는 근육운동과 유산소운동을 혼합한 서킷 트레이닝(circuit training)을 주로 한다. 맨손으로 하는 방법도 있고 덤벨, 케틀벨 등 간단한 기구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일정한 운동 방법들을 계속 반복하기 때문에 회원들은 이를 ‘뺑뺑이’ 돌린다고 말하기도 한다. 서킷이 한 바퀴 돌다라는 뜻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남자 회원들 중에는 PT를 돈 내고 받는 군대 유격훈련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회원은 죽어난다. 물론 힘들어서 그렇지 효과는 최고다.

효과는 최고라지만 나는 유독 힘들었다. 보통은 트레이너가 적당히 알아서 스타트 혹은 스톱 신호를 주는데, 최 코치는 맥박을 측정하는 손목시계 같은 장치를 차게 하고 스마트폰과 연결하여 맥박과 시간을 재면서 신호를 주었다. 사람이 생긴 것은 선하게 생겼는데 안타까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절대 봐주는 법 없이 ‘뺑뺑이’를 돌렸다. 나중에 근육운동을 할 때도 조금 도와주는 법 없이 냉혹하게 몰아쳤다. 결과적으로 나중에는 아주 고마웠지만, 처음에는 짜증도 나고 따라주지 않는 몸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운동을 하면서 당황스러운 것은 진짜 프로팀 트레이너를 방불케 하는 최 코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20, 30대 때와는 조금 다른 몸의 반응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지나치게 많이 불어난 체중과 체지방 때문에 당황했는데, 운동 전후로 느껴지는 몸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뭔지 모르게 반응이 좀 느리다고 해야 할까. 워밍업을 해도 몸이 잘 데워지지 않고, 스트레칭을 해도 몸이 잘 늘어나지 않고, 운동 중에는 쉽게 지쳤으며 운동 후에 회복되는 시간도 길어졌다.

최 코치에게 묻기도 하고 책도 다시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전에는 머리로 알고 있던 사실을 이번에는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성장호르몬 생성이 줄어들고 몸의 구성 성분 중에서 단백질의 양도 줄어들고, 체지방은 상대적으로 축적되기 쉬워진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 젊었을 때를 생각하면서 함부로 운동을 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기도 한다. 우울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일단 조급함을 버리는 게 우선이었다. 평소에는 냉혹하게 훈련 계획을 고수하던 최 코치도 부상의 위험 앞에서는 단호하게 멈춤을 지시했다. 직업 선수들에게도 동호인들에게도 부상은 가장 피해야 할 적이다.

이놈의 식단 조절: 운동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나이 들어 운동하니 몸도 잘 안 따라주었지만, 특히 식단조절이 힘들었다. 운동이야 힘들어도 하고 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뭔가 하는 것같이 느껴져 뿌듯하기도 했는데 이놈의 식단 조절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힘들기만 했다. 종류와 양을 제한해야 하는 일이 예전과 달리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당황스러웠다. 의지력이 약해졌나? 아니다 상황이 달라졌다. 직장인이었던 총각 때나 아이가 없을 때는 식사 시간과 종류를 비교적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업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이제는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업상 필요한 식사 자리에는 언제나 술과 기름진 음식이 빠질 수 없었다. 삼겹살, 갈비, 아니면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고 맥주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식집을 가는 날은 횡재한 날이었다. 집에 오면 아이들은 치킨, 피자, 햄버거 등을 원했다. 원망하면 뭐하나, 상황을 가능한 한 잘 조절하고, 피할 수 없으면 상황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최 코치에게 상담하니 그런 상황에서 무너지지만 않으면 오히려 멘탈, 정신력이 강해지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견디라고 일러주었다.

6개월 만에 다시 태어나다

몸 만들기가 안겨준 가장 큰 선물: 이전에도 나는 가끔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곤 했다. 사람들은 보통 다수가 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때 놀라는 것 같다. 법대생이면서 고시를 보지 않고 대학원 진학을 한다든지,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고 대기업에 취직한다든지, 작은 회사로 이직을 한다든지, 회사를 나와 창업을 한다든지, 방송사 시험을 본다든지, 영화사 문을 두드린다든지.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건 변신도, 변화도, 발전도 성장도 아니었다. 동기들은 나처럼 변화무쌍하게 사는 친구가 어디 있느냐며 내 생각과는 상반된 평가를 하곤 한다. 예전의 나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면의 반성을 통한 성장을 수반하지 않는 변화는 그저 단순한 일탈에 불과하다. 매일 진지하게 반성하면서 살면 중국 은나라의 탕왕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한 것처럼 하루하루 새롭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성장한, 변화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운동과 다이어트를 통해 몸을 만드는 과정이 딱 그렇다. 식단과 동작에 대한 체크와 반성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고 겸손하게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반성하며 묵묵히 실행해가다 보면 어느 날 새롭게 변모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신기한 것은 몸의 변화 이상으로 성장해 있는 내면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하는 기간 SNS를 통해 많은 운동 친구들을 사귀었다. 모두 하나같이 묵묵한 모습에 성품이 그렇게 겸손할 수가 없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진정한 변화가 아닌 단순한 일탈과 탈출을 반복했던 것일 수도 있다. 몸 하나 바꿨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변화와 발전, 성장을 이루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작은 시작의 점을 찍었다는 생각은 든다. 앞으로 묵묵히 채워갈 시간들이 그동안의 시간들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진정한 변화의 맛을 알았다는 것이 이번의 몸 만들기가 내게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이다. 참 몸 만들기를 잘했다. 몸을 바꾸려고 했는데, 인생이 바뀌었다!



3세트 바꾸니 좋더라



음식이 더 맛있어지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것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그 몸을 유지하려면 평생 닭가슴살과 고구마만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 궁금함이란 때론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잘 모를 때 생긴다. 모르니까 행동하기가 힘든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몸을 만들고 나면 음식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조절하는 능력도 생기기 때문에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무엇보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음을 느낀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전과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나의 경험에도 적용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몸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운동과 다이어트를 하는 과정에서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많이 바뀐다. 분명 이전과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보이는 것은 이전과 다를 것이다. 뭘 망설이는가, 두려움보다 즐거움이 가득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데!

자유로운 식사: 프로필 촬영 다음 날부터 얼마 동안 본의 아니게 혼밥(혼자 먹는 밥 릴레이)을 펼쳤다. 그동안 참았던 음식들을 보다 집중해서 음미하기 위해서였다. 혼밥 혼술, 혼영(영화) 등을 즐기는 ‘나 혼자 산다 족’들은 아시겠지만 그다지 눈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롭기까지 하다. 짜장면, 라면, 뼈해장국 육개장 등을 하나하나 먹어가면서 그동안의 노고를 스스로 치하했다. 인터넷에서 혼밥 레벨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일식집, 패밀리레스토랑, 고깃집 등이 최고 레벨이었다. 아니다. 진짜 최고 레벨은 ‘뷔페 혼밥’이다.

일단 몸에 근육 비중을 높여놨고 촬영이 끝난 뒤에도 운동을 꾸준히 하니까 예전과는 달리 먹어도 쉽게 살이 찌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다시 살을 찌워둘 필요도 있다는 환상적인 자유를 부여받은 터라 마음 놓고 한번 먹어보자는 생각도 있어서 평소 가족들이랑 자주 가던 패밀리레스토랑 뷔페를 점심에 혼자 찾았다. 평소처럼 한 접시 들고 왔다 갔다 하지 않고, 먹고 싶은 거의 모든 음식을 접시마다 조금씩 덜어서 테이블 가득히(?) 깔아놓고 <팬텀싱어> 노래를 이어폰으로 들으며 3시간 동안 천천히 즐겼다. 진짜 맛있었다. 새로운 맛을 느꼈다. 뷔페는 결혼식이나 돌잔치에서처럼 접시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후다닥 먹어 치우는 곳이 아니었나.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보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다 아는 그 맛 아닌가. 평소 좋아하거나 오늘 먹고 싶은 음식 위주로, 음식이 서로 섞이지 않게 쌓지 말고, 가능하면 접시마다 다른 음식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먹어보면 더욱 맛있다.

인생은 살이 쪘을 때와 안 쪘을 때로 나뉜다: 여기서 잠깐 한때 인터넷을 달구었던 연예인들의 다이어트 명언을 떠올려보자. “먹어 봤자 내가 아는 그 맛이다.”(옥주현) “인생은 살이 쪘을 때와 안 쪘을 때로 나뉜다.”(이소라) “하얀 음식은 절대 먹지 않아요. 그건 독이니까요.”(미란다 커) “죽을 만큼 운동하고 죽지 않을 만큼 먹었어요.”(제시카) 한때는 읽으면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던 말들인데 몸을 만들고 나서 다시 봤을 때는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갔다. 그중에서도 눈이 날 만큼 크게 공감이 되었던 말이 있다. 바로 방송인 겸 레스토랑 대표인 홍석천 씨의 말이다. 마치 내 상황을 알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이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았다. “단 1년만이라도 거울을 보고 ‘우와 진짜 죽인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보고 즐겨봐라. 사람이 100년 가까이 사는데 고작 1년 그렇게 사는 게 어려워? 1년만 그렇게 살다 보면 30~40대가 되어도 그 즐거움을 알기 때문에 관리하게 된다. 몸이 변하면 주변에 만나는 사람이 달라진다. 어쩌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니까?”

시간의 지배자가 되다

나는 몸을 만들기 전부터 한근태 박사가 쓴 『몸이 먼저다』를 읽고 또 읽으면서 한 박사의 담백한 라이프스타일을 부러워했다. 잊을 만하면 반복적으로 머리랑 가슴에 입력되는 그런 부러움이 원하는 몸을 만들겠다는 결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직접 읽어보면 누구나 나와 마찬가지로 각자 원하는 것에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구절을 아래에 인용한다.

나의 일상은 심플하다. 새벽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 글을 쓴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라 그 이상은 힘들다. 그다음 오전 10시쯤 슬슬 동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한다. 유산소운동과 근육운동을 번갈아 가며 하는데, 근육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내고 보통 일주일에 서너 번 한다. 무리하지 않게 한 시간 미만으로 한다. 샤워를 하고 밖을 나서면 온 세상이 내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운동 전과 운동 후 세상이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강의가 있는 날은 강의에 맞춰 스케줄을 조정한다. 오전에 강의가 있으면 오후에 운동을 한다. 오후 일정이 없는 경우는 혼자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하고 집에 와서 책도 본다. 저녁 약속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잡지 않는다. 저녁 약속을 하면 술도 마셔야 하고 많이 먹게 되고, 무엇보다 에너지 소비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리듬이 깨져 잠을 푹 자지 못한다.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해야 하는데 지장이 있어 가능한 한 피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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