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직 지지 않았다
김현미 지음 | 메디치미디어
당신은 아직 지지 않았다
김현미 지음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1월 / 295쪽 / 14,000원
인생 전반전, 가장 잘나갔던 세대의 잔혹사
굿바이, 사장의 시대
50대들을 만나 취재를 진행하면서 나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두 개의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 사람들의 증언으로는 문제의 안쪽을, 그리고 당면한 현실과 그와 맞닿아 있는 정책도 함께 살펴보면서 문제의 바깥쪽을 파악한다. 두 번째, 개별적인 인생 스토리가 아니라 계층으로 그룹을 나누어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본다. 그래서 일산에서 사는 사람 중 그 직업군에서 상층이라고 할 그룹과 중층이라고 할 그룹, 그리고 하층이라 할 그룹을 정해 그들을 집단으로 만났다. 아마 대한민국의 50대라면 이들의 이야기 어딘가에 자신의 삶이 놓여 있을 것이다. 결국 편의를 위해 일산이라는 샘플 안에서만 펼쳐보는 것이지만 그 모습은 곧 우리나라 베이비부머가 놓인 삶의 지점과 정확히 겹쳐질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한국의 50대가 그려내고 있는 오늘의 자화상이다.
일산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라면 누구일까? 50대로 성공한 사람이라면 사장님 소리 들으며 사는 사람들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곧바로 그들이 떠올랐다. 바로 ‘로데오거리’의 사장님들과 ‘가구거리’의 사장님들이다. 내가 만난 그 사장님들의 대부분이 현재 50대이다. 이 50대 사장님들의 요즘 형편이 궁금했다. 일반적인 베이비부머들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해도 그들은 ‘사장님’이라는 든든한 베이스를 가진 사람들이니 좀 형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자마자 내가 품고 갔던 일말의 기대감은 여지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사장이라는 거, 그거 빚 좋은 개살구입니다. 사장이 아니라 빚쟁이입니다.” “가게 이거, 보기에는 꽤 근사할 것 같죠? 나도 그런 줄 알고 한때는 꽤 큰소리치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인제 보니 아니에요. 한 방이면 훅 가는 게 우리 같은 사람이라고요. 대기업 한 방! 많이도 필요 없어요, 딱 한 방! 그거면 끝납니다.” “아이고, 그냥 대기업이면 그래도 괜찮게요? 지금 우리 앞에는 아예 괴물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절망케 하는 것일까? 그 ‘한 방’이라는 게 도대체 얼마나 위력이 크기에 그들의 기반을 그토록 흔들어 놓고 있단 말인가.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하자.
가구거리 ? 거대한 괴물을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나라 가구산업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가 최고의 호황기였다. 이 시기 가구시장은 이른바 메이커 제품과 비메이커 제품으로 양분됐는데, 양 진영이 고유한 시장영업권을 가지고 있어 시장의 균형이 지켜졌다. 일산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첫 입주가 시작된 것이 1992년 8월 31일이었고, 1995년 말까지 6만 9,000가구가 입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면 제일 먼저 바꾸는 것이 바로 가구다. 일산 신도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인구가 몰려오면서 일산의 가구공단은 그야말로 황금기를 보낸다.
황금기를 구가하던 가구산업은 이후 몇 차례의 위기를 거치며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데 그 첫 번째 위기는 IMF 외환위기였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유명 메이커 업체들이 줄지어 몰락해버린 것이다. 가구산업 전반에 주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시장을 확대해가던 상위 그룹이 한꺼번에 주저앉으니 가구산업 자체가 위축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일산의 사장님들은 아직 희망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에도 신도시는 계속 확대되고 있었고 무엇보다 일산의 사장님들에게는 ‘기술’이 있었다. 메이커 제품 회사들이 무너져도 이들의 기술은 살아남았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이들 제품의 가격경쟁이었다. 메이커 제품과 질에는 별 차이가 없으면서도 가격이 훨씬 낮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산의 가구공단은 외환위기 이후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일산 가구거리’라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잠깐이었다. 이들의 장인정신과 끈기도 장기적인 내수침체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더 큰 위기도 연달아 찾아왔다. 바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밀려오는 저가 상품들이었다. 동시에 원자재 비용도 급상승한다. 소비자들의 소비패턴 변화도 가구산업 위축의 큰 요인이 됐다. 기존의 가구업체 생산라인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건 역시 장롱이었다. 그러나 매출의 7~80%를 차지하던 장롱의 현재는 전체 매출의 50%대로 떨어졌다고 한다. 빌트인 가구의 보편화 때문이다. 좀체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과 거듭되는 악재 속에서도 공단 사장님들이 고군분투하고는 있지만 이미 그중 반 가까이가 사업을 접고 가구공단을 떠난 상태다. 남아 있는 사장님들이라고 형편이 나은 건 아니다.
희망을 품자마자 괴물이 온다: 일단 희망은 보인다. 2013년 4월 24일 남아 있는 업체들이 ‘고양시가구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총 114개 업체가 모여 공동대응을 모색해보고자 힘을 합친 것이다. 그런데 복병은 따로 있었다. 그분들을 만날 때마다 마지막에 꼭 나오는 ‘괴물 이야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 ‘괴물’은 바로 이케아(IKEA)다. 이케아는 전 세계 380여 개의 매장을 거느린 세계 최강의 다국적 가구기업으로 이미 일본과 중국, 홍콩 등지에서 탄탄히 입지를 다진 거대기업인데, 이 거대기업이 드디어 한국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이케아가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나다. 일산의 가구공단뿐만이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의 전체 가구시장이 이 이케아라는 괴물 앞에서 벌벌 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케아가 무서운 것은 값이 워낙 싸서다. 이 회사 가구의 대부분은 소비자가 직접 조립하는 DIY(Do It yourself) 반제품으로 박스째 배달하면서 인건비와 물류비를 줄였다. 국내에서 팔리는 비슷한 가구의 반값 수준이라고 한다. 견고함은 떨어지지만 감각적이고 깔끔한 디자인으로 약점을 상쇄해 젊은 층에 매우 인기가 높다. 마케팅 기술도 대단히 공격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앞세운다.
IMF 외환위기도, 장기적인 내수침체도, 급상승한 원자재 비용의 파고도 이겨내며 가까스로 살아남은 우리의 역전용사 베이비부머들. 그들은 과연 이 거대한 괴물기업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50대 베이비부머 중 한때는 사장님 소리 들으며 성공했던 사람들, 그들은 모두 청춘을 바쳐 중소 규모의 업체를 일구고 사장이 된 사람들이다. 그럼 다른 업종은 좀 나을까? 업종이 꼭 가구산업이 아니라 해도 사실 형편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베이비부머 사장님들 앞에 놓인 괴물은 너무도 많다.
벼랑 끝에 선 슬픈 이름, 중산층
50대로 일산에서 중층에 속한다면 일반적으로 일산에 거주하면서 서울에 직장을 가진, 정년을 앞둔 샐러리맨 정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로데오거리나 가구거리의 사장님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네 안에 소규모 가게 하나 가지고 있다면 그도 역시 중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계층적인 특징을 볼 수 있는 직업군을 뽑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 생각난 게 바로 동호회였다. 동호회에 나와 활동할 수 있다면 그는 일단 3가지 요건이 웬만큼은 충족된 사람일 것이다. 일단 시간이 되어야 하고, 또 동호회 활동을 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며,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낼 정도의 최소한의 돈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중층의 일반적인 50대가 가장 많이 모일 법한 동호회는 어딜까? 생활체육 동호회로 판단되어 조사해보니 고양시의 생활체육 동호회는 종목별 연합회로 분류되고, 연합회 수는 50여 개나 되었다. 이들 중 50대가 가장 많이 모여 있을 것 같은 동호회로 판단된 건 바로 족구 동호회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분들과 만나 보니 그들은 모두 50대였다. 또 동호회 활동을 하려면 3대 충족요건이 맞아야 할 거라는 내 판단도 적중했다.
시간도 있고 여유도 있고 돈도 좀 있고: 베이비부머들을 만나면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45세에서 55세까지가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대개 아파트 융자도 아직 남아 있고, 또 아이들도 연달아 대학에 진학하면서 학비의 규모가 갑자기 늘어나는 때다. 쉰다섯이 되면 얼추 융자도 끝나고 아이들 대학도 졸업할 즈음이 되는데, 그럼 현재 먹고사는 정도의 수입이 쉰다섯까지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설령 무사히 그 터널을 통과해 55세까지 할 일 무사히 다 마쳤다 치자. 문제는 그다음이다. 실제로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준비 실태는 매우 취약하다.
족구 동호회 멤버 중 대기업에 다녔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55세 정년을 보장받고 2년 전에 퇴직을 했다. 처음 1년 반은 좋았다고 한다. 연금으로 한 달에 180만 원 정도가 나오니 그것으로 기본 생활비는 충당하고, 부족한 것은 묶어둔 현금자산을 조금씩 헐어 쓰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 믿고 그동안 못 놀던 것까지 모두 합쳐 논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여행도 다니고 주말마다 가족을 이끌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아차! 했다. “1년 반 보내고 집사람에게 물었어요. ‘서부전선 이상 없지?’ 그랬더니 ‘이상 있지~’ 그래요. 통장에 벌써 펑크가 났다는 거야. 처음에는 1,000만 원이래요. 그런데 이상해서 다시 물으니 계속 늘어요. 이제 3,000만 원이래요. 1년 반 놀았는데 그렇게 펑크가 난 거예요. 아, 정말 모골이 송연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연금과 현금자산 3,000만 원까지 합쳐 1년 6개월 사는 데 얼추 5,000만 원의 돈이 들어간 것이다. 1년에 3,00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쓴 것인데 그렇다면 그들이 돈을 너무 많이 쓴 것일까?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은퇴한 중산층의 한 해 생활비에 대한 조사(2012년 기준)를 보면 3,400만 원 정도의 돈이 든다는 얘기다. 1년에 3,0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썼으니까 그는 결코 많이 쓴 것이 아닌 셈이다. 딱 중산층의 삶을 산 것이다. “딱 들어앉고 보니까 단돈 100원도 어디서 들어오는 게 없는 거예요. 있는 돈 까먹고 사는 건데, 그게 그렇게 무서운 건지 몰랐습니다. 게다가 또 우리 가장 큰 걱정이 그거잖아요, 건강.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하나씩 안고 사는 건데 그러니 현금 있다고 무조건 퍼 쓸 수도 없는 거예요. 계산기 두드려보고 제가 아주 가슴이 철렁했다니까요.”
그는 바로 재취업에 도전했다. 세 곳에 이력서를 보냈고 곧 두 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중 월급으로 150만 원을 준다던 수출품 포장하는 곳으로 재취업을 했다. 대기업을 다녔던 그가 그 월급을 받고 일한다는 것이 남다르게 느껴졌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행운마저 아무나 쥘 수 있는 건 아니다.
구멍 속에 갇힌 사람들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들, 이제 그들을 만나보자. 더 추락할 수도, 다시 올라올 희망도 없는 맨 마지막 지대, 그곳에 그들이 있다. 내가 만난 그들은 ‘기사님’으로 통칭한다. 법인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님들이다. 그들은 모두 50대. 20대부터 이 일을 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애당초 택시 운전이 목표였던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돌고 돌아 결국 여기에 이른 것인데 그들은 모두 그 이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세 번째 주인공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택시기사의 어떤 하루: 그는 새벽 3시에 일어난다. 간단히 요기하고 집을 나서면 새벽 4시. 그때부터 바로 영업이다. 하루를 꼬박 뛰고 다음 날 새벽 3시에 영업은 끝난다. 그동안 잠은 한숨도 자지 않는다. 예전에는 중간에 잠깐 집에 들어가 눈을 붙이기도 했고 한두 시간씩 쉬기도 했었다. 요즘은 그렇게 쉴 수가 없다. 점심 식사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30분 이내에 해결한다. 저녁밥 먹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새벽 3시에 일이 끝나면 택시 안을 청소하고 회사에 사납금 갖다 내면 일이 끝난다. 집에 들어오면 새벽 4시나 4시 반. 씻고 나면 5시 반. 총 25시간에서 26시간을 잠을 안 자고 일을 하는 셈이다. 하루걸러 하루씩 이 생활을 반복한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얼마일까?
내가 만난 분들은 ‘세기상운’이라는 법인 택시회사 소속의 기사들이었다. 이곳은 노동조합이 결성돼 있고 조합원들이 열심히 활동한 덕분에 고양시에 있는 택시회사 중 근로조건이 가장 나은 축에 속한다. 그런데 이들이 받는 월급은 월 99만 원. 법인택시는 사납금을 채우면 나머지 수입금을 가져가는 형태다. 그렇다면 과연 실수입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가 매일 사납금으로 회사에 갖다 줘야 하는 돈은 17만 6,000원이다. 거기에 LPG 값하고 통신비, 식대 등등을 포함하면 하루에 대략 23만 원 정도가 나가야 할 돈이다. 하루 23만 원 정도의 돈을 제하고 난 나머지가 기사의 몫이 되기 때문에 보통 하루에 3~4만 원 가져가는 것도 아주 힘들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20시간씩 한 달 동안 13번을 일하면, 가령 매일 5만 원을 번다고 가정해도 겨우 65만 원이 남는다. 거기에다 월급 99만 원에서 세금을 떼고 나면 실제로 받는 금액은 90만 원가량. 그러면 한 달에 택시기사가 손에 실제 쥘 수 있는 돈이 150만 원이라는 얘기다. 물론 개인별 편차는 있을 수 있지만 이 금액에서 큰 차이는 없다.
우리는 집을 몰고 다닌다: 그렇다면 개인택시는 형편이 좀 나을까? 얼마 전에 빚을 내서 개인택시를 마련했다는 백 기사님. 그는 유일한 재산이었던 21평 아파트 한 채를 담보로 5,600만 원을 대출받아 면허를 사는 데 썼다. 개인택시의 양도 가격으로는 차 값을 포함하여 총 1억 2,000만 원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버는 수입이 한 달에 180~200만 원 수준이다. 투자비용을 생각하면 법인택시를 모는 거나 개인택시를 모는 거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무슨 운명이 이리도 야속한가. 현재 대출금 5,600만 원을 그대로 안고 있는데, 정부에서 개인택시 감차를 위해 양도양수를 3회로 제한하겠다는 법 개정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렇게 되면 면허값이 1,300만 원으로 떨어진다. 1억 2,000만 원에서 차 값을 제외한 나머지 9,000만 원을 들여 면허를 샀는데 그게 1,300만 원이 된다니. 법이 어떻게 개정될지 쉽게 예단할 수 없지만 막차를 탄 그의 가슴은 매일매일 타들어간다.
현장에서 만난 베이비부머의 오늘: 대한민국 771만 베이비부머들. 그들이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지금 베이비부머들의 앞에는 수많은 구멍이 있다. 제도적 미비로 만들어진 구멍들, 관행으로 만들어진 구멍들,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만들어진 구멍들. 그 수많은 구멍 위에 우리의 베이비부머들은 위태롭게 서 있다. 딱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추락하는 건 순간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인생 후반전, 함께 뛰는 법을 기억하라
연대의 고수를 찾아서
몬드라곤 길 위에 서서: 그룹 내 사업체 280여 개, 직원 8만 4,000명, 매출 23조 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도 도산한 곳은 단 한 곳, 다니던 회사가 도산해도 그룹 내 타 기업에 이직하여 지속적으로 근무 가능, 휴직하게 되더라도 본래 받던 월급의 80% 보장, 60년간 해고율 0%, 비정규직 비율은 15%이나 1년 이내 정규직 전환 권유, 취업 조건은 다름 아닌 ‘사명감’. 이런 기업이 있다면 믿을 수 있는가? 마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일이 현실에서 펼쳐지는 곳이 있다. 협동조합 하면 교과서처럼 등장하는 도시, 스페인 몬드라곤의 이야기이다. 물론 몬드라곤도 이런 세상을 한순간에 이룬 것은 아니다. 몬드라곤은 내란과 빈곤, 탄압과 차별에 시달리던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했다. 여기에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가 나타났다. 그는 주민들에게 노동의 존엄성과 연대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직업학교를 만들고 기술교육을 시작했다. 1956년 졸업생 5명과 함께 만든 난로 공장 울고(ULGOR)가 몬드라곤 협동조합 기업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현재 제조업과 금융, 유통, 지식정보 부분을 중심으로 111개 협동조합, 120개 자회사 등 총 281개 사업체로 우뚝 섰다. 이렇게 자라나는 데 가장 중요했던 요건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