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최복현 지음 | 휴먼드림
여유
최복현 지음
휴먼드림 / 2008년 10월 / 270쪽 / 11,000원
여는 글_ 일상화된 과속에서 벗어나 경제속도를 찾는 여유
여유, 여유에는 공간적인 여유도 있고 시간적인 여유도 있다. 일상에서 이야기하는 여유는 공간적 여유라기보다는 시간적 여유를 말한다. 물론 이 시간적 여유는 마음의 여유를 이야기한다. 여유의 사전적 의미는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를 마음의 여유로 끌어다 붙이면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다.
여유를 누리는 사람은 일이 남에 비해 적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별 볼 일이 없으면서도 늘 분주하고 바쁜 것 같지만 실상 얻어지는 결과는 신통치 않다. 반면에 여유 있게 살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충분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여유 있게 마음을 갖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의 일이 많고 적음에 별 관계가 없다. 일에 대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 쉽게 말하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에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 생각 없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일을 생산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일해야 한다.
어떤 우연이나 인연으로 알게 되었든 개인은 개인으로 멈추지 않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과 한 알이 떨어지자 놀란 토끼는 달아나기 시작한다. 이를 시작으로 숲 속의 동물 모두가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 숲속은 일대 혼란에 휩싸인다. 이 우화처럼 우리도 누군가 바삐 움직이면 덩달아 바쁘다. 연쇄반응이 일어나 모두가 바삐 움직인다. 그 흐름을 누군가 멈추어야만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 바쁘다는 것과 여유 있다는 것은 삶의 질의 차이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느냐의 차이이다.
지금은 초고속의 시대이다. 공간에서 공간으로의 이동도 빨라졌고 인터넷과 같은 정보의 유입과 유출도 초고속이 되었다. 이렇게 빨리빨리를 위한 모든 활동들은 사실 시간절약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기계화, 전산화되었지만 우리의 일상은 오히려 더 바빠져서 경제속도를 위반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우리는 남보다 더 높이 오르려는 욕망, 더 빨리 앞서가려는 욕망, 더 가지려는 욕망 때문에 인생이라는 길 위를 달려오며 과속을 하고 있다. 우리는 과속만 배웠지 경제속도가 주는 지혜를 잊고 살아온 셈이다. 여유를 찾는 것은 삶의 과속 또는 지나친 저속 상태에서 벗어나 삶의 경제속도를 되찾는 일이다. 삶의 여유를 갖는 순간부터 우리는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려면 우선 다양한 삶을 체험하는 것이 좋다. 삶의 경제속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다. 누릴 것은 누리고, 베풀 것은 베풀며, 개인의 행복은 물론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만끽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
제1장 우선멈춤
내 그림자 감추기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어느 날 밖에 나가셨다 오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림자가 두 개로 보이면 죽는다는데, 내 그림자가 두 개였어.” 평생 시골에서 빛이라곤 해와 달밖에 못보고 사셨던 아버지는 그림자는 하나뿐이라는 인식으로만 살아오셨다. “아버지, 그림자는 빛이 여러 방향에서 비추면 여러 개로 보이는 거예요. 여긴 가로등이 있어서 양쪽에서 비추니까 그렇게 보였던 거예요.”
자신의 그림자를 볼 때마다 마음에도 들지 않고 보기가 싫어져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걸음을 빨리 해서 자신과 자신의 그림자를 떨어뜨리려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걸을 때마다 그림자가 꼭 따라붙는 것이었다. 그는 점점 더 빨리 걸었다. 그래도 그림자는 따라온다. 그는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그림자는 기를 쓰고 더 빨리 따라온다. 그는 그림자를 피해 도망가다 결국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만일 그가 그토록 자기 그림자가 싫었다면 차라리 어떤 그늘에 숨어들었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자기 그림자로부터 멋지게 도망칠 수 있었고, 그 그늘 아래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나치게 일에 매달리면 그 일이 꼬여버릴 수도 있다. 열정은 일을 빨리 진행되게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지나칠 경우 빨리 가려고만 하는 마음, 급하게 서두르기만 하는 마음 때문에 여유가 생기지 않아 일이 더 지체될 수 있다.
길을 가다가 문득 하늘을 한번 쳐다보는 여유, 들에 나가 들에 부는 바람을 맞는 여유, 그것들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삶을 살찌우고 일에 능률을 가져다주는 자양분이 된다. 일은 어떤 물리적인 힘보다는 마음의 힘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내가 본 나
벌이 끊임없이 날개를 파닥이는 이유는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는 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덩치가 큰 새를 보면 날개를 그다지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는데도 벌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더 멀리 날아간다. 참으로 편안하고 경제적으로 보이는 움직임이다.
한 사람이 혼자서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해야만 했다. 더구나 타들어가는 목은 물 한 모금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오아시스라도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모래산뿐이다. 그는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걸음을 재촉한다. 마침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 발자국을 따라가면 마을이 나타나리라는 기대로 열심히 걸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마을도 오아시스도 나타나지 않았다. 밤이 되자 그는 섬뜩한 생각에 그 발자국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놀랍게도 그 발자국은 자신의 발자국이었다. 그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바쁘게 살다 보면 때로는 자신을 망각하고 살 때가 많다. 늘 시행착오만 되풀이하며 제자리를 맴돌고 있으면서도 모른다. 우리에게 어떤 아픔의 날이 닥쳐올지 모르면서 자족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현 상태를 파악하려면 우선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잠시 푸른 들판으로 눈을 돌리고 마음을 다독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나 혼자만이 제대로 살고 있다고 자만하거나 자족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내 삶의 속도를 높여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행운을 찾아서
사람은 누구나 평탄하게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 삶에는 우여곡절이 너무나 많다. 어찌 보면 그리 짧지 않은 삶에는 평탄한 삶의 길보다는 오히려 험난하고 예기치 못한 곡절들이 더 많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는 행복하기를 원하며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행복을 위해 돈을 벌고 운동을 한다. 행복의 조건이 돈이라면 돈에 매달리고 건강이라면 운동에 몰두한다. 그래도 힘겨우면 그 행운을 위해 로또를 구입하기도 하고 경품응모도 해본다. 그런데 행운이란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 우리를 약 올린다. 우리가 찾아가기 전에 그 행복이란 게 우리를 찾아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약속시간에 늦어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 기다리기라도 한 듯 파란불로 바뀌는 행운은 늘 찾아오지 않는다. 바쁘면 바쁠수록 이상하게도 빨간불이 켜져 있을 때가 더 많다. 우리의 삶은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 마음의 위험 신호, 몸의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 나가면 자칫 몸과 정신이 황폐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다. 내 삶의 신호등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 신호등이 파란불이든 빨간불이든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가는 곳마다 파란불이 저절로 나를 마중 나와 나에게는 늘 푸른 신호등만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면 우산을 펴서 그 비를 피하고 바람이 불면 벽에 기대어 바람을 피한다. 진흙탕이 싫으면 발에 장화를 신고 가시가 버거우면 장갑을 낄 줄 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지혜, 문제를 피해가는 지혜가 있다. 그럼에도 문제만 생기면 여유를 잃고 그 문제 앞에서 당황한다. 우리 삶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내 지난 삶을 돌아볼 기회로 삼으면 되고 난관에 부딪히면 그 앞에서 내 능력과 가치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면 된다.
우리 삶의 빨간불을 억지로 수동으로 조작하기보다는 여유롭게 그 불이 파란불로 바뀌기까지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자기 성찰만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무한한 잠재능력은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다.
제2장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휴식은 휴식답게
새를 새장에 오랫동안 가두어두었다가 풀어놓으면,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제대로 날지도 못한다. 우리들도 막상 일에서 잠시 놓여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어도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휴가를 이용해 밀어놓았던 집 안 정리를 하기도 한다. 그것은 일의 연장이지 휴식이 아니다. 여가 시간은 철저하게 여가를 즐겨야 한다. 그렇게 끊고 맺는 훈련을 해야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자유가 주어지는 한 그 자유를 아주 보람 있고 멋지게 활용할 수 있어야 그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5일제 근무가 시작되면서 많은 이들은 하루라는 소중한 시간을 일에서 놓여 지내게 되었지만, 그 소중한 시간들을 나름대로 활용하기보다는 그냥 놀러 다니는 일로 보내고 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 자유 시간이 더 주어지는 것은 자기계발을 위해 쓰라는 의미이다. 쉴 때 쉬더라도 미래지향적으로 그 쉼을 누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유에 너무 낯설어서 보람 없는 날들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언제나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이 가진 고충은, 그들은 자유시간을 얻으려고 무리해가면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자유시간을 얻고 나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다가 소중한 시간을 다 보내고 만다”고 니체는 말한다.
일이 많은 사람일수록 휴식은 더욱 필요하다. 너무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자신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마저 불편하게 만들어서 유지되던 평화를 깨뜨릴 수도 있다. 실제로 5일제 근무가 시행된 이후로 가정의 불화가 늘어나고 가정이 깨어져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바쁜 사람들이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는 조용한 사람들이다. 바쁜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기보다는 자기 내공을 쌓아서 아무리 바빠도 티를 내지 않으며 살아야 한다. 공치사하지 않으며 남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가야 한다. 자신과 주위를 위해서도 슬기로운 휴식을 가질 줄 알아야 하고, 주어진 자유시간을 보람 있게 보내야 한다. 더구나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가족 공동체 내에서 그 휴식을 어떻게 보람 있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창의적인 방법과 합의가 필요하다.
마음의 여유를 찾아주는 자신감
무슨 일이든 일에 자신감을 가지면 그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쉽게 떠오른다. 하지만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면 아무 생각도 없이 미련하게 그 일에 매달려 스트레스만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감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실력을 쌓을 때 생긴다. 또한 자신을 잘 다스려서 내공을 길러야만 자신감을 갖게 되고 일 처리를 아주 말끔하게 할 수 있다. 일의 양은 몸으로 때울 수 있어도 몸을 움직이는 건 마음의 일이다. 따라서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자기 내공에 달려 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현장을 시찰하고 있었다. 그가 어느 작업현장을 지나가다가 인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현장을 보니 9명이 아주 힘겹게 재목 하나를 운반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의 현장감독은 그냥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워싱턴이 웃옷을 벗어놓고 가서 그 일을 열심히 도와주었다. 그러고 나서 감독관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당신은 보기만 하고 일이 진행되지 않는데도 가만히 있는 거요?” 그러자 감독관은 “나는 감독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오.”라고 대답했다. 그때서야 워싱턴은 자기 명함을 꺼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다음에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불러주시오.”
자신감이 있으면 아무리 남들이 천하다는 일을 한다고 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다. 바쁠수록 가끔은 멈춰서야만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여유란 한가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당당함으로써, 자신감을 가짐으로써,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자신뿐 아니라 모두를 편안하게 하는 존재로 살아가야만 한다.
시간 활용의 우선순위
사람들에게 “왜 운동을 안 해” 하고 물으면 “시간이 없어서”라고 대답한다. 뿐만 아니라 뭔가를 요청하면 “시간이 없어서”라고 거절하곤 한다. 하지만 시간은 늘 있어왔으며 언제나 시간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살아 있다. 단지 우리는 그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보내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시간이란 핑곗거리를 무기로 삼는다.
시간은 그것을 잡아 쓰든 그냥 방치하든 똑같이 흘러간다. 그러므로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하루의 10분이든 한 시간이든 미래를 위해 날마다 꾸준히 투자하면 나의 3년 후, 10년 후가 한층 더 나아진다.
언젠가 미국 소매상협회에서 판매원의 전화마케팅 조사를 한 일이 있다. 그런데 이 조사에 의하면 판매원의 48퍼센트가 손님에게 한 번 전화하고 반응이 없으면 판매를 포기한다고 한다. 그리고 25퍼센트는 두 번 전화하고 포기하고 15퍼센트는 세 번 전화를 하곤 포기한다고 한다. 결국 88퍼센트의 판매원이 한 번 내지 세 번의 전화로 판매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단지 12퍼센트만이 끈질기게 전화를 하는데, 이들이 전체 판매량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결국 88퍼센트의 판매원은 겨우 20퍼센트의 거래밖에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내 시간을 최우선으로 어디에 쓰느냐가 중요하다. 시간 활용의 우선순위를 잘 정할 줄 아는 사람은 시간을 지배하며 사는 사람이다. 시간은 흘려보내는 대상이 아니라 끌어다 써야 할 대상이다. 시간의 주인이 되는 것은 좋은 습관이고, 시간의 하인이 되는 것은 나쁜 습관이거나 무기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그릇된 습관이다.
책 읽는 습관
가끔 종각 근처에 가면 잊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종로서적, 종로 2가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던 종로서적이 창립 100주년을 얼마 남기지 않고 문을 닫고 만 일이 쓸쓸하게 다가온다. 마치 지식의 상징처럼 굳건히 종로를 지키고 있던 서점, 현재 40대 이상으로 서울에 살았다면 한두 번쯤 찾았음직한 정겨웠던 서점. 경영악화와 이러저러한 이유로 문을 닫고 말았지만 김홍도의 그림이 들어간 포장지로 책을 싸가지고만 다녀도 무척 자랑스럽고 마치 지식인이 된 듯한 그런 기분, 그래서 그 포장지를 아끼고 아껴 책을 읽고 나면 다른 책을 또 싸서 폼 재고 다니곤 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모든 일은 시간이라는 포대기에 싸여 과거로 보내진다. 지금의 우리는 과거라는 퇴적물이 남긴 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그 과거를 생각하며 그 속에 침잠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모든 추억에 잠겨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그때의 젊음도 되찾는다. 가끔은 내 시계추를 과거로 돌려 과거를 회상하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미래라는 오지 않은 일들은 속속 현재라는 이름으로 내게로 다가온다. 과거는 현재의 퇴적물이지만 미래는 현재가 만들어내는 꿈이다. 그 미래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