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심플하게
마스노 지음 | 나무생각
일상을 심플하게
마스노 슌묘 지음
나무생각 / 2017년 1월 / 192쪽 / 12,800원
1장 간소하게 살아간다
일주일에 하루는 채식의 날로 정한다
저는 처음 본 사람에게 피부가 깨끗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 나이에 이런 피부는 드물다고 말이지요. 저는 피부가 좋다는 칭찬에 그리 기뻐하지 않지만 언제까지나 생기 있는 피부로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물론 저는 특별한 피부 손질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 피부가 깨끗해 보인다면 그것은 식생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육식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회식자리에서는 여러분과 다름없이 먹고 있지만 절에서는 기본적으로 채소와 생선이 중심입니다.
한 사람의 승려가 되기 위한 수행 기간인 수행승 시절에는 육류와 생선을 일절 입에 대지 않습니다. 저 역시 이 시기를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공복에 정신이 혼미해질 만큼 괴롭습니다. 하지만 반년이 지나면 죽이나 보리가 든 밥과 약간의 채소 중심인 식생활에 몸이 익숙해집니다. 모든 수행승들의 피부는 뽀얗고 투명해져 있습니다.
반년이나 이런 식생활을 계속하면 체취가 줄어듭니다. 땀을 흘려도 고약한 체취가 나지 않고 물수건으로 몸을 쓱 닦아내기만 해도 개운하고 깨끗해집니다. 게다가 피부도 매끈매끈해집니다.
생기 있는 피부를 유지하고 싶은 분은 식단을 채소 중심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육류나 생선을 전혀 입에 대지 않기는 힘든 일입니다. 또한 극단적인 식사는 몸을 망가뜨리는 원흉이 되기도 합니다. 가능한 한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식사를 재점검해봅니다.
저는 일주일에 하루는 육류와 생선을 먹지 않는 날로 정할 것을 제안합니다. 일이 있는 날에는 좀처럼 실천하기 어려우니 주말을 이용하여 토요일과 일요일 중 하루를 채소의 날로 정해봅니다. 단 하루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하루가 몸을 깨끗하게 리셋해줄 것입니다.
육류나 생선을 먹지 않는 날을 정하는 것만으로 몸이 리셋됩니다.
자연에 몸을 둔다
고민을 안고 있거나 기분이 몹시 울적해 있는 사람에게 저는 “자연에 몸을 둬보면 어떨까요?”라고 조언합니다. 휴일을 이용해 숲속을 산책해보세요. 삼림욕이란 말이 있듯이 몸에 아주 좋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자연의 조화에 눈을 향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자연의 조화는 머무는 법이 없습니다. 봄이 되어 따뜻한 바람이 불면 꽃봉오리가 피어납니다. 그 향에 이끌려 많은 벌과 나비가 날아듭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계산도 없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꽃은 떨어지고 나무는 말라갑니다. 선에서는 그 단순한 조화 속에 생물의 진리가 머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인간도 대자연의 일부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연을 느끼고자 굳이 먼 곳까지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매일 지나는 길에 있는 공원에도 자연의 조화가 있습니다. 봄이 오면 공원 한편에 꽃이 핍니다. 그 꽃을 보고 해마다 피는 그 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꽃은 지난해와 같은 꽃이 아닙니다. 지난해에 피었던 꽃은 이미 말라버렸으니, 해마다 새로운 꽃을 피우는 자연의 힘을 느껴보세요.
오랜 세월 회사에 근무하다 보면 마치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난해 이맘때쯤에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입니다. 생각해보면 매해 같은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10년을 하루같이 보낸 나날들, 그 매너리즘에 빠져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회사에 있는 당신은 지난해의 당신이 아닙니다. 같은 직종이라도 지난해의 일과 올해의 일은 다릅니다. 같은 일의 반복은 결코 없습니다. 당신은 날마다 다시 태어납니다. 지난해의 당신과 오늘의 당신이 같을 리 없습니다. 『방장기方丈記』(일본 고전수필문학의 백미로 꼽히며 불교적 색채가 농후한 가모노 초메이의 수필)에 나오는 말처럼, 강의 흐름은 끊이지 않으나 같은 물이 두 번 흐르는 법은 없습니다. 자연에 몸을 두고 그 진리를 깨달아갑니다.
지금 피어 있는 꽃은 지난해와 같은 꽃이 아닙니다.
오늘의 당신도 지난해와 같은 당신이 아닙니다.
2장 버리고 정돈한다
일단은 하나만 처분한다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특별히 욕심 부리지 않아도 저절로 주위에 물건이 늘어갑니다. 방 안을 둘러보세요. 거기에 있는 물건은 정말 필요한 것들일까요. 한 번밖에 입지 않은 옷, 비슷비슷한 디자인과 용도의 가방,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은데 좀처럼 버릴 수가 없습니다. ‘혹시 다시 입을지도 모르잖아’, ‘어떻게 손에 넣은 건데…… 버리긴 아까워’, 이는 물건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방은 당신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만일 당신의 방에 불필요한 물건이 많다면 당신의 마음도 불필요한 것들로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속이 욕망이나 집착, 질투 등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우선 당신이 갖고 있는 불필요한 물건을 하나만 처분해보면 어떨까요. 20개의 가방 중에 5개를 처분하기는 어려워도 20개의 가방 중 1개라면 어떻게든 처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슷한 디자인이 여럿 있다면 그중 하나를 친구에게 줍니다. 하나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사실 그 하나는 큰 의미를 갖습니다. 20개의 가방 중 1개는 작은 수지만 그 하나를 처분하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필요 없는 것이었어. 나도 처분할 수 있어’라고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자신감이 당신의 생활방식을 확연히 바꾸어줍니다.
집착에서 해방된 산뜻함, 그것을 알게 된다면 지금껏 알고 있던 욕망이 조금씩 줄어듭니다. 더 이상은 필요 없다는 생각에 이를 때 당신의 마음에는 여유와 만족감이 생겨날 것입니다.
작은 한 걸음이 큰 변화를 낳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갖는다
바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시의 역이나 거리를 보고 있노라면 다들 바쁜 걸음으로 걸어갑니다.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에 사람을 밀어젖히듯 헤치며 급하게 걸어가는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흡사 마음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입니다.
바쁜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정한 시간 안에 꼭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시간 안에 이 작업을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 오전 중에 이만큼의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와 같은 경우입니다. 이렇게 바쁜 것은 마음에 과하게 부담을 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눈앞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면 분명 그 끝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로부터는 반드시 벗어날 때가 옵니다.
또 한 가지 바쁜 것이 있습니다. 이게 조금 까다로운데, 이것저것 ‘할 일’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 항상 뭔가에 쫓기고 있는 듯한 감각입니다. 아마 이런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어쩌면 현대인 특유의 감각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마음이 바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하루 중에 설령 10분이라도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세요. 그럴 여유가 없다고요? 그렇다면 잘 생각해보세요. 하루 중에 10분을 멍하니 있는 시간으로 사용했다고 하여 상황이 변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 10분 때문에 일이 늦어지는 경우도 그리 없을 것입니다.
일찍 일어나서 바로 몸단장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잠깐 바깥 풍경을 바라봅니다.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근처를 10분 정도 걸어봅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멍하니 있어 봅니다. 낮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밤에 잠자기 전 10분간, 그렇게 마음이 노닐도록 해보는 것입니다.
하루에 10분, 의식적으로 멍하니 있어봅니다.
모든 일을 직접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직접 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대 누구에게도 일을 맡기지 못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하려고 합니다. 때론 그것이 자신을 성장시키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리 좋은 습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모든 것을 일일이 챙기려는 어머니가 있다고 합시다. 내일 할 일을 정리해주고 어떤 옷을 입으면 좋을지 골라줍니다.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도 정해줍니다. 얼핏 자상한 어머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이가 아닌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 듭니다. 버릇없는 아이라고 주위에서 수군거릴까 봐, 이상한 차림으로 나갔다가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할까 봐 그러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거기에는 강한 자만심이 숨겨져 있습니다.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하 직원이나 동료를 항상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챙겨주거나 굳이 필요하지 않은 조언을 해줍니다. 이 역시 얼핏 보기에는 친절한 듯해도 결국 자신의 스타일이나 사고방식을 밀어붙이고 있는 게 아닐까요.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하려는 것은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됩니다. 모든 것을 떠안기란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여러 사람에게 일을 분담시켜 서로 도와가면서 부담을 덜면 됩니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고 정합니다. 그 이상은 상대가 원하면 해줍니다. 원하지 않으면 그냥 둡니다. 육아라면 아이가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고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지켜보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마음도 자유로워집니다. 모든 인간은 자아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스타일이나 사고방식을 누군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부담을 나누는 것으로 서로의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3장 행복이란 족함을 아는 것
하나하나 진중하게 한다
심플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진중하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진중하게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하나하나의 일에 대해 진중하게 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속도감이 빠른 시대입니다. 그 속도감을 따라가기 위해 어느샌가 매사에 초조해지기 십상입니다. 뭔가를 하면서도 마음은 다른 뭔가에 빼앗겨 있습니다. 빨리 끝내지 않으면 다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초조해져 심신이 쫓기는 듯한 상태에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이나 일상이나 한 가지 일을 조잡하게 하면 그 조잡함은 점점 전염이 되어갑니다. 시작이 조잡하면 결국 마지막까지 조잡해집니다.
‘끽다끽반喫茶喫飯’이라는 유명한 선어가 있습니다. 직역하면 “차를 마실 때는 차 그 자체가 되고 밥을 먹을 때는 밥 그 자체가 되라.”는 말입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만 마음을 집중하는 것, 다음에 올 일을 집중하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 즉 하나하나의 일을 완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당신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일, 그 하나하나를 떠올려보세요. 요리를 할 때 내일 일정을 생각하면서 칼을 잡고 있지는 않나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하다 만 일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눈앞의 일에 집중하지 않고 무심결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그런 습관을 조금만 재점검해보는 건 어떨까요. 휴식 시간에 차를 마실 때는 마음속으로 ‘아, 맛있다!’라고 생각하며 차를 마시는 데에만 신경을 씁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고 한 가지 일을 진중하게 합니다. 그것의 축적이 진중한 삶으로 이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합시다. 그 축적이 ‘진중한 삶’으로 이어집니다.
몸을 사용한다
‘냉난자지冷暖自知’라는 선어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차가운 물을 앞에 두고 “그 물은 차갑다.”고 말합니다. 머리로는 ‘차갑다’고 이해해도 그 물이 어느 정도 차가운지는 실제로 자신의 손을 넣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진짜로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냉난자지’는 신체를 사용하여 경험하는 것의 중요함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인간에게는 오감이 있습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입니다. 선적인 생활이란 이 오감을 최대한 가동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위나 추위는 물론이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바람의 냄새를 느낍니다. 화초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새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입니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경험을 축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 행위 끝에 깨달음이 있습니다. 선인들의 책을 읽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냥 읽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거기에 자신의 경험이 더해져야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한 여성 신도로부터 “시간이 처치 곤란이에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고 나면 할 일이 없어요. 행복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살아간다는 실감이 나지 않아요.”라는 상담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방에 걸레질을 해보세요. 한겨울에 걸레를 짜면 차갑겠지만 어떻게든 그런 습관을 들여보세요.”라고 조언했습니다. 청소기나 밀대를 사용하지 않고 일부러 걸레를 빨고 짜서 닦는 청소를 합니다. 승려들은, 특히 수행승들은 평소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지요.
그로부터 반년 후, 그 여성은 아주 발랄한 모습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걸레질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 지금은 일주일에 세 번이나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몸을 사용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습니다.
일부러 몸을 사용해봐야 느낄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행복이란 족함을 아는 것
‘지족知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족함을 알다.”라는 의미로, 지금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그 이상의 것을 쓸데없이 욕심내지 않는 마음이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말이야말로 심플하게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말이 아닐까요.
한 가지 우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마을에 소를 키우는 남자가 두 명 있었습니다. 한 남자는 99마리의 소를 키우며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99마리의 소를 100마리로 늘리자!’ 100마리의 소를 키우는 것이 그의 목표이자 욕망이었습니다.
다른 한 남자는 세 마리의 소밖에 키우지 않고 있었습니다. 세 마리밖에 없어 생활이 그리 풍족하지 못했지만 그는 충분히 만족하는 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소를 키우면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보다 많은 소는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어느 날 99마리의 소를 가진 남자가 소가 세 마리밖에 없는 남자를 찾아왔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생활이 곤란하니 소를 나눠달라고 했습니다. 부탁받은 남자는 “당신이 그렇게 곤란하다면 드리지요.” 하고 흔쾌히 소 한 마리를 양보했습니다. 그는 생활이 더 힘들게 되었지만 친구를 도와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만족했습니다.
한편 100마리의 소를 가진 남자는 새로운 욕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보란 듯이 100마리를 채웠으니 이제 101마리로 늘려볼까’라고 말입니다. 이 남자는 101마리가 되면 105마리를 채우기 위해 고민하고 괴로워하겠지요. 이 두 남자 중 어느 쪽이 행복할까요. 족함을 안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합니다.
주저함이 들 때는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
매일 삶에 쫓기다 보면 때론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