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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1% 리더들의 고품격 대화

신영란 지음 | 평단문화사



성공한 1% 리더들의 고품격 대화



신영란 지음

평단 / 2016년 8월 / 288쪽 / 13,000원





상대의 마음과 대화하라



말투를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



인간관계란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상대로 하는 만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의 확률이 반반이다. 여기서 말은 상대를 내 편으로 끌어당기거나 내칠 수도 있는 자석의 고무줄 게임과 같은 역할을 한다. 불통은 대부분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화법에서 비롯된다. 진의가 왜곡돼 전달될 때 불신이 쌓이고 뿌리 깊은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대화가 인간관계를 파국으로 이끄는 독이 되는 것이다.

말투를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 의도가 좋아도 남에게 거부감을 주는 화법이 있고, 거절이나 반대의 뜻이 담겼어도 상대의 기분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화법이 있다. 말끝마다 부정적인 느낌을 풍기는 사람의 대인관계가 순탄할 리 없고,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한 사람의 인생이 풍요로워질 수 없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다. 최악은 ‘귀머거리 화법’이다. 듣는 귀는 닫아놓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못 견디게 싫어하는 사람일 수 있고, 어떤 상황이든 결론은 자신이 내려야 한다는 정리 결벽증 환자일 수도 있다.

간혹 상대보다 말을 적게 하거나 끼어들 틈새를 놓치면 자신이 무시당하거나 남들에게서 소외될까 봐 조바심 내는 노출증 환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언제부턴가 ‘됐고’라는 폭력적인 말투가 유행어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내 생각엔 말이야…….” 이를테면 누군가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고 하면 면전에서 정색을 하고 이렇게 내뱉는 사람이 있다. “됐고!”상대방의 말을 들어볼 가치도 없거나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기는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웃자고 떠들던 말이 일상생활에 들어와서는 누군가의 인격을 깔아뭉개는 용도로 쓰이는 악의적 말버릇이 되었다. 그래 놓고 본인은 누가 듣든 안 듣든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주워 삼키는 무례를 아무렇지도 않게 범한다. 당신이라면 이런 상대와 가까이하고 싶겠는가.

남의 말을 함부로 자르고 자기주장만 앞세우는 사람치고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만나는 사람이 많다 해도 진심으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대화 상대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그 역시 들어주는 척만 하는 거짓 청중을 상대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 데서나 혼자만 튀려고 드는, 이른바 ‘진행병’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대화 상대가 단둘이거나 여러 명이 함께하는 경우나 다르지 않다. 다수의 의견을 모아 결정해야 할 일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개중에는 남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게 자연스럽고 설득력이 풍부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말주변이 부족하다고 생각조차 모자란 건 아니다.

진행병이 있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남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을 도저히 그냥 참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개 자신의 의사 표현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그러니까’, ‘그래서’, ‘그런데’ 등의 접속사를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남의 말을 무 자르듯 자르고 본인이 직접 정리정돈까지 하려고 드는 건 예의를 떠나서 상대를 그림자 취급하는 언어폭력에 가깝다.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이런 거잖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툭툭 나서서 말참견을 하는 버릇 또한 귀머거리 화법에 속한다.

유능한 사람일수록 듣는 귀를 활짝 열고 가능한 한 상대방에게 마이크를 더 많이 넘겨주려고 한다. 상대가 아랫사람일 경우에는 지시나 강요보다는 경청에 더 무게를 둔다. 자신의 판단이 옳든 틀리든 조직 구성원 간에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진 뒤 내려진 결정일수록 조직을 이끌어가는 데 여러모로 이롭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좀처럼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부하직원이 있다면 상사로서 자신의 언어습관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의 원칙



비난을 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부터 생각하라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는 아내에게 꼼짝 못하고 죽어지내면서 밖에만 나가면 행동이 권위적이고 거칠게 돌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반대로 집에서만 왕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울분에 싸여 살던 사람이 만만한 상대를 만나 야비하게 큰 소리 치는 격이다. 이런 부류는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강한 유형이다. 약한 상대가 자신에게 굴복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비위를 맞추는 행동을 하면 거드름을 피우며 한껏 무시하지만, 조금이라도 자기 의견에 반대하거나 어긋나면 불같이 화를 내며 난폭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남의 입장이나 괴로움 따위는 무시해버리기 일쑤고, 성격적으로도 뒤틀린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이 자기보다 강한 상대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져서 예스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매사를 자기 생각대로 하고 싶고 남보다 위에 서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살지만, 그것을 현실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에 따라 주위의 평판이나 삶의 질이 달라진다. 자기 기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모든 일을 제멋대로 하려는 사람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지나치게 본성을 억누른 채 살아가는 인생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이 뭔가를 간절히 바라고 욕망하는 존재인 동시에 반성하고 회의할 줄도 아는 이성적 존재다. 자신이 불합리한 행동을 했거나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행동을 했을 때 ‘내가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하고 반성하는 마음이 솟아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자기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조건 남 탓이나 하고 쉽게 흥분하는 사람은 케이 호가드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즉,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먼저 그들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남을 비난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너그럽게 헤아릴 줄 아는 아량이 있다면 서로 뜻이 안 맞는다고 핏대 세울 일도 없다.

인격의 가치는 좋은 일보다 나쁜 일 가운데서 빛을 발한다. 옛말에 “곶감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상황이 잘 돌아갈 때는 누구나 마음이 너그러워지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일도 거의 생기지 않는다. 문제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해도 곱게 들리지 않는다. 잘해보자고 한 얘기도 자격지심을 가지고 들으면 자신을 비난하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이럴 때는 예민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차라리 대화를 멈추고 한 박자 쉬어가는 것이 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방법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을 뒤집어보면 결코 좋은 뜻으로 해석할 수 없는 진리가 담겨 있다. 신체적으로 위해를 가한 것은 아니지만, 혀끝에서 휘두른 칼로 생긴 마음의 상처는 평생을 갈 수도 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을 가려서 하는 예의가 필요한 이유는 늘 얼굴을 보고 살아야 하므로 말의 칼에 베인 상처가 도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만 가지 덕을 쌓고도 한마디로 모든 공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게 인간이다. 나쁜 일일수록 남 탓하지 말고 가능하면 말을 아끼자. 비방으로 얻은 승리는 결국 나에게 독이 돼 돌아오는 법이다.



말 잘하는 사람, 잘 듣는 사람



대화의 공백을 두려워하지 마라



지나치게 수다스러운 사람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의외로 성격이 소심한 경우가 많다. 소심하면서 수다스러운 사람의 두드러진 특징은 수다의 내용이 주로 자기 자신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호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대화의 부족에 있다고 생각해 틈만 나면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려고 드는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누가 묻지 않았는데 시작은 늘 이런 식이다. 상황과 관계없이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하다. 어떤 사람은 누구를 만나든 항상 꺼내는 래퍼토리가 있다. 자신의 성격이나 취향, 살아온 이야기 등을 쉴 새 없이 주절거린다. 같은 사람을 다음에 만나도 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불안해하며, 그 불안감이 말을 자꾸 길어지게 만든다.

사람이 수다스러워지는 또 다른 이유는 대화의 공백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끊기는 것을 참지 못해 계속 재잘거리고, 분위기가 조금이라고 어색해지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한참 잘 떠들다가도 주변의 반응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갑자기 풀이 죽곤 한다. 공허한 수다나 잡설은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알맹이 없는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당사자는 점점 더 조급해진다. 어떻게든 끝마무리를 멋지게 하고 싶지만 한 번 꼬이기 시작한 말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런데도 언제 이야기를 제지당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끊임없이 말을 해야 마음이 놓인다.

상대의 반응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도 일종의 정신병이다. 자신이 화제의 중심에 있지 않으면 소외되는 것으로 느끼는 심리가 이런 집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대화의 흐름이 유연한지 아닌지는 상대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또한, 반응이 성에 안 차면 알아서 판을 바꾸는 센스도 필요하다. “우리, 다른 이야기 할까요?”

이렇게 운을 떼면 상대방이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재미있는데 왜요?”

이런 반응이 나오면 대화를 이어가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다른 이야기, 어떤 거요?” 이런 대꾸가 나오면 화제를 바꾸자는 신호다. 여기서 적당히 마이크를 넘길 기회가 생긴다. 그런데 눈치 없는 사람은 이 대목에서 또 속을 내비친다. “뭐 꼭 할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닌데……. 아무튼 제 말이 재미없는 것 같아서요.”

이것은 기껏 이야기를 들어준 상대를 두 번 골탕 먹이는 화법이다. 너는 지루하든 말든 나는 내 말을 더 하고 싶다는데 상대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대화를 이런 식으로 끌고 가면 누구라도 질릴 수밖에 없다. 말하는 사람이 알아서 입을 다물기 전에는 싫어도 참고 견뎌야 하는 게 대화의 함정이다. “재미없으니까 딴 얘기 합시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라면 모를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말을 쿨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는 많지 않다. 상대가 기분 상할 것을 알면서도 마이크를 뺏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설사 지루함을 참고 견딘 끝에 무사히 끝낸다 해도 이후로는 대화할 일이 없을 수도 있다.‘웬만하면 이 사람한테 말 걸지 말아야겠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질질 끌며 횡설수설하잖아. 진짜 미치겠군!’이것이 대화 도중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는 상대의 마음속 아우성일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상대 앞에선 수다스러워지는 경향이 있다. 눈에 콩깍지가 씌면 익히 아는 이야기도 그런대로 듣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듣기 좋은 음악도 연속해서 듣다 보면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나도 말 좀 하자” 이런 말을 할 정도가 되려면 서로 친밀함을 넘어 마이크를 뺏겨도 상처 받지 않고 가볍게 웃어넘길 만큼 신뢰가 쌓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자기 말에 취해 있으면 대화의 끝이 좋을 수만은 없다. 주목 받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다. 말수가 적어 보이는 사람도 자신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다. 프라이버시를 건드리지 않는 한 질문은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대화에 동참시키는 역할을 한다. 딱히 궁금한 게 없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마이크를 넘길 수도 있다. “원래 그렇게 말이 없는 편인가요?”

이 경우 상대가 원래 말이 없는 편이어서 ‘예’라고 대답해도 이야기를 끌어갈 여지는 충분하다. 이를테면 학창시절은 어땠는지 물어보면 다른 대답이 나올 수도 있다.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대화의 철칙이 있다. 이야기의 절반은 듣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업무상의 브리핑이 아닌 한 대화를 나눌 때는 늘 혼자 너무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상대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지 체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화의 공백을 두려워하지 말자. 침묵도 대화의 일부다. 진실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수다를 견뎌내야 하는 지루함이다. 공백이 생기는 것은 수다보다 침묵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이 하는 말마다 일일이 대꾸해주는 것만이 좋은 대화는 아니다. 상대는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만으로도 경청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고 보면 된다.



나에게 힘이 되는 대화법



상대의 장점을 부각시켜라



말이란 그 사람의 개성을 나타낸다. 사람마다 성격과 취향이 다르듯이 말에도 다양한 색깔과 스타일이 존재한다. 말투가 어눌하고 단조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톡톡 튀는 감각적 표현으로 세련된 화술을 구사하는 사람, 유창한 언변으로 좌중을 압도하고 어떤 상대라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재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야기가 화려하고 재미있을수록 상대를 끌어들이는 흡입력도 강하다. 이런 기술은 무작정 따라 한다고 해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 못하면 그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가장 효과적인 대화법은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하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얻는 것이다. 듣기 좋은 말로 입이 닳도록 찬사를 늘어놓는다고 해서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화법은 아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일수록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전제로 해야 한다.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치켜세우는 말은 오히려 상대를 언짢게 하나다. 덕담을 건네도 듣는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칭찬해야 하는 것이다. 분위기를 띄운답시고 무턱대고 맞장구를 치거나 굳이 안 해도 될 찬사를 남발한다면 상대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멋지십니다”, “존경합니다” 앞뒤 없이 이런 말을 내뱉는다고 좋아할 사람은 진짜 바보거나 자아도취증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상대를 기분 좋게 하려면 있는 사실을 느낀 그대로 말하는 게 최선이다. 누구에게나 장점은 있다. 그 느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된다. 그것은 태도나 성격, 외모와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그가 가진 재능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상대의 좋은 면을 부각시키는 화법을 사용하면 커뮤니케이션도 활발해진다. 다만 외모에 대한 평가는 되도록 신중히 해야 한다. 누가 봐도 잘생긴 사람에게 “잘생기셨네요!”하면 별 효과가 없을뿐더러 자칫하면 아첨으로 비칠 수도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장점이 없을 때는 상대방의 패션이나 액세서리에 주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말이란 사람과 사람이 교감할 수 있는 소통의 도구다. 사람들 속에서 섞여 살아가려면 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방법은 하나, 있는 그대로 자기 모습으로 부딪혀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지나치게 크게 느끼고 부끄러워하기 마련이다. 이런 습성 때문에 종종 자신의 참모습을 잃어버리곤 한다. 남의 장점에만 눈이 가 있으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을 스스로 몰개성의 늪으로 몰아넣는 것과 같다. 사람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다. 개성이 없다는 말을 듣는 사람조차 그 개성 없음‘이 그 나름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개성을 활발히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당연히 주목을 받는다. 반대로 매사에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있는 듯 없는 듯 가려지는 법이다. 말솜씨를 익히는 것도 개성을 살리는 일과 같다. 말투는 그 사람의 고유한 언어습관, 그 사람만의 독특한 버릇이다. 말이 느리다고 해서 무조건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소재가 풍부한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아무리 말이 느려도 지루하지 않다. 그러므로 말을 잘하고 싶다면 먼저 사물을 폭넓게 보고 느낄 줄 아는 마음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 사업 밑천이 두둑해야 안정적으로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는 것처럼 대화에도 밑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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