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고수의 일침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고수의 일침



한근태 지음

미래의창 / 2016년 6월 / 208쪽 / 12,000원





세상이치



원래 앞은 보이지 않는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의 일부다. 희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좋은 시다. 사람은 음식이 없어도 40일을 살 수 있고, 물이 없어도 4일을 살 수 있으며, 공기가 없어도 4분을 살 수 있지만, 희망이 없으면 4초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만큼 희망은 중요하다. 젊은이들이 취업 때문에 좌절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을 위로한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기억해야 한다. 30여 년 전 내가 학교를 졸업할 때도 앞은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환했는데 요즘 들어 갑자기 어두워진 것이 아니다. 언제나 앞은 보이지 않았다. 앞이 보이면 살 수 없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지금은 힘들어도 앞길이 열릴 것이란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사는 것이다. 마치 담쟁이가 수천 장의 잎을 이끌고 담을 넘듯이 말이다.

빠릿빠릿한 사람이 되라



무엇을 물어봐도 별 대꾸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못 알아들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자기 직업에 대한 존중심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사소한 질문에도 싹싹하고 시원시원하게 답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패한 사람들은 대부분 느리다.

대답도 느리고 행동도 느리다.

불러도 바로 대답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달려 나오는 일도 없다.

뭘 하나 시켜도 꾸물거리면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상사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진다.

성공한 사람들은 빠릿빠릿하다.

궁둥이가 가볍고, 피드백이 빠르다.

꾸물거리는 것과 신중한 것은 다르다.

꾸물거리는 것은 그저 게으름이요, 잘못 밴 습관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빠릿빠릿한 사람인가, 느려터진 사람인가?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가?



가까운 사람에게 물어보라



한 사람을 객관적으로 알기는 쉽지 않다.

높은 사람, 유명한 사람,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 중 거품이 잔뜩 낀 사람도 많다.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지 아는 방법 중 하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 사람의 기사나 비서가 대표적이다.

기사는 배우자보다 오랜 시간을 붙어 지내고 월급을 받는 사람이다.

운전하는 사람이라 그가 어떤 행동을 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기사는 그에 대해 제일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차 안에서 하는 통화 내용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가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다니는지도 제일 정확히 알고 있다.

또 자신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으로 미루어

그가 어떤 성품의 사람인지도 이미 알고 있다.

사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가까운 이들에게 존경받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흠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기사나 비서로부터 칭송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자체로 일정수준에 오른 사람이다.



편안함이 지나치면



예전에 비하면 지금 우리의 삶은 말할 수 없이 편해졌다. 하지만 만족도는 예전과 다르지 않다. 인간은 금방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세탁기가 빨래를 편하게 해주었지만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너무 좋아요, 세탁기 덕분에 생활이 윤택해졌어요.”라고 감사하는 사람은 없다. 차를 탈 때마다 “마차에 비해 속도도 빠르고 참 안락하네요. 너무 좋아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다. 우리의 일상은 안락의 측면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하지만 더 편안하다고 해서 더 큰 만족을 느끼지는 못한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편리함을 적당히 줄이고 불편함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불편함이 있어야 만족감도 생긴다. 계속 편안하기만 하면 더 이상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주말에 한 손에 리모콘을 잡고 하루 종일 뒹굴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낮잠을 잔 후 기분이 어떤가? 날아갈 듯한 기분인가? 그렇지 않다. 오후가 되면 머리가 띵하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편안함이 지나쳐서 더 이상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불편을 추구해야 한다.

얻으려면 버려라



모든 것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지식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 십자가의 성 요한



모순처럼 보이지만 모순이 아닌 진리다.

대기만성은 “큰 그릇은 완성이 없다.”는 뜻이다.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음희성, 대상무형이란 말도 있다.

가장 큰 소리는 들리지 않으며, 가장 큰 형상은 형체가 없다는 뜻이다.

어설프게 알면 그 어설픈 지식 때문에 더 큰 지식을 얻지 못한다.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낡은 지식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많이 얻으려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살게 되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게 된다.



부끄러운 승리



2009년 초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는 기독교계 사립학교인 카버넌트스쿨과 댈러스아카데미 간의 농구 경기가 있었다. 이 경기에서 명문 사립고인 카버넌트스쿨은 무려 100대 0이란 점수 차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경기 후 카버넌트스쿨의 카일 퀼 교장은 농구 감독을 해임하고 댈러스아카데미 측에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텍사스 지역 학교 연합회에 자신들의 승리 기록을 삭제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들이 상대했던 댈러스아카데미는 집중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였기 때문이다. 퀼 교장은 명예롭지 못한 승리는 커다란 패배이며, 기독교적이지도 못하다고 생각했다. 너그럽지도 않고 배려도 없이 오로지 이겨야 한다는 욕심만으로 얻어낸 승리는 부끄러운 것이다. 혼자만 잘 사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아흔아홉 곡식을 가진 부자가 한 섬 가진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으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 일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행운은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운은 가만히 있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운의 한자말은 군대 군軍 플러스 천천히 갈 착?이다. 글자 안에 천천히 움직인다는 뜻이 숨어 있다. 부지런히 일하고 움직여야 운이 생긴다. 행운은 뭔가 준비하는 사람,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 지금 편안해도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사람, 지금이 힘들어도 그 안에서 뭔가를 배우려는 사람에게 온다. 행운은 준비하고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일찍 이어나고, 열심히 일하고, 신중하고, 절약하고, 정직하고, 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하는 사람에게 오는 부산물이다.



마음 다스리기



생각이 얼굴을 바꾼다



생각이 얼굴을 바꾼다.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의 얼굴에 그대로 반영된다. 매사에 감사하고 남을 도우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연히 그것이 얼굴에 나타난다. 야비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얼굴도 야비하게 바뀐다. 감정을 표현하는 캔버스가 바로 얼굴이다. 우리는 눈, 입, 볼, 눈썹, 이마 등을 늘이거나 수축시키는데 43개의 근육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얼굴을 관찰하는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우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표정을 살피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실어증 환자는 거짓말을 인지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갖는다. 그들은 소통채널을 하나 읽는 대신 표현에 의존하는 채널 해석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것이다. “얼굴 표정은 세계 공통어다.” 심리학자 폴 에크먼의 말이다.

죽을지도 모를 위기가 나를 살린다



지인 중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장이 직업을 잃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나 역시 오래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때는 앞이 캄캄하고, 어떻게 처자식을 먹여 살릴 것인가란 생각에 잠도 오지 않았다. 차를 없애고, 모든 것을 최소화했다. 작은 회사에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취직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외식은 꿈도 못 꾸고, 한 달 5만 원으로 생활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보니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그러면서 차츰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져야 솟아날 구멍이 생긴다. 위기가 닥쳐야 비상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밥그릇이 깨질 가능성이 높아지면 엄청난 괴력이 생긴다. 위기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갈린다. 어깨를 떨군 사람에겐 지옥이 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사람에겐 천국이 된다. “역사적 성공의 반은 죽을지도 모를 위기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적 실패의 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됐다.” 아놀드 토인비의 말이다.

구시화문



구시화문이라는 말이 있다. 입을 통해 화가 닥친다는 뜻이다. 입은 재앙의 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는가?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입을 놀려 고생을 한다. 가톨릭에는 ‘침묵 피정’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수행이다. 수도자들이 침묵하는 것은 침묵 그 자체에 그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침묵이라는 과정을 거쳐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칠은 시간만 나면 방음장치가 된 자기 방에 홀로 있기를 좋아했다. 드골도 집무실에 들어가면 전화기가 울리지 못하도록 했다. 말을 배우는 데 2년밖에 안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일주일에 한 번 침묵의 날을 만들어보라. 새로운 변화를 느낄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도인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착하게 살면 된다”고 한 마디 했다. 그런 거 말고 다른 얘기를 해 달라고 했다. 너무 시시했던 것이다. 도인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진리란 너무 지루하고 뻔하고 모두가 아는 얘기들이다. 건강하기 위해서 운동하고 소식하고 잠 잘 자고 잘 먹고 마음 편하게 갖고 등등…… 이 중 태어나서 처음 듣는 얘기가 있는가? 수백 번은 들은 얘기들이다. 너도 알고 나도 는 얘기들이다. 몰라서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알지만 못하는 일이다. 언젠가는 해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는 일이다. 잘 산다는 것은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실천하며 사는 삶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용기



박완서 씨는 스물여섯 살 마취전문의 과정에 있던 외아들을 잃었다. 그녀의 인생 최대의 비극이다. 얼마나 하늘이 원망스러웠을까? 그녀의 고백이다.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 내 살의를 위해서도 신은 있어야 돼.” 하지만 그 원망과 울부짖음은 하느님이 계심을 믿기에 할 수 있는 행위였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뜻한다. 먼 훗날 어느 정도 상처가 아물었을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만일 그때 나에게 포악을 부리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분조차 안 계셨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생각해봅니다. 살긴 살았겠지요. 사람 목숨이란 모진 것이니까요.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더 불쌍하게 살았으리라는 것만은 환히 보이는 듯합니다.” 고통에 대해 송봉모 신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 슬프게도 고통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통은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하는 문제이지, 해결하느냐 해결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고통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통을 받아들일 때 고통스런 상황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평화의 자리가 마련된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칼릴 지브란의 책 『예언자』에 나오는 말이다.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마. 다쳐.” 우리가 흔히 하는 농담이다. 하지만 이것은 진리다. 아는 것이 병이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 굳이 몰라도 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연예인들의 스캔들,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먼 나라의 테러 사건……. 정말 사는 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괜히 우리 영혼만 혼탁하게 만든다. 가족 간, 부부간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아니, 필수적이다. 애정과 집착은 다르다. 집착은 애정을 파괴한다. 애정과 집착의 구분점 중 하나가 바로 적당한 거리다.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거리가 필요하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나무도 잘 자란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사랑도 오래 간다. 세상의 모든 비극은 상대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데서 시작된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마라.

누구에게나 삶은 만만치 않다



사자가 얼룩말을 사냥하다 얼룩말에 채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동물의 왕인 사자가 어떻게 얼룩말에게 채일 수 있을까?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사자가 천수를 다하는 확률은 10~20퍼센트밖에 안 된다. 왜 그럴까? 사자는 평균 3일에 한 번 꼴로 사냥을 한다. 사냥에서 성공할 확률은 대개 30퍼센트 정도다. 그렇다면 평균 9일에 한 번꼴로 배불리 먹는다는 이야기다. 사자는 평균 시속 45킬로미터, 얼룩말은 평균 60킬로미터의 속도로 뛴다. 속도에서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사자는 500미터 이상을 전력 질주하면 체온이 올라가서 심장이 파열된다고 한다. 그러니 먹잇감을 아주 가까이에서 덮쳐야 사냥에 성공할 수 있다. 당연히 성공확률이 떨어진다. 게다가 얼룩말의 경우 뒷발 힘이 워낙 세서 그 발에 채이면 큰 부상을 입게 된다. 잘못하면 사자가 치명상을 입어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우리가 보기엔 편할 것만 같은 사자의 삶도 그리 간단치가 않다. 편해 보이는 삶도 안을 들여다보면 다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



일이 스승이다



성공중독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의 일정표를 본 적이 있다. 중요한 미팅이 30분 간격으로 잡혀 있고, 각종 연설 중요 인사 면담 등으로 숨을 쉴 수 없는 스케줄이었다. 하루 이틀은 가능하겠지만 보통 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철인경기 같은 일과다. 대기업 사장인 친구들의 일정도 이와 비슷하다. 그들과 골프 한 번 치려고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를 힘들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긴다. 화제도 주로 일에 관한 것이다. 일종의 성공 중독이다. 난 내심 걱정이 된다. 이러다 은퇴하면 새로운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혹시 절벽에서 떨어지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가족들은 괜찮을까? 성공 중독은 건설적이지만 지나치면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시간의 주인이 아닌 시간의 노예인 셈이다.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