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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변지영 지음 | 비즈니스북스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변지영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0월 / 260쪽 / 13,800원





기쁨: 항상 만족하는 사람들의 특징



명랑함은 최고의 능력이다



명랑함이 우리의 문을 노크할 때에는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명랑함을 맞이하기에 적절하지 않을 때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문을 활짝 열기보다는

그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주저한다.



명랑함이야말로 복잡한 생각할 필요 없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울다가도 금세 웃을 정도로 참 쉽게 명랑해진다. 그런데 별것 아닌 일에도 자지러지게 웃던 아이들이 왜 어른만 되면 엄숙하고 무거운 얼굴을 하게 되는 것일까? 마치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만 밝게 웃을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원하는 것을 이루면 행복해질 거라 믿으며 늘 계획하고 궁리하지만 정작 행복이 다가올 때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명랑함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다. 행운을 알아보는, 행복을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즐거워하는 사람에게 즐거운 일만 일어나는 이유



사소한 일에도 자주 화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쉽게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열 번 중 아홉 번을 성공해도 기뻐하지 않으며

그 한 번의 실패에 대해서 화를 낼 것이고,

후자는 단 한 번의 성공에도 자신을 위로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작은 일에도 즐거워하고 감사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우울해 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그 일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뉘고, 이런 해석이 쌓여 결국 성공 또는 실패라는 의미를 새기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이 충만한 사람에게는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자주 생기고, 항상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에게는 불만족스럽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고독: 혼자는 왜 여럿보다 나은가?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생각하라



철학적 성찰에서 이상한 점은

자기 자신을 위해 깊이 생각하고 탐구한 것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애초에 타인을 위해 고안된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속이려 하지는 않으며,

자기에게 빈껍데기를 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들은 얼마나 많은가? 차라리 자기 자신만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나 자신에게 일부러 해가 되도록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 편이 훨씬 정직해서 결과적으로도 사회에 더욱 보탬이 된다.

지혜로운 사람의 사교법



지혜로운 사람은 고통과 번거로움으로부터 벗어난

조용하고 여유 있는 평화를 추구한다.

때때로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곧 물러나 혼자 있는 것을 택한다.

내면에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적다.

이것이 지혜로운 자가 종종 사교적이지 않게 되는 이유다.

반면 이와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사람은 잠시도 혼자 있지 못하고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혼자 있으면 자신의 바닥이 너무나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에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고 누구든 만난다.



누군가를 만나면 어떤 기대를 하게 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그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긴다.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사람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이 정작 세상은 이기적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관계는 내게 부족한 것을 메우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 채워진 마음을 가지고 친구를 사귈 때에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현재: 지금이 전부다



꼭 해야 하는 일인가?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것,

당장 해야 할 것들만 생각하다가

정작 중요한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삶이 지나가버린다.



‘지금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일까?’ 항상 바쁘고 정신이 없다면 가끔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는 것도 좋다. 삶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직접 느끼면서 살아가야 할 순간의 연속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만 바라보면서 하루도 제대로 살지 못한다.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란 사실 별로 없는데 말이다. 무언가를 해야만 내가 설 자리가 있다고 느끼는 것일까? 세상이, 사람들이 나를 정말 필요로 한다고 인정받고 싶은 것일까? 혹시 나 자신과 마주하기 싫어 자꾸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닐까? 과연 오늘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모든 만남은 이미 특별하다



모든 이별은 죽음의 전조이고

모든 재결합은 부활을 연습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조차

오랜만에 만나면 그렇게 반가워한다.



우리는 항상 만나고 헤어진다. 계절이 바뀌듯, 나이가 들어가듯 만남과 헤어짐은 반복된다. 개인에게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삶의 시작이고 밤에 잠드는 것은 죽음을 겪는 일이듯, 관계에서도 우리는 삶과 죽음을 경험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은 마치 우리가 부활한 것처럼 반갑게 생각된다. 그래서 특별한 인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모든 만남은 이미 삶처럼 특별한 것이다. 최선을 다해 만나고, 헤어질 때는 계절을 보내듯 자연스럽게 보내는 것이 순리다. 봄이 좋아서 부여잡는다고 여름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듯이.



성격: 누구도 자신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왜 성격은 바뀌지 않는가?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고유한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외부상황이 바뀌어 얼핏 다르게 행동하는 것 같아도,

그것은 성격이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모양만 다르게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사람의 성격이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성격이란 자신의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해 드러내는 지속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똑같은 일이 벌어져도 어떤 사람은 웃고, 어떤 사람은 난처해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눈앞에 벌어진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가는 모두 성격에 달려 있다. 좋고 싫음, 할지말지를 판단하는 것 등은 거의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이것이 쇼펜하우어의 독특한 인간관이다. 기존의 철학자들이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성적 존재로 본 것에 반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비합리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인간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맹목적인 힘(의지)에 의해 움직이며 이성은 그 힘을 합리화하거나 보완하는 기능을 할 뿐이다.

우리는 먼저 움직이고, 이후에 알아차리는 존재다. 이렇게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모든 에너지는 ‘의지’에서 나온다. 방향도 목표도 없이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꿈틀대는 힘, 바로 맹목적인 삶의 의지다.

강점과 약점을 안다는 것



성격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게 된다면

많은 고통의 순간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자신의 고유한 힘을 사용하고 느끼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인간은 가장 고통받는다.



자신의 성격을 알고 강점과 약점을 파악할수록 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불필요한 도전에 시간과 노력을 뺏기지 않을 것이고, 사소한 일들에 덜 휘둘리기 때문이다. 살면서 일어나는 많은 일과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도 없다. 항상 타인과의 관계로 고민하거나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을 줄이는 것이 세상에 대한 불만을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대부분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한 것, 피할 수 있었는데 피하지 못하는 것에서 큰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유한 성격과 강점과 약점을 제대로 파악하면 애초에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불필요한 역경으로 자신을 몰고 가지 않는다.



행복: 덜 불행하게 사는 법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능력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가 ‘그 사람이 얼마나 가졌는가’보다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내면의 힘을 기르기보다

돈을 버는 데 수천 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들은 개미처럼 쉼 없이 일한다.

그렇게 계속 살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 정신이 텅 비게 되고,

정신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돈이 많이 들더라도 시간을 별로 들이지 않아도 되는 감각적 쾌락으로 도망침으로써

정신적 즐거움을 대체할 즐거움을 누려보려 하지만 헛수고에 불과하다.



일은 종종 자신에게서 도망치기 가장 좋은 핑계가 된다. 돈을 벌기 위해, 사회적으로 안정을 받기 위해, 자시실현을 하기 위해서만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워 항상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언가에 몰두할 때는 스스로를 심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만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면 일 이외의 다른 것을 보고 느끼기 어렵다. 계절의 변화나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소박한 즐거움 자체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휴가라는 이름으로 많은 돈을 들여 큰 즐거움을 얻고자 노력하지만 막상 그게 즐거운 것인지, 행복한지 잘 실감을 하지 못한다.

고통과 지루함 사이 어디쯤



범위를 좁힐수록 행복해진다.

우리의 시야, 활동 범위, 접촉하는 세계를 제한해

어느 정도 선을 그어두는 것이 행복에 도움이 된다.

그 범위가 넓을수록 바라는 것과 두려움이 늘어나면서

걱정과 갈등도 늘어나기 쉽다. 자극이 적을수록 고통도 줄어든다.

물론 지나치게 좁거나 단조로우면 지루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만 삶을 단조롭게 하고,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순화하는 것이 행복에 도움이 된다.



의지가 끊임없이 나 자신을 몰아갈 때,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허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이성의 몫이다. 사람마다 결핍을 느끼는 항목도, 정도도 달라서 각자 자신의 의지에 대처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다듬어가야 한다.

원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충족에 필요한 에너지도 많이 필요해져 행복에서 더 멀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바라는 것이 거의 없어 활동이 줄어들면 지루함과 무기력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적절한 정도로 욕구와 자극을 조절하는 게 지혜롭다.



고통: 당신은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누가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가?



고뇌를 없애려는 끝없는 노력은 그 형태를 바꾸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다.

이러한 고뇌의 형태는 본래 결핍과 고난, 삶을 유지하기 위한 걱정이었다.

아주 운이 좋아서 이런 형태의 고통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면,

나이와 상황에 따라 성욕, 열정적인 사랑, 질투, 시기심, 증오, 불안, 명예욕, 금전욕, 질병 등 숱하게 다양한 형태로 돌아가며 나타난다.



만약 고통이 다른 형태를 찾지 못하게 되면

싫증과 지루함이라는 슬픈 회색 옷을 입고 등장하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된다.

만약 이것들을 쫓아내는 데 성공하면,

이전의 형태 중 하나의 고통에 다시 빠져 춤추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고통과 지루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모든 의욕의 토대는 결핍, 부족, 그로 인한 고통이다.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달라지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은 그 자체로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고뇌하게 되어 있다. 고뇌의 정도와 방향은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뜻하는 대로 얻거나 이루지 못하면 괴롭지만 너무 쉽게 목표를 달성해도 이내 공허감과 지루함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있는 한 완전히 평화롭거나 지속적으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라는 것을 줄이면 고통도 줄어든다

주어진 삶에서의 행복은

얼마나 기쁘고 즐겁게 살았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요소의 제거, 즉 고통을 줄이는 데에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기쁨이나 즐거움, 행복을 쫓아다니기보다 직접 마주칠 수 있는 재난이나 고통을 겪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잘 파악하고 한계를 스스로 정하고 절제하면서 바라는 것을 줄여나간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끌려다니는지도 모르면서 한없이 달려가다 보면 어느새 그 대가는 오롯이 현실로 나타나 몸과 마음이 망가지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거나, 인간관계로 인한 고난을 되풀이하게 된다.



통찰: 의미는 항상 뒤늦게 온다



단순하게 세상을 본다는 것



경험이 주는 선물은

삶을 단순한 시각으로 보게 한다는 것이다.

성숙한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의 복잡하고 심각한 고민들이 점차 사그라지고 필요한 것에만 집중할 여유가 생긴다. 내 마음이 단순해지니 세상도 비교적 단순하게 보이는 것이다. 내 생각과 감정을 투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싹트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비로소 가능하다. 사람을 무언가를 잘하거나 못하는 ‘기능’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존재’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걱정은 한 가지씩만 하라



일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우리가 신경 쓰는 일들은

별 관련성도 없고 정해진 순서도 없이 마구잡이로 일어난다.

그러니 우리에게 벌어지는 잡다한 일들에 대한 생각이나 불안도

그에 따라 두서없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하나의 문제에 대처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다른 것에 대한 자신의 주의를 철회하는 것이다.



하나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각 문제를 제때 해결할 수 있고 극복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의 생각이란 작은 서랍들처럼 하나씩 차례로 열어서 보아야지

한꺼번에 여러 개를 열어서는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들여다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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