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똑똑하게 화내는 기술

고미야 가즈요시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똑똑하게 화내는 기술



고미야 가즈요시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4월 / 251쪽 / 13,000원





화낼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다 -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분노



당신은 일류인가, 이류인가?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똑똑하게 제대로 화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입니다. ‘제대로 화를 내는 사람’은 독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이익 때문에 화를 내는 일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들은 조직과 사회의 불의에 분노합니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 사회 정의를 위해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분노라는 감정을 동력 삼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여 옳은 행동을 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경제와 사회를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필자는 ‘제대로 화를 내는 사람’을 ‘일류리더’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일류’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쉽게 하는 일을 어떤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가 없지요. 누구나 100미터를 9.7초에 주파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의 능력 범위에서 ‘실현 가능한 최고의 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런 ‘최고의 나’ 근처에도 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최고의 나’가 되지 않아도 당장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인들, 특히 대기업처럼 이름 있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선배들이 쌓아올린 조직과 브랜드의 힘 덕분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당장 실적을 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당장 먹고살 만하면 그 상황에 만족해버립니다.

‘최고의 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부분 ‘이 정도면 됐어.’하고 만족하며 살아가지요. 이러한 생활이 이어지면 자신에게 주어진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결국 ‘최고의 나’라는 존재를 만나보지도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탠퍼드 대학 경영대학원의 짐 콜린스 교수는 자신의 저서 <비저너리 컴퍼니2 비약의 법칙>에서 ‘Good(능함)은 Great(위대함)의 적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회사에 다니고 있으면 그럭저럭 괜찮은 상황에 만족하면서 그 이상의 단계에 도전하려는 의욕을 불태우지 않습니다. 적당한 상황에 안도하고 만족하다 보면 어느새 더 높이 올라가려는 마음은 사라지고 ‘될 수 있는 최고의 나’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적당히 괜찮음이 위대함으로 가는 길을 막는다는 뜻입니다.

오늘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그 성과가 드러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면 당장 이 책을 덮어도 됩니다. 그러나 대답이 ‘아니오.’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랍니다. ‘화’가 당신을 도와줄 것입니다. 능하다, 잘한다는 뜻 ‘Good’은 주어진 일을 문제없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맡은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빈틈없이 해낼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매뉴얼이 없어도 되고,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좋은 상태입니다. 이것은 사장뿐만 아니라 부장, 과장, 심지어 신입사원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Good’이라는 상태에 만족하는 사람은 이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류는 타인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없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Great(일류)에 도전하겠다는 꿈과 열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최고의 나’를 외면하는 많은 사람은 결국 이류로 삶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공통점



감정이 풍부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실행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모두 뜨거운 열정을 품은 이상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일본의 에도 막부 시대 말, 사카모토 료마는 적대관계였던 사츠마 번(현재 가고시마 현)과 조슈 번(현재 야마구치 현)의 ‘삿초 동맹’을 성사시켰습니다. 막부의 낡은 체제가 불러온 어지러운 형국을 헤쳐 나가게 만든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료마가 암살당하기 전까지 5년간의 행적을 보면 그의 실행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료마는 죽기 5년 전인 1862년 고향 도사 번(현재 시코쿠 남부 고치 현)을 탈번해 낭인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0대 중반이었습니다. 당시 탈번은 사형에 처해지는 중죄였습니다. 그해 료마는 가쓰가이슈를 만나 번을 초월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일하겠다는 큰 이상을 품게 됩니다.

고베에 머물면서 해군 훈련소를 설립하는 데 힘쓰는가 하면, 사츠마와 조슈 등의 자금을 끌어들여 외국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가메야마 조합’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가이엔타이(해운무역회사)’를 설립하는 등 거침없이 목표를 달성합니다. 그리고 일본 역사를 움직인 ‘삿초 동맹’의 주역이 됩니다. 료마는 동분서주하며 헌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사츠마 번의 수장인 사이고 다카모리와 조슈 번의 수장인 카츠라 코고로의 만남을 성사시킵니다. 하지만 만난 지 열흘이 지나도록 동맹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급기야 돌아가려는 카츠라 코고로에게 료마가 화를 내며 따집니다. 이에 카츠라 코고로는 “사츠마에 동정을 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우리 조슈가 막부로부터 공격을 당해 쓰러지더라도 체면을 땅에 떨어뜨릴 수는 없다.”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료마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조슈의 체면은 알겠소. 하지만 본래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삿초(사츠마와 조슈)가 화해하자고 모인 자리에서 일개 번의 사정 따위는 참고 견뎌야 하지 않겠소! 나라를 위한 거사 앞에서 자기 번의 체면만을 운운하며 대국을 그르치는 것이 대체 말이 된단 말이요?” 웅번(세력이 강한 번)의 실력가들 앞에서 일개 낭인이 이렇게 분노했다는 것은 당시 분위기에서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사카모토 료마라는 ‘이상주의자’의 분노가 메이지 유신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소프트뱅크의 창업자 손정의 사장은 시바 료타로의 장편소설 『료마가 간다』 전권을 지금까지 다섯 번 통독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큰 기로에 서서 ‘지금 방향을 잘못 잡았다가는 크게 실패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손정의 사장의 말에 의하면 사업가로서 료마는 선견지명, 장대한 기획력 그리고 교섭 능력을 구비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교섭 능력은 담력과 정의감이 뒷받침된 것입니다. 삿초동맹 일화는 전형적인 ‘옳은 분노’의 모습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료마의 ‘정의로운 분노’가 힘을 발휘한 일화는 또 있습니다. 1867년, 가이엔타이(해운무역회사)의 이로하마루 호가 나가사키에서 항해하던 중 기슈 번(현재 와카야마 현과 미에 현 남부)의 배와 충돌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료마가 타고 있던 배는 싣고 있던 적하물을 모두 다 잃고 말았습니다. 상대는 도쿠가와 가문이 이끄는 기슈 번의 배. 당시 상식대로라면 료마의 신분으로는 그들 앞에서 감히 고개조차 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료마는 달랐습니다. <만국공법>(당시 국제법을 해설한 책)을 토대로 지론을 펼쳐 기슈 번으로부터 8만 3,500량의 배상금을 받아냈습니다.

손정의 사장은 이런 료마의 ‘옳은 분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그동안 많은 교섭을 해왔지만 가장 설득하기 힘든 상대는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까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상대방에게도 강력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적당히 입에 발린 말로 상대를 넘어오게 하려는 태도는 결국 신뢰를 잃는 결과를 낳습니다. 또한 계속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지요.” 어떤 상황에서든 ‘적당히’가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임하는 태도는 손정의 사장과 사카모토 료마가 꼭 닮아 있습니다.

분노로부터 나온 에너지, 어떻게 활용할까?



이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긴 분노는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어 줍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이대로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다.’, ‘회사 분위기를 활기차게 바꾸고 싶다.’, ‘사회에 공헌할 방법은 없을까.’하는 등의 이상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레 현실에 대한 분노가 생깁니다. 이렇게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표출한 분노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바른 신념 위에 이상적인 사회상과 개인상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들이 현실과 부딪힐 때 분노가 생깁니다. 이 분노에서 오는 에너지를 동력 삼아 이상과 현실의 간격을 메워갈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발산하는 법을 익힌다면 Great(일류)라는 이상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부당한 현실에 화를 내는 사람은 성공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반면, 분노에서 오는 에너지를 폭력처럼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시키면 실패를 부르게 됩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내 말대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족이나 부하직원에게 분노를 폭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는 등의 행동은 인간으로서 최악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옳지 않은 분노’를 참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분풀이를 하는 사람들은 화를 내야 할 상대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풀이를 해야 할 상대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이는 ‘바른 사고방식’의 부재에서 옵니다. 바른 사고방식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평소 실천하면서 몸에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화를 내는가 - ‘옳지 않은 분노’ 컨트롤하는 법



분노와 증오의 차이



필자는 철학자 미키 기요시가 쓴 『인생론 노트』를 좋아합니다. 대학생 때 처음 읽은 이 책은 지금도 제 호기심을 자극해 틈틈이 꺼내 읽어보고 있습니다. 특히 ‘노여움에 대하여’라는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그 내용이 제 생각과 많이 닮아있었습니다. ‘신의 노여움은 언제 나타나는가? 정의가 유린당했을 때다.’라는 구절에서 ‘정의’라는 말은 ‘바른 이상’, ‘바른 사고방식’으로 바꾸면 필자의 ‘옳은 분노’에 대한 생각과 겹칩니다. 또 이 책에서는 ‘진정한 의인을 생각한다. 의인이란 무엇인가? 화를 낼 줄 아는 자다’라고 말합니다. 미키 기요시 선생도 정의를 관철시키는 사람, 즉 ‘바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전에서 ‘의인’이란 말을 찾아보면 ‘정의를 굳게 지키는 사람, 내 몸의 이해를 따지지 않고 남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분노와 증오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부분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분노와 증오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이 책에서는 분노란 돌발적이고 폭발적이지만 증오는 계속적이고 습관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습니다. 물론 분노와 증오심을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그 구별이 애매해져 곧잘 혼동되고 있습니다. 순간적인 분노를 증오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또는 분노(‘옳지 않은 분노’)가 악화돼 증오로 바뀌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상습적인 증오는 범죄 등 심각한 문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단순한 스토커 수준의 범죄에서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극단적인 범죄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옳은 분노와 옳지 않은 분노



‘옳은 분노’와 ‘옳지 않은 분노’를 구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옳지 않은 분노’는 그것을 ‘옳지 않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가장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옳지 않은 분노’는 경우에 따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두 종류의 분노를 잘 구별해 행동해야 합니다. 어쩐 정의나 이상에 근거를 두고 돌발적으로 화를 내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옳은 분노는 자신의 신념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폭력은 금기 사항입니다.

『인생론 노트』에 ‘신마저도 자기가 독립된 인격체라는 것을 분노로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독립된 인격체임을 나타낸다.’라는 말은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를 표현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노’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조직의 대표는 비전이나 이념을 구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표라는 막중한 소임을 맡은 사람이라면 평소 말과 행동을 통해 회사와 조직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어떠한 비전과 이념을 바탕으로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리더가 조직을 위해 그 비전을 밝히는 방법의 하나로 ‘옳은 분노’를 활용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앵거(anger) 매니지먼트 기술’이 유럽과 미국 등에서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기술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언제 초조하고 짜증이 나는지 메모하거나 분노 일기를 쓰면서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객관화하는 방법입니다.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일시적으로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고, 다음에 그것을 다시 읽으면서 ‘이렇게 별 것 아닌 일에 화가 나다니….’하고 반성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심리요법 중 하나로, 인지요법이라고 불리는데, 자신의 행동이나 사고 패턴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자기 모습을 객관화해보면 분노의 원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동시에 이 감정이 옳은 분노인지, 아니면 옳지 않은 분노인지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사회정의나 조직을 위한 분노였는지, 다른 사람을 위한 분노였는지, 아니면 나를 위한 분노였는지 생각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카운트 백(count back)’이라고 하는 것인데, 분노를 억누르지 못할 때 의식을 분노의 대상으로부터 멀리 떼어놓기 위해 숫자를 세는 것입니다. 뺄셈을 하는 등의 방법도 있지만 가장 심플한 것은 마음속으로 천천히 ‘1,2,3…’이렇게 숫자를 세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상당한 효과가 있습니다. 욱하고 분노가 가슴에서 치고 올라올 때, 숫자를 ‘10’까지 세어 봅니다. 그러면 상당부분 감정이 가라앉습니다. 보통 ‘6’까지만 세면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툭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라면 한 번 해볼 만한 방법입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방법



여기서 잠깐 필자의 평소 스트레스 관리법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은 고민하지 않는다. 두 번째, 변명하지 않는다. 세 번째, 가끔은 스스로를 느긋하게 풀어준다. 첫 번째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말은 ‘내일 비 오면 어쩌지?’하는 등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로 고민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날씨는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챙기면 되지요. 걱정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회사원 중에는 ‘멀리 전근이라도 가게 되면 어떡하나?’, ‘올해 안에 승진 못 하면 어떡하나?’ 등의 고민으로 전전긍긍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할 시간에 눈앞에 있는 업무부터 열심히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승진을 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부서로 갈 수도 있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후에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상사 잘못이라고 ‘환경’ 탓을 한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길이 열립니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 감정과 행동이 일어나면서 화가 납니다. 퇴근길 혼잡한 지하철에서 다른 승객과 어깨를 부딪쳤다고 해봅시다. 이때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는 것은 사고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이거 뭐야, 대체!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많아서 짜증나는데’라고 생각하는 것과 ‘이런 날도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미 부딪힌 이상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화를 내는 상황까지 가지 않습니다. ‘이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면서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히 조심하라고 신이 나에게 알려 주는 걸 거야.’라고 생각하면 그다음 행동은 전과 달라질 것입니다. 우발적인 사고도, 내 안에 생기는 감정도, 이어지는 행동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분노를 피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면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