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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 지음 | 비즈니스북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 276쪽 / 13,800원





제1장. 누구나 처음에는 미니멀리스트였다



소유할수록 잃어버리는 것들



세상에 태어나면서 손에 뭔가를 쥐고 나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태어났을 때 우리는 누구나 미니멀리스트였다. 그러나 자라면서 필요한 것 이상의 물건을 꽉 움켜쥘 때마다 우리는 그만큼의 자유를 빼앗긴다. 나 자신의 가치는 갖고 있는 물건의 합계가 아니다. 물건으로 행복해지는 건 아주 잠깐 동안일 뿐이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물건은 에너지와 시간은 물론, 결국에는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 이런 사실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이 바로 미니멀리스트다.

소유한 물건을 줄인 미니멀리스트가 날마다 느끼는 상쾌함은, 설령 지금 물건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이라도 상상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물건을 줄였을 때 느끼는 홀가분한 기분은 누구나 경험한 적이 있을 테니 말이다. 여행을 예로 들어보자. 여행을 떠나기 전, 가지고 갈 물건의 목록을 몇 차례나 확인했는데도 뭔가 빠뜨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출발할 시각이다. 왠지 찜찜하지만 서둘러 짐 싸기를 끝내고 현관문을 나선다. 그렇게 집을 뒤로하고 나가는 순간의 해방감이란! 이 트렁크 하나만 있으면 당분간 살아갈 수 있다. 혹시 집에 뭔가를 두고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때그때 현지에서 구하면 된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방에 누워 뒹굴 때의 기분은 말할 것도 없다. 대개 여행지의 숙소에는 놓여 있는 물건이 별로 없고 깨끗하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홀가분하게 빈손으로 산책이라도 나가면 세상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해야 할 일도 없고 오롯이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다. 이렇게 누구나 한 번쯤은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상황도 우리는 이미 겪어봤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공항 안이다. 처음 출발할 때 트렁크에 차곡차곡 정리돼 있던 짐은 마구 흐트러져 있다. 추억을 남기려고 각지에서 산 기념품은 트렁크에 다 들어가지 않아 쇼핑백에 대충 집어넣고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다. 여행지에서 생긴 입장권이며 영수증은 나중에 정리하려고 일단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수하물 검사대 앞, 가장 중요한 비행기 티켓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디에 두었더라? 여긴가? 저긴가? 당황스러운 나머지 얼굴은 빨개지고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뒤에 줄 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물건을 많이 갖고 있다 보니 이렇게 곤혹스러워지는 경우가 생긴다. 다른 물건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물건이나 일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갖고 싶은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 갖게 된 물건을 보관하고 유지하기 위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다 써버리곤 한다. 그리하여 정작 도구여야 할 물건은 어느새 주인이 되어버린다. 영화 <파이트 클럽>의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 역)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결국 네가 가진 물건에 소유당하고 말거야.”

물건에 대한 집착이 낳은 불행의 악순환



미니멀리스트가 된 계기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주변 사람이 물건으로 인해 생활이 망가지는 것을 지켜본 사람, 돈이 많아 물건을 마구 사들였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사람, 이사가 잦아 차츰 짐을 줄인 사람, 우울증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사람, 원래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 지진이나 사고로 가치관이 바뀐 사람 등 계기는 다양하다.

나는 전형적인 ‘지저분한 방’ 출신이다. 더러운 방에서 반동으로 생겨난 미니멀리스트라고나 할까. 예전의 나는 물건을 절대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물건을 너무 좋아하다 못해 집착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나와 관련된 어떤 물건에도 남다른 애정을 느꼈다. 17년 전, 본가가 있는 가가와 현에서 도쿄로 올라와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 내 방에는 필요한 물건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선뜻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물건은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무엇이든지 추억이 될 만한 것은 모두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모든 순간을 보존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 읽은 책도 마찬가지다. 내가 읽은 책은 나 자신의 일부로 느껴져 버리고 싶지 않았다. 흥미롭게 본 영화나 좋은 음악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어서 반드시 소장하곤 했다. 그 밖에도 언젠가 시간이 되면 꼭 해보고 싶은 취미가 참 많았다. 물건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버리지도 못했다. ‘아까워! 비싸게 주고 샀는데.’ ‘아직 사용할 수 있어. 나중에 쓸 일이 생길지도 몰라.’ ‘사놓고 쓰지 않은 나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온갖 이유를 대며 버리지 못했고 물건은 싸여만 갔다. 지금과는 정반대인 맥시멀리스트(maximalist), 즉 최대주의자였다. 무엇이든 일단 보관했다. 물건을 살 때는 가급적 고품질에 고성능이어야 했고, 크고 묵직한 제품을 선호했다. 그렇게 늘어난 물건에 휘둘려 살았다. 사들인 물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늘 자책하기만 했다. 물건이 아무리 많아도 내게 없는 물건만 눈에 들어왔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시샘했다. 너무나 많아져버린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변명만 늘어놓다가 자기혐오에 빠지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그러던 내가 물건을 버리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건이 지나치게 많으면 확실히 문제가 생기는 부분이 있다. 만일 예전의 나처럼 불만투성이에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물건을 줄여보라. 반드시 뭔가가 바뀔 것이다. 유전이나 환경 탓이 아니다. 성격이나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도 아니다. 지나치게 많이 소유한 물건이 당신을 무너뜨리고 있다.

소중한 것을 위해 줄이는 사람, 미니멀리스트



미니멀리스트를 간단히 정의하면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물건을 줄여야 미니멀리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데 따로 정해진 규칙은 없다. 구체적으로 기준을 정해도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예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굳이 정의를 내린다면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스트란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무엇이 소중한지를 알고 그 외의 물건을 과감히 줄이는 사람’이다.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소중한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미니멀리즘에 정답은 없다.

미니멀리즘은 목적이 아니다: 미니멀리즘, 즉 물건을 줄이는 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미니멀리즘은 소중한 것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이며 중요한 이야기를 엮어내기 위한 서장(序章)이다. 물건을 줄이고 나서 내가 발견한 것들을 독자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물건 이외의 미니멀리즘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현대사회는 물건이 넘쳐나는 데다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물건에서 시작된 미니멀리즘은 다른 영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소중한 것을 소중히 하기 위해 소중하지 않은 물건을 줄인다. 소중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그 외의 것을 줄인다. 이런 미니멀리즘의 정의는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

최고의 미니멀리스트는 누구인가?: 미니멀리스트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미니멀리스트라는 삶의 방식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이 누군지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누가 가장 물건을 적게 갖고 있는지, 누가 최고의 미니멀리스트인지 묻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 누구나 태어났을 때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꼽아보자면 스티브 잡스를 들 수 있다. 그는 완벽한 미니멀리스트였다. 또한 평생 검소하게 살다 간 마더 테레사도 미니멀리스트였다. 테레사 수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것은 오래 입어서 낡은 사리와 카디건, 낡은 손가방과 닳아빠진 샌들뿐이었다. 무소유를 설파한 마하트마 간디의 방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도 몸에 천 한 장만 걸친 채 물통만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하나뿐인 물통마저도 어느 날 어린아이가 물을 손으로 떠 마시는 모습을 보고는 깨뜨려버렸다고 한다. 아마도 물건이 발명된 이래 가장 소유물이 적었던 미니멀리스트는 디오게네스가 아닐까? 챔피언은 이미 결정되었다. 그러니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하며 ‘누가 누가 물건이 적은지 대결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일본 내 미니멀리즘의 확산 배경으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영역에서 사람들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물건에 대한 사고방식에도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유루리 마이의 만화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에 나온 텅 빈 집의 사진을 보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저자는 잔뜩 쌓여 있던 물건들이 지진으로 흉기가 되는 상황을 그렸다. 소중하게 여겼던 물건 때문에 다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진과 쓰나미는 소중한 물건을 한순간에 못쓰게 만들어버릴 뿐 아니라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미니멀리스트가 늘어난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참신한 발상이라거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절실한 이유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2장. 물건은 왜 점점 늘어나기만 하는가?



우리는 왜 새로운 물건을 원하는가?



일반적으로 인간의 신경 네트워크는 자극의 차이를 검출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즉, 어떤 자극에서 다른 자극으로 변화할 때 발생하는 차이 자체를 자극으로 받아들인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보자.해수욕 철이 한참 지난 가을 바다를 보며 서 있는데 갑자기 몸이 근질근질해지면서 자신의 청춘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끓어올라,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하자. 처음에는 누구나 “앗, 차가워!”하고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것이다. 신경 네트워크가 지표 온도와 물 온도의 차이를 검출하고 ‘차갑다’는 자극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극이 지속되면서 차이를 인식하는 감각이 서서히 둔해진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앗, 차가워! 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따뜻해질 거야.”

이렇듯 신경 네트워크는 자극의 양이 아니라 자극이 바뀌는 차이에 반응하는 구조다. 따라서 우리의 신경 네트워크가 자극을 자극으로, 검출하려면 차이가 발생해야 한다. 갖고 싶었던 물건을 손에 넣음으로써 얻은 만족감이 계속 유지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제 ‘항상 있는’ 물건이 되어 더 이상 차이가 없다고 신경 네트워크가 판단하기 때문이다. 변함없이 늘 그곳에 존재하는 물건은 자극의 차이를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익숙해지고 당연해져서 결국에는 그 물건에 싫증이 난다.

너무 많은 물건들이 당신을 망친다



애초에 물건은 도구였다. 석기나 토기처럼 본래의 기능을 위해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필요한 물건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인간 사회가 전반적으로 풍족해지면서 어느 새 물건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즉,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내면의 깊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만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가치에는 딱 봐서 알 수 있는 외모의 가치도 있지만 내면의 가치도 있다. 하지만 내면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가 어렵고 알리는 데 시간도 걸린다.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는 물건을 통해 내면의 가치를 전달하는 편이 쉽고 빠르다.

하지만 물건으로 가치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결국 물건에 얽매이게 된다. 자신의 가치를 알리는 물건이 어느새 자기 자신이 되어버리고, 물건은 계속 늘어난다. 물건을 늘리면 자신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늘어난 물건은 거꾸로 자신을 공격해온다. 시간도 에너지도 물건에 빼앗기고, 예전에는 도구였던 물건이 자신의 주인이 된다. 이쯤 되면 이미 물건은 자신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을 망치는 존재다. 자신을 망칠 정도로 늘어난 물건. 에너지와 시간을 빨아들이는 괴물이 된 물건. 도구가 아니라 주인 행세를 하는 물건. 악착같이 일해서 평생을 바치게 하는 물건. 물건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다투는 이상한 현상마저 일어난다. 사실 물건 자체는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물건은 당연히 내가 아니며 내 주인도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단지 도구일 뿐이다.



제3장. 인생이 가벼워지는 비움의 기술 55



▲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라: 물건을 버릴 수 없는 성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스스로 버릴 수 없다고 믿을 뿐이다. 심리학에서 ‘학습성 무력감’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는 자신이 개선할 수 있고 그럴 능력이 있는데도 몇 번이나 실패했기 때문에 상황을 개선하려는 마음조차 없어진 것이다. 왜 버리지 못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면 머지않아 버릴 수 있게 된다. 버릴 수 있는지 없는지는 성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버리지 못하는 유형도, 버릴 수 없는 성격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당신이 잘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버리고 비우는 기술이 미숙할 뿐이다. 버리는 습관 대신 버리지 않는 습관을 익혔을 뿐이다. 나도 한때는 지저분한 방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인 방에서 살고 있다. 성격이 달라진 게 아니다. 버리는 습관과 비움의 기술을 익힌 것뿐이다.

▲ 버릴 수 없는 게 아니라 버리기 싫을 뿐: 철학자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사실은 하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우리는 물건을 줄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버릴 수 없는 이유를 분명히 아는 것은 중요하다. 추억이 깃들어 있다거나 소중한 사람에게 받은 물건이라는 아름다운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이유의 이면에는, 실은 버리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싫거나 귀찮아서인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며 편안함을 좇으려는 경향이 있다. 물건을 버리는 것은 행동이고, 물건을 그대로 두는 것은 행동이 아닌 현상 유지이기 때문에 확실히 편한 선택이다. 다만 물건을 그대로 두는 편안함만을 추구하면 언젠가 감당할 수 없는 물건들에 둘러싸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줄이고 싶다면 줄이고 싶은 그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라.

▲ 일 년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버려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버린다. 이는 물건을 줄이기 위한 철칙이다. 그리고 사용할 예정이 없는 물건도 버려라. 올해 겨울에도 반드시 사용할 담요를 버릴 필요는 없다. 매년 입고 있는 다운재킷을 버릴 필요도 없다. 내년 여름에 입을 수영복 또한 버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1년 사계절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은 앞으로도 필요 없는 물건이다. 1년 동안 사용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었던 물건은 내년에도 그 물건 없이 아무런 문제없이 지낼 수 있다. 1년에 한 번도 쓸 일이 없는 물건을 곁에 둘 필요는 없다. 다만 재해에 대비한 비상용 장비만은 예외다. 1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3년에 한 번이나 사용할까 말까 하는 물건이라면 필요할 때마다 빌려서 쓰면 된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 과거에 집착하지 마라: 물건을 버리는 데 중요한 핵심은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언젠가’라는 미래를 위해 물건을 보관해놓아도 거의 쓸모없는 것처럼, ‘예전에’라는 과거에 집착하면 물건은 끝도 없이 늘어날 뿐이다. 학생 시절의 교과서, 어렸을 때 읽고 감명 받았던 책, 오래 전에 자신을 근사하게 만들어준 옷, 한때 매료되었던 취미용품, 옛 애인에게 받은 추억의 선물 등. 과거에 집착하면 새로운 일이 생기지 않는다. 과거에 필요했던 물건과 인연을 끊지 않으면 가장 중요한 지금은 늘 무시되고 만다. 과거의 물건과 마주하는 일은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과거의 물건을 버리는 일은 자신에 대한 편견을 고쳐나가는 데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지금의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든다면 그것으로도 좋다. 하지만 뭔가 달라지고 싶다면 지금 꼭 필요한 물건만 곁에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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