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익숙한 삶과 결별하라
우경임, 이경주 지음 | 아날로그
성장에 익숙한 삶과 결별하라
우경임, 이경주 지음
아날로그 / 2015년 12월 / 216쪽 / 12,500원
1장 저성장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 저성장 시대를 인정하다
성장의 달콤함을 기억하는 ‘과장님’들의 한숨
2014년 12월 27일, 96학번 동기 8명이 모였다. 마흔을 한두 해 앞둔 이들은 대기업, 은행, 증권사, 공기업 등 소위 번듯한 직장의 ‘과장님’들이었다. 모두가 치열한 취업전쟁에서 어렵사리 직장에 입사했고, 구조 조정 같은 부침을 견뎌 낸 이들이다. 그런데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훈아, 드디어 은행 기획실에 발령 났다면서? 정말 부럽다.”
“그래, 고맙다. 그런데 나름 고충도 많다. 집에서는 원성이 너무 높아. 지난 1년 동안 제시간에 퇴근한 날이 열 손가락 안에 꼽히거든. 그렇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나보다는 연말마다 성과급 두둑이 받는 대기업 과장님 준이가 최고지.”준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말 그대로 성과급이야. 성과급 못 받을까 봐 성적표 받는 것보다 더 긴장하며 산다. 게다가 요즘 말하는 하우스 푸어가 바로 나야. 빚내서 아파트 산 거 정말 후회된다. 지금 이자 갚기도 숨찬다.”
“그럼 OO공사로 간 민이가 제일 걱정이 없는 건가?”
“당장 내년에 지방으로 회사가 이전한대. 주말부부를 해야 할지, 아이 때문에 한 명이 직장을 관둬야 할지 고민이야.”다들 행정 고시에 ‘턱’ 붙어 중앙 부처 공무원이 된 정이에게 시선이 쏠렸다.
“내가 도서관 붙박이로 너희 자리 맡아주고 했던 거 기억하지? 그런데 아마 내 월급이 제일 적을걸? 연금 하나 바라보고 살았는데 정년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공무원 연금도 예전 같지 않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과장님’들은 나름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중산층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부모님들처럼 내 집 마련하고 자식 교육시켜서 시집 장가를 보낼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과연 우리가 부모님만큼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갑게 만났는데 거푸 들이켜는 소주가 썼다.“아니, 공부하래서 공부하고, 취직하래서 취직하고, 대출 받아 집 사래서 집 사고… 정답만 찍으며 살아온 줄 알았는데, 왜 삶은 점점 불안해질까?”“그러게, 엄마 말을 너무 잘 들었나 봐.”
장밋빛 성장이 거품처럼 사라지다: 왜 우리 부모들의 성공 신화가 아들, 딸의 성공 신화로 이어지지 못할까? 부모가 지나치게 성공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통계로 보면 한국의 경제성장은 기적이라 할 만하다. 6ㆍ25전쟁이 끝난 195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67달러였다. 60여 년이 지난 2014년에는 2만 8180달러로 420배가 뛰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맨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성장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열심히만 한다면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지리란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죽도록 공부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직장이 보장된다’,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의 보상이 주어진다’라는 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깊게 새겨진 진리였다. 경제성장률을 살펴보면 1970년대 평균 성장률은 9.05%, 1980년대 9.65%, 1990년대 6.63%였다. 1973년에는 14.8%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1900년대 후반에 우리 경제가 뒷걸음친 것은 딱 두 차례였다. 바로 오일쇼크 뒤인 1980년(-1.9%)과 IMF 금융 위기 뒤인 1998년(-5.75%)이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이미 1990년대에 연평균 경제성장률 2%, 2000년대에는 1%에 머물렀다. 미국과 유로존, 일본 등에서는 마이너스 성장도 나타났다.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한국도 2011년부터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2.85%로 곤두박질쳤다. 영원할 것 같던 7% 이상의 장밋빛 성장이 거품처럼 사라졌다. 100m 달리기를 하는 속도로 질주하던 우리 경제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려니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리는 법은 알았지만 어떻게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는 몰라 어지러웠던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꿔야만 할 것 같은데 답을 찾기가 힘들다. 주린 배를 움켜쥐었던 보릿고개 대신 너무 많은 뱃살이 잡히는 비만을 걱정하고, 생필품 하나를 살 때도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망설이던 시대에서 마음만 먹으면 할부로 고가의 명품을 구입할 수 있는 풍요로운 시대가 되었는데 행복하지 않다.
성장에 익숙한 삶의 방식과 사회구조의 엇박자: 60년 전에 비하면 우리는 분명 잘 먹고산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 20대는 일자리가 불안하고 30~40대는 자녀 양육과 교육비 부담으로 허리가 휜다. 50~60대는 당장 노후 걱정을 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 부모 세대처럼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국민 모두가 쾌속 질주하던 시대에는 그 많은 성공의 기회 중 단 하나도 잡지 못한 개인에게 실패의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성공하려면 틈새를 노려야 한다. 틈새를 찾아 성공한 사람은 신격화된다. 개인은 점점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부모 세대가 20대일 때는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지 않았다. 특히 대학을 졸업한 20대라면 취업은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사람이 부족해 아우성이었다. 결혼 후에는 자녀 교육비가 부담되기는 했지만 월급이 오르고 성과금도 두둑했다. 게다가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활황이라 여윳돈 마련이 어렵지 않았다. 50~60대는 자식만 잘 키우면 기댈 곳도 있었다. 몸은 고달플지라도 삶에 활기가 돌았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그런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청년 실업난은 유례없이 심각하다. 자식들이 독립하지 않으니 부모는 쓸 돈이 줄어든다. 그렇게 오래 품고 키웠어도 자신만큼 넉넉히 살지 못하니 노후는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2분의 1, 3분의 1로 급감한 경제성장률 앞에서 무력해질 뿐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한국은 연평균 경제성장률 4% 이하의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는데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고성장 시대의 모습 그대로”라고 정확히 지적한 바 있다.
60년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오면서 우리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 모두 고성장 시대에 맞춰졌다. 갑작스레 찾아온 저성장 시대를 받아들이기가 힘겨운 것은 당연하다. 익숙한 삶의 방식과 사회구조가 엇박자를 내면서 개인은 불안해졌다. 그런데도 성장의 달콤함에 젖은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앞을 향해 전력 질주하라’고 가르친다. 승진을 포기할 수도, 사교육을 줄일 수도, 돈을 버는 대신 시간을 벌 수도 없다. 낙오자가 되기 싫어서다. ‘성공’이라는 하나의 가치관을 위해 모두가 달려가는 사회에서 행복해지기란 쉽지 않다.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이런 무력감은 줄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다시 고성장 시대가 찾아오기는 힘들다. 일단 인구가 줄어든다. 일할 사람이 없고 집을 살 사람이 없고 돈을 쓰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저성장을 새로운 경제 질서로 수용하고 사회 시스템과 개인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그러나 무작정 저성장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보다 앞서 발전한 나라들을 살펴보면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거치는 자연스러운 단계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성장이 멈추듯 경제도 마찬가지다. 저성장을 어떻게 체화해나갈 것인지 우리 스스로 되물어봐야 할 때다.
2장 저성장 시대 생존법 심플 라이프 : 저성장 시대를 읽다
자발적 가난을 누리다
경제 발전은 ‘어느 정도까지만’ 건강하다.
삶의 복잡함도 오직 ‘어느 정도까지만’ 허용 가능하다.
효율성과 생산성에 대한 추구도 오직 ‘어느 정도까지만’ 좋다.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사용도 오직 ‘어느 정도까지만’ 현명하다.
전문성도 인간의 고결함과 오직 ‘어느 정도까지만’ 양립 가능하다.
상식을 ‘과학적 방법’으로 대신하는 것도 오직 ‘어느 정도까지만’ 참을 만하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경제학 교수였던 에른스트 슈마허의 저서 『자발적 가난』에 나오는 글이다. 세계적 석학 슈마허는 물신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만’ 참을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약 50년 후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2011년 9월 17일 뉴욕 월가 부근의 주코티 공원에 200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이들은 ‘월가 점거 시위’를 시작했는데 이유는 부의 불평등이었다. 포스터에는 월가를 상징하는 황소 동상 위에 올라선 무용수가 “우리의 단 한 가지 요구는 무엇인가?(What is our one demand?)”라고 묻고 있다. 사실 이들의 시위는 공원에서 마치 장난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노동단체, 학생, 유명인, 정치인 등의 지지가 이어졌고 “워싱턴DC를 점령하라”, “시카고를 점령하라” 등의 구호와 함께 주요 도시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이들은 부의 불평등을 만든 주범으로 금융권과 정치권을 지목했고 “99%의 사람들은 1%가 저지르는 탐욕을 봐주지 않을 것”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헤지 펀드나 뱅크 오브 아메리카, JP 모건, 머독 그룹 등 주요 금융회사와 기업의 CEO들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도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아 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가 시위대를 방문해 연설했으며 연예인, 영화감독, 교수 등도 동조했다. 2011년 10월 6일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시위대에 공감한다는 발언을 했다.
반월가 시위는 이후 세계로 확산되었다. 같은 해 10월 15일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벨기에, 일본, 대만, 홍콩, 호주, 뉴질랜드, 한국 등 전 세계 82개국 1000여 개 도시에서 시위가 열렸다. 3개월간 반월가 시위는 부를 독점한 부자와 금융사의 탐욕, 정부와 의회의 방조 등을 비판하며 뜨겁게 타올랐다. 이후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이들이 주장한 요구가 해결됐기 때문은 아니었다. 세상을 바꿀 만한 조직과 자본이 없었던 것이다.
자발적 가난은 행복의 원천: 반월가 시위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변화를 일으킨 것이 분명해 보인다. 미국인들은 거대 은행의 통장 계좌를 해지하고 동네 협동조합으로 옮겼다. 거대 은행들은 소비자에게 불리한 규정을 고치고 정부는 헤지 펀드에 대한 감독을 강화했다. 차갑고 냉정한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보였다. 함께 잘사는 경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그 방법은 부자의 부를 나누거나 가난한 자의 복지를 늘리는 것이었다. 개인도 변하기 시작했다. 부익부 빈익빈의 해법으로 자발적 가난이 다시 등장했다. 사실 ‘자발적 가난’이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대중화되거나 세상을 지배하는 가치는 아니었지만 선각자들에 의해 가난은 늘 칭송받았다. 『자발적 가난』에는 시공간을 떠나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고자 했던 사례들이 등장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자발적 가난을 통해 우리는 더 할 나위 없이 공정하고 지혜로운 삶의 관조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고 톨스토이는 “우리는 ‘가난’과 ‘재앙’을 동의어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가난은 행복의 원천”이라고 했다. 간디는 “근본적인 문명화라는 삶의 진정한 알맹이는 필요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신중하고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데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보다 가난을 칭송해왔다. 자발적 가난은 물질에 대한 멸시, 부에 대한 폄훼가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부가 없다면 자발적 가난을 실현할 수조차 없다. 자발적 가난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그것을 놓아줄 준비가 된 후에 거만하지 않게 부와 번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존이 힘든 사회적 약자에게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복지를 통해 어느 정도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 자발적 가난으로 가장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 계층은 ‘슈퍼리치’다. 기술과 과학, 경제의 발달로 과거의 중산층에 비해 풍요로움을 누리는 수준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에 중산층의 참여도 중요하다.
평범한 이들이 실천할 수 있는 자발적 가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나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끊임없이 회자되는 것은 자발적 가난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나타낸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극단적인 실험을 할 수는 없고 할 필요도 없다. 사실 자연을 택한 현자들도 우리가 자신과 같은 극단적 실험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상황에 맞게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면 되고, 스스로 용인할 만큼, 즐거울 만큼의 실천이면 족하다. 보통 사람이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의 월든 호수에서 사회와 단절한 채 2년 2개월을 보낸 소로와 같은 생활을 한다면 단조로운 삶의 즐거움을 누리기는커녕 불편함을 참느라 시간만 낭비할지도 모른다.
현대식 자발적 가난은 어떤 모습일까? 독일의 몰락한 귀족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그의 저서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에서 가난을 즐기라고 권한다. 그는 경제 불황 시대에 재산 없이도 품위 있게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삶의 군더더기, 불필요한 것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인식하고 집중적으로 즐길 때 기쁨이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 영주의 자손으로 백작 칭호를 가진 현직 기자이다.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가난해지면서 가난을 즐기는 법을 연구하게 된다. 비싼 식당이 아닌 집에 친구를 초대해 저녁을 먹고, 피트니스 센터 대신 동네를 뛰면서 운동한다. 돈을 쓰거나 쓰지 않는 차이는 있지만 식사나 운동을 통한 궁극적인 즐거움에는 동등한 가치가 있다. 돈이 없어진 순간 사람의 진짜 가치가 드러났다. 그는 “가진 것보다 덜 원하면 부자이고, 가진 것보다 더 원하면 가난하다”라고 단언했다.
영국 작가 닐 부어맨도 현대적 의미의 자발적 가난의 실천가다. 그는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라는 책을 썼는데 실제 자신의 명품 브랜드 제품을 모두 화형에 처해 주목받았다. 자신을 ‘세심하게 선택한 브랜드 덩어리’였다고 평가한 그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의 브랜드를 통해 남들이 자신의 직업, 교우 관계, 출신 배경 등을 가늠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후 브랜드와 결별했다. 브랜드는 부가가치를 의미한다. 신발을 만드는 비용과 판매 가격 간의 차이인 이윤이 커지는 것을 뜻한다. 브랜드는 물건의 본질을 소비하는 데 장애물인 셈이다.
한국도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취재를 위해 만난 최 모 씨는 충남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교육 공무원 생활을 했던 그는 은퇴한 뒤 봄과 여름에는 콩을 심고 가을이면 배추, 겨울에는 마늘과 양파 농사를 지었다. 월 소득은 100만 원 선으로 직장 생활할 때보다 훨씬 적지만 자연을 즐기며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그의 별명은 배가 불룩하다고 해서 ‘금복주’였다. 이제는 여름이면 에어컨 바람 대신 산들바람을 맞고, 기름진 저녁 회식 대신 야채와 과일을 먹는다. 배는 쑥 들어갔고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는 ‘돈 벌려는 욕심을 버리니 삶이 평온해졌다’고 말했다. 평범한 사람도 소극적인 방식으로 얼마든지 자발적 가난에 동참할 수 있다. 자동차 10부제에 동참하고 1년에 한 번 10분 불 끄기에 동참하는 작은 실천이라도 좋다. 10분 불 끄기에 동참해 삶이 10분 더 단조로워지고 세상으로부터 10분간의 자유를 얻을 수도 있다.
자발적 가난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부의 격차가 커지고 물신주의가 팽배할 때 자본주의를 수정하고 보정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파괴가 아니라 교정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발적 가난은 교육을 중요시한다. 어릴 때의 교육에 따라 가난의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반대로 끝까지 외면할 수도 있다. 미국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아이들의 놀이방을 온갖 인형과 장난감으로 채움으로써 아이들의 진짜 장난감이 되어야 할 해와 달, 동물, 물과 돌 같은 풍부한 자연으로부터 아이들의 시선을 차단하고 있다.” 세계에 부는 자연주의 교육이나 대안 교육 등의 열풍은 자발적 가난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다. 가정에서 아이에게 모범을 보이거나 교훈을 전해주는 방법도 있다. 아프리카에 보내는 작은 성금에서, 백화점 대신 재래시장을 찾는 모습에서, 허황된 부자의 꿈보다 현명한 가난함을 택하는 순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