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 속엔 당신이 원하는 삶이 없다
고카미 쇼지 지음 | 북스넛
무리 속엔 당신이 원하는 삶이 없다
고카미 쇼지 지음
북스넛 / 2015년 11월 / 176쪽 / 11,200원
무리에서 멀어지면 못 견디는 사람
혼자가 되다: 당신은 원하지 않지만 혼자가 되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대화에 끼지 못하거나, 화제가 자신의 사고 범위를 넘어 앞서가 있거나,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거나, 술자리에 초대받지 못하거나, 식사하러 갈 분위기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아무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대화를 나눈다. 과도하게 눈치를 보며 혼자가 되지 않으려 한다. 그룹이나 동료, 친구, 즉 무리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이다. 하지만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써도 결과적으로 혼자가 되었을 때 우리는 고독하다고 느낀다.
‘친구도 없는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까?’
‘내일도 혼자 점심을 먹게 될까?’
‘나의 어떤 점이 잘못된 걸까?’
‘이건 따돌림일까?’
‘어떻게 하면 점심을 같이 먹어줄까?’
혼자 밥을 먹으면서 당신은 많은 생각을 한다. 고민한다. 그리고 불안해한다. 온갖 생각들이 오가며 무척 괴로운 상태로 변화한다.
‘어떻게 하면 이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혼자가 아니게 될까?’
당신은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의심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혼자면 왜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다.
‘왜 혼자 점심을 먹으면 비참한 걸까?’
‘왜 혼자 퇴근하면 창피한 걸까?’
‘왜 혼자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걸까?’
‘왜 친구가 많아야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이 이어지면 당신은 가장 중요한 질문에 마침내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당신은 하루라도 자신이 혼자가 되지 않도록 누군가를 열심히 찾아왔다. 무리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매일 인간관계에 시달려왔다. 일단 재미도 없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고, 영혼 없이 웃고, 하기 싫은 대화를 하며 혼자가 되는 것을 피해왔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고독은 비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혼자가 되면 ‘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한다.
혼자인 것과 혼자는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것: 학교나 직장에서 친구가 없어 혼자 점심을 먹게 되면 누구든 외롭다고 느끼게 된다. 매일 혼자가 되어 아무하고도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나게 되면 정말 비참하다고 당신은 말할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묻고 싶다. ‘혼자’가 비참한 게 아니라 ‘혼자는 비참하다는 생각’ 때문에 시달리는 건 아닐까?
‘혼자라는 것’은 사실은 고민거리도 못 된다. ‘진짜 고독’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혼자 잘 있을 수 있다면 그 시간은 아주 풍요로운 시간이다. ‘혼자는 비참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혼자 있는 시간은 놀랄 만큼 풍요로운 시간이 된다. 하지만 ‘혼자는 비참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당신은 계속 고통스러울 것이다. 비참하기 때문에 창피하고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나무란다. 그리고 주위로부터 조롱당하는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혼자인 것’과 ‘혼자는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혼자는 비참하다’고 고통스러워하고 고민을 하고 마음이 분주한 상태는 사실은 ‘가짜 고독’이다.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
편견을 끊은 선물: ‘혼자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면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이 홀가분하기 때문이다. 무리지어 있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심신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다. ‘혼자는 비참하다’는 생각은 매일 세 끼를 먹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편견이다.
나는 20년 이상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금연 치료법’이라는 책으로 성공했다. 그것은 정말 단순한 내용의 책이었다. “니코틴이 떨어지면 모두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한밤중 담배가 떨어지면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그것은 니코틴의 금단 증상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다가 니코틴이 떨어졌다고 잠에서 깨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코카인이나 LSD는 금단 증상으로 자다가도 깨어난다. 다시 말해 니코틴의 금단 증상은 사실은 매우 미약한 것이다. 그럼 왜 밤중에 담배가 떨어지면 절망적인 기분이 되는 걸까? 그것은 니코틴의 금단 증상은 강한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편견이니까 편견을 버리면 그만이다.”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치료법이었다. 이 내용을 읽자 나는 쉽게 그 편견을 떨쳐버릴 수 있었고 보기 좋게 금연에 성공했다. ‘혼자는 비참하다’는 편견을 떨쳐버리면 우리는 고독의 공포로부터 해방된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만 하는 것으로도 우리는 ‘가짜 고독’의 시달림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것은 성가신 인간관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생각하고 이해하려면: ‘그럼 평생 혼자인 것인가?’ 하고 걱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 당신은 혼자가 될 것이다. 억지로 나가던 모임도 참가하지 않고, 내키지 않던 대화에도 끼지 않게 된다. 혼자가 되면 당신은 ‘진짜 고독’과 마주할 것이다. 혼자는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로 마음을 달래지 않는 그 고독 말이다. 그러면 당신은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길을 걷고 음식을 먹고 하늘과 흰 구름을 보면서 생각은 흐를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깊은 내면의 소리를 솔직하게 들을 것이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성장한다. 누군가에게 멋진 이야기를 들어도, 책에서 의미 있는 글귀를 읽어도, 혼자 그것을 받아들일 시간을 갖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어딘가에는 반드시 당신이 만나길 잘했다고 생각할 만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것을 새로운 네트워크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신이 ‘진짜 고독’으로 성장하면 그런 사람을 만날 확률은 높아진다. 애써 웃을 필요도, 시시한 이야기에 맞장구를 칠 필요도, 남의 험담에 동조할 필요도 없는 그런 상대이다. 그 역시 당신처럼 진짜 고독을 맛본 사람일 수도 있다.
자신이 성장함에 따라 지금까지 없었던 관계가 자연스레 형성되는 일은 인간관계 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당신이 어떤 음악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같은 음악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당신은 당신의 수준에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틀림없는 법칙이다. 만약 당신이 ‘가짜 고독’에 시달리고 있으면 역시 ‘가짜 고독’에 시달리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신이 ‘진짜 고독’으로 살고 있다면 만나는 사람 역시 ‘진짜 고독’으로 살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우수한 사람이 자신감을 잃는다
뼛속까지 유능한 사람: 당신이 유능한 세일즈맨이라면 당신은 정작 자신과의 대화는 서툴지도 모른다. 유능한 세일즈맨이란 ‘남의 요구에 민감한 사람’이다. 끊임없이 ‘이 사람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하는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항상 상대방의 요구만을 생각하다 보니 정작 자신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된다.
당신이 성실한 자녀라면 부모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민감해지는 것도 같은 이치다. 부모님을 불행하게 하고 싶지 않다, 부모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 부모님에게 혼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늘 머릿속에 지니고 생활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점점 잊기 시작한다.
연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연인의 기분에 민감할수록 당신은 연인에게 이상적인 상대가 된다. 항상 연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당신은 ‘사랑의 깊이’라고 여기겠지만 그것은 단지 연인의 기분에 민감한 태도일 수도 있다. 연인의 기분을 민감하게 살피는 나머지 자신의 기분을 억누르고, 오직 상대가 기뻐해야만 비로소 자신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몸의 중심을 낮춰라: 나는 서른아홉 살 때 1년간 영국에서 유학한 적이 있다. 일본 문화청의 재외연수원이라는 자격이었기 때문에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다. 일본을 떠나 3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 ‘나는 어떤 연극을 만들고 싶은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연극학교에 다니는 바쁜 생활이었지만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일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우연히 런던에 여행 온 작가 이노우에 히사시 씨를 만났다. 이노우에 씨는, 사람은 마흔을 전후해서 일에서 벗어나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도 마흔 무렵에 1년간 해외 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알고 지내는 몇몇 작가나 연출가들에게 물어보니 그들 역시 마흔을 전후해 의도적으로 환경을 바꾼 사람이 많았다. 중년의 하프 타임이랄까.
대부분은 일주일도 무리인데 하물며 3개월 이상, 혹은 1년이라는 시간을 낼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루도 쉽지 않으니 진짜 고독과 마주하기란 불가능한 것인가’ 하고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단 한 시간이라도 몸의 깊숙한 부분까지 누그러뜨려 보면 좀 더 편안하게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혼자도 괜찮다’는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것도 당신의 인생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약한 존재로서 아무리 결심을 해도 문득 ‘혼자는 비참하다’고 생각해버리는 순간이 있다. 바로 그때 먼저 ‘몸의 중심’을 낮추어볼 것을 권한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태도이지만 아주 중요하다. 인간은 초조해하고 긴장을 하면 몸의 중심이 점점 올라간다. 목소리는 들뜨고 숨은 턱에 차오르며 머리부터 먼저 움직이는 경향을 보인다. 초조해하는 사람의 움직임을 보라. 모두 머리부터 앞으로 나간다. 허둥지둥하는 사람은 모두 머리부터 먼저 움직인다.
반대로 침착한 사람은 묵직하게 허리 언저리로 움직이고 있는 느낌을 준다. 정확하게는 단전이라고 불리는, 배꼽에서 주먹 하나 아랫부분부터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다. 초조한 사람은 머리나 가슴을 내밀고 허리가 뒤로 빠져 있지만, 침착한 사람은 단전부터 움직인다. 의식적으로 몸의 중심을 낮춰 단전 부분에 집중시켜 보라. 숨을 깊게 들이마셔 배꼽 아래 단전 언저리에 채워 넣는다고 의식해 보라.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몇 초간 들이마시고 천천히 10여 초에 걸쳐 내쉬어라. 숨을 들이쉴수록 공기가 배 아랫부분으로 차곡차곡 채워진다고 상상하라. 신기하게도 기분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목소리도 의식적으로 낮게 내는 연습을 하라.
혼자 점심을 먹다가 문득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대로 몸의 중심을 낮추려고 의식해 보라. 깊은 호흡을 하는 것이다. 혼자인 것이 너무 외로워서 곧장 휴대폰을 집어들 것 같을 때 몸의 중심을 한껏 아래로 낮추어보라. 마음은 이내 안정을 찾아 ‘누구에게든 문자를 보내볼까’ 하는 ‘가짜 고독’의 유혹을 물리치기 수월해진다.
생각하는 것과 고민하는 것
고민하면 시간이 쏜살같다: ‘생각하는 것’과 ‘고민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스물두 살 때 극단을 창단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학생 극단에서 프로를 꿈꾸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창단할 때는 불안했다. 와세다 대학 연극 연구회라는 곳에 있었는데 선배가 내게 “고카미, 극단 어떻게 할 거야?” 하고 물었다. “지금 어떻게 할지 생각 중이에요. 창단하는 게 좋을지, 해나갈 수 있을지.” 하고 대답했더니, 그 선배는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네. 고민하고 있는 거네.”라고 말했다. 무슨 소린가 하는 얼굴을 하자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하는 것과 고민하는 건 달라. 생각한다는 건 극단을 창단해서 해 나갈 수 있을까, 그럼 우선 지금 일본의 연극 상황을 알아보자. 자신이 하고 싶은 연극과 비슷한 극단은 있는지, 그렇다면 관객이 어느 정도인지, 자신이 쓰는 대본은 연극계 안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그런 것들을 이것저것 생각하는 거야. 고민한다는 건 ‘극단 창단이 잘될까, 어떨까’ 하고 우물쭈물하는 거야. 오랜 시간 고민해도 아무런 결론도 나오지 않고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을 거야.”
이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충고였다. 트러블은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불안은 그저 고민을 할 뿐이다. 고민은 하면 할수록 불안만 키운다. 사실 고민을 해도 별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지금 당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당신은 생각하고 있는가, 고민하고 있는가? 그 문제는 트러블인가, 불안 그 자체인가? 내가 고민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차이를 듣고 놀랐던 것은 효과적인 시간 사용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고민을 하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간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는 것은 없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하고 계속해서 겉돌기만 할 뿐이다. 생각을 하는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 지난 만큼 뭔가가 남는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잘못된 일이라 해도 일단 뭔가 해야 할 일,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상상이 당신을 상처 입힌다
상상의 독: 불안을 키우는 것은 당신의 상상력이다. 예를 들면 당신은 “야마다가 네 험담을 하더라.”라는 말을 친구에게 들었을 때와 야마다로부터 직접 욕을 먹었을 때 중 어느 쪽이 더 상처가 되는가? 그리고 어느 쪽이 회복이 빠를 것 같은가? 당신이 야마다에게 호감을 갖고 있거나 그를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자, 어느 쪽인가?
언뜻 직접 듣는 편이 더 상처받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깊이 오래 상처받는 것은 친구로부터 ‘야마다가 네 험담을 하더라’라는 말을 전해 듣는 쪽일 것이다. 왜냐하면 친구로부터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당신은 야마다의 말투를 상상하고 이유가 무엇일지 혼란스럽고 밤에도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상상력이 망상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면, 직접 야마다에게 그 말을 들은 경우를 상상해보자. 당신의 눈앞에서 야마다는 당신의 험담을 한다. 당신은 어이없어할까, 아니면 무심코 왜냐고 물을까. 왜냐고 물었다가 야마다가 이유를 말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그의 말에 더욱더 구체적으로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머지않아 상대방이 남김없이 털어놓으면 당신은 도망칠 곳을 잃고 마침내 웃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오랜 시간 불평을 듣는 것은 분명하고 선명한 상처이다. 철저하고 명확한 상처인 것이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불안에 몸부림치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것은 더 음습하고 어두운 상처이다.
갈 데까지 가보면 다음으로 나아간다: 연인이나 부부가 싸울 때도 서로 만족할 때까지 지속하는 편이 불안도 적고 회복도 빠르다. 아무리 옥신각신해도 한쪽이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일방적으로 내뱉는 식의 대화, 또는 한쪽 부모가 대신 나서거나 한다면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망상이 점점 부풀어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부정적인 불안’이 휘몰아치는 것이다.
직접 부딪치지 않으면 불안은 망상 속에서 점점 커져간다. 서로의 고독도 더 깊어진다. 그렇게 상상력은 자신을 점점 괴롭히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할 수 있는 만큼 실컷 언성을 높이고 나면 서로의 관계는 분명해진다. 특히 아직 서로가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든 해복해보려는 경우, 끝까지 철저하게 싸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언쟁하는 시간이 이도저도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더 깊어지는 것이다.
고통을 줄이려면 직접 부딪혀라: 경영자로서 유능했던 프로레슬러 자이언트 바바 씨의 경영 철학은 단 하나, ‘남에게 들은 말은 직접 본인에게 확인할 때까지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바바 씨의 인터뷰를 통해 이 사실을 알고 감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