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낼 수 있는 용기
가토 다이조 지음 | 지식여행
화낼 수 있는 용기
가토 다이조 지음
지식여행 / 2015년 8월 / 240쪽 / 12,900원
Chapter 01 일상이 괴롭고 행복하지 않은 이유 _ 적대감이 마음속에 쌓이는 원인
다양한 가면을 쓰는 감춰진 적대감
나는 ‘불행은 위장된 미움’이라고 생각한다. 감춰진 증오는 다양한 가면을 쓰고 나타나며, 때로는 우울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감춰진 증오는 우울증의 특징이라고 말했으며, 프리다 프롬 라이히만은 우울증 환자를 ‘공허와 증오’로 표현했다. 중요한 점은 그 증오가 감춰져 있다는 사실이다. 우울증 환자의 매우 심한 자기 증오는, 주변 사람을 격렬히 증오하는 데서 비롯된 마음이다. 자신이 진짜 증오하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 아닌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의식하지 않는 한 우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프로이드가 지적한 대로, ‘가혹한 자기비판이나 잔학한 자기 멸시 등은 근본적으로 어떤 대상을 향한 것이고, 그에 대한 복수를 나타낸다.’
어쨌든 우리는 주변 사람을 향한 미움을 인식할 수 없거나 의식해도 표현할 수 없다. 그 결과 주변 사람을 향한 미움은 여러 가지 간접적인 형태로 일상생활에 나타난다. 감춰진 적대감은 심술로 표현될 때도 있다. 감춰진 적대감을 가진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심술을 부려 상대방을 어려움에 빠지게도 한다. 원장에게 원한을 가진 유치원 선생님의 경우 아이들을 괴롭힐 확률이 높다. 또 남편에게 감춰진 적대감을 품은 아내는 아이들을 무기로 그를 힘들게 한다. 이처럼 감춰진 적대감은 비참함을 과시하는 데서 비롯하며 다양한 간접적인 표현 방식을 취한다.
감춰진 증오는 ‘왜 저렇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거지?’ 하고 의심할 만큼 맹렬히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카렌 호나이도 의심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경우 복수심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고민 연구자 에드워드 할로웰은 ‘인식되지 않은 우울증’이라는 표현을 쓴다.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너무 바빠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감춰진 증오가 ‘맹렬히 일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감춰진 적대감’, 또는 ‘증오’는 직접적으로 표현되거나 처리되지 않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한 직ㆍ간접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쌓인 분노가 갑자기 폭발할 때도 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은 여태껏 분노를 억압해왔기 때문이다. 아이라도 갑자기 화를 낼 때가 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화를 내고, 쉽게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그동안 분노를 억압해왔기 때문이다. 아이는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데 엄마는 둔감하다. 그래서 자녀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할 경우 이이는 상처받고 분노한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별일 아니야’라고 스스로 다독이고, “시시한 여자, 저런 여자랑은 싸울 가치도 없어”라고 말해도 사실은 불쾌하다. 계속 “괜찮아”라고 말하면서도 속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감춰진 적대감은 그 이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때로 감춰진 적대감은 육체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억압된 분노와 공격 충동이 혈압을 오르게 하거나 위액 분비를 늘리고, 근육을 경직시킨다.
기대가 배신당했을 때 분노가 생긴다
‘이 정도는 해주겠지’라고 기대했는데 상대방은 그만큼 해주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불쾌한 감정을 품는다. ‘이 정도는 해줘도 되지 않나’ 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분노이다. 예를 들어, 정년이 되어 대학에서 물러날 때, ‘후배가 이 정도는 해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분노를 느낀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의 관계를 생각해봤을 때 그 정도는 해줄 거라고, 그 정도는 해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부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방은 반응하지 않고, 참고 기다려보지만 끝까지 아무 연락도 하지 않을 때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때 자신이 무력하면 할수록 분노는 더 커진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기대했던 상대방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다면 분노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커진다.
하지만 자신이 우위에 선 입장이라면 ‘저 사람은 원래 그래’라고 상대를 저평가하며 끝나거나, 힘을 써서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 또 ‘상대방이 이건 안 해줄 거야’라고 기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꺼냈는데 반응이 없으면 ‘역시나’ 하고 포기하고 만다. 이때 분노를 느끼지는 않는다.
이렇게 분노는 기대 관계 사이에서 발생한다. 기대 관계 때문에 분노가 생기는 또 다른 예가 있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상사나 주변 사람들에게 “그거 정말 대단한 이이디어인데”라고 칭찬받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반응이었고, 누구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이런 경우 나르시시스트, 즉 자기애가 강한 사람일수록 마음의 상처가 깊다. 그래서 분노도 커진다. 칭찬해줄 거라고 생각해서 자랑스럽게 수학시험 성적을 말했는데, 엄마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아이는 상처를 받는다. 엄마가 칭찬해줄 거라는 기대가 크면 클수록 상처는 깊어진다. 하지만 아이는 그 일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지는 않는다. 엄마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계속되면 아이는 결과적으로 엄마를 싫어하게 된다. 결국 불만이 요구 수준에 따라 다른 것처럼 분노도 기대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채워진다. 그것은 본디 엄마가 채워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엄마가 충분히 채워주지 못할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불만을 갖게 될 수 있다. 인간은 이렇게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다른 대상에게 불만을 갖기 마련이다. 그렇게 불만이 쌓이다 보면 현실에서 괴리돼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히게 된다. 그 불만을 공격적인 행위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낼 수 없다,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 없어도 운동처럼 무언가 분함을 승화시킬 수 있는 대상을 발견하면 좋다. 하지만 그것도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언젠가 반드시 출세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그 분함을 달리기로 대신할 수 있다. 그러나 마라톤 선수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면 달리기로 억울함을 해소할 수는 없다, 이처럼 기본적인 욕구 불만으로 발생한 ‘분한’ 마음은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해도 쉽게 돌릴 수 없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은 주변 사람의 태도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물론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고, 그가 나쁘기 때문도 아니다. 단순히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을 뿐이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은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상처를 받으면 상대방을 미워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마음이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자각하는 것보다 상대방을 미워하는 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 모두가 밉다 해도 사람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자.
솔직하게 화를 내지 못한다
불만을 누르고 생글생글 웃는다. 미움을 누르고 관대한 사람인 척 연기한다. 그럴 때 감춰진 적대감은 커진다. 자기주장이나 자기표현을 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잘 타는 사람은 늘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이 우울증 환자가 되기 쉽다는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의 이론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말하고 싶은 게 있어도 말하지 못할 때 감춰진 적대감은 늘어난다. 말하고 싶은 바를 말하지 못하는 것은 말함으로써 잃게 되는 게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것은 주변 사람들의 평가이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이다. 쓸쓸하고 울적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깨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어릴 적에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감춰진 적대감을 갖는다. 주변 사람에게 착한 아이라는 평가를 잃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이런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지는 않다’든지 ‘이런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 결과 인정받고 호감을 얻고 싶어서 분노와 미움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관계가 깨지는 걸 가장 두려워하며, ‘이 말을 하면 이 관계가 깨질 거야’라고 생각해 ‘이 말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미움을 미움으로 토해낼 수 없을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져 몸이 망가진다.
외로운 사람은 사랑을 잃는 게 두려워서 애를 쓴다. 하지만 사실 그때 그 사람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아니다. 실제로 애쓰는 사람은 잃어버린 게 아무것도 없다. 본인이 ‘(잃은 게) 있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 사실은 10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그때 그 관계는 무엇이었을까?’를 알게 된다. 단지 ‘OO 관계라는 환상’에 매달려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미움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때때로 병에 걸리는 것도 미움의 간접적인 표현이다. 비참함을 과시하는 일 또한 미움의 간접적인 표현일 뿐이다. ‘괴로움’은 ‘변장한 미움’이다. 그 미움은 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증오다. 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미움이라서 표현할 수 없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중요한 관계라서 표현할 수 없다. 연인을 잃고 싶지 않다. 연인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 연인에게 느끼는 미움은 표현할 수 없다. 그 미움을 표현하면 자신에게 의미 있는 관계를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아에 위협이 된다. 그래서 표현되지 않은 적대감이 되어 마음속에 쌓이는 것이다.
특히 나르시시스트는 늘 칭찬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늘 상처를 받는다. 그들은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 자기도취를 파괴하는 듯한 말에 상처를 받을 때 화가 난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이 한 말이라서 솔직하게 화를 낼 수 없다. 그러면 감춰진 적대감이 되어 마음속에 쌓인다. 그리고 그 적대감이 ‘괴로움이라는 여러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어쨌든 괴로워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은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Chapter 02 ‘나는 왜 그럴까?’ 자신도 이해 못하는 나 _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적대감이 나타나는 방식
비뚤어지게 마음이 표현된다
감춰진 적대감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감춰진 적대감을 가지고 있으면 늘 얼굴을 찡그리고 있거나 간혹 고개를 돌리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이 막히고 피곤하게 만든다. 감춰진 적대감을 가진 사람은 여러 가지 문제 행동을 하는데, 엄마에게 감춰진 적대감이 있는 아이의 경우 격려하고, 칭찬하는데도 자꾸 관계가 틀어진다. 따라서 아이를 칭찬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자꾸 엄마 말을 안 듣거나 반항한다면 자신에게 감춰진 적대감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한 엄마가 “선생님, 이제 아이와 대화를 잘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엄마는 ‘아이를 항상 격려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성가시고 귀찮아”라고 말한다. 왜 엄마와 아이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나는 그녀에게 “‘잘 다녀와, 오늘 예쁘네’라고 아이에게 말하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오늘도 조심하고 끝나면 빨리 와’라고 말하나요?”라고 물으니 그렇게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아이에게 뭐라고 말하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런 이상한 차림으로 가는 거야? 정말 보기 흉해. 제대로 입고 가지.” 그러고 나서 엄마는 “나는 아이를 격려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격려가 아니라 비꼬는 것이다. 또 아르바이트에 가려고 준비하는 아이에게 “오늘은 몇 시쯤 돌아오니? 너도 참 그런 데서 열심히도 일하는구나”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분명히 격려하려는 의도였지만 아이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감춰진 적대감이 없으면 상대방에게 격려했을 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어, 아이가 “엄마, 나 감기에 걸렸나 봐!”라고 말한다. 엄마는 “큰일이네. 어떻게 하지? 그래도 아르바이트 나갈 거야? 나갈 거면 점장에게 전화해서 말해둘 테니까. 열나면 바로 들어와” 또는 “그럼 오늘은 안 나가는 게 낫지 않아?”라고 답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엄마가 아이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심으로 관심을 받아본 사람은 상대방의 진심을 오해하지 않는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는 개인적인 고통이라는 뚜렷한 특징과 정신 활동 전반에 걸친 쇠약과 혼란도 보인다. 어떤 환자는 “내 마음은 뒤죽박죽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우울증 환자가 점차 쇠약해지는 원인은 바로 표현되지 않은 미움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린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과 신경증적인 사람은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전혀 다르다. 전자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반면에 후자는 심리적으로 홀로 서 있을 수 없다. 늘 남에게 의존한다. 의존은 사람들에게 받는 평가이자 호의이며 동의이다. 신경증적인 사람은 타인을 생명처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대접받지 못할 때 깊은 상처를 받아 상대를 용서할 수 없다. 심리적으로 자립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의 태도가 용서가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신경증적인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 아주 사소한 일이다. 보통 사람이 보면 그 정도로 원망하는 마음을 갖는 게 이상하다. 하지만 신경증적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배신당한’ 것이다. 그래서 상대를 원망하는 일이 정당하게 느껴진다.
물론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인간이기 때문에 남을 원망할 때가 있다. 바로 성의를 다해 해준 일에 대해 배신당했을 때이다. 그들은 성의를 갖고 뭔가를 해주지 않는 한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 상대를 이용하려고 생각했는데 기대한 대로 일이 잘 안 풀려도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다. 단지 ‘잘 안 됐네’라고 생각할 뿐이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원망이 사라진다. 생산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신경증적인 사람의 원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생산적으로 살 수도 행복하게 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감춰진 적대감이 있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자신이 불행하기에 행복한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누구든 행복하다면 원망은 금세 사라진다. 하지만 신경증적인 사람에게 행복해지는 것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는 편이 더 쉽다. 타인을 원망하는 편이 생산적으로 살려고 하는 것보다 에너지가 덜 필요하다. 생산적으로 산다는 말은 자아실현을 한다는 뜻이다. 남에게 호의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호의를 베푸는 일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남에게 호의를 베풀어도 그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보답을 바라면 타인을 원망하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대체로 기대한 보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보답을 바란다면 처음부터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을 원망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이것은 나를 위해서인가? 저 사람을 위해서인가?’라고 생각해보자. ‘저 사람을 위해 한다’는 생각이 들 때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이 일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라는 확신이 든다면 그때 행동하자. 그것이 남에게 원망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다. ‘저 사람을 위해 한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래도 보답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한다’라고 생각하면 보답은 기대하지 않는다. 그 결과 상대가 어떤 태도를 취하든 상대를 원망할 일은 없다.
마음의 갈등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불행을 받아들인다’고 하면 대단한 말 같지만 사실 이 말은 완벽에 집착하지 않는다, 혹은 이상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현실에 입각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현실에 입각하면 역으로 자신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사자와 사슴> 이야기를 떠올리자. 사슴이 초원 호숫가에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뿔은 멋있는데 다리가 빈약하다며 탄식한다. 그때 사자가 나타나고, 사슴은 필사적으로 도망쳐 숲 속으로 숨어든다. ‘이제 따돌렸다’라고 생각했는데 뿔이 나무에 걸려 꼼짝할 수 없었다. 결국 사슴은 사자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사슴의 뿔처럼 자랑거리가 실은 나를 파멸로 이끄는 것이고, 약점이 오히려 이롭게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