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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잡식

나카하라 게이스케 지음 | 갈대상자



학문 잡식

나카하라 게이스케 지음

갈대상자 / 2015년 10월 / 208쪽 / 13,000원





제1장. 학문 잡식이 사고와 폭과 깊이를 만든다



‘학문 잡식’으로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 키우기

세계 전체를 한눈에 조감하는 능력을 길러라: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다국적기업은 직원을 평가할 때 민족적 배경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능력의 잣대로만 평가한다. 이때 능력을 평가하는 요소는 기획력, 소통력, 구축력, 협상력, 위임력 등이다. 그리고 이 모든 능력보다 더 중요한 능력이 있는데, ‘거시적 관점으로 현상을 한눈에 조감하는 능력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다. 이 통찰력을 가지려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섭렵하고 습득해야 한다.

국외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는 결단을 내리기 전에 그 나라의 문화와 가치관을 이해하고 현지인의 사고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인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문화와 가치관이 전혀 다른 나라에서 조직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현지 직원이 얼마나 자주적으로 행동하느냐가 성공의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역사와 종교를 배울 필요가 있다. 역사와 종교를 본모습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주의나 주장에 억지로 맞춰서는 안 된다. 그런 관점은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토양을 만들어 국가 간 혹은 민족 간 투쟁으로 발전하는 불씨가 된다.

세계역사와 종교에는 당연히 일본 역사와 종교도 포함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화합을 이루려면 먼저 이쪽이 상대를 이해해야 하며 동시에 상대의 이해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서로의 국민성과 가치관을 인정함으로써 신뢰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단, 서로를 이해하려는 목적으로 역사와 종교를 배울 때 가져야 하는 중요한 관점이 있다. 그것이 빠지면 효과도 반감할 수밖에 없다. 바로 세계사와 일본사를 관련지어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일본의 고등학교 교육에서는 세계사와 일본사를 나눠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인데, 그래서는 전체 속에서 일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역사와 종교를 배울 때는 일본의 좁은 관점을 버리고 세계의 넓은 관점을 가져야 한다. 하나의 현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보는 것은 조감력과 거시적 관점을 기르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넓고 얕게’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두루 섭렵하라: 본질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 되려면 역사와 종교를 배운 다음 무엇을 배워야 할까? 안타깝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으로 이것을 배워라!’ 하는 식의 모범 답안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인문과학계, 사회과학계, 자연과학계로 나누었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학문만 해도 철학, 문학, 논리학, 윤리학, 심리학, 교육학, 법학, 정치학, 경제학, 경영학, 사회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농학, 수학 등의 많은 분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특별히 관심 있는 분야에서 시작해 조금씩 범위를 넓혀 가면 된다. 전문가 수준까지 끌어올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대학의 일반교양처럼 ‘넓고 얕게’ 습득하는 것이 좋다. 물론 전문분야에서 얼마든지 그 지식의 깊이를 더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일정한 사고를 강화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전문분야라는 관점으로만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판단하면 새로운 발상이 일어날 수 없고 사고의 폭과 깊이도 넓히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배운 학문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새로운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밀도 있게 접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혹은 자신과 다른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의 견해를 보고 들어서 그 견해의 배경을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전문분야에 치우친 관점이 아니라 다면적인 각도로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흡수해 복잡하게 얽힌 인과관계를 정리함으로써 그 본질을 찾아내는 통찰력을 단련해야 한다. 세상의 온갖 학문이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키우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유능한 컨설턴트는 경영학과 경제학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나는 경영 컨설턴트로서 기업에 조언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이 직업은 학문 장르로 말하자면 사회과학에 속한다. 그런 터라 사회과학 분야의 학문 지식, 특히 경영학과 경제학의 지식만 있으면 일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이 타이밍에서 이 설비투자를 진행해도 괜찮을까?’

‘신규 사업을 시작하려는데, 어느 분야가 좋을까?’

‘국외 사업은 어떻게 전개해야 할까?’

‘광고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할까?’

‘잉여 자금이 풍부한데,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직원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상담 내용을 보고 경영학과 경제학에 정통하면 일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조언할 때는 사회과학계의 학문적인 발상보다는 인문과학계나 자연과학계의 학문적 발상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면서 유용한 조언을 하자면 어쩔 수 없이 그런 발상에 이르게 된다. 그런 터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키우려면 특정 분야의 지식을 흡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그야말로 ‘잡식’하듯 습득해야 한다.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학문 잡식’을 계속하다 보면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시야가 넓어질수록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참신한 발상과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러니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싶다면 편식하지 말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되도록 많이 읽어라.



제2장. 학문 잡식이 경제 흐름을 한눈에 조망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학문을 잡식하면 경제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일반교양 과정은 지식을 넓히는 절호의 기회다: 경영 컨설턴트인 나는 기업으로부터 경영에 관한 조언뿐 아니라 경제 예측도 해달라는 의뢰를 자주 받는다. 지금 같은 글로벌 경제에서는 기업이 경영 방침을 결정할 때 경제 동향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까’, ‘국내 경제는 어떻게 될까’, ‘경제 동향을 염두에 둘 때 설비투자는 언제 해야 할까’와 같은 질문이 주를 이루는 것은 그런 배경 때문이다.

원래는 경영에 관한 조언과 경제 분석은 명확히 영역이 나뉘어 있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그 울타리와 관계없이 경영과 경제 두 가지 분야에 관한 조언이 가능한 컨설턴트라는 점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나는 대학에서 경영학이나 경제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역사를 전공했다. 그러나 역사학만 배운 것은 아니다. 전공 과정에 들어가기 전인 일반교양 과정에서 지식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학문을 배웠기 때문이다. 일반교양 과정에서는 철학부터 시작해 종교학, 논리학, 심리학, 교육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생물학, 수학 등 폭넓은 분야의 수업을 이수했다. 그것들이 일하면서 사물을 생각하는 데 기초가 된다.

그러나 내가 재학생이었을 때나 지금이나 일반교양 과정을 진지하게 배우려는 학생은 놀랄 만큼 적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전공이 아니니까 적당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일반교양 과정은 자신의 인생에서 식견을 넓힐 좋은 기회인데, 많은 학생이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수업이 따분해 학생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학문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지 못하는 교수가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수업이 따분하다고 불평만 하며 스스로 흥미를 갖고 실마리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학생에게도 문제는 있다. 서양의 대학에서는 일반교양 교육이 대학의 본류이고 전공 교육은 일종의 직업 훈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일반교양 교육이 중요한 것은 장래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모든 분야의 지식을 폭넓게 습득해야 한다는 전제 때문이다. 이것은 일반교양 과정보다 전공 과정을 중시하는 일본의 대학 교육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경제학만 배우면 오히려 진짜 경제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는 이야기인데, 나는 다양한 학문을 배우면서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현실 경제를 거시적 관점에서 원근법적 시각으로 조망하려고 할 때 경제학은 무용한 이론이 많아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학 이론 가운데 현실 경제에 통용되는 것은 아마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으로 현실 경제를 거시적이고 조감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는지는 실제로 경제학 이론을 현실 경제에 적용해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경제의 행방을 찾으려고 분석을 시도해보니 현실 경제는 경제학 교과서처럼 움직여주지 않을뿐더러 당시의 경제학으로는 버블 붕괴 후의 일본 경제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었다.

전공 학문만 배우면 일종의 심각한 폐해가 일어난다. 그 학문의 지식과 이론만으로 사물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많은 경제학자는 경제학 지식과 이론으로밖에 현실 경제를 분석하지 못했다. 그들은 현실 경제가 비합리적일 때가 많아서 수식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경제학뿐 아니라 현실 경제를 움직이는 요소가 되는 것들을 전부 고려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평소 배우는 역사학, 심리학, 철학에 구체적인 답이 있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즉, 다양한 학문을 잡식함으로써 나름의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

현실 경제를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행동을 나타낸 역사, 경제 활동을 결정하는 인간 심리, 세계 경제가 움직이는 전체 구조를 다루는 철학적인 사고력이다. 탁상공론으로는 현실 경제를 거시적이며 조감적 시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경제학의 좁은 영역의 변화뿐 아니라 현실 경제의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탁상 경제학을 배우는 것과 현실 경제를 배우는 것은 지금의 글로벌 경제에서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기 위해서는 심리학의 사고방법이 필요하다.



제3장. 역사와 종교에서 시작해 탐욕스럽게 다양한 지식을 쌓아가라



상대를 이해한 뒤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힘을 키워라

자기 나라를 ‘이런 나라, 이런 민족’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 글로벌 사회에서는 국가와 민족 간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비즈니스도 소통도 불가능하다. 상대 국가의 역사ㆍ종교ㆍ문화ㆍ습관ㆍ주체성을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우리는 이런 나라다’, ‘우리는 이런 민족이다’라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세계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쌍방향적인 이해 없이는 이쪽의 주체성을 이해받지 못하고, 또 상대의 건드려선 안 될 부분을 건드리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목에 핏대가 서도록 ‘글로벌 사회’를 외쳐대는 세상에서 상대국의 역사와 종교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서 멈춰선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이 다른 국가의 역사와 종교는 물론이고 자신의 역사와 종교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외국인이 “당신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당신의 민족은 어떤 민족인가?”라고 물으면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을 명확히 자각하지 못해서 외국인이 “당신은 어떤 종교를 믿느냐?” 하고 물으면 “믿는 종교가 없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엄밀히 따지면 차이는 있지만, ‘무종교’와 ‘무신론’은 거의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특정한 신이나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무종교”라고 대답하면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신을 믿는 기독교 신자나 이슬람교, 불교 신자에게 무신론자는 가장 이질적인 존재다. 특히 프로테스탄트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평등과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무신론자다”라고 말하면 자유와 평등을 인정하지 않는 나쁜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런 터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 굳이 미움받을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제4장. 경험칙을 쌓으면 직감을 발휘할 수 있다



뛰어난 경영자는 ‘직감’과 순간적인 ‘번뜩임’을 갖고 있다

직감과 번뜩임은 어떻게 다른가: 지금까지 본질을 꿰뚫어 보는 공부법과 사고력을 단련하는 방법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이번 장에서는 지식과 경험, 사고력이 필요한 직감과 순간적인 번뜩임에 대해 정리해보자.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뛰어난 경영자는 일반인과 비교하면 예리한 ‘직감’과 순간적인 ‘번뜩임’을 지니고 있다.

보통 직감과 번뜩임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직감과 번뜩임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뇌 과학 강연회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이 둘은 뇌 과학 분야에서도 다르게 취급할 뿐 아니라 실제 메커니즘도 다르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를 보면, “직감은 논리적 사고를 따르지 않고 사물의 진상을 순간적이고 감각적으로 감지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반면, “번뜩임은 놀라운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직감이나 번뜩임 모두 불현듯 무언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는 의미에서는 같지만, 이 둘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 직감은 사전에 나와 있는 대로 논리적인 사고에 의존하지 않고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다. 즉, 어떻게 그런 판단이 섰는지 자신도 모른다. ‘왠지 모르지만 이것이 정답’이라는 식으로 강하게 확신한다.

반면 순간적인 ‘번뜩임’은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나중에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당시에는 정확한 이유를 미처 알지 못한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번뜩임은 논리적인 사고이므로 훈련만 하면 누구나 발휘할 수 있다. ‘직감’은 사고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유 없이 답이 나와버리는 터라 ‘직감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다.

내 경험으로는 ‘직감’이 ‘번뜩임’보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때가 훨씬 많다. ‘직감’으로 생각이 떠오를 때 머릿속에서는 방대한 과거의 경험과 그 경험으로 축적한 자료를 토대로 자동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밀히는 결론을 낸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있는데, 머릿속에서의 복잡한 계산 과정이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고 답이 떠오른다.

‘직감’과 ‘번뜩임’ 모두 지금까지의 경험칙의 축적이다. ‘직감’은 의식적인 경험칙과 무의식적인 경험칙의 집대성, 그리고 ‘번뜩임’은 의식적인 경험칙만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말하는 ‘경험’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다. 사고하는 경험, 즉 어떻게 사고해왔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경험칙의 영역이 넓은 ‘직감’이 ‘번뜩임’보다 중요하다.

날카로운 안목을 가진 골동품상 주인은 물건을 보는 순간 가짜인지 진짜인지 정확히 가려내는 것은 물론 진짜인 경우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순간적으로 그런 판단이 가능한 것은 오랜 경험으로 ‘직감’을 훈련했기 때문이다. 좀 더 친근한 예로는, 시험문제에서 답이 헷갈릴 때 처음 쓴 답이 정답일 확률이 높다. 고민하다 고쳐 쓰면 대개는 오답인 경우가 많다. “장고 끝에 악수 두게 된다”는 옛말 그대로다. 처음에 쓴 답은 ‘직감’에 따라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번뜩임이 직감을 이길 수 없는 두 가지 이유: 정확한 결론을 낼 수 있다면 직감과 번뜩임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상관없다. 그러나 직감과 비교할 때 번뜩임은 무시할 수 없는 두 가지 결점이 있다. 첫째, 번뜩임은 논리적인 추론이므로 연구 결과나 구체적인 자료를 토대로 결론을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무언가를 자세히 검토하고 판단할 때 그에 관한 수치나 자료를 모두 수집해 일일이 확인한 뒤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결단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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