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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학교

박이언 지음 | 이야기나무



직장학교

박이언 지음

이야기나무 / 2015년 7월 / 264쪽 / 15,000원





생존 - 당신이 좋든 싫든 레이스는 이미 시작되었다

성공하고 싶은 직장인: “쯧쯧, 요새 젊은 것들은 눈은 높아가지고 고생하기는 싫어하고……. 영 글러 먹었어.”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눈높이를 낮추고 현실에 순응하라며 준엄하게 꾸짖는 목소리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과잉 학력이라는 주제는 수년 동안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일자리 없는 저성장 시대에 넘쳐나는 대졸자가 굳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기술을 가진 초대졸자, 생산라인에 투입될 수 있는 고졸자가 더 필요하단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언론과 재계는 눈높이를 낮추라고 주문한다.

과잉 학력은 한국기업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지난 60년 동안 변하지 않은 한국경제의 방정식은 이렇다. 생산업은 서비스업보다, 수출은 내수보다, 낮은 납품가는 제품의 부가가치보다, 매출 외형은 순익보다 늘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 있다. 경제 생산성의 핵심에 있는 기술개발은 국가와 기업이 독점적으로 추진하면서 속도전을 가능케 했고, 그렇게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이 사고 방식에서 볼 때, 생산라인의 노동력 투입량 부족은 그야말로 국가적 재앙이다. 경영자는 초사회적 지위까지 부여받은 상태이기에 과거의 시대착오적 성공방정식을 고집해도 저항하는 사람도 없다. 결론적으로 과잉 학력의 이면에는 한국경제와 기업이 아직까지는 전적으로 공장경제형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자. 공장주가 공장을 24시간 돌려야 겨우 생존할 수 있는 현실에서 직원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요구한다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사회적 흐름이다. 일본을 쫓아가며 여태 힘겹게 이뤄놓은 성공은 이제 빛이 바랬고, 점점 우리 뒤를 좇는 중국 기업의 추월을 두려워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것조차 힘든데 직원에게 주어야 하는 권리는 점점 많아진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라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은 생산기지를 외국으로 옮기고, 초인적 집중력으로 기술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영업력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한 대기업조차 얼마나 직원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것에 긍정적인지는 큰 의문이다. 자칫 한 번의 경영위기라도 오면 저녁은커녕 휴가도 없다.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직원에게 자기계발이 강요된다. 회사가 성공하면 회사가 잘나서 그렇고, 회사가 어려우면 부족한 직원 때문이다. 그러니 시키는 대로 직원은 열심히 외국어를 공부하고 시간관리 기술을 익히란다. 하지만 회사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말로 요구하는 것은 자기계발이 아니라 충성심과 성실성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투지와 도전’이다. 슬프게도 한국의 현실에서 여전히 직장인의 성공방정식은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이 아니라 새벽별을 보며 출근하고, 달을 보며 퇴근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낯익은 사람의 글 하나가 올라왔다.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앨런은 내가 대만에서 재직하던 시절 함께 일하던 친구다. 대만인은 여러 모로 한국인과 궁합이 잘 맞는다. 중국 본토와 달리 한국처럼 일찌감치 자본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전통적인 유교문화가 살아 있고 공동체를 우선시한다. 대만인이 처한 상황도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다. 수출 위주의 경제, 국가와 기업이 개인보다 중요하다는 사회 분위기, 물질적 성공에 따른 경쟁 압박, 정체된 기업 성장이 직장인의 현실이다. 그 압박에 지친 개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 나선다. 자기계발과 힐링. 이 대립은 세기적 충돌이다. 직장인의 성공과 개인의 행복이 한계점에서 대립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대립의 해결을 양자택일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개인의 행복과 직장에서의 성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충돌 속에서 앨런은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회사에서 성공과 개인의 행복이 양립하는 길은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제3의 길은 정말로 없는 것일까?

뒤바뀐 세상의 키워드, 생존: 제3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 세상에 대한 통찰력 없이는 자기계발도, 힐링도 답이 되어주지 못한다. 세상이 뒤바뀌고 있다. 세계경제는 이미 저성장 단계로 진입했다. 산업사회는 끝났고 혁신경제가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공장경제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으며, 창의력 없는 개인ㆍ기업ㆍ국가에겐 더더구나 미래가 없다. 소프트웨어가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업뿐만 아니라 유통업, 정유업, 금융업, 의료업, 교육, 군수업에 이르기까지 소프트웨어가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세계경제의 단일화는 갈수록 빨라진다. 기업경쟁에 국경이 없어지니 승자독식 시절이 된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때는 몰랐던 세계경제권으로의 예속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하나씩 실감한다. 2014년 말에 이케아는 한국에 세계 최대의 매장을 열었다. 이로 인해 기존 가구업체는 곧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전자결제시스템이 선진화되면 곧 아마존도 들어올 것이며 기존의 인터넷 쇼핑 회사들, 심지어 대형마트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단일 경제에서의 생존경쟁이 기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도 세계경쟁 중이다. 선진국 사이의 인재유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공정자동화와 단순 행정업무의 컴퓨터에 의한 대체는 점차 중산층의 직업을 빼앗아가고 있다. 예전의 ‘좋은 일자리’가 더 이상 무작정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 인재에 대한 변별력은 더욱 커지고, 새로운 지식 없이는 일자리 잡기도, 직장에서의 성공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뒤바뀐 세상을 먼저 알아차리고 준비해야 하는 경제관료나 언론은 이러한 변화에 둔감하다. 기득권이 주는 안락한 혜택에만 안주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의 키워드는 ‘생존’이다. 이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힐링도 자기계발도 아니다. 생존이 제3의 길이다. 생존의 의미는 옛날과 다르다. 먹고살 것이 부족해서 생존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죽자 살자 일만 하자는 산업사회 시절의 헝그리 정신도 아니다. 공장경제 시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가 왔는데, 그 뒤바뀐 세상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생존을 위협한다.

세상은 혁신경제 시대로 변했는데도 한국기업은 여전히 공장경제 시절 제조업체 마인드로 뒤처진 기술발전을 메우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이려 한다. 세계화를 더 발전시키고 지식경제를 더 활성화시키려 노력하지 않는다. 단기실적을 여전히 신성시한다. 기업 순익이 중요하지 않고 표면에 드러나는 매출 크기만 중요하니 몸집이 크면 무조건 좋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창조경제를 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니 애꿎은 직원들에게 창의적인 사람이 되라고 윽박지른다. 조직 안에서 한 명의 직원은 여전히 일개 부품일 뿐이라서 그렇다.

개인은 어떤가? 아직도 직장인은 위계질서 조직에서 부품 역할을 충실히 해내면 시장에서 정해진 월급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대학을 나오고, 입사시험을 통과하고, 토익점수를 높이고, 승진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월급은 요지부동의 전리품이라 착각한다. 개인이 실제로 생산해내는 결과물의 경제적 가치는 모른다. 관심이 없다. 개인은 산업경제의 부품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고시문화다. 시험으로 사람의 능력을 재단해놓고 거대한 공장경제의 부품으로 끼워 맞춘다. 한번 끼워 맞춰진 직업은 영원하다. 때로 직업은 사회계급이 된다. 산업사회 정중앙을 통과하면서 이러한 직업 인식은 통했다. 사람마다의 차별성이나 개별성이 중요치 않았다. 표준화된 지식의 틀이 더 중요했다. 시절이 뒤바뀌었는데도 살아가는 방법은 그대로니 우리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쟁력 - 도대체 직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더 이상 개인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예전에는 국가와 기업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그 결과로 직장인이 잘살게 되는 것이 경제성장 공식이었다. 그러나 그 공식은 무너지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을 탈동조화(De-Coupling)라 부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전의 공식이 여전히 작동한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기 얼마 전, 오바마 대통령은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털리스트 존 도어의 자택에서 IT 테크놀로지 기업 리더들과 저녁을 했다. 구글의 에릭 슈밋,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등 쟁쟁한 미국의 기업 리더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루어진 오바마와 잡스 사이의 대화는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오바마가 잡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 수 있나요?” 잡스는 딱 잘라 답했다. “그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아요.” 상당히 확정적인 어투였다. 이 일화는 2012년 1월 22일 《뉴욕타임스》에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었는가’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아이폰 1대당 원가를 보면, 중국의 팍스콘(Faxconn)의 조립비는 4%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96%의 부품원가는 한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선진국 몇 나라에 흩어져 있다. 예컨대 일본의 DRAM이 5%, 한국의 프로세서가 9% 등이다. 여기에는 2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단순 조립의 일자리가 미국으로 돌아온다 해도 오바마가 원하는 큰 규모의 일자리 창출은 없다는 점이다. 둘째, 얽히고설킨 동아시아 부품공급망은 1980년대부터 탄탄히 쌓아온 최고의 원가경쟁력을 지녔기에 미국이 갑자기 그것을 빼앗아 올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배경 지식을 잘 알지 못하면 오바마처럼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면 일자리가 돌아온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미국 기업들이 자국민에게 일자리를 줄 필요도, 그럴 의무도 없다. 미국 기업의 의무는 투자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지 특정 국가에서 대규모 고용을 창출해내는 것이 아니다.

세계경제는 단일화되었고, 그 단일 경제권 안에서 국가 장벽은 무너졌다. 2012년 기준으로 전 세계 총생산의 36%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보고도 있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에 따르면 이 ‘연결’ 규모는 2025년 즈음에는 50% 정도까지 이를 것이다. 특히 자본에는 국적이 없어졌다. 중국 최대(나아가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상거래 회사 알리바바가 2014년 9월 19일 미국 증시에 상장되었다. 미국 자본을 유치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알리바바의 최대 주주 중 하나는 일본의 소프트뱅크다. 이럴 경우 누가 주인인가? 한편 소프트뱅크는 야후 재팬의 주인이다. 소프트뱅크는 2013년 미국의 최대 통신사 중 하나인 스프린트(Sprint)를 인수했다. 자, 그렇다면 소프트뱅크가 버는 돈의 국적은 어디인가? 영국의 자존심인 재규어와 랜드로버의 주인은 인도 회사 타타그룹이다. 현재 한국증시 전체의 30% 이상이 외국인 지분이고, 삼성 주식의 절반 이상을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한국경제가 한국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한국기업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한국은 무역부문에서 세계 7위로 ‘세계와의 연결’이 활발하다. 40년 넘게 공장경제가 치열한 노력을 한 끝이 이루어낸 ‘무역대국’의 결과다. 2000년대까지는 그 연결의 힘으로 직장인이 그럭저럭 먹고살았지만 최근에는 탈동조화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많은 기업이 이미 생산기지와 판매망을 전 세계로 다변화했다. 돈을 벌어도 굳이 한국 안에 일자리를 늘릴 이유가 없다. 이제 국가나 기업의 성공이 더 이상 개인 소득을 보장하지 않는다. 국가와 기업이 ‘나’를 보호해준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경제력의 부익부 빈익빈 시대: 인간과 경쟁하는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직업은 수요가 폭발적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의 창조적 사업이 경쟁적으로 벌어지는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연봉이 1억 원이 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년 전에는 구글에서 페이스북으로 전직하려는 직원에게 35억 원가량의 주식을 주기도 했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기존 거대 IT기업뿐 아니라 신생기업도 억대 연봉을 주지 않으면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를 구하기 힘들다. 그러니 실리콘밸리는 세계 각국 최고의 엔지니어에게 문호가 개방되어 있다. 이 기업들은 더 많은 비자를 허용해 달라고 미국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리더 기업들 간의 전쟁도 치열하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임정욱 센터장이 전하는 사례는 매우 흥미롭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한국의 대학생에게 구글과 페이스북에서 동시에 채용 제안이 들어왔다. 경쟁에 밀리기 싫었던 페이스북에서는 COO 쉐릴 샌드버그와의 전화 면접을 제안했고, 그 결과 그 학생은 한국 현지에서 미국 페이스북 본사에 채용되었다.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다. 중국의 대표적 IT기업들도 국제적 인재전쟁의 한복판에 있다. 샤오미는 구글에서 안드로이드 제품관리를 이끌던 휴고 바라를 영입했고, 통신기업 화웨이도 노키아와 에릭슨 같은 다국적기업에서 임원을 헤드헌팅했다. 이런 식으로 최고의 인재를 최고의 기업이 국적과 상관없이 빨아들일 경우 한국처럼 인재의 의미도 잘 모르는 국가에서는 인재 공동화 현상이 올 것이다. 한편 기계가 대체할 수 없고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직종 역시 현재에도, 미래에도 수요가 크다. 디자인 영역이 좋은 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실력 있는 디자이너를 학벌과 국적에 상관없이 경쟁적으로 모셔간다.

실리콘밸리, 중국, IT기업뿐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채용을 늘리지 않고 구조조정까지 하는 많은 글로벌기업은 여전히 임원급 인재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단일화된 세계경제와 정보의 폭발, 급변하는 경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고위급 글로벌 경영진은 불황이냐 활황이냐와 상관없이 언제나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친다.

따라서 인재의 변별성이 커졌다. 값싼 임금이 필요하면 인도와 동남아로 가면 되고, 자동화할 수 있는 행정업무가 있으면 소프트웨어로 대체하면 된다. 결국 선진국에는 중산층 직업이라 여겼던 단순 행정업무는 사라지는 반면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창의성, 글로벌 경험이 있는 인재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그들 없이는 기업 혁신이 안 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직장인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이 기업 이전에 개인의 경쟁력이 우선이라는 명제가 된 이유다. 이 위기와 기회의 시절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세계는 좁고 할 일은 없다: 지금 당신의 직업과 동일한 직업이 뉴욕, 런던, 실리콘밸리, 파리, 암스테르담에 있다고 가정해보라. 그 사람들과 직접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지금 당장 그 도시로 가서 그 일을 하면서 같은 월급을 받아낼 자신이 있는가? 이 질문이 글로벌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질문이어야 한다. 거꾸로, 지금 하는 업무를 인도, 베트남 등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외국인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보라. 지금 당장은 이민이 까다로운 한국이지만 외국인과 당신이 오로지 능력 대 능력으로 경쟁해서 그보다 우위에 있다는 자신이 없다면 언젠가 당신의 직업은 사라진다.

우선 당신이 받은 한국식 대학교육의 질에 의문을 품어라.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높지만 교육의 품질은 해외 대학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 학벌을 위한 대학교육, 공장경제에 적합한 암기교육이 아니라 창조성을 배우는 대학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슬프지만 당신이 스스로 배워야 한다. 양자택일의 문제다. 당신은 공장경제의 부품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지식경제 시대의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글로벌 마인드가 후진적임을 깨달아라. 한국 인재에게 단연 뒤처지는 항목은 개방성이다. 60개 나라 가운데 최하위권의 점수를 나타냈다. 같은 아시아권이지만 싱가포르와 홍콩은 개방성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작은 도시국가로서의 생존을 위해 외국인 이민과 외국자본 유입에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이 조사결과만 보아도 혈통주의에 집착하고 쇄국적인 문화를 즐기는 한국 기성세대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 이제 세계는 좁고 할 일은 없다. 세계경제는 단일화되었고, 고연봉 직업은 귀해졌다. 경력은 당신의 선택이지만 그 결과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귀를 쫑긋 세우고 한국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야 한다. 그 속에서 당신의 경쟁력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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