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의 노란 화살표
송진구 지음 | 책이있는마을
산티아고의 노란 화살표
송진구 지음
책이있는마을 / 2015년 8월 / 328쪽 / 15,000원
굴레에서 떠나라, 그래야 보인다
저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프랑스 국경이 끝나고 스페인 국경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의 길)를 걸으면서 이것이 꼭 인생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 산티아고를 걸었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여행길 완주에 원칙이 있듯 인생길 완주에도 원칙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인생길 완주의 9가지 원칙’입니다. 그중 하나가 ‘떠남’입니다.
일단 떠나라
현실에서 얻지 못해 답답한 게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는 일단 떠나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떠나고 싶어도 떠나기가 쉽지 않은 게 우리 현실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순례길 도중에 참으로 대단한 가족을 만났습니다. 5명의 꼬마자녀를 둔 젊은 독일인 부부였습니다. 그중 막내는 코흘리개 꼬마였습니다. 아빠는 조그마한 특수 리어카에 이 대가족의 짐을 싣고 큰아들과 앞장서서 언덕길을 힘겹게 오릅니다. 이 독일인 가족은 5년 계획으로 1년에 2주씩 800km의 순례길을 나눠 걷고 있으며 이번에는 완주가 목표라 했습니다. 혼자도 걷기 힘든 길을 7명이 함께 도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부부는 여러 가지 제약을 물리치고 떠났기에 이제 산티아고를 눈앞에 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애가 5명이 있다고 하면 이 길을 떠날 수 있을까요? 엄두도 못 낼 겁니다.
현실에 있으면 현실밖에 보지 못합니다. 현실에서 얻지 못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일단 떠나야 합니다. 제가 연합뉴스에서 5부작 다큐멘터리 촬영을 제안받았을 때 느낀 걱정과 두려움은 한 달을 어떻게 비우냐, 학교 휴강, 방송 한 달간 펑크, 강의 못 하는 데서 오는 금전적인 손실, 과연 800km를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우려들이었습니다. 걷기 싫어하고 기껏해야 골프 라운드 할 때 걷는 것이 전부인데, 매일 하루에 7~9시간 동안 25~35km를 어떻게 걸을 것인가, 더구나 배낭을 메고 걸으니 발가락 물집, 부상 등의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 떠났고 떠났기 때문에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거나, 학교를 휴학하고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생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떠나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쁜 일 정도가 아니라 생업을 접고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했듯이 그들은 분명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통하여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떠남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꼭 산티아고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제주 올레길일 수도 있고, 백두대간 종주일 수도 있고, 해변을 따라 걷는 길일 수도 있으며,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행일 수도 있습니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순례길 중간에는 순례자의 무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순례길을 걷다가 죽은 사람들을 묻은 무덤입니다. 중세 수도승들이 만나면 하는 인사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절대묵언을 지켜야만 하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에게 허용된 단 한 가지의 말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였다고 합니다. 메멘토 모리의 뜻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입니다. 그런데 과거 로마의 전쟁영웅이 개선행진을 할 때 반드시 외쳐야 했던 말도 메멘토 모리였습니다.
저는 순례길을 걸으면서 끊임없이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 것인가? 이렇게 죽음과 관련된 자료를 찾던 중에 놀라운 자료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1907년 미국 메사추세츠 병원의 의사 던컬 맥두걸은 놀라운 실험에 착수했습니다. “영혼의 무게를 재보자!” 임종 직전 환자 다섯 명이 숨을 거둘 때까지 약 4시간 동안 체중변화를 기록한 결과, 다섯 명의 환자가 모두 사망한 그 순간 약 21~24g의 체중이 감소했다고 합니다. 100년 후 스웨덴의 한 연구팀이 컴퓨터 제어장치로 그 실험의 진위를 검증해 본 결과, 역시나 임종 시 환자의 체중이 21.26214g 감소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버린다면 그 순간, 무엇이 가장 후회될까요? 그렇습니다. 왜 좀 더 열심히 살지 못했나,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일하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상의 잡다한 일들, 번잡한 일들의 성가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내일을 기대하고 희망을 품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아름다운 일이나 단순한 희망만으로 오늘을 소일하는 것은 내 인생에 대한 지능적인 자기기만입니다.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비움
비워야 가벼워진다
30일 동안 800km를 걸어야 하는 험하고 먼 순례길이니까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저는 온갖 것을 배낭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바라바리 짊어지고 간 배낭 때문에 ‘이러다간 내가 죽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무게에 눌려 목적지에 닿지도 못하고 중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배낭에 지고 간 물건들을 하나둘 내려놓기 시작합니다. 화장품, 미숫가루, 육포, 초콜릿, 고추장, 책, 노트를 버립니다. 이 길은 비우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등산양말을 신어보았는데 두껍고 길더군요. 조금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고 등산양말의 발목부분을 잘라서 버렸습니다.
배낭은 가벼워야 합니다. 무거운 배낭으로는 멀리 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배낭을 가볍게 할까요? 비워야 합니다. 비워야 가볍습니다. 가벼운 배낭이라면 멀리 가는 데 편안합니다. 배낭에 담아 가고 있다고 해서 모두 다 내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버려질 물건이고,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고 가지만 끝에 가보면 쓰지 못하는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쓰지 못하는 물건을 배낭에 메고 무너져 내리는 어깨로 800km를 걷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지금은 내 손안에 있는 재물도, 영화도 내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갑니다. 목숨 걸고 사랑했던 사람도 떠나가고, 너 없으면 못 살겠다 죽어라 매달렸던 사람도 떠나갑니다. 지금 잠시 내게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잠시 후면 구름처럼 바람처럼 사라져버릴 신기루를 영원히 내 것으로 품으려고 애달프게 노력해봐야 헛고생입니다. 어차피 떠나갈 사람을 잡으려 보냈던 그 세월이 얼마나 허망한 시간이었을까요. 결국은 내 것이 아니었던 것,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아등바등했던 노력이 얼마나 무상했을까요.
용서도 비워야 한다
페르돈, 용서의 언덕에 오르는 날입니다. 오르기가 힘들어서 일명 깔딱 고개라고도 합니다. 힘들게 오른 정상에는 순례자들을 형상화한 조형물들이 있고, 하얀색의 풍력발전기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르면 순례자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피레네 봉오리, 수많은 강과 언덕 등을 보게 됩니다. 페르돈은 용서의 언덕입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용서하는 언덕입니다. 저는 이 언덕에 올라서서 누군가를 용서하기 전에 제가 용서를 빌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지은 죄에 대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여기에서 소개할 분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동행할 멘티들을 정하기 위해 연합뉴스에서 공모를 시행했습니다. 각자의 사연을 적은 편지와 인터뷰를 통해 4명이 선발되었는데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 멘티 중 한 분이 신경순 씨입니다.
비우는 건 내려놓는 것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 가장 높은 해발 1,500m의 산을 오르는 날입니다. 이 산의 정상에는 그 유명한 철 십자가가 있습니다. 돛단배 기둥 모양의 철로 만든 십자가입니다. 순례자들은 천 년 전부터 이 길을 걸으면서 야고보를 추모하고 순례자의 안녕을 빌면서 돌을 하나씩 올려놓았는데 지금은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들은 자신이 소중하게 갖고 온 것들을 철 십자가에 매달거나 주변에 올려놓습니다.
철 십자가 앞에 서자 누구보다 씩씩했던 신경순 씨가 비통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산티아고 여정에 참여한 것도 범인을 향한 증오와 원망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딸과 함께 이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마음 아파 자주 꺼내보지도 못하는 딸아이의 사진은 스물다섯 나이에 멈춰 있습니다. 보름 동안 함께 걸었던 아이를 이곳에서 놓아주려 합니다. 강도를 당해 딸을 잃은 신경순 씨도 예쁘고 귀여운 딸의 사진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철의 십자가에 묶어놓고 통곡을 합니다.
저도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작진도 울었습니다. 카메라 감독도 우느라고 촬영을 놓칠 정도였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도 모두 함께 울었습니다. ‘딸을 잃은 아픔이 얼마나 크고 깊을까.’ 저는 30일 내내 울었습니다. 신경순 씨는 피를 토하듯 얘기하면서 울고, 저는 들으면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30일을 울었습니다. 이번 여정에서 제 미션은 그 아픔을 내려놓고 치유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깊고도 쓰린 아픔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 내려놓게 도와드릴 수는 있을까요.
여정 중 4명의 멘티들에게 첫 번째 특강을 했습니다. 제목은 ‘내려놓기’입니다. 대상은 딸을 잃은 신경순 씨였습니다. 상처를 내려놓고 보는 방법을 강의했습니다.
“마음의 구성은 증오 + 사랑 = 100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로섬이죠. 범인을 증오하는 마음이 100이면 내 딸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0이 되는 셈이죠. 어머님이 범인을 증오하는 마음이 지금처럼 100이면 딸을 품을 마음의 공간은 0이라는 것입니다. 왜 범인을 증오하죠?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내 딸을 죽였기 때문이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습니다만, 따님인 을아 양은 하늘에서 이렇게 증오와 저주의 마음만 가득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따님이 들어올 마음의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범인을 용서하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어떤 부모도 그런 짐승만도 못한 범인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단지 따님이 들어올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열어두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공간을 남겨놓으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공간을 남겨놓지 않으면 따님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내려놓고 보세요. 범인을 작은 벌레처럼 생각하세요. 작은 벌레 같은 범인을 바닥에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그 위에 유리컵을 뒤집어 덮어서 그 컵 속에 가두어 버리세요. 내 마음에서 내려놓았지만 용서한 것도 아니고, 잃어버린 것도 아닙니다. 단지 내려놓고 보는 겁니다. 마음은 한결 가벼울 것입니다. 공간의 여유가 생겼죠? 그 공간 속으로 따님이 들어올 것입니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습니다. 비우지 않으면 멀리 갈 수 없습니다. 어머니나 저나 산티아고 순례길 출발할 때를 생각해보세요. 30일 동안 800km의 먼 길을 가야 하니까 바리바리 싸 들고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중간에 모두 버리고 왔잖아요? 저는 양말도 반으로 잘랐잖아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들고 왔지만 버리지 않으면 완주할 수 없으니까 하나씩 둘씩 모두 버리고 왔잖아요?
마음도 똑같습니다. 비우지 않으면 그 무거운 무게 때문에 멀리 갈 수 없습니다. 산티아고까지 가기 전에 탈진하고 말 겁니다. 비우지 않으면 이미 차 있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범인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마음에는 따님이 들어올 공간이 없습니다. 마음의 공간을 비워놔야 가장 사랑하는 따님이 그곳으로 들어와서 함께 머물 수 있는 겁니다. 범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따님과 어머니를 위해 마음을 비우라는 것입니다.”
저는 800km의 순례길을 걸으면서 가능하면 신경순 씨와 함께 걸었습니다. 매일 약 25~35km를 걸으면서 그분은 자신이 살아온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토해내며 걸었습니다. 그분은 토해내면서 울고, 저는 들으면서 울었습니다. 30일 내내 울지 않을 수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흘린 눈물보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흘린 눈물이 훨씬 많았습니다. 신경순 씨도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많고 깊은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아마 언젠가는, 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나기 전에는 천천히 내려놓기를 시작할 것입니다. 내려놓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미리 보고 염려하지 않기 - 멀리 보지 마라
등산에서, 멀리 보면 힘들어진다
동트기 전에 랜턴을 켜고 출발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날 하루 갈 길이 정해집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동이 트면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떤 날은 거대한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고, 어떤 날은 수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출발부터 기가 팍 질리고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 산을 넘고, 저 지평선을 지나야 빵을 먹고 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 부상당한 발가락과 발목은 더욱 부어오릅니다. 힘든 하루를 걷고 있을 때 삼성경제연구소 정영화 수석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긴 여정의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절대로 멀리 보지 말아라’입니다 일정이 마무리될 10월 말은 안 올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하루하루, 10분, 1미터 앞만 생각하고 묵묵히 걸으세요. 죄지어 지옥에 떨어진 죄인처럼 영원히 그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생각하며 순간순간을 견디다 보면 언젠간 끝이 있겠지 뭐~^^ 자~^^ 이 대목에서 끝까지 파이팅! - 송 교수의 건투와 Dream의 실현을 응원하고 있는 정영화 배상
등산을 좋아하는 선배가 터득한 것은 산을 올라갈 때 힘들면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걷기가 편안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먼 길은 멀리 보면 가기 힘듭니다. 완주하기 힘들죠. 걸어온 것보다 더 많은 거리가 남아 있기 때문에 멀리 보면 안 됩니다. 바로 발 앞을 보고 한 걸음씩 발을 옮겨야 합니다. 멀리 보면 오르기도 전에 지칩니다.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열 걸음을 걸었으면, 목적지에는 그만큼 가까워진 것입니다. 백 걸음을 걸었으면 역시 그만큼 가까워진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 답이 있습니다
미국 나사는 우주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볼펜을 개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연구원들은 수차례 회의를 통해서 과학적인 원리를 연구하고 어떻게 하면 무중력 상태에서 잉크가 흘러내리지 않고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토론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수개월의 시간과 1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됐습니다. 당시 미국은 러시아와 한창 우주를 둘러싼 경쟁을 하고 있는 상태라 러시아에서 만든 볼펜이 궁금했습니다.
한번은 우주에서 러시아 우주인과 미국 우주인이 도킹을 하는 이벤트가 거행됐습니다. 나사에서는 러시아 우주인들이 어떤 볼펜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답신이 왔습니다. “러시아 인들은 연필을 쓰고 있습니다.”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때로는 멀리 보지 말고 가까이 봐야 합니다.
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전에는 강의하면서 ‘멀리 보지 마라’라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멀리 크게 보고, 도전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멈추지 마라’라고 강의해 왔습니다. 그런데 순례길을 다녀와서 보니 멀리 보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