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의 힘
제임스 알투처, 클라우디아 알투처 지음 | 홍익출판사
거절의 힘
제임스 알투처, 클라우디아 알투처 지음
홍익출판사 / 2015년 5월 / 248쪽 / 13,800원
Part 1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면 거절하라
삶을 긍정하게 하는 거절의 힘
<제임스의 글> 전처와 이혼한 후 처음 만난 여자는 만난 지 30분도 안 돼 내 소득이 얼마인지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고, 그녀는 “많지는 않네요”라고 했다. 그후 3개월 정도 교제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여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당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어요. 시간이 필요해요, 꽤 많이요.” 그 여자가 그만 만나자고 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헤어졌을 것이다. 당시 모든 것이 내게서 떨어져나가고 있었다. 가족, 직장, 집, 돈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인생의 기회들……. 그때 나는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동안 고수해온 삶의 방식에 거부의 뜻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년 동안 잘못된 것에도 ‘예’라고 말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내 삶을 제대로 작동시키려면 잘못된 것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옳지 않은 일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거절 의사를 밝히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모르는 선택을 요구당하면 분명히 거부하고 나 자신의 마음을 따랐다.
수프에 불순물이 들어 있다면, 아무리 많은 물을 들이붓거나 향신료를 뿌려대도 소용이 없다. 수프 속에는 여전히 불순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간단하다.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수프를 새로 만들면 된다. 나는 그렇게 했다. 내 삶에 낀 불순물을 제거하려고 내 삶을 통째로 바꾸는 작업에 매달렸다. 그렇게 반년을 살고 보니 내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돌아보면, 원치 않는 일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뒤로 그러한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지금의 아내 클라우디아를 만난 것, 예전의 나처럼 부정적인 생각에 발목이 묶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인터넷 팟캐스트를 비롯한 SNS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 책을 펴낸 것 등등 지금 나를 에워싼 변화는 놀랄 만하다.
때로 나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삶의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던 내게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거절하기 시작하면 날마다 긍정의 대답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마치 은행 예금에 이자가 늘어나는 것과 같다. 내가 이렇게 강조해도, 특별한 사정 때문에 거절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전에 만난 그 여자가 내 소득을 물었을 때, 나는 당장 거부의 뜻을 나타내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 했다. 그랬으면 내 인생의 소중한 석 달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은 쉬워도 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그때는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아니요’라고 말하는 용기가 억지로 ‘예’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편안한 내일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안다. 그만큼 자유롭다. 거절의 힘이 가져다준 마음의 평화가 삶을 윤택하게 한다. 예전에는 불순물이 든 수프를 누군가 억지로 떠먹여 주었다면, 지금은 내가 직접 수프를 만들어 먹게 된 셈이다.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제임스의 글> 내가 설립한 첫 번째 회사가 거액에 매각되었을 때의 짜릿한 희열은 얼마 안 가 인생 최대의 악몽이 되고 말았다. 2000년대 초, 나는 미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을 상대로 웹사이트를 제작하는 사업을 벌여 재미를 보았다. 타임워너, HBO, 소니, 디즈니 등 굵직한 회사들이 모두 내 파트너였다. 평생 만져보지 못한 거금이 손에 들어오자, 나는 쾌재를 불렀다. 수백만 달러짜리 아파트를 구입해 리모델링을 하고, 비싼 미술품을 사들여 집을 꾸몄다. 그때부터 나는 이 회사, 저 기업에 수십만 달러씩 마구잡이로 주식 투자를 했다.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려고 도박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회사를 새로 만들어 많은 직원을 채용하고, 그들을 위한답시고 최고급 사무용품을 사들이며 갑부 흉내를 냈다. 문제는, 그러면서 마약 중독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삶이 거침없이 추락하는데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돈을 잃을수록 그리고 희망이 사라질수록, 예전의 잘나가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당장 1억 달러를 손에 넣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모든 것을 탕진하자,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도 죄다 떠나버렸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은행 잔고가 143달러뿐인 빈털터리가 되어있었다. 나를 위로하는 사람도 없었고, 희망을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실의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안 된다고 거절했고, 그것이 그분과의 마지막 통화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여섯 달 후에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명상을 시작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었고, 체중이 10킬로그램 넘게 빠졌다. 부끄럽고 두려워서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매일 울기만 했다. 빚더미에 눌린 우리 가족은 뉴욕에서 북쪽으로 130킬로미터 떨어진 소도시로 이사했다. 사람들의 시선과 손가락질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도 석 달이나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다시 10킬로그램이 빠졌다.
이대로 죽거나, 다시 일어나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그렇게 삶의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을 때 돌연 깨달음이 왔다. 더는 잃을 게 없으므로 더 불행해질 일도 없다는 자각이었다. 그래, 방바닥에 누워 하늘을 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일어나야 한다. 나는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건강한 삶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기초 근육을 키우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신체, 감정, 정신, 영혼, 모든 면에서 단단한 근육을 키워야 했다. 나 자신을 건강하게 단련하는 일은 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Part 2 주변의 쓸데없는 사람을 거절하라
훼방꾼들에게 큰 소리로 ‘아니요’라고 말하라
<클라우디아의 글> 2002년 가을, 나는 팀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때 나는 한껏 들떠서 구름 위 정원이라도 거니는 기분이었다. 팀은 내가 어려서부터 선망했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피아노 연주자이면서 재치 있는 말솜씨와 다감한 성격, 잘생긴 외모까지 갖추었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팀을 사랑했다. 이런 것을 정신분석에서는 투사(投射)라고 한다. 그러나 로맨틱한 관계에 빠지면 자신의 그런 무의식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팀은 재능을 발휘해 돈도 잘 벌었고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으며 즐겁게 살았다. 반면에 나는 좋아하지도 않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도 없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살고 있었다. 새로운 삶을 만들어나가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렵고, 그 두려움 속에 재능이고 뭐고 깊숙이 파묻혀 있었다. 돈도 별로 없었다. 두 번째로 데이트하던 날, 팀은 나를 자기 스튜디오로 데려가 프란츠 리스트의 가장 낭만적인 곡 ‘사랑의 꿈’을 연주해주었다. 팀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감전이라도 된 것 같았다. 턱이 덜덜 떨리고 동시에 두 눈이 감겼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내 남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단 두 번 만났을 뿐인데도 그와 결혼을 꿈꾸게 된 나를, 그는 자연스럽게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만남 이후 팀한테서 소식이 뚝 끊겼다. 바빠서일 테지, 아니면 부끄러워서 연락하지 못하는 것이려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팀의 전화를 다시 받은 것은 무려 여섯 달 만이었다. 그는 바빠서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며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가 침대로 나를 데려갈 때,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세 번째 만남 이후 그는 다시 소식 없는 남자가 되었다. 궁금해서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지만 수신음만 울릴 뿐이었다. 그래, 바빠서 그럴 테지. 어쩌면 내일쯤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릴지도 몰라. 희미한 희망에 기대에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고 다시 석 달 만에 팀한테서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친구를 만나 팀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팀이 너를 사로잡았다고? 천만의 말씀! 네가 그 사람한테 가서 스스로 구속된 거야. 너 그 사람한테 ‘아니요’라고 해본 적 있어? 그 사람의 제안이나 유혹을 거절해본 적 있냐고. 네 의견을 한 번도 내세우지 못하고 끌려 다니기만 하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걸?” 하지만 친구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팀과 데이트를 나갔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다정하게 식사를 하고 그가 건네주는 꽃다발의 향기를 맡았다. 그가 앞으로의 약속에 대해 암시하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그날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나는 팀에게 나의 생살여탈권을 맡기고 있었다. 아니면 최소한 내 자존감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말이다. 그날 밤 나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스스로 알면서도 무너졌기에 나는 결코 희생자가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 나 자신에게 상처를 준 완벽한 가해자였다.
다음 날 기분이 비참했다. 나는 팀과의 관계를 끝내고 싶었다. 팀에게서 빠져나오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상처를 받은 탓도 있지만 진정한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진정한 사랑을 원했다. 동반자를, 친구를,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사람이자 내가 진정으로 사랑할 사람을. 버림받으면 새로운 삶을 찾아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나는 마침내 정신을 차렸고, 해야 할 일을 알았다. 그때 팀한테서 전화가 왔다. “안녕, 팀. 무슨 일이야?” 나는 떨리는 것을 참고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 우리 사이에 사랑하는 일 말고 다른 일이 있던가?” 그는 웃음 띤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지만, 나는 그가 던진 미끼를 물지 않았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또박또박 말했다. “팀, 지난번에 당신과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고 했을 텐데. 내 말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있어?” 그는 내 말뜻을 이해했다. 우리는 지난 두 해 동안 딱 네 번 만났다. 팀은 뭔가 변명을 하려고 했다. “들어봐,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냐면…….” 내 쪽에서 ‘아니요’라고 말해야 할 순간이 왔다. 이때가 바로 자존감을 되찾을 기회다. 또한 기운도 회복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의욕도 되찾을 순간이다. 내 안에 있는 힘을 확인하고 내가 훌륭한 존재라는 정체성을 나타낼 순간인 것이다. “그만 끊을게. 이제 안녕.” 나는 휴대전화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가슴이 뛰었지만 이상하게도 후련했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 꽁꽁 묶였던 족쇄에서 풀려나는 기분이었다.
의미 없는 인간관계로 당신의 진을 빼는 사람들, 당신을 울타리 안에 가두고 통제하려는 사람들, 당신을 바보로 만들려는 사람들, 당신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예’라고 말해버리면, 자기 안에 있는 풍부한 재능을 발휘할 수 없는 법이다.
‘아니요’란 이런 것이다. 신도 이를 용인하며 “이제 너 자신의 불을 밝혀라. 한번 해 보려무나, 내 딸아!” 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집착과 망상의 잿더미 속에서 불사조처럼 솟아오른 ‘아니요’였다. 성적 에너지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관계, 예술, 아기 등 모든 형태의 삶을 창조할 수 있게 해 주는 ‘아니요’이자, 내 인생이 싸구려 드라마로 전락하는 상황을 거부하는 ‘아니요’인 것이다.
Part 3 강요당하는 일을 거절하라
원하지 않는 일에 ‘아니요’라고 말하라
<제임스의 글> 거절과 관련하여 한 가지 중요한 규칙이 있다. 규칙: 당신이 원치 않는 일이라면 하지 마라. 물론 당신이 이 규칙을 꼭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 당신은 자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당신이 가까운 사람에게서 어떤 부탁을 받았다고 하자.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 일을 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그것을 부탁한 사람에게 결국 억하심정을 품게 될 것이다. 탐탁지 않은 기분은 점점 더 부풀어 오른다. 친절을 베풀려고 한 당신의 행동이 당신을 화나게 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그런 일은 하지 마라.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령,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괜찮다. 가지 마라. 까짓것 안가도 된다. 다른 사람들은 학교에 가서 사회가 요구하는 똑같은 유니폼 입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라고 하라. 당신은 뭔가 다른 일을 하면 된다. 모험을 하고, 당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창조하고, 당신만의 스토리를 만들면 된다.
누군가는 외친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어!” 좋다. 그런데 혹시 그 이유가 가족 때문인가? 가족은 우리가 지상에서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일 것이다. 핏줄로 이어진 가족이라 해도 살다 보면 깨지는 일이 종종 있다. 가족과 관련된 문제는 쉽지 않다. 우리는 형제, 자매, 부모, 배우자와 많은 시간을 부대끼며 살아간다. 따라서 가족은 우리가 ‘아니요’라고 말할 첫 연습 대상이다. 여기서 ‘아니요’는 적극적인 ‘아니요’로서, 다른 사람들이 내게 강요하는 것을 거부하는 ‘아니요’다. 가족들에게 ‘아니요’라고 말하는 방법을 터득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새롭고 돈독한 관계를 꾸려나가면 가족 간의 유대는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을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가족, 친구, 동료, 직장 상사 등은 당신이 ‘아니요’라는 말을 못 하게 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래야 당신도 보호하고 자기들도 보호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신이 자기 부탁을 거절하면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하거나 당신을 죽이겠다고 위협할지도 모른다. 울먹이고, 당신을 조종하며, 당신을 무너뜨릴 것이다.
아직 어려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모를 때는 가족 중 유난히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저항하지 못할 수 있다. 여기서 힘은 꼭 물리적인 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 내에서의 힘은 곧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정서적인 힘이다. 정신적 폭력도 있다. 예컨대 “넌 이것을 해야 해.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니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니까 의심하지 말고 그냥 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신적 폭력이다. 정신적 폭력이 효과가 없으면 영적 폭력을 휘두르려 할 것이다. 그것이 가족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 번 ‘아니요’ 하고 한 번 ‘예’ 하라
<제임스의 글> 당신은 어떤가? 남들의 부탁을 지나치게 쉽게 받아주지는 않는가? 싫다고 거절하면 무례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또 사이가 나빠질까 봐 내키지 않는 일에도 ‘그러죠’라고 하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라. 일생을 살아가면서 당신은 한 번 ‘예’라고 말할 때마다 세 번 ‘아니요’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이 방법은 내가 첫 사업에서 고객들과 거래할 때 큰 효과를 발휘했다. 사업체를 매각할 때, 새로운 거래처를 만들거나 투자를 결정할 때도 잘 작동했다. 또한 인간관계에서도 제 기능을 발휘했다. 나는 세 번 ‘아니요’라고 하고, 한 번은 ‘예’라고 했다. 이는 꼼수가 아니다.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라고 고안한 편법도 아니다.
인생은 결코 길지 않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함께 일할 이유는 없다. 사람이 살면서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맞다. 당신에게 선택권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겐 있다. 그 이유는 내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나 자신의 조언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 조언은 건강해지기 위해 매일 훈련하고 내 선택과 결정을 뚜렷이 드러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