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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힘

가마타 미노루 지음 | 창해



1%의 힘

가마타 미노루 지음

창해 / 2015년 5월 / 218쪽 / 12,000원





1장 ‘1% 더’의 신비한 힘



불행을 행운으로 바꾸는 비결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 박사는 ‘기회를 최대한 확대시키는 사람이 행운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운이 좋은 사람은 불행한 일이 닥쳐도 크게 당황하지 않으며, 나쁜 바람이 지나가기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때로는 자신의 불행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정직하게 대면한다. 또한 불행한 일을 겪을 때도 그것의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본다. 운이 좋은 사람은 언제나 어깨에 힘을 빼고 지낸다. 그러면 우연히 찾아오는 기회를 발견하기가 쉬워진다. 직감과 본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어깨 힘을 빼는 것이 좋다. 또한 운이 좋은 사람은 새로운 경험을 선뜻 받아들인다. 아무리 힘들어도 새로운 경험을 기꺼이 반긴다. 그렇지 않으면 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100을 101로 만드는 1%는 ‘사랑의 힘’

“인간에게는 죽음과 마찬가지로 피하지 못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라임라이트 Limelight>라는 영화에서 찰리 채플린이 한 말이다. 과거에는 유명했지만, 지금은 한없이 추락해 술에 절어 사는 한 코미디언(칼베로)이 있다. 그는 자살하려는 젊은 여자 무용수(테리)를 우연히 구하게 된다. 자신의 무용을 지원하기 위해 언니가 몸을 팔았다는 사실을 안 그녀는 충격으로 발레를 그만두고, 이후 우울증으로 다리가 마비되어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자신감을 잃고 좌절하던 젊은 발레리나는 자신을 구해준 코미디언에게 빠져들고, 그의 보살핌과 격려 속에 재기한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그녀 곁을 떠난다. 몇 년 뒤, 발레리나로 대성공을 거둔 여자는 떠돌이 악사가 된 남자를 만나 자선공연을 한다. 환호와 갈채를 뒤로한 채 남자는 여자가 라임라이트를 받으며 춤추는 동안 숨을 거둔다.

이 영화에서 칼베로 역을 맡은 찰리 채플린의 대사처럼, 인간에게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살아가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나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모든 환자들에게 회복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음을 믿게 되었다. 내일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치료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삶을 함부로 내던져서는 안 된다. 나에게 외래 진료를 받는 환자 가운데, 간암이 계속 재발되는 속에서도 10년 이상 건강하게 살아가는 분이 있다. 드물지만 그런 일도 분명 존재한다. 전이되었다고 해서 이제 끝이라는 말은 타당하지 않다. 암이 원격전이를 보이고 있음에도, 암세포가 자연스럽게 줄어든 사례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감염증에 걸려 백혈구가 늘어나고 면역력이 높아짐으로써 기회가 생긴다. 그래서 어떤 면역학자는 ‘전이는 치료의 기회’라고 말하기도 한다. 종양의 원래 발생 지점에서 암세포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친다. 전이는 위험하지만, 한편으로 재생의 기회이기도 하다. 암 치료 중에 ‘실존적 전환’이 일어나면 신기한 일이 생겨나기도 한다. 사회적 헌신이나 생활태도를 바꾸는 상황이 기회를 만들어낸다. 나는 과거 일본실존심신요법연구회라는 곳에서 이사로 활동했다. 그때 ‘실존적 전환’이란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의료 가운데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다른 병원에서 “이제 더 이상 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차갑게 통보받은 환자와 삶의 의미, 보람, 목표를 찾아가며 ‘1% 더’ 매진하는 의료를 실천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간의 삶이란 정말 대단하다. 지금까지 나는 수많은 삶과 죽음에 관여하며 살아왔다.

73세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등이 당긴다며 외래로 나를 찾아왔다. 혈액 검사와 초음파 검사, CT 검사를 했다. 후복막에서 종양이 발견되었다. 췌장암이었다. 이미 임파선에도 전이되어 있었다. 그는 서서히 체중이 줄어들었다. 환자 본인 및 상냥했던 부인과 몇 번이나 치료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는 도쿄에 거주하던 아들도 참여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됐어요. 수술은 하고 싶지 않아요. 항암제에 조금이나마 기대할 부분이 있다면, 고통스럽지 않은 범위에서 한 번쯤 시도해보는 건 괜찮습니다.”

이것이 할아버지의 결론이었다. 갈 길을 스스로 정한 것이다. 부인과 아들 역시 그 의견에 찬성이었다. 항암제가 약간의 효과를 보여 통증이 멈추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식사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부인은 할아버지를 정성껏 돌보았다. 아들도 주말마다 도쿄에서 왔다. 그러나 3개월 정도 지나자 다시 밥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간으로도 전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희망에 따라 완화치료 병동으로 입원했다. 그는 ‘이 정도면 충분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을 100%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주어진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다. 100을 101로 만드는 1%에 대해 그때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위중한 상황인 것은 틀림없었다. 완치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통증이 줄어들고 얼굴에 다시 미소가 어렸으나 밥은 전혀 먹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런데요, 딱 한 번만이라도 밥을 먹고 싶네요.” 옆에 있던 부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외출을 한 번만 허락해주세요. 기분전환을 하고 싶어요.” 나는 “찬성, 찬성”이라고 말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들이 바로 휴가를 내고 달려왔다. 그리하여 할아버지는 점심 무렵부터 한나절 동안 집에 머무르다 저녁 7시경 복귀했다.

병실로 찾아가니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 또각또각 소리가 참 좋았어요.” “또각또각이라뇨?” “집에서 늘 앉던 자리를 차지하고는 석양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았어요. 선생님, 해가 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지 않던가요? 온통 눈길을 빼앗겼지요. 아마도 그렇게 정원의 모습을 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였어요. 부엌에서 또각또각 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바로 아내의 도마질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를 몇십 년은 들었을 텐데, 한 번도 의식한 적이 없었어요. 집사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옆에 있던 부인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전혀 의식하지 못했죠. 하지만 남편이 집에 돌아와 기뻤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설렜답니다.”

나는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기쁠 때도 또각또각, 슬플 때도 또각또각, 화가 날 때도 또각또각 칼질을 해왔던 건 아닐까?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또각또각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동안의 삶이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쉬익’ 하며 밥이 돼가는 소리도 들려왔어요. 밥 냄새까지 얼마나 좋던지요. 그동안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았는데, 집에서는 달랐어요. 소리랑 냄새가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답니다. 그래서 먹을 수가 있었어요. 비록 반 공기도 안 되는 양이었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제 아무 미련이 없어요.”

부인과 아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는 그 순간 참으로 소중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어쩌면 죽음이 바로 옆에 다가와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지금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인간에게는 피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살아가는 일이다. 아플 때도, 절망스러울 때도, 기쁠 때도 1% 더 정성을 기울이며 살아가야 한다. 100을 넘어 1% 더 힘을 쏟는 것이다. 그래야 인생은 한층 빛이 난다. 나는 ‘1% 더’에서 인간의 진정한 이야기가 탄생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2장 단 1%로 구원받는 순간



‘1%씩’ 슬픔의 옷을 벗어가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시궁창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시인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인생이란 결코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절망 속에서, 때로는 슬픔 속에서, 때로는 더러운 시궁창 속에서 뒹구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동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네 명의 가족을 잃은 젊은 엄마가 있는데, 바로 사오리 씨이다. 재해 지역에 있던 친정어머니가 맞벌이 상태였던 사오리 씨를 위해 생후 8개월 된 아기를 친정에서 맡아주고 있었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시신은 발견되었지만, 아들 마사토와 친정어머니는 시신도 찾지 못했다. 엄청난 절망감과 슬픔이 그녀의 마음을 휘저었다. 제대로 된 이별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던 또 한 명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지즈 씨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상이 그날의 내 모습과 겹쳐져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머나먼 곳에서 일어난 참담한 현실이었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며칠 동안 오직 그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과거에 겪은 자신의 슬픔을 돌아보며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그리하여 결국 상담치료를 다시 받기 시작했다. 1995년 일본 간사이 지역에서 벌어진 한신 아와지 대지진으로 태어난 지 1년 6개월 된 아들 쇼를 잃었던 것이다.

“왜 내 아들이어야 했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자식을 잃어야 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어요. 그저 바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어딘가로 날아가 아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들을 잃은 그녀의 상처는 조금도 치유되지 못한 상태였다. 지즈 씨는 인터넷 블로그에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꾸준히 적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사오리 씨가 우연히 그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여전히 괴롭지만,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며 지즈 씨가 올린 글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지즈 씨와 사오리 씨는 직접 만났다. 그러자 무언가가 바뀌기 시작했다. “아들을 잃은 지 2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즈 씨를 보고, 저 또한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절망스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계속 슬퍼해도 괜찮다는 묘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덕분에 사오리 씨는 하루하루 살아나갈 힘을 얻었다. 누군가를 위로함으로써 지즈 씨의 슬픔 또한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두 사람은 지진이 앗아간 아들들을 추억하는 내용의 그림책을 만들기로 했다. 그녀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림책 작업은 두 사람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사연이 NHK의 아침방송 <아사이치>에 소개되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녀들의 그림책은 구원의 손길로 작용했다.

절망 속에서 빛나는 별을 찾으려 한 그녀들에게 나는 소중한 가르침을 얻었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헤어짐과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해도 된다. 드디어 만났다는 기쁨에 환호성을 질러도 된다. 싫은 게 있으면 좋은 것도 오게 마련이다. 인생은 파도와 같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 바라보기

누구나 곤란한 지경에 빠지면 무의식중에 ‘나를 지켜줘’라고 생각하는 법이다. 특히 약해져 있을 때 그런 경향이 쉽게 나타난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나 앞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아낸 사람은 심각한 병에 걸려도, 죽음의 심연 가까이 다가가도 결코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닫게 되므로 인간은 좀 더 강해진다. 나는 그런 두 소녀를 만났다.

내가 대표로 있는 ‘일본이라크 의료지원 네트워크(JIM-NET)’는 이라크 바스라에 살고 있는 한 소녀의 백혈병 치료를 계속 지원했다. 자이나브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는 소녀였는데, 상태가 호전되어 거의 관해상태(일시적이건 영속적이건 자타각적 증상이 감소한 상태)까지 왔지만 재발에 대한 불안감은 늘 존재했다.

그 아이의 집은 가난했다. 하지만 머리가 좋고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림도 썩 잘 그렸다. 우리는 여러 차례 자이나브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병원에 설립한 원내 교실의 보조교사로 일해달라고 요청했다. 병원에서 함께 일하며 백혈병에 걸린 아이들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다. 병원에서 일하면 혹시 병이 재발해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제가 아픈 아이들의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요.” 집안형편 때문에 변변한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그녀가 불안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이가 병동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됐다. 이라크에서는 백혈병에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고 알고 있었다.

이라크에는 원내 교실이라는 제도가 없었다. 우리는 돈을 모아 수학을 가르치던 이브라힘을 선생님으로 처음 고용했다. 그 역시 아내를 백혈병으로 떠나보내고 힘들어하던 시기였다. 그는 온 힘을 다해 투병 중인 아이들을 도왔다.

우여곡절 끝에 자이나브가 이브라힘의 보조교사가 되었다. 그러자 병동의 공기가 확 바뀌었다. 어머니들의 눈빛 또한 변했다. 자기 아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백혈병 병동에 새로운 희망이 번져갔다. 아이들이 햇병아리 교사인 자이나브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의 아이돌이라고나 할까? 자이나브 역시 그런 아이들에게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누군가에게 준 1%, 누군가에게 받은 1%. 겨우 남은 1%가 오갔을 뿐인데, 피가 통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자기 아이만 생각하던 어머니들이 병으로 고생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치료 효과가 개선된 것이다. 10년 전 소아의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5년 생존율이 30%였는데, JIM-NET에서 10년 동안 지원한 결과 약 60%로 개선되었다. 대단한 성과였다. 많은 의사선생님들이 테러 단체의 위협에 못 이겨 그곳을 떠나려 했지만 우리가 지원하자 계속 이라크에 남아 아픈 아이들을 돕겠다고 했다. 누군가 아주 작은 손길이라도 내밀면, 도움을 받은 사람은 온 힘을 다해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소소한 응원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순식간에 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라크 바스라에서 만난 또 다른 소녀가 있다. 사브린이라는 15세의 이 소녀는 우리의 지원으로 5년 동안 극도로 힘든 상황에서 수술과 방사선 치료 등을 받았다. 눈에서 시작된 암이 몸 전체로 전이되었다. 결국 두 눈 모두 시력을 잃게 된 이 아이는 죽어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이제 죽습니다. 그렇지만, 행복했답니다. 이곳 원내 교실에서 이브라힘 선생님과 자이나브를 만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란 걸 했습니다. 공부가 얼마나 근사한 것인지 알게 되었지요. 그림 그리기를 배웠는데, 순식간에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졌어요. 제 그림은 칭찬을 받았고, 일본으로도 건너갔습니다. 제 그림이 초콜릿 상자에 인쇄되어 일본인들이 그것을 사면, 그 수익금이 병에 걸린 아이들을 위한 약이 되어 이라크로 온다고 하더군요. 저는 죽지만, 이라크의 아픈 아이들을 도울 수 있어 기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 드립니다.”

사브린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기쁨의 환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든 마음을 조금만 바꾸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살아갈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하다 보면 신기하게 사는 것이 즐거워진다. 어린아이들의 선생님이 된 자이나브는 이제 매우 훌륭한 어른이 되었다. 강인하면서도 따뜻하고, 누구에게나 상냥하다. 이런 식으로 따뜻한 피가 통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라크에서 테러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마저 하게 된다. 전쟁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나라에서 나는 뜻밖에도 소중한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군가를 위해 살거나, 선뜻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존재이다.



3장 1%의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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