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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해내는 힘

나카무라 슈지 지음 | 비즈니스북스



끝까지 해내는 힘

나카무라 슈지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5년 5월 / 247쪽 / 13,000원





서툴러도 좋다. 나만의 방식으로 승부하라

상식 밖의 아이디어가 창조의 씨앗이 된다: 일본의 기업들은 회의를 너무 좋아해서 1년 내내 회의를 연다. 하지만 회의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라야 아무 데도 쓸모없는 상식적이고 시시한 의견뿐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상식에서 벗어난 발상을 내놓으려 하면 “자네는 무슨 당치도 않은 말을 하고 있는 겐가?” 하고 묵살당하기 일쑤다. 이것이 회의의 특징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두세 명이 참석한 회의든 열 명 이상이 모인 회의든, 회의라고 이름 붙여진 이상, 독특한 아이디어가 하나 나오면 마치 피라니아 떼처럼 여럿이 달려들어 결국에는 제대로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나온 의견들을 참고하여 다음 회의 때까지 더 검토하시오.”라며 말도 안 되는 결론으로 마무리하기 일쑤다. 이러한 회의의 실상을 파악하고 나면, 그저 회의를 무사히 마치는 데 급급해져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아이디어를 내놓게 된다. 그렇게 하여 아이디어는 이런 식으로 점점 상식화되어 간다. 하지만 상식에 얽매인 아이디어를 토대로 한 사업이 과연 크게 성장할 수 있을까? 비상식적인 아이디어야말로 발전 가능성과 큰 기회가 숨겨져 있음을 잊지 말자. 비상식적이기에 독창적이며 그렇기에 더더욱 가치가 있다. 독창성은 우선 회의에서 나온 상식적인 제안을 깨뜨리는 데서 싹이 튼다. ‘엉뚱한 발상’에 독창성의 씨앗이 숨어 있다.

성공하고 싶다면 철저히 혼자가 돼라: 독창성 있는 일을 하기 위해 한 가지 중요한 요건은, 내 경우에는 어떤 일이든 혼자 하는 것이었다. 형식적인 회의에서 아무리 회의를 거듭한들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라면 무엇을 생각하든, 무엇을 준비하든, 심지어 터무니없어 보이는 제품을 모색할지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좇지 않고 철저히 자신의 판단에 따를 수 있다. 이처럼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내는 것은 독창성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나만의 방식은 끝까지 해내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자신만의 방식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걸까? 자신만의 방식은 어떤 일을 철저하게 끝까지 해내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제품 개발과 관련해 말하자면, 묵묵히 하나의 제품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완성하는 동안 자기만의 방식이 생겨난다. 즉, 스스로 완수한 일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 속에 자기만의 방식이 감춰져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고유한 방식을 찾아내려면, 어떻게든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완성하고 반드시 실현시켜야 한다.

나는 입사 후 약 10년 동안 세 가지 제품을 완성했다. 분명 잘 팔리지는 않았지만 3~4년에 한 번은 신제품을 만든 셈이다. 이 과정에서 나만의 방식이 생겨났다. 한때는 반년 동안이나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회사는 겨우 비품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비용만 지급해 주었다. 그래서 나 혼자 여러 가지로 궁리하고 장치를 개조했다. 이때부터 나만의 방식이 확립되었다. 꾸준히 장인처럼 실험 장치를 만들었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한 가지 문제에 깊이 파고드는 나만의 방법: 나는 1954년, 에히메 현 니시우와 군 세토초오쿠보(당시는 ‘세토무라’라고 불리던 곳)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성적은 좋지는 않았다. 수학 성적은 좋았지만 역사와 지리 같은 암기 과목 성적이 형편없었다. 암기 과목에 비해 수학은 기본 공식만 외우면 그다음은 저절로 풀린다. 끝없이 깊게 파고들어가는 나만의 방식은 이때 싹텄는지도 모른다.



상상력이 없는 곳에는 지혜도 즐거움도 없다

이나모리 가즈오를 만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물리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물리 같은 걸 전공해 봤자 취직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취직하기에 유리하다는 도쿠시마 대학교 공학부를 선택했다. 그리고 대학 3학년 때 후쿠이 마스오 교수의 ‘전자물성공학’ 강의를 듣고 감명을 받았다. 이 강의를 듣고 나는 재료물성 분야라면 좋아하는 물리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재료 분야에 점점 흥미를 갖게 되었고 4학년이 되어서 취직을 할지, 공부를 계속할지 고민하던 끝에 석사 과정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사회에 나온 것은 석사 2년 과정을 마친 후였다. 이때 교세라에서 한 번 입사 내정을 받았다. 교세라를 선택한 것은 재료 분야에서 급성장하며 일본 최고의 실적을 보유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은 개인적인 이유로 입사하지 않았다.

운명을 바꾼 소중한 인연 / 니치아화학공업에 입사하다: 나는 석사 과정 1학년 때 결혼했고, 얼마 후 아이도 태어났다. 결혼 후 아내 유코는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나의 대학원 생활을 지원해 주었다. 그리고 석사 과정을 마치면서 나는 아이를 키울 환경을 우선으로 하여, 교세라에 입사하는 걸 포기하고, 다다 교수에게 소개받은 니치아화학공업(이하 니치아화학)에 입사했고, 개발과에 배속되었다.

밝은 세상을 위한 오직 한 길을 걷다 / 맨손으로 뛰어든 LED 개발: 니치아화학은 ‘공부하자. 깊이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자. 그래서 세계 최고의 상품을 만들자!’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었다. 오가와 회장은 직원들에게 이 슬로건을 반복해서 강조하면서도 연구 개발에 관해서는 직원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끔 내버려 두었다. 다만 연구 방향에 대해 오직 한 가지만을 목표로 하라고 지시했다. ‘밝은 세상을 위한 오직 한 길’, 즉 반도체와 LED 개발에 몰두하는 일이었다. 내가 입사 초기에 부여받은 연구 주제도 화합물반도체의 원료인 ‘인화갈륨(GaP)’이라는 황록색 결정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연구를 시작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예산이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적었다. 실험 장치도 없었기 때문에 직접 만들어야 했다. 공장 안에 굴러다니는 불필요한 부품을 주워서 전기로를 조립하느라 땀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또한 실험에서 사용하는 비싼 석영관을 몇 번이고 용접해서 재활용하기도 했다.



남들과 똑같은 방식과 인생에 안주하지 마라

최악의 환경에서 이루어 낸 작은 성과: 대단한 제품은 아니지만, 나는 10년 동안 세 가지 제품을 개발해 상품화에 성공했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앞서 서술한 인화갈륨의 다결정, 갈륨비소(GaAs)의 다결정과 갈륨비소의 단결정 벌크 그리고 적외와 적색 LED용의 갈륨알루미늄비소(GaAlAs) 에피택셜 웨이퍼(Epitaxial Wafer)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장치 만드는 솜씨가 늘어서 용접 기술에서는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매일매일 기능공처럼 일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이 기술이 훗날 큰 발명의 토대가 되었다. 또한 어떻게든 제품화했다는 사실도 성공으로 가는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기능공 일로 보내는 세월이 지겨웠을 때 이 일을 그만두지 않기를 잘했다고 절실히 느낀다. 물론 그때는 이렇다 할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미래를 내다보고 그 지긋지긋한 작업을 반복한 것도 아니다. 그저 세상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상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내게 수완 좋은 사업가의 재능이 있어 회사나 세상의 미래 그리고 나의 미래를 생각했다면, 기능공 일을 하던 시점에서 회사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예산도 쓸 수 없고 정보조차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결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처음부터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런 데까지 생각이 두루 미칠 만큼 약삭빠르지 못했다. 그렇기에 오직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며 밤낮으로 제품을 만드는 데만 몰두했던 것이다. 다만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기는 했지만, 실패할 때마다 내 나름대로는 어떤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렴풋이나마 다음 단계로 가는 길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에 다음 실험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실패 속에 가능성이 숨어 있다: 내가 10년 남짓 동안 세 가지 제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 가능성 덕분이다. 폭발을 하든, 용접 작업에 쫓기든, 나는 항상 가능성만을 주시했다. 다른 쓸데없는 일에는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가능성을 믿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일시적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둔다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게 된다. 모처럼 보였던 가능성마저 사라지는 것이다.

실패 속에 가능성이 숨겨져 있다. 당시 나는 실험이 잘되지 않았던 것은 실험 장치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실험 장치를 철저하게 검토하고 개선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시판되는 실험 장치를 쉽게 사서 쓴다면, 실험 장치 자체가 가진 진정한 의미와 역할을 알 수 없다. 더구나 실험에 실패할 경우에는 실험 장치 자체에 원인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더욱 정확하고 실용성 있는 장치, 자신이 원하는 연구 결과를 내주는 장치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이 생각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스스로 철저하게 만드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백 번의 미완성보다 한 번의 완성을 경험하라: 내가 장치 개발 단계에서 몇 번이나 폭발을 일으켜 실패하면서도 넌더리 내지 않고 이 작업에 매진한 데는 예산이 충분치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장치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다 교수의 가르침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제품 개발을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는 사실을 나 역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견실한 방법으로 한 발 한 발 꾸준히 제품 개발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입사한 지 5~6년이 되었을 때, 한 대기업에서 “니치아화학에서 적외 LED용 에피웨이퍼를 만든다면 사겠다.”고 했다는 말을 영업팀에서 전해 왔다. 하지만 적외 LED용 에피웨이퍼를 만들려면 액상 에피택셜 장비가 필요한데, 그 제작을 장비 제조회사에 의뢰하면 1년 남짓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이때도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 보지.” 하고는 반년 만에 에피택셜 장비를 만들어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비능률적으로 일을 한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안 되면 깨끗이 포기하고 다음 제품 개발에 열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백 개의 미완성품을 경험하기보다 단 한 개의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완성해야 비로소 나를 알린다: 끝까지 해내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 이는 나 자신이 몸소 체험한 일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나는 니치아화학의 개발과에 배속된 후 10년 동안 세 가지 제품을 개발했다. 분명 시행착오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10년간의 실적은 오가와 회장의 눈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오가와 회장은 내가 청색 LED를 개발하겠다고 나섰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발에도 흔쾌히 예산을 지원해 주었다. 왜일까. 결과적으로 잘 팔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동안 나는 새로운 것을 개발했다. 오가와 회장은 나의 이 개발 능력이 언젠가는 돈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영자의 눈에 띄느냐 아니냐는 그때그때의 운에 달렸으며, 이는 큰 회사일수록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꼭 CEO가 아니더라도 부장이든, 다른 부서의 과장이든 누구라도 상관없다. 어쨌든 누군가의 눈에 들어 인정받는 것이 조직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혹은 운이 좋으면 회사 외부의 사람이 관심을 보일 수도 있다. XX 회사의 ○○ 씨가 이러한 제품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반드시 어디서든 제안이 들어온다. 설령 제안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화제가 될 것이다.

독자적인 길을 걷기로 결심하다: 10년에 걸쳐 개발한 것들이 매출에 도움이 안 되자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스스로 하겠다고 결정해서 개발한 것도 아닌데, 그 책임을 전부 나에게 떠넘기는 것은 부당했다. 게다가 급여도 오르지 않고 나보다 늦게 입사한 사람들은 모두 승진하는데, 나만 평사원 직위의 연구원이라는 사실은 너무 심한 처사 아닌가.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폭발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싸움을 한 것도 사표를 던진 것도 아니다. 지시한 대로 결과를 냈는데도 그에 대해 질책만 받는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원하는 대로 연구하겠다. 그마저도 안 된다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다.

집념으로 성사시킨 무모한 제안: 나는 오가와 회장과 직접 담판을 짓기로 했다. 거절당할 것을 각오하고는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회장을 찾아가 청색 LED를 개발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했다. 아직 아무도 개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성공하면 확실히 팔릴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의사를 직속 상사에게 보고하거나 회의에 상정했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무시당했을 것이다. 내가 청색 LED를 개발하겠다는 말을 꺼내자 예상대로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오가와 회장은 “나카무라는 큰소리를 잘 치긴 하지만 할 일은 한다. 팔리고 안 팔리고와는 별개로, 제품을 제대로 완성시켰다. 우리 회사에서 형광체 이외의 제품을 개발한 사람은 나카무라뿐이다.”라며 3억 엔의 예산을 내주며 단박에 연구를 승인해 주었고, 이것이 큰 발명의 계기가 되었다.



성공은 데이터가 아닌 집념으로 거머쥐는 것이다

바닥을 쳐야 성공의 가속도가 붙는다: 대기업 연구원들과 내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대기업에서는 많은 인원이 역할을 분담해 개발하는데, 나는 혼자 개발해 왔다는 점이다. 게다가 나는 반도체나 LED와는 관계가 없는 환경에서부터 차근차근 걸어왔다. 그러는 동안 LED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대기업 연구소나 대학에서 청색 LED 개발에 몰두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LED에 관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혼자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미국 유학길에서 뜻밖의 수모를 당하다: 청색 LED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을 때 오가와 회장에게 예산 편성과 동시에 한 가지를 더 부탁했다. 바로 미국 유학이었다. 그래서 나는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로 1년 동안 유학을 가서 청색 LED 개발에 필요한 ‘유기금속화학증착법’을 공부하게 되었다. 미국에 가면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교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현실은 항상 어긋나기 마련이다. 반도체 결정의 제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갔는데, 미국에서 연구되고 있는 것은 모두 내가 알고 있는 내용뿐이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배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내 기술과 제조 장치가 나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세계적인 수준까지 도달해 있다는 뜻도 되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배울 것이 없었지만 나의 연구 방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은 점, 그래서 더욱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유학이었다. 또 한 가지는 ‘논문을 쓰지 않으면 연구자로서 인정받을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니치아화학에 입사한 이후 10년 동안 여러 가지 연구와 실험을 해왔지만, 회사의 기밀 유지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발표가 모두 금지되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해온 연구에 관해 학회에 발표한 적도, 논문을 쓴 적도 없었다.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상처와 절망을 이기다 / 청색 LED의 미래에 모든 것을 걸다: 나는 미국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일본으로 돌아왔다. 다만 분한 마음이 들어 앞으로는 절대 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마음에 새겼다. 스탠리전기나 휴렛팩커드를 비롯한 최고 기업에서는 이미 적색과 오렌지색 LED 개발에 성공했다. 그리고 다른 기업 중에서도 이미 녹색이나 청색 LED를 개발한 곳이 있었다. 하지만 말만 녹색이지 실상은 황색에 가까웠으며, 청색은 녹색에 가까운 청색이어서 빛이 너무 약한 탓에 실용화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이들 기업조차 아직 달성하지 못한 분야에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실용 가능한 휘도의 밝기를 내는 청색 LED였다. 밝은 청색이 개발되면 과연 어떤 일이 가능해질까? 그 한 가지는 바로 백색 LED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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