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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에이미 모린 지음 | 비즈니스북스



나는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에이미 모린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5년 3월 / 304쪽 / 14,000원





자기 연민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자기 연민을 버리면 강해진다



제러마이어 덴튼 중령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 해군 조종사였다. 1965년 그가 타고 있던 전투기가 격추되면서 덴튼은 비행기에서 강제로 끌려나와 북베트남 군에 전쟁 포로로 붙잡혔다. 덴튼과 장교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굶주림 속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함께 잡힌 포로들에게 계속 지시를 내렸다. 그는 북베트남 군이 정보를 캐내려 하면 저항하라고 다른 포로들을 설득하다 수차례 독방에 감금되기도 했다. 그러나 덴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순서에 따라 기침을 하거나 벽을 두드리는 등의 신호를 이용해 다른 포로와 소통하는 방법을 궁리해냈다.

포로가 된 지 열 달 후 덴튼은 북베트남 군의 선전용 텔레비전 인터뷰 참가자로 뽑혔다. 그는 질문에 대답 도중 카메라에서 나오는 밝은 빛에 눈이 부신 척 눈을 깜빡였다. T-O-R-T-U-R-E(고문)라는 말을 모스부호로 보내 포로들이 학대받고 있다고 은밀히 메시지를 전했던 것이다. 또한 인터뷰 내내 미국 정부를 지지한다는 주장도 굽히지 않았다.

덴튼 중령은 포로 생활 7년 만인 1973년에 석방되었다. 자유의 몸으로 비행기에서 내린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조국에 충성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을 맞게 해준 대통령과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미국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그는 1977년에 제대했고 이후 앨라배마 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제러마이어 덴튼은 상상도 못할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지만 자기 연민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침착함을 잃지 않고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았다. 석방 후에도 7년을 잃어버렸다고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대신 조국을 위해 몸 바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사람이 정신적인 고통에 몰두할 때와 감사한 마음에 집중할 때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 조사한 연구가 있다. 하루하루 감사한 점을 몇 가지만 확인해도 변화는 극적으로 일어난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정신건강은 물론이고 신체건강도 증진된다고 한다. 2003년 《성격사회심리학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ㆍ감사하는 사람은 더 건강하다. 감사하는 사람은 면역력이 높으며 아파하거나 고통을 호소할 확률이 낮다. 혈압도 높지 않고 보통 사람보다 운동을 많이 한다. 건강관리에 철저하고 숙면을 취하며 잠에서 깨어나면 더 상쾌한 기분을 느낀다.ㆍ감사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감정을 자주 느낀다. 감사하는 사람은 일상적으로 행복과 기쁨, 쾌락을 많이 경험한다. 정신이 더 또렷하고 활력이 넘치기도 한다.ㆍ감사하는 사람은 사회생활을 잘한다. 감사하는 사람은 다른 이를 더 기꺼이 용서하고 사교성이 높아 외로움과 고립감을 덜 느낀다. 다른 사람을 더 자주 돕고 넒은 마음으로 남들에게 베풀 줄 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변화를 받아들이면 강해진다



그렉 마티스 판사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디트로이트 공단 주택가에서 자랐다. 청소년 시절 몇 번이나 체포되었고 학교를 자퇴한 후에는 조직 폭력단에 가입했다. 하지만 그는 열일곱 살 때 소년원에서 어머니의 대장암 소식을 듣는다. 어머니의 병이 깊어지면서 보호관찰을 조건으로 소년원에서 조기 출소했고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인생을 완전히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보호관찰 기간 동안 일을 해야 했던 마티스는 맥도날드에 취직했다. 이후 이스턴미시간 대학교에 입학했고 로스쿨에 진학했다. 전과 때문에 변호사가 될 수는 없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디트로이트 시에 이바지할 방법을 찾았다. 마티스는 디트로이트시민회관의 관리직을 맡았고 비슷한 시기에는 아내와 함께 청년들의 구직을 도와주는 비영리단체인 청년자립지원센터를 만들었다. 몇 년 후 마티스는 판사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경쟁 후보들은 마티스의 범죄 경력을 걸고 넘어졌지만 디트로이트 시민들은 마티스가 변했다고 믿었다. 마티스는 20년간 재직한 후보를 물리치고 미시간 주 역사상 최연소 판사로 선출되었다. 이내 할리우드에서 마티스 판사의 사연에 주목했고, 1999년에는 소액 분쟁을 조정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마티스 판사는 범죄자였던 과거를 뒤로 하고 젊은이들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데 시간과 노력을 바치고 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청년교육박람회를 열어 청년들이 미래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다. 마티스 판사는 청년들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지도한 공으로 상과 표창을 무수히 받았다.

하나의 변화만으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빚 청산처럼 인생의 한 부분을 바꾸는 데 전념하면 자기도 모르게 살이 빠지고 결혼 생활도 순탄해진다. 확실한 변화를 경험하면 의욕이 높아지고 의욕이 높아지면 더욱 확실한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변화를 포용하면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린다.



모두를 만족시키려 애쓰지 마라



모두의 뜻에 맞출 수 없다고 인정하면 강해진다



모스 깅그리치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심한 사람이다. 위스콘신 주에 있는 아미시 공동체에서 자란 그는 쟁기로 밭을 갈고 손으로 소젖을 짜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깅그리치는 더 이상 아미시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세계에서 자랐지만 지금까지 배운 하나님과 아미시의 생활방식에 전부 의문을 품었다. 깅그리치는 아미시 공동체를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몇 년이나 갈등했다. 그는 아미시 생활방식밖에 알지 못했다. 이곳을 떠난다면 어머니와 형제들을 비롯해 아미시 공동체와는 평생 연락할 수 없었다. 게다가 ‘물질문명 세계’는 외국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전기나 컴퓨터 같은 현대 문물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그가 잘 모르는 외부 세계에서 어떻게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깅그리치에게는 잘 모르는 세계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었다.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자라면서 아미시의 하나님이 유일신이라고 수없이 들었지만 아미시를 떠나려면 하나님도 떠나야 했다. 아미시 공동체 원로들은 외부 세계에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아미시를 떠나 기독교도로 남으려 하는 사람은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을 뿐이라 했다.

깅그리치는 십대와 청년 시절에 몇 번 아미시 공동체를 잠시 떠난 적이 있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다른 아미시 문화를 배우고 외부 세계의 맛을 보았다. 여행을 하면서 이 세계와 하나님을 자기만의 관점으로 볼 수도 있었다. 결국 자신은 아미시 공동체의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깅그리치는 아미시로서의 삶을 영원히 뒤로 하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깅그리치는 미주리 주에 새로 정착해 건설회사를 차리고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가족이나 아미시 공동체와는 연이 끊어져 전부 혼자서 헤쳐 나가야 했다. 깅그리치는 아미시 공동체를 떠나 ‘물질문명 세계’에 힘겹게 적응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일자리를 찾거나 운전면허를 따는 일, 문화 규범을 배우고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깅그리치에게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물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직시하자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고 대답했다. “이 세계는 마음먹기에 달렸고 그 마음은 선택에 달렸다는 거죠. 선택은 제 몫이었고요. 그래서 그곳을 떠나 현대 세계와 운명을 같이하기로 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아내와 두 딸, 양아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선택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깅그리치가 모든 사람의 뜻에 맞췄다면 아직까지도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미시 공동체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깅그리치는 멘탈이 강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배우고 이해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위한 올바른 선택을 했다. 깅그리치는 스스로 선택한 변화에 만족했다. 그리고 자신감으로 아미시 공동체의 비판도 견딜 수 있었다. 우선 말과 행동이 믿음과 일치해야 진정으로 솔직한 삶을 살 수 있다. 모든 사람의 뜻에 맞추려 애쓰지 말고 용기 내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산다면 의미 있는 삶의 방향을 찾게 된다.

ㆍ자신감이 커진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정하면 독립심과 자신감이 더 커진다. 다른 사람이 동의하지 않아도 자신의 결정에 만족할 것이다.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음을 알기 때문이다.ㆍ목표 달성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가 늘어난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면 내 목표를 위해 노력할 시간과 에너지가 늘어난다. 자신의 목표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ㆍ스트레스가 줄어든다. 건강한 경계선을 세우고 허용치를 설정하면 스트레스와 짜증이 크게 줄어들고 내 삶을 통제할 힘이 커지는 기분이 든다.ㆍ인간관계가 원만해진다. 단호하게 행동할수록 다른 사람에게 존중 받는다. 소통이 원활해지고 타인에 대한 분노나 원망을 덜 느낀다.ㆍ의지력이 강해진다. 2008년 《실험심리학저널》에 흥미로운 연구가 실렸다. 다른 사람의 뜻에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행동할 때 의지력이 훨씬 강해진다는 것이다. 타인을 만족시키려고 행동하는 사람은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내게 가장 이로운 선택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열심히 노력하려는 의지도 흔들리지 않는다.



과거에 연연하지 마라



과거를 용서하면 강해진다



위노나 워드는 버몬트 주의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그녀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그 지역이 다 그렇듯 가정 폭력이 비일비재했다. 워드는 걸핏하면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했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장면도 자주 목격했다. 어머니의 상처를 치료하는 의사도, 비명소리를 듣는 이웃도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워드는 가족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열심히 공부해 학교에서 우등생이 되었다. 열일곱 살이 되자 집을 떠나 결혼을 했고 남편과 트럭을 타고 전국을 여행하며 살았다. 트럭을 타고 전국을 돌아다닌 지 16년이 지났을 때, 워드는 오빠가 조카를 학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워드는 그 순간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대물림되고 있는 가정 폭력을 끝내기 위해 학교로 돌아갔다.

버몬트 대학교에 입학한 워드는 남편이 모는 트럭 안에서 공부를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버몬트 로스쿨에 진학했다. 그리고 법학 학위를 따자마자 소액의 보조금으로 해브저스티스윌트레블(Have Justice-Will Travel; 정의를 품고 움직일 것이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시골 가정을 돕기 시작했다. 워드는 시골에 사는 가정 폭력 피해자들에게 무료로 변론을 해주고 적절한 사회복지시설을 연결해준다. 사무실로 찾아올 돈이나 교통수단이 없는 가족을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학대의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교육과 복지 서비스도 제공한다. 워드는 끔찍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돕는 길을 선택했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고 해서 과거를 없었던 일처럼 감추라는 뜻은 아니다. 과거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현재를 충실히 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정신적 에너지가 자유로워진다. 과거의 자신이 아니라 앞으로 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기준으로 미래를 계획할 수도 있다. 사람은 조심하지 않으면 분노나 수치심, 죄책감에 이끌려 살게 된다. 이런 감정을 떠나보내야 내 인생을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시기하지 마라



타인의 성공을 인정하면 강해진다



허브 브룩스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누구나 인정하는 하키선수였고 1960년 미국 올림픽 하키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브룩스는 올림픽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선수 명단에서 최종 탈락을 했다. 그는 팀 동료였던 선수들이 미국 역사상 최초로 남자 하키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봐야 했다. 브룩스는 우승팀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분노하는 대신 코치에게 다가가 말했다. “코치님 결정이 옳았던 것 같습니다. 코치님이 이기셨어요.”

다른 사람이라면 하키를 포기하고 싶었겠지만 브룩스는 아직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그는 선수 생활을 계속해 1964년과 1968년 올림픽에 출전했다. 대표팀에서 탈락한 1960년만큼 좋은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는 선수 생활을 마치고 감독으로 전향했다. 브룩스는 몇 년간 대학팀 감독을 맡은 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대표팀 선수를 선발할 때 그는 팀플레이를 잘할 선수를 찾았다. 관심을 독차지하는 선수는 단 한명도 뽑지 않았다. 지난 일곱 번의 올림픽 중 소련이 금메달 여섯 개를 차지한 상황에서 1980년 미국 대표팀은 상대적으로 약체였다. 그러나 브룩스가 지휘봉을 잡으면서 미국은 소련에 4대 3으로 승리했다. 그날 뜻밖의 승리는 지금까지도 ‘은반 위의 기적’이라고 불린다. 미국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핀란드를 꺾고 금메달을 땄다.

브룩스는 선수들이 경기를 이기면 경기장을 떠났고 카메라 앞에도 서지 않았다. 그는 남아서 승리를 축하하지 않고 곧바로 사라지는 감독으로 유명해졌다. 브룩스는 승리를 누릴 자격이 있는 선수들에게 빙판을 양보하고 싶었다고 나중에 기자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선수들에게서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 허브 브룩스는 성공한 사람을 시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노력에 힘을 보탰다. 브룩스는 자신의 도움을 받아 성공한 사람들에게 성과를 나누어 달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 겸허한 자세로 선수들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다. 그가 선수들에게 남긴 유명한 말 한마디가 있다. “성공한 사람의 책을 읽지 말고 자신의 성공담을 책으로 써라.” 더는 타인의 성공을 시기하지 않을 때 자신의 목표를 위해 마음껏 노력할 수 있다. 내 가치관에 따라 살고 싶어지고, 다른 가치관을 따르는 사람에게 감정이 상하거나 속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홀로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마라



혼자만의 시간을 받아들이면 강해진다



바네사는 번잡한 생각을 줄일 방법을 배우자 불면증 약이 필요 없어졌다. 잠들기 전에 명상과 마음 챙김으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일을 할 때도 전과 달랐다. 온종일 집중력이 더 높아졌다. 여전히 스케줄이 바빴지만 일의 능률이 더 올랐고 예전만큼 혼란스럽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혼자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면 삶을 크게 바꿀 수 있다. ABC 〈나이트라인〉의 공동 앵커이자 〈굿모닝 아메리카〉의 주말 앵커인 댄 해리스는 저서 『10% 행복 플러스』에서 명상으로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야기한다. 해리스는 날마다 생방송으로 최상의 모습을 보여야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뉴스 원고를 읽던 그에게 공황 발작이 일어났다. 갑자기 불안감에 휩싸여 말을 하지 못하고 숨이 가빠져 뉴스를 진행하지 못했다. 그가 살면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라고 고백한 이 공황 발작의 원인은 그 무렵 우울한 마음을 스스로 치료하려 손을 댄 엑스터시와 코카인으로 밝혀졌다. 몇 주 전부터 약을 하지 않았지만 뇌에 약효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헤리스는 공항 발작을 계기로 자가 치료를 끊고 스트레스를 다스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비슷한 시기에 해리스는 종교와 관련해 연속 보도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접한 것이 명상이었다. 처음에는 명상이 절대 그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배울수록 마음이 열렸다. 해리스는 명상이 머릿속의 불안한 생각을 가라앉혀준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처음에는 명상을 한다고 말하기 쑥스러웠지만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널리 전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한다. 해리스는 명상이 마법처럼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자신의 행복을 10퍼센트 높여 주었다고 말한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내 마음을 직접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결코 깨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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