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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정리의 기술

도마베치 히데토 지음 | 예문



머릿속 정리의 기술

도마베치 히데토 지음

예문 / 2015년 3월 / 280쪽 / 13,000원





일상을 어지럽히는 ‘감정의 쓰레기’부터 버려라



쉽게 우울하고 쉽게 화내는 사람들

혹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가? 최근 당신은 반드시 성공시키고 싶은 거래가 있다. 그런데 거래처에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위해 회사를 나서기 직전, 마음이 맞지 않는 동료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는 바람에 기분이 엉망이 되었다. 게다가 전철을 탔는데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는 바람에 마음이 초조해졌고, 역에서 거래처까지 가는 길을 몰라서 당황하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부하 직원이 남의 속도 모르고 별것도 아닌 일로 상담을 구해 짜증이 났다. 그리고 이런 안 좋은 감정들의 영향이었는지 결국 당신은 프레젠테이션을 하다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인간은 감정의 지배를 크게 받는다. 불쾌한 일을 당하면 분노에 사로잡히고, 불합리한 일을 겪으면 충격에 빠지며, 사고와 행동이 감정에 좌우된다. 아무리 ‘감정적이 되면 안 돼. 냉정해져야 해’ 하고 생각해도 감정이 북받쳤을 때 사고나 행동이 흔들리는 것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 우리는 감정의 지배를 받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뇌의 진화사에 있다. 인간의 감정을 관장하는 곳은 대뇌변연계의 편도체라는 장소로, 이 편도체를 포함한 대뇌변연계는 이른바 ‘오래된 뇌’다.

한편 논리적인 사고와 이성을 관장하는 곳은 전두전야라는 부위인데, 전두전야는 편도체를 포함한 대뇌변연계보다 나중에 생겼다. 편도체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감정을 관장한다. 본능적인 공포나 혐오, 슬픔 등이 그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감정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사람과 이런 감정에 쉽게 좌우되는 사람이 있다. 감정에 지배당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논리를 관장하는 새로운 뇌(전두전야)보다 감정을 관장하는 오래된 뇌(편도체)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므로 좀 더 ‘원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의 정도로 치면 고릴라나 원숭이에 가까운 셈이다.

감정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이 특징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이 가진 ‘정보의 양’을 기준으로 계층화할 수 있다. 가령, ‘특정 개인(A씨)→인류→포유류→동물→생물’ 같은 식으로 정보량이 많은 것에서 적은 순서로 나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정보량이 많은 상태를 ‘추상도가 낮다’고 하며 정보량이 적은 상태를 ‘추상도가 높다’고 한다.

정보량이 적다(=추상도가 높다)는 말은 어떤 사물을 좀 더 적은 정보량으로 나타냈다는 뜻이다. 가령 ‘인류’와 ‘A씨’를 비교해보자. “A씨는 몇 살이고, OO라는 회사에서 XX라는 일을 하고 있으며, 얼굴의 어디에 사마귀가 있고…….”와 같이 인류에 비해 설명이 세밀해진다. 정보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A씨’를 ‘인류’보다 덜 추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류’의 정보량이 더 적고 추상도가 높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 사람은 추상도를 ‘시점의 높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가령 ‘A씨’를 정의할 때 “A씨는 OO씨네 집의 장남이다.”라는 정의에서 추상도를 한 단계 높이면 “A씨는 서울 시민이다.”가 된다. 여기에서 추상도를 한 단계 더 높여보면 “A씨는 한국인이다.”가 된다. 추상도를 좀 더 높여보자. “A씨는 인류다.”에서 “A씨는 생물이다.”가 된다. 즉, 추상도가 높아진다는 말은 곧 시점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추상도가 낮으면 감정에 지배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상도가 낮은 사람은 ‘시점’이 매우 낮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순간의 ‘직장에서 짜증을 내고 있는 자신’밖에 보이지 않는다. 시야가 좁다는 말이다. 따라서 짜증 나는 일이 있으면 감정에 푹 빠져들고 만다. 감정에 지배당하는 것이다. 반대로 추상도(시점)를 높이면 직장→회사→업계로 시야가 넓어진다.

‘직장 내에서 내가 감정적이 되면 부하 직원의 교육에 좋지 않아. 냉정해지자.’ 나아가 ‘이 회사에서는 나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 등 감정을 점차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감정이라는 쓰레기에 파묻히지 않으려면 추상도를 높이는 것, 즉 시점을 높여서 상황을 객관화하고 시야를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눈앞의 상황을 차분히 정리하지 않고 그저 쫓아가는 데 급급하다. 매우 추상도가 낮은 상태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런 사람일수록 감정의 지배를 강하게 받는다. 당신은 어떠한가? 무엇을 해야 하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매 순간 감정에 휘둘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감정의 쓰레기’를 제일 먼저 버려야 한다. 내가 이 책을 ‘감정의 쓰레기’부터 시작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감정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다, 추상도를 높이면 된다. 다시 말해, 논리적 사고와 이성을 관장하는 전두전야의 활동을 통해 ‘오래되고 원시적인 뇌’인 편도체에 개입하는 것이다. 추상도를 높여서 감정이라는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목표’를 갖는 것이다. 목표가 있으면 시점도 그에 맞춰 높아진다. 즉, 추상도가 높이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에 도달하는 데 마이너스가 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목표에 도움이 되는 감정만을 허락하라

감정의 쓰레기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감정을 오락으로 삼는 것이 좋다. 이것이 감정의 쓰레기를 상대하는 근본 원칙이다. 요는 ‘목표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은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자신만의 규칙을 정하고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밉다’, ‘짜증 난다’, ‘외롭다’ 같은 단순한 감정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한편, 목표를 향해 달려갔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해서 생기는 분함이나 짜증도 있다. 이런 감정들은 목표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감정이므로 충분히 맛봐도 된다. 그리고 목표로 향하는 도중에 맛보는 달성감이나 기쁨도 마음껏 맛보며 전진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솟아나는 다양한 감정 중에서 목표의 실현과 상관없는 감정은 버리고 의미 있는 감정만을 맛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목표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은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자신에게 계속 말하기 바란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뇌, 전두전야의 정보 처리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해도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의 쓰레기는 점차 사라지게 된다. 감정의 쓰레기를 버리는 비결은, 모든 감정을 오락으로 삼을 것, 결승점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은 버리고 도움이 되는 감정만을 맛볼 것이다. 그리고 그 기본은 추상도를 높이는 것이다.



타인의 잣대로부터 나를 해방시켜라



내가 누구인지부터 깨달아야 한다

당신은 ‘자신(自身)’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자신’이 진심으로 바라는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복잡한 머릿속을 상쾌하게 하고 싶어!’ 그렇다면 이런 생각으로 이 책을 읽는 ‘당신’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도봉구에 살고 있습니다.

- 김치찌개를 좋아합니다.

- 여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 작년에는 하와이에 간 적이 있습니다.

- 최근 헬스클럽에 다니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자신에 관한 정보를 상대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의 정보가 아니라 ‘자신과 관계가 있는 존재’에 관한 정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신’을 정의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정보는 전부 ‘타인’의 정보라는 뜻이다. 요컨대 ‘자신’은 ‘타인의 정보’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이란 ‘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정보’의 집합체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 ‘자신이란 정보의 그물망의 일부’인 것이다.

‘하와이에서 보내는 자유’의 부자유

사람들에게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것’이나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상을 적어보게 하면, 아래와 같은 대답들이 나온다.

- 밝은 성격의 소유자가 되는 것

-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

- 동기 중에서 제일 먼저 출세하는 것

-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하는 것

- 노년에 유유자적 생활하는 것



왜 그것을 원하는 것일까? 원하게 된 계기를 떠올려보자.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 보고 마음에 들었거나 타인을 보고 부러워진 것이 계기가 아닐까? 그것을 ‘원한다’는 생각 역시 타인으로부터 자극받은 것, 주어진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당신 스스로가 ‘저걸 가지고 싶어!’, ‘저렇게 되고 싶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닌 셈이다.

남은 남, 나는 나다. 다른 이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듯이 보여도 당신은 당신만의 페이스로 살면 된다. 경쟁의식도 주입된 가치관의 전형이다. 그렇다면 ‘일 년의 절반은 일하고 나머지 절반은 하와이에서 여유롭게 보내겠어!’라는 이상은 어떨까? 이 역시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타인을 보고 ‘저렇게 자유롭게 살다니!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이라고 부러워한 결과 생긴 이상상이다. 좀 더 근본을 파고들면 ‘일 년의 절반을 하와이에서 보내는 것이 자유’라는 생각 자체가 주입된 가치관이며, 고로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부자유다.

매일 만원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있다. 그 사람의 자유는 그 사람의 ‘독자적인 잣대’에 바탕을 둔 자유다. 그러므로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든, 회사에 혹사를 당하든, 타인이 어떤 눈으로 바라보든 그 사람의 마음은 항상 자유롭다. 그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높은 추상도로 살 것이며 순간적인 마이너스 감정을 오락으로 즐길 줄 아는 내공을 갖췄을 것이다.

본심을 솔직하게 드러내라

당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자. ‘자신이 원하는 것’이나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상을 적을 때, 당신은 혹시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가? 가령, 원하는 것이 ‘자동차’라고 적은 사람, 되고 싶은 이상상이 ‘경영자’라고 적은 사람이 정말로 좋은 자동차를 손에 넣는다면, 이미지 속의 멋진 경영자가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까?

본심은 어떤가? 크게 출세하고 부자가 되어서 좋은 자동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찬사도 받고 싶다. 저택도 사고 싶고 별장도 가지고 싶다.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좋은 물건과 지위를 손에 넣고 모두의 우상이 되고 싶다. 혹시 이것이 당신의 본심이 아닌가? 즉, ‘자동차’나 ‘경영자’는 그 본심을 상징하는 아이템에 불과하다.

처음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 ‘어떻게 되고 싶은가?’를 자문하는 것은 자기계발서나 자기계발 세미나의 단골 메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체면을 의식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 시작이 거짓말이니 아무런 효과도 얻을 수 없다. 일시적으로 기분이 고양되더라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당신이 원하는 것 즉, 이상상은 무엇인가? 본심을 말해주기 바란다.

이제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 ‘이상상’을 머릿속에서 부풀려보자. 그리고 그 상상을 신나게 가지고 놀자. 뇌 속에 도파민(운동이나 학습을 관장하는 신경 전달 물질)이 콸콸 쏟아져 나올 만큼 현실감 있게 상상하기 바란다. 진짜 바라는 것을 자유롭고 강렬하게 떠올린 순간, 머릿속 쓰레기는 사라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세간의 통념이나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말자. 자신의 진짜 바람을 머릿속에서 부풀리기 바란다.

본심은 궁극의 ‘want to(하고 싶은 일)’이며, 당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다. 이것을 봉인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지금까지 본심을 봉인하고 외면했으며 그 대신 타인의 잣대를 사용해 살아왔다. 그러나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그렇게 살다 끝내도 괜찮은 것일까? 타인의 잣대를 버리고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기 바란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가만히 당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자. ‘먼 훗날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진정으로 이렇게 생각한다면 자신의 내부에 있는 ‘타인의 잣대’를 버리고 당신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란다. 내가 생각하는 후회 없는 삶은 어떤 것이며, 내가 생각하는 올바름은 어떤 것인지,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이며,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이처럼 타인의 잣대를 하나씩 버리는 연습을 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끝없는 자기 질문이 필요하다. 묻고 대답하고 다시 묻는 것, 이 과정을 통해 자기 발견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간혹, 이런 의문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라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신도, 결국 20년 넘게 타인에게 주입받은 가치관과 잣대로 구성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 그 과거를 아예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타인에게 주입받은 잘못된 상식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인식을 가지면 과거는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당신의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당신뿐이다.



지금까지의 ‘나’와 이별하라



‘지금까지의 자신’을 모조리 버려라

나는 낯가림이 심하던 사람이 사교성을 조금 키웠다든가 말수가 적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만큼 말을 많이 하게 된 것은 ‘변화’의 축에도 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만물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므로 그 정도의 변화가 있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내가 말하는 ‘변화’는 ‘완전히 새로 태어나는’, ‘인생이 대전환을 맞이하는’ 정도의 극적인 변화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세상에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가 완전히 달라지는 변화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자신을 바꾸고 싶다면,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싶다면 ‘지금까지의 자신’을 모조리 버리는 각오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당신은 타인으로부터 주입받은 잣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주입받은 잣대는 쓰레기다. 쓰레기로 가득한 ‘지금까지의 자신’을 일단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자신의 잣대로 다시 선택하자.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바꾸는’ 일이다.

미래가 과거를 만든다

상상해보라. 당신은 강의 한가운데에 서서 상류 쪽을 바라보고 있다. 상류에서 빨간 공이 떠내려온다. 손을 뻗어 그 공을 잡을지 말지는 당신의 자유다. 가령, 빨간 공을 잡지 않았다고 가정하자. 잠시 후 이번에는 파란 공이 떠내려온다. 그러나 파란 공이 떠내려온 것은 당신이 빨간 공을 잡지 않은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저 파란 공이 떠내려왔을 뿐이다. 오직 그뿐이다. 요컨대 ‘빨간 공을 잡지 않았다’라는 과거와 ‘파란 공이 떠내려왔다’라는 미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과거는 미래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시간은 강의 상류라는 미래에서 당신이 서 있는 현재로 그리고 강의 하류라는 과거로 흐르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하지만 나는 공부를 열심히 안 한 탓에 삼류 대학밖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도 삼류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걸…….”이라고 반론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퇴근길에 영양제를 사려고 드럭 스토어에 들렀다. 그런데 때마침 계산대 앞에 줄이 길게 서 있다. 당신도 줄을 서서 잠시 기다렸지만 줄은 짧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당신은 짜증이 나서 영양제를 진열장에 되돌려 놓는다. ‘거참, 운도 없네.’ 하고 생각하며 멀리 돌아서 다른 드럭 스토어에 갔다. 그랬더니 그 점포에서는 같은 상품을 아까의 점포보다 20퍼센트나 싸게 팔고 있는 게 아닌가. 당신은 ‘이런, 운이 참 좋은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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