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소셜 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김정태 지음 | 에이지21
어떻게 하면 소셜 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김정태 지음
에이지21 / 2014년 12월 / 264쪽 / 13,000원
PART 1. 국제활동가로서의 첫걸음
불편함과 현실이 만나는 순간
누구나 선망하는 직장인 유엔. 나는 왜 그곳을 떠났을까? 누군가에게 왜 어떤 조직에 들어갔느냐고 물어보는 것보다 왜 그 조직을 나왔느냐고 물어볼 때 훨씬 의미 있고 흥미로운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은 통상 “유엔에 어떻게 들어갔나요?”라고 내게 묻는다. 조금 더 흥미로운 질문은 “왜 유엔에서 일하게 됐나요?”라고 물어볼 때다. 소셜 이노베이터는 ‘왜’라는 관점을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사회현상과 문제에 연결한다. 사회문제가 ‘왜’와 결합되면서 우리가 느끼기 시작하는 불편함은 거대한 사회혁신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스펀지와도 같다.
“왜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은행은 없는 것일까?”
“왜 장애가 있는 사람은 ‘특별함’이 아닌 ‘장애’라는 관점에서만 이해될까?”
“왜 개발도상국 여자아이들은 생리대가 없어서 학교를 빠질 수밖에 없을까?”
“왜 꼭 영리와 비영리의 가치를 구분해서 접근해야 할까?”
‘왜’라는 질문이 계속되면서 소셜 이노베이터는 때론 ‘안 된다’는 현실을 절감하며 낙담할 수도 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다만 참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왜’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으면, 불현듯 언젠가 ‘왜’라는 불편함과 ‘안 된다’라는 현실이 겹치면서 ‘왜 안 돼?’의 단계로 나아간다. 소셜 이노베이터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인생 최고의 순간이다. 사회가 직면한 곤란한 문제들이 소셜 이노베이터를 초청한다.
내가 일했던 유엔은 분명 좋은 직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왜’라는 질문과 함께 유엔이라는 곳에서 나와 ‘환승’을 해야 할 때임을 절감했다. 하지만 유엔이라는 자리에서 일어서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유엔이라는 타이틀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부러운 시선과 좋은 대우를 받았던가! 내게서 ‘유엔’이라는 키워드가 사라질 때도 사람들이 여전히 나를 매력적으로 느낄지 확신이 없었다. 당신 역시 소셜 이노베이터라고 느낀다면, 그 어떤 화려한 자리나 순간이라도 잠시 앉아가는 지하철의 안락한 자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잠시 잡고 있는 ‘황금 지팡이’가 사실은 만원 지하철에서 운이 좋아 잡고 있는 플라스틱 손잡이임을 알아야 한다. 소셜 이노베이터는 지금 당장의 가치로 미래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않으며, 불확실해도 자신의 원하는 ‘목표’라는 역으로 가기 위해 환승이라는 도전을 택한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라
국제활동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보는 ‘국제대학원’. 김영삼 정부 시절 ‘세계화’라는 국정 목표에 발맞추어 세계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도입된,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과정이었다. 국가 정책으로 설립된 국제대학원은 초창기에 입학한 모든 신입생에게 전액 장학금, 노트북과 더불어 해외 탐방과 인턴십 비용까지 제공했다. 나는 국제대학원에 입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발목을 잡히거나 어깨에 날개를 달거나: 그런데 먼저 영어가 문제였다. 2년 동안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도 그렇고, 석사 논문 역시 영어로 제출해야 했다. 나는 고민 끝에 뉴욕에서 6개월간의 한시적인 어학연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국제’라는 분야에 있다 보면 영어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결국 영어 때문에 발목이 잡히든지 어깨에 날개를 달든지 한다.
뉴욕시립대학교 바룩칼리지에서 오전에는 ‘외국인을 위한 영어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열심히 단어와 숙어를 외웠지만 3개월이 지나도 영어 실력, 특히 말하기에 뚜렷한 진보를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도서관 출입을 과감히 중단하고, 외국인을 만나 말벗이 되어 주는 비영리단체에 가서 현지인과 매일 1시간씩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분들에게 빈 종이를 주고 “제가 말하는 동안 문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어색한 표현이 있으면 무조건 저를 멈추게 하고, 종이에 정확하고 더 좋은 표현을 써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문장이 끝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이들은 내 말을 막았고, 시간이 끝나면 열 장이 넘는 종이를 받아 귀가하기도 했다. 집에 와서는 그들이 지적해준 ‘올바른 표현’을 반복해 외웠다. 영어 발음 문제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라는 영어 우화 책과 성우의 녹음 CD를 60번 이상 반복해 읽고 들으면서 해결했다. 그러자 더 이상 머릿속에서 영어 문장을 조립한 뒤에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결국 6개월 만에 국제대학원 입학과 국제활동가로서 활동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영어가 준비된 것이다.
기회의 문과 그 문을 여는 열쇠: 2년간의 국제대학원 생활을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라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다.” 살다 보면 우리의 부족한 경험과 지혜로 고민하는 문제에 감히 다가서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의 경험과 지혜는 현재의 수준을 뛰어넘는 도약이 필요한데, 그러한 도약은 해당 분야의 ‘거인’과 같은 멘토들이 제공하는 어깨에 올라탈 때 가능해진다. 예전에는 아무리 까치발을 들고 기웃거려도 보이지 않던 세계도 ‘거인’이 친절히 제공하는 어깨에 올라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이는 것, 즉 시야에 따라 세계가 달라진다는 말을 나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작 뉴턴 역시 “내가 만약 다른 이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섰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국제대학원에서 만난 거인은 지도교수였던 서창록 교수님과 2년 동안 조교로 도와드렸던 박수길 대사님이었다. 서창록 교수님은 내게 뉴욕대 공공행정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공공행정을 접할 기회와 더불어 석사 논문을 쓰는 데 필요한 자원과 재원을 기꺼이 제공해주셨다. 박수길 대사님은 유엔에서의 경력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내가 두 차례 꿈꾸고 도전했지만 결국은 합격하지 못했던 뉴욕 유엔본부에서의 인턴 기회를 신기하게도 만들어주셨다. 두 분이 제공해준 어깨에 올라서는 순간, 감히 꿈꾸지 못했던 기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기회의 창’이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거인들과의 만남을 아예 ‘기회의 문’이라 부르고 싶다. 거인들이 기꺼이 제공하는 어깨에 올라서서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수준의 시야와 관점을 확보한다는 것은 단지 창을 통해 기회를 엿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거인과의 만남은 내가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세계로의 출입구가 생겨났음을 뜻한다. 단,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영어 실력과 같이 개인이 갈고닦아야 하는 핵심역량이 필요하다. 역량은 ‘기회의 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다. 아무리 기회의 문이 많아도 스스로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없으면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거인들은 문은 제공해도 열쇠까지는 제공해주지 않는다.
PART 2. 내가 바라본 세계
소셜 이노베이터는 지치지 않는다
국제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누린 여러 특권 중 하나는 많은 기회에 도전할 자격이 생긴다는 점이다. 대학원생이라는 신분과 더불어 ‘국제’라는 꼬리표가 붙은 국제대학원생은 기업이나 공공기관, NGO 등 어느 곳에서나 호감을 갖는 대상이었다. 나 역시 다양한 프로그램과 프로젝트, 인턴십 등에 지원했다. 그중 하나는 당시 외교통상부의 인턴십이었다. 나는 무급인턴으로 지원해 마침내 유엔과에서 약 2개월의 인턴 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첫 만남: 외교통상부 유엔과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출마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금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내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역대 유엔 사무총장의 인적사항과 사무총장 선출 배경 등에 대한 정보를 찾아 문서로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어로 제대로 된 자료가 전무해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결국 외국 웹사이트와 영문 자료를 참고해서 역대 유엔 사무총장의 인적사항과 사진, 주요 약력, 선출 배경 등을 요약한 한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비록 인턴이었지만 국가적으로 중요한 업무에 참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낌과 동시에 내겐 작은 불만족도 싹트기 시작했다. ‘유엔 그리고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중요한 기관과 리더십에 대해 잘 정리된 1차 자료가 왜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이었다.
내가 경험한 문제에서 시작하면 지치지 않는다: 인턴을 마치면서 석사 논문의 주제가 보다 뚜렷해졌다. 유엔 사무총장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유엔과 유엔 사무총장의 리더십에 대한 주제였다. 인턴으로 있으며 조사했던 많은 참고자료가 있어 주제를 비교적 쉽게 정할 수 있었는데, 논문 제목은 「두 영역의 외줄을 타는 유엔 사무총장: 유엔 사무총장의 리더십에 대한 분석적 접근」으로 정했다. 유엔 사무총장이 ‘국제정치의 현실’과 ‘개인적인 리더십 특성’이라는 두 가지 영역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존재라는 가설에 따라, 역대 유엔 사무총장과 유엔과 국제분쟁의 다양한 사례를 교차 분석한 논문이다.
논문을 쓰기 위해 약 3개월에 걸쳐 30여 권의 원서와 30편의 관련 논문을 꼼꼼히 읽어 나갔다. 나는 논문 작업이 너무나 행복했다. 밤늦도록 자취방에서 아무도 읽을 것 같지 않은 자료를 읽어 가는 시간이 가슴 벅찼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개인적인 불만족에서 석사 논문 주제를 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념적이며 관념적인 주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공감한 문제에서 시작할 때, 그것이 논문이든 프로젝트든 비즈니스 기획이든 그 모든 과정은 벅차고 행복할 수밖에 없다. 논문이 훗날 대학원 최우수 논문상을 타고, 저널에 실리고, 해외 컨퍼런스에서 발표되고, 다시 한국어로 번역돼 출판된 것은 내가 얻었던 부수적인 선물일 뿐이었다. 소셜 이노베이터가 늘 반쯤은 흥분한 상태로 느껴지고,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들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좋아하거나 혹은 문제라고 느끼는 주제에 뛰어들 때,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럽고 불편한 과정도 이들에게는 가슴 벅찬 경험이 되곤 한다.
세 가지 질문에 답하라
비록 지금은 유엔을 떠나 있지만 그것이 당분간일지, 다시 다른 길에서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유엔에서 바라본 세계가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유엔은 인생의 첫 직장으로서 내게 과분한 기회와 경험을 제공했다. 자신이 활동한 분야의 경험과 관점, 습관을 좋든 싫든 가져가게 되는 소셜 이노베이터의 현실에서 나는 ‘국제활동가 출신의 소셜 이노베이터’라는 독특한 시점과 관점을 갖게 되었다.
오래전에 ‘국제활동가로 준비하고 살아가기’라는 주제의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국제활동가’라는 세계를 선망하여 입문하고자 하는 40여 명의 청년 대학생들에게 나는 3가지 질문을 던지며, 혼자만의 시간을 마련해 꼭 답변해 보라고 권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먼
저 자신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둘째, 지금도 충분히 나누고 있는가?
셋째, 함께하는 사람과 기쁘게 협력하는가?
첫 번째 질문은 국제활동가란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행복을 돕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스스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서 행복이란 ‘성공’을 뜻하거나, 문제가 없는 완벽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 감사와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국제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오히려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확률이 높다. 두 번째 질문은 국제활동가란 자신이 가진 시간과 지식, 자원을 아낌없이 공유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금 가진 시간과 지식, 자원을 충분히 나누고 있지 않다면, 훗날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 번 헌혈을 해 본 사람이 계속 동참하게 되는 것과 같이, 지금 작게 하는 나눔은 훗날의 나눔이 어떠할지를 보여주는 예고편과 같다. 마지막 질문은 국제활동가의 습성, 즉 커뮤니티 지향성에 대한 부분이다. 국제활동가는 기본적으로 파트너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기후변화의 문제는 환경 분야의 전문가만이 아니라 사회학, 보건학, 심리학, 정책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투입되어야 하는 복잡한 이슈다. 다양한 사람과 협력하며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개인적인 성향의 사람이라면 국제활동가는 자신에게 적합한 ‘업’이 아닐 확률이 높다.
소셜 이노베이터에게도 적용되는 3가지 질문: 국제활동가로서 생각해 볼 이러한 질문은 고스란히 소셜 이노베이터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소셜 이노베이터는 본질적으로 ‘나만의 유익’이 아닌 ‘우리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본인이 공감하는 외부의 문제의식과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희열과 보람을 느끼며, 그 뜨거움과 긍정적인 태도를 주위 사람에게 전달한다. 대부분의 소셜 이노베이터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관적인 정의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돈이 많거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알기에 행복하다고 느낀다. 소셜 이노베이터는 ‘당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나눌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다.
소셜 이노베이터는 다양한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하는 멀티플레이어이기도 하지만, 만나는 사람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이들을 탁월하게 만드는 ‘관계의 연금술사’ 멀티플라이어이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소셜 이노베이터를 찾아오고, 그나 그녀와 함께 머물기를 좋아한다. 찾아오는 사람을 자신의 추종자로 만드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와 달리 소셜 이노베이터는 주위 사람을 자신의 파트너로 대우하고 기회를 공유한다.
소셜 이노베이터는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와 컨퍼런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주제가 아닐지라도 해당 주제를 가지고 진행되는 행사를 자주 찾아간다. 행사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과 잠재적으로 함께할 다른 소셜 이노베이터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소셜 이노베이터의 집에는 이러한 행사를 방문해서 얻은 다양한 주제의 브로슈어와 컨퍼런스 자료집이 가득하다. 소셜 이노베이터는 ‘당신은 어떤 사람과 어울리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나눌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다.
PART 3. 사회적기업가정신을 찾아서
첫 창업에 도전하다
비즈니스에 대한 근거 없는 오해와 ‘이건 내 영역이 아니야!’라고 느꼈던 내적 두려움이 어느 정도 걷히자 비즈니스를 직접 경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BA 과정에서 배운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또한 가치를 창출하는 분야는 주로 창업자가 좋아하거나 개인적인 연결 지점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내게도 그런 분야가 존재할까? 생각을 거듭할수록 뚜렷이 생각나는 한 가지 분야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출판이었다.
국제대학원 재학 시절 느꼈던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다양한 국제 이슈를 공부하면서 영어 원서를 읽어야 했는데, 이러한 좋은 책이 한국어로 번역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그런 출판물 중에 유엔에서 발행되는 유엔새천년개발목표 보고서가 있었는데, 당시 세계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기본 자료조차 번역되지 않아 일반인에게 전혀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이러한 자료는 번역해서 출판해도 사서 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업 출판사 입장에서는 위험이 컸다. 결국 ‘어떻게 하면 상업 출판사가 관심은 없지만 공익적으로 유익한 콘텐츠의 발행과 유통이라는 가치를 비즈니스로 창출할 수 있을까?’란 관점에서 고민을 시작한 뒤 마침내 출판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소셜 이노베이터의 또 다른 ID: 회사 이름은 ‘에딧더월드’라고 정했다.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는 콘텐츠가 규정하는 세상이 아닌, 공익적인 가치의 콘텐츠를 아름답게 편집하는 세계를 만들자는 의미가 내포된 표현이었다. 곧바로 관할 구청인 용산구청의 문화담당과를 찾아가 출판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간단하게 출판사 등록증이 나오고, 다시 관할세무서에 가니 사업자등록증을 받을 수 있었다. 주민등록번호로만 인식되던 내게 사업자등록증이라는 새로운 ID가 탄생한 것이다. 주민등록번호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사회의 다양한 복지 혜택과 권한을 상징한다면, 사업자등록증은 내가 사회를 위해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가치 창출의 잠재력을 선언하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소셜 이노베이터는 기본적으로 사회를 위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러했듯이 소셜 이노베이터가 사업자등록증을 갖게 된 날은 ‘제2의 생일’이라 부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