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들키지만 않으면 악마도 된다
하야시 히데오미 지음 | 전략시티
사람은 들키지만 않으면 악마도 된다
하야시 히데오미 지음
전략시티 / 2015년 2월 / 232쪽 / 12,000원
사람은 들키지만 않으면 악마도 된다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본 마쓰시타 고노스케
일본의 대표적인 리더 양성 기관인 마쓰시타 정경숙(마쓰시타 고노스케가 1979년에 설립한 정치학교로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 정치가는 물론 경영자와 언론인 등 다수의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은 학습 커리큘럼에 공장 실습을 편성하여 학생들이 후지사와 근처의 마쓰시타 전기 공장에서 2개월간 연수를 받도록 했다. 연수가 끝나면 학생들은 마쓰시타 고노스케 교장에게 성과를 보고해야 하는데, 이때 교장으로부터 질문 공세를 받았다. 내가 실습을 나간 곳은 건전지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같은 공장에 배치된 동기생 한 명은 볼에 카드뮴 가루를 묻힌 채 점심을 먹을 정도로 공장의 환경은 무척 열악했다. 깨끗한 공장 라인에서 작업하는 다른 학생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건전지 공장에서는 다른 직원들과 친밀한 교류가 가능했다. 그래서 인간미 넘치는 연수 생활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학생들을 눈과 귀로 활용한 마쓰시타: 우리는 실습을 나가기 전에 마쓰시타 고노스케 교장으로부터 실습에 임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었다. “반드시 각자 배치되는 공장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고작 3일이라도, 아니 단 하루일지라도 작업공이면 작업공, 직원이면 직원이 되어야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겉으로는 적극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마지못해서 하고 있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주어진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연수를 끝낸 학생들에게 반드시 “공장에서 일해 보고 깨달은 점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여기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철저한 사람인지를 엿볼 수 있다. 그는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동시에 각 공장의 ‘스파이’로 활용했다. 학생들의 눈과 귀를 자신의 눈과 귀로 이용했던 것이다. 학생들은 2개월간 공장의 일원이 되어 구석구석을 살폈고, 공장 직원들은 물론 간부들과도 친밀하게 지냈다. 상황이 그러하니 공장 측에서는 무언가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마쓰시타는 무서운 존재였다. 자신의 눈과 귀를 대신해서 학생들을 활용할 정도로 철저했다. ‘부하 직원을 현장에 보내 미리 실상을 파악한다. 그 정보를 토대로 담당자를 추궁한다.’ 이 방식은 한비자가 말한 사람을 다루는 일곱 가지 기술인 ‘칠술(七術)’의 ‘궤사(詭使)’에 해당한다. 아래는 《한비자》 <내저설 상> 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송나라 대신이 젊은 몸종을 시장에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몸종에게 시장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몸종은 특별히 보고드릴 것이 없다고 대답했지만 대신은 뭔가 하나라도 있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몸종이 “그러고 보니 시장 남쪽 문밖에 소달구지가 무척 많았사옵니다. 겨우 통과하는 듯했사옵니다.”라고 말했다. 대신은 몸종에게 방금 한 그 말을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고 귓속말한 뒤, 곧바로 시장 관리자를 불렀다. “시장 문밖에 소똥이 많은 것 같은데, 어서 치우거라!” 시장 관리자는 대신의 신속한 정보력에 깜짝 놀랐고, 이후부터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궤사’의 ‘궤(詭)’라는 한자어에는 ‘속이다, 기만하다, 괴이하다’라는 뜻이 있다. 즉, 속임수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이 ‘궤사’다. 조직이 커지면 조직의 리더는 현장에서 멀어지게 되고, 부하는 상사의 기분과 눈치를 살피어 듣기 좋은 정보만 전달한다. 부하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불리한 정보는 숨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리더는 현장을 살필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궤사다.
궤사를 행할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조용히 그리고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거창하게 간부를 배치하면 눈에 띄어서 조직에 긴장감만 조성할 뿐이다. 직위가 낮은 사원이나 학생을 배치하면 현장은 긴장을 풀고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일 것이다. 이것이 포인트다. 그리고 궤사를 빈번하게 사용해서도 안 된다. 일종의 공포 정치로 변질되어 부하가 사장을 의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우리 사장은 뭐든지 다 알고 있다. 현장을 잘 파악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며 경외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조직에 긴장감을 더하면서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를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 주변은 이기주의자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에서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한비자의 철학을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당당하게 정의를 외쳤던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경영 방식과 성악설에 무게를 두었던 한비자라는 사상가를 동시에 살펴보는 이유가 궁금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사상에는 성선설과 성악설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악마성을 인정한 인간관이다. 즉,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그는 인간이 악한 마음을 가졌음을 인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게 경영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을 공격해서 곤란하게 만들고 희열을 느끼는 것을 악마성이라고 한다면, 이런 악마성은 어느 사회에나 숱하게 존재해 왔다. 타인을 궁지로 몰아넣고 쾌감을 느끼는 심술궂은 악마성이다. 이런 실상에 대해서 ‘이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정의와 정직이 중요하다.’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반론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 도의가 두터운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극악무도하게 악한 사람도 극소수지만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도 극소수다.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세순응형으로, 들키지만 않으면 쉽게 악마성을 드러낸다.
당신 주위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도와주려는 이들이나 드러내놓고 당신을 짓밟으려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들키지만 않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당신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를 경험칙으로 ‘2:6:2의 법칙’이라고 한다. 조직으로 보아도 이 법칙은 유효하다. 열의를 갖고 ‘이쪽으로 갑시다!’라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전체의 10~20퍼센트 정도다. 사사건건 반기를 들며 제동을 거는 사람도 10~20퍼센트 정도다. 나머지 60~80퍼센트는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그냥 대세를 따르며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만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도 그의 저서 『인사만화경』에서 ‘사회적인 자연 현상’으로 인간 집단이 2:6:2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2:6:2로 나뉘는 상태는 왠지 연약하고 불안해 보인다며 ‘모든 구성원이 적극적인 태도를 지닌 강력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 것 같은가?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 2명, 이에 찬성하고 협력해 나갈 사람이 6명, 합하면 8명이다. 이러면 조직은 크게 하나로 통합된다. 나머지 2명도 제동을 걸든 반기를 들든 조직의 일원으로서 기여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의 시선에서 조직을 관리하라: 조직의 리더라면 이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60~80퍼센트, 즉 선과 악의 중간에 존재하는 사람들, 들키지만 않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당신이나 조직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한비자는 이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두고 있다.
한비자는 ‘2:6:2의 법칙’을 ‘태상(太上), 상(常), 태하(太下)’로 표현했다. ‘태상’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20퍼센트, ‘상’이 가운데의 60퍼센트, ‘태하’가 반기를 드는 20퍼센트에 해당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상’이다. 군주의 정치는 이들 ‘상’을 어떻게 통솔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상’에 해당하는 대다수 대중은 포상을 통해서 격려를 받고 형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포상과 형벌로 움직이지 않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체의 이익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게 되어 결국엔 나라가 망할 수 있다.
사실 ‘상’은 성인군자라고 칭송될 만큼 훌륭하지도, 극악무도하다고 비난받을 만큼 악하지도 않다. 선악의 중간에 서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이 세상의 주역이다. 일상적인 범위를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이고 항상 주변을 신경 쓰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대중이자 서민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한비자는 ‘상’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맞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해력이 풍부한 자나 식견이 높은 현자의 기준에 맞추면 민중은 따라오지 못한다. 즉 ‘전문가’를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 듣기만 해도 이해할 수 있고 보기만 해도 기억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다.”
‘이(利)’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의 심리를 간파하라
인간은 이익이 있으면 죽음도 불사한다
한비자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이(利)’다. ‘이’야말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할 때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준이다. 한비자가 《한비자》 <비내> 편에서 말한 ‘이’에 관한 구절을 소개하겠다.
“말을 다루는 병사는 말을 사랑한다. 말을 능숙하게 다뤄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다. 의사는 환자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도 아무렇지 않다. 치료비를 받기에 그것이 자신에게 ‘이(利)’가 되기 때문이다. 가마를 만드는 목수는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라며, 관을 만드는 장인은 사람들이 빨리 죽기를 바란다. 목수는 착한 사람이고 관을 만드는 장인은 나쁜 사람일까? 그렇지 않다. 사람이 부귀해지지 않으면 가마가 팔리지 않고,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관을 만드는 장인은 진심으로 누군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가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와 관련해 마쓰시타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글이 있다. 마쓰시타는 그의 저서 『인사만화경』에서 “마치 동반자의 관계처럼 인간에게는 ‘이’에 따라 움직이는 측면과, 사명에 목숨을 바친다고 하면 약간 어폐가 있겠지만 세상과 타인을 위해서 사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손해인지 이득인지를 따지는 측면, 즉 ‘이’에 따라 움직이는 측면과 자신 이외의 것을 위해서 희생하며 ‘의(義)’에 따라 사는 측면을 인간은 모두 갖고 있다는 뜻이다. 마쓰시타는 ‘이’와 ‘의’, 이 두 가지의 균형에 의해서 인생이 성립된다고 본 것이다.
리더라면 ‘이’를 좇는 심리에 정통해야 한다
‘이’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의 본심을 파악하는 기술은 다수의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에게는 특히 중요하다. 조직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그들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 모른다면 조직을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한비자》 <내저설 하> 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위나라 사람인 어느 부부가 기도를 드리던 중에 부인이 복을 기원했다.
“베 백 필만 내려주세요.”
이를 들은 남편이 너무 작은 것을 기원한다고 핀잔을 주니 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것보다 더 많으면 당신이 첩을 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친한 부부 사이라도 이해가 다를 수 있음을 말해주는 일화다. 하물며 조직에서 만든 상하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기업주가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지불하는 것은 이들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줌으로써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 역시 기업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지런히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신하와 군주의 이익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자는 왕이 되고, 같다고 여기는 자는 위협을 당하며, 더불어 일을 함께 하는 자는 살해당한다.”라고 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항상 군주를 위협하고 몰락시킨 사람은 친족이나 측근들이었다. 현대의 조직을 이끄는 리더 역시 마찬가지다. 친한 관계이기에 함께한다고 착각하다가는 어느 순간 그 사람으로 인해 몰락할 수 있다.
작은 이익은 주고 큰 이익을 취하라
한발 물러서는 것도 방책이다
검은 표범 모피를 선물로 받은 진나라 문공(文公)이 “이 짐승은 가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스스로 재앙을 불렀구나!”라고 말했듯이, 당신의 이익이 커 보이면 주위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그럴 때는 한발 물러서서 유연하게 처신하는 것도 좋은 방책이다. 황무지를 봉록으로 받은 손숙오처럼 말이다.
초나라 장왕이 승리를 거둔 후 손숙오에게 상을 주려고 하자, 손숙오는 모래와 자갈이 덮인 척박한 토지를 청했다. 초나라 법에는 신하에게 봉록을 주면 두 세대가 지난 후에는 회수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손숙오의 땅만은 후세들이 계속 갖고 있었다. 땅이 척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홉 세대에 이르기까지 부귀를 누릴 수 있었다. 지혜로운 사람은 쓸모없음을 한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발 물러서서 낮게 처신함으로써 이기주의자들의 눈을 피해 여유로운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
내 주변에 보통의 인생을 선택한 남자가 있다. 그는 도쿄대에 합격할 수 있을 만큼 수재였는데, 추천 입학으로 한 시립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도 욕심내지 않고 고향 마을의 관청을 선택했다. 주변 사람들은 아깝다며 안타까워했다. ‘패기가 있었다면 도쿄대에 진학해서 재무성에 들어가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을 텐데.’라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선택한 길은 옳은 결정이었다. 그는 남과 싸우거나 불확실성에 기대를 거는 모험을 싫어했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에서는 버틸 수 없는 타입이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성격과 자질을 10대 시절부터 알고 있었고 또한 성실하고 부지런했다. 칭찬받았다며 의욕이 충만해서 과도하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도, 반대로 무시당했다며 우울해져 노력을 게을리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천천히 전진하는 게 현명하다: ‘그렇게 살지 말고 도전해 보라’는 격려가 오히려 우리를 병들게 할 수도 있다. 말에도 악마성이 있다. 맹목적인 격려든 뭐든 남들의 말에 교묘하게 세뇌되면 자신도 올림픽에 출전해서 우승할 수 있다고 믿을 정도가 된다. 마약에 취한 듯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남에게 받은 격려와 기운은 금세 사라진다. 현실로 돌아와 보면 한때의 꿈으로 끝나고 만다.
자신이 악마들과의 치열한 싸움을 할 성향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한발 물러서서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 후 착실하게 한 발씩 나아간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실력이 생길 것이다. 노력과 성실은 결코 헛되지 않다. 이런 자세로 자신의 그릇을 점차 크게 키워 나가도록 한다. 또한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다. 이 도전이 처음엔 어렵더라도 성공으로 가는 길인지, 아니면 오히려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길인지. 특히 큰 도전을 앞두고 있다면 더욱 그래야 한다. 아무리 의욕과 욕심이 앞선다 해도 자신의 역량에 비추어 한발 물러설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성공의 길이다.
도움이 된다면 악한 사람도 포용하라
한발 물러서는 것도 좋은 방책이지만, 크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들키지만 않으면 악마도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다면 그들이 지닌 능력을 더 큰 이익을 창출하는 데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고, 큰 강과 바다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라고 했듯이 말이다.
능력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면 연공과 발탁의 균형이 필요하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요령을 금세 터득한다. 일의 순서를 정하는 방법도 탁월하고 여러 안건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실무 능력도 겸비하고 있다. 당연히 성장 속도가 평범한 사람에 비해 몇 배 이상 빠르다. 그래서 이들은 조직에서 자신의 빠른 성장과 성과를 인정하고 자신을 발탁해야 ‘이’가 충족되었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