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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2시간

정기룡, 김동선 지음 | 나무생각



퇴근 후 2시간

정기룡, 김동선 지음

나무생각 / 2015년 2월 / 272쪽 / 13,800원





김장수 씨는 퇴근 후 무엇을 하였나?



음식물 쓰레기장에서의 불빛

“여보, 11시야.” 안방에서 드라마를 보고 계시던 마눌님이 부른다. 매일 이 시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오라는 소리다. 김장수 씨는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켜 음식물 쓰레기통을 든다. 얼마 전만 해도 칼같이 주름 잡은 제복을 입고 출근하던 그다. 그런 그가 매일 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게 될 줄 꿈에서나 상상했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파트 후미진 곳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 근처로 다가가니, 어둠 속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니, 서장님 아니십니까?” 무심히 지나치려는데 남자가 알은척을 했다. 예전 지인들 모임에서 알게 된 모 기업의 최고민 부장이다. 동향인 데다 같은 아파트 이웃이기도 해서 처음 만난 자리인데도 이야기가 잘 통했다.

“아이고, 아직 담배를 못 끊으셨나 봐요.” 집 안에서 피우지 못하는 담배를 들고 나와 어둠 속에서 피워야만 하는 흡연자의 고충이 이해가 된다. “네, 요즘 심란해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뭐 골치 아픈 일이라도 있나요?” “직장 일이라는 게 다 그렇죠, 뭐. 아, 그런데 서장님은 퇴직하셨다고요. 집사람이 그러더군요.” 뒤에 생략된 말이 짐작이 간다. 대낮에 아파트 단지 내를 돌아다니더라, 두부 사 가는 모습을 봤다, 뭐 그런 말들 아닐까.

“서장님이 부럽습니다.” “네?” “그래도 정년까지 채우고 퇴직하셨으니까요. 저희 같은 기업에서는 언제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 모르잖아요.” “아직 40대 후반인 줄 알고 있는데…….” “사실 기업에서 40대 후반이면 퇴직 생각해야 하는 나이죠. 특히나 요즘은 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이런 말들을 나누다가 언젠가 술 한잔하자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돌아섰다. 김장수 씨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면서 ‘그래도 정년까지 일할 수 있어서 좋지 않았느냐’는 최 부장의 말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 선배에게 배우다

저녁 산책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는 편의점 앞 간이 테이블에 최 부장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김장수 씨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가려는데 최 부장이 부른다. “서장님, 잠깐 앉았다 가시죠.” 예전에는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다 보니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서로 얼굴 볼 일이 전혀 없었는데, 퇴직 후라서 그런지 최 부장과도 자주 만나게 된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서요.” 최 부장이 건네는 캔맥주를 집으며 김장수 씨는 어떻게 하면 초라하지 않게 대답할까 잠시 궁리했다. “뭘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네? 이제 쉬셔도 되잖아요.” 최 부장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김장수 씨가 오히려 당혹스럽다. “아직 나이 60도 안 된걸요. 요즘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잖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죠.” “그렇긴 하지요. 휴, 저는 겨우 나이 40대 후반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왜요? 무슨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최 부장은 성실한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회사에서 한눈팔지 않고 일해온 지 벌써 25년이 넘는다. 하지만 개인적 성취감과는 별개로 역시 고용된 사람이기 때문에 초조함은 어쩔 수 없다. 2년 전부터 회사가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데, 다른 대기업에서 인수를 한다는 소문이 꽤 구체적으로 돌면서 인맥, 학연, 지연을 동원한 정보전과 줄서기가 난무하고 있다. 최 부장은 입사 이후 최대의 위기를 겪는 중이다.

임기가 보장된 경찰 공무원이어서 사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의 초조함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장수 씨도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고 있다. 주변에서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의 존재가 전면 부정되는 상황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도 종종 보아왔다. “현재의 직장이 인생의 종착지는 아닙니다. 지금 직장을 나오더라도 계속 일은 해야지요. 하지만 퇴직한 다음의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 없이 직장을 나오면 안 됩니다.”

김장수 씨의 준비

“사람들이 왜 자기 앞날을 준비하지 못하는 줄 아십니까?” 앞날? 준비? 최 부장의 머릿속에서는 취업 준비를 하던 20대 이후 사라진 단어들이다. “왜죠?” “회사와 자기를 일체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상명하복과 성과주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것이 서열이고 경쟁이죠. 그러다 보니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회사에 충실한 ‘회사 인간’일수록,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할수록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지요. 언젠가는 회사에서 나와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김장수 씨 입장에서는 최 부장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옛날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다. 경찰이라는 특수 조직이 정년이 보장된다고는 하나, 층층시하의 위계질서와 승진에 목매어야 하는 경쟁 구도가 아닌가. 하급자의 잘못까지 책임져야 하는 조직의 속성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김장수 씨는 최 부장을 위해서 뭔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자신이 계획하는 일들이 결실을 맺어야 할 것이다.

퇴근 후 2시간 - 차별화

김장수 씨가 퇴직 이후를 걱정하고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이다. 정년은 한참 남았지만 경찰복을 벗어야 될지도 모르는 직업적 위기를 겪으면서 자연히 퇴직 후 할 일을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는 퇴직 준비를 하루라도 빨리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일단 무엇을 시작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경찰이었던 사람이 할 일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뭐가 좋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뭘까…….’ 불쑥 빵이 떠올랐다. 정년퇴직하고 빵집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근무하던 대전에는 성심당이라는 빵집이 유명했다. 마침 그의 관할 구역에 성심당 제과제빵학원이 있었다. 몇 번 그 앞을 지나면서 망설였다. 경찰서장 하면서 빵을 배운다는 게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문을 두드렸다.

학원에서는 각각 스물네 가지씩 제빵과 제과를 연습시켜 제과ㆍ제빵사 자격증을 따도록 해준다. 자격증도 중요하지만 실제 빵집을 차린다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전쟁인데 불안한 생각이 든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요즘 대세는 건강빵이다. 거칠어도 몸에 좋은 빵, 조금 비싸도 웰빙 빵을 찾는단다. 아니면 아예 싼 빵을 만들어서 천 원에 세 개 정도로 팔아야 경쟁력이 생긴다고 했다.

김장수 씨는 학원 원장님을 찾아가 상의했다. 차별화, 가격, 인건비, 가게 위치……. 다 중요하고 옳은 이야기다. 원장님의 결론은 일단 1년 계획으로 제빵사 시험부터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원장님이야 학원비 받고 빵만 가르쳐주면 되지만 빵을 배우는 김장수 씨는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자격증

하나를 배우면 다시 하나를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인가 보다. 김장수 씨는 대형 빵집 때문에 빵집이 안 된다면, 대기업이 안 하는 것을 찾아야겠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그게 떡이었다. 떡을 배우려고 몇 군데 떡집을 다니며 알아보았지만 떡 만드는 것도 노하우이기 때문에 가르쳐주려는 곳이 없었다. 우선 학원에 등록해서 떡을 배우기 시작했다. 떡을 하니까 폐백도 같이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함께 학원에 등록했다. 육포와 오징어를 사다가 모양대로 오리는 연습을 했다. 학원에서 배우는 것도 할 만큼 했다 싶어 이번에는 명장에게 배우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떡 명장이라는 사람이 대전엑스포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김장수 씨는 수소문 끝에 그분을 찾아갔다. 일주일에 한 가지씩, 새로운 종류의 떡을 그 집에서 배웠다. 6개월을 배우고 나서는 실전이 필요했다.

대전 중앙시장에 가니 떡집이 두 곳 있었다. 두 집의 떡을 먹어보니 한 집의 맛이 월등히 좋았다. 추석 즈음에 떡집을 찾아가서 부탁했다. 빵과 떡을 배웠는데 떡 만드는 기술을 좀 더 가르쳐달라고. 김장수 씨는 창피한 생각도 들었지만, 10년 후 목표를 생각하고 꿋꿋하게 일했다. 아침 10시쯤 일이 끝나서 집에 갈 채비를 하면 사장이 떡을 싸준다. 그렇게 6개월을 배웠다.

무식해서 용감하다

학원에서 김장수 씨에게 떡을 가르치던 젊은 선생님이 혜천대학교 옆에 직접 떡집을 차렸다. 원래 한식전문가였지만 떡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배우고 나서 떡 전문가로 나선 것이다. 뒤늦게 떡을 공부하고 가게까지 차린 것을 보고 김장수 씨가 놀라워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때로는 무식할 필요가 있어요.”

퇴직이 3년여 남았을 때쯤, 김장수 씨는 코앞으로 다가온 퇴직으로 은근히 마음이 불안했다. 10년 전부터 은퇴 걱정을 하고 이것저것 준비를 했지만, 빵이나 떡이 시기적으로 탐탁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텔레비전에서 수제 초콜릿, 설탕 공예에 대한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수제 고급 초콜릿! 그래 바로 이거다!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해야지! 김장수 씨는 예전에 빵을 배우던 성심당 제과제빵학원에서 한 달에 25만 원씩 수업료를 내고 배우기로 했다.

막상 배우려니 수제 초콜릿은 손 기술이 있어야 했다. 그가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이 안 나왔다. 앞치마가 온통 초콜릿투성이였다. 초콜릿으로 과자, 사탕, 꽃 모양 등 제과점에서 파는 것처럼 따라서 해보지만 완성품을 보면 아무래도 상품성이 없을 것 같았다. 좌절감이 밀려왔다. 퇴직 후 무엇을 할 것인지가 손에 잡히지 않으니, 김장수 씨는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다. 텔레비전에서 웰빙 시대, 힐링 시대라고 떠든다. 조금 비싸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먹거리도 좋은 것을 찾는다는 것이다. 김장수 씨는 제대로 된 아이템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대세를 따라야지. 웰빙 하면 단연 두부지.”

평생직업

김장수 씨가 빵, 떡, 초콜릿, 두부를 배우는 동안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퇴직할 텐데, 그때쯤이면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돈이 많이 들 텐데…… 걱정이 태산이다. 세무사, 회계사, 법무사, 중개사, 변호사, 약사, 의사가 눈에 띈다.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건강하기만 하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동안 빵, 떡, 두부 등을 배우러 다니느라 퇴근하고 두세 시간을 꼬박꼬박 투자했는데 막상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10년 동안 딴 자격증이 몇 개인가? 이를 위해 학원에 갖다 바친 돈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격증을 딴다고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적성에 맞고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어떻게 자신의 경력으로 살리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그가 속상한 것은 정말 어려울 때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진로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지도해줄 멘토가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밥 먹으며 친분을 쌓고, 사회생활을 잘했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때에 막상 속을 털어놓고 상의하고 조언을 받을 사람이 없다. 갑자기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저녁 시간은 내 것이다

퇴근 후 2시간을 퇴직 준비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시간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월급은 적당히 일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직에도 계속 최선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다. 일을 끝낸 뒤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려면 시간 관리에서도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쌓아야 한다.

김장수 씨의 경우, 새벽에 1시간 정도를 자신만의 시간으로 사용한다. 5시에 일어나면 누구한테도 간섭받지 않는 시간을 갖게 된다. 가족들이 기상을 하기 시작하면 내 시간은 없다. 아이들과의 시간, 아내와의 시간, 출근하면 상사, 동료, 부하 직원과의 시간이다. 점심시간도 혼자만의 시간은 아니다. 퇴근 때가 되면 다시 상사를 위한 시간이다. 저녁에 상사와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고, 노래방을 들렀다 집에 가면 11시.

김장수 씨는 자신이 경찰서장이 되면 절대로 부하들의 저녁 시간을 빼앗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부임 첫날에 직원들에게도 공약했다. 윗사람이 시간을 만들어줘야 부하들도 자유롭게 자기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퇴근 후 개인 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시간을 알차게 사용한 직원들이 근무 시간에 더 충실할 수 있다.

약속이 있는 과장들은 나가서 식사하고 약속이 없는 과장들은 구내식당에 모이면 된다. 대신 매주 수요일 저녁은 직원, 동료끼리 만나지 말고 각자 자유 시간을 갖거나 취미 생활을 하도록 권했다. 김장수 씨가 경찰서장을 하는 동안 이것만은 꼭 지켰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어색해했지만 나중에는 자기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고 다들 좋아했다. 물론 최대 수혜자는 김장수 씨 자신이다. 11년 동안 저녁 시간을 그렇게 활용했던 것이 퇴직 후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김장수 씨는 퇴직 후 무엇을 하였나?



김장수 씨, 행복 강사가 되기까지

최고민 부장은 주말에 외출을 하고 돌아오다 김장수 씨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거의 한 달 만에 마주친 것이다. 운동을 하고 들어오는 길이라는 김장수 씨는 활기가 넘쳐 보였다. 그동안 사무실을 열고 강의 준비를 하면서 바쁘게 지낸다는 얘기는 들었던 터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아, 네, 오랜만입니다. 최 부장님도 잘 지내죠? 저는 요즘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얘기하던 것.” “축하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요?” “경찰 교육원이나 공무원 연수원 등에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요즘 고정적으로 강의를 나갑니다.” “그동안 강의 준비하신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결국 해내셨네요.” “제가 노후 준비를 한다며 이 학원, 저 학원에 낸 돈만 해도 엄청난데, 결국 강사가 되었네요. 하하!”

“정년을 앞두고 6개월 동안 대기 발령 기간이 있었습니다. 퇴직 이후에 할 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이지만, 사실 이때가 퇴직자에게는 참 견디기 힘든 시기이지요.” “네, 저희 회사에서도 퇴직 준비 기간을 주는데, 이 시기에 대부분 무기력감에 빠져 있거나 불안해하면서 6개월을 허송세월로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김장수 씨는 이 시기에 경찰 교육원이나 소방 학교, 중앙방재연구원 등 강사를 필요로 하는 곳에 그의 약력과 강의 원고 등을 보내 강사 채용 여부를 타진해보았다. 무료로 강의를 하겠다고도 제의했다. 처음에는 가뭄에 콩 나듯이 강의가 들어오다가 이제는 입소문이 나면서 주 3회 정도 고정적으로 강의를 나가고 있다.

“아, 그냥 은퇴하신 줄 알았더니 다 준비해놓고 나오셨군요. 부럽습니다!” “그렇죠. 멀리 내다보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저로서는 이런저런 시행착오들이 많았지만 강의를 하다 보니, 예전에 빵과 떡을 배우러 다니던 시행착오들이 강의할 때 다 이야깃거리가 되더군요. 그때 땀 흘린 경험이 전혀 헛된 것은 아닌 셈이지요.”

왜 직장 생활을 하는가

오래전 일이다. 지방청 청문감사관을 하는 박 과장이 청장과 밥을 먹다가 인사계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과장님! 인사이동이 있는데, 전화로 말씀 드립니다. 지방청 경비과장으로 발령 나셨어요. 오늘이요.” 하루아침에 좌천이다. 청장을 쳐다보니 청장은 모르는 체하고 식사를 계속하고 있다. 박 과장은 밥을 먹다가 그 자리에서 나와버렸다. 속이 터졌다.

‘내 나이 쉰여덟이다. 초임자가 근무하는 경비과장으로 발령을 내다니 때려치우라는 말인가?’ 분통을 터뜨리다가 갑작스럽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다. ‘내가 직장 생활을 왜 하나? 먹고살려고 다니는가, 아니면 품위 유지 차원에서 다니고 있는가?’

그는 생계형 직장인이다. 아직 아이들이 대학을 다니고 있고, 자립하려면 한참 더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 은퇴하고 전원주택 짓는다고 융자받아 땅을 샀는데, 그 융자도 아직 다 못 갚았다. 박 과장은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청장님! 감사합니다. 경비과장으로 발령 내셨다 들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마 청장도 무안했을 것이다. 상대방을 미안하게 만드는 것, 그것도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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