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드림
유형근 지음 | 사이다
꿈드림
유형근 지음
사이다 / 2014년 12월 / 260쪽 / 12,000원
제1장 사라진 시간을 탓하지 마라 - 과거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자의 심장을 가져라
인간이 나약하다는 것은 무능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상처는 얼마든지 치유될 수 있다. 인간의 의지와 거의 연관이 없는 것이 육신의 상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자신의 의지 없이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나약함은 능력이 있고 없음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마음이 강건하지 않은 자가 나약한 자다.
우리가 흔히 강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 큰 무리를 이끄는 리더인 경우가 많다. 기업의 대표나 정치인으로서 이름을 떨치거나, 가끔은 사악한 단체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대범하다. 상처를 입어도 피 한 방울 흘릴 것 같지 않은 철벽같은 심장이 그들에게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정말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는 냉혈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그들은 상처를 받아도 스스로 마음을 움직여 빨리 벗어나는 것에 강한 부류일 뿐이다. 게다가 그들은 상처받지 않는 법에도 능하다. 상처를 받았으나 그 아픔을 다시 딛고 일어서는 의지가 타인의 몇십 배는 된다고 해야겠다.
병든 사회의 피해자, 치유로 극복하다: 세상이 점점 잔혹해진다. 아니, 우리 인간이 그러하다. 약자를 궁지로 몰아넣고 괴롭히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리고 그것이 나쁜 행동임을 모르며, 문제가 생기면 ‘장난’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잘못을 잘못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세상은 얼마나 잔혹한가. 내가 곧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무리에서 따돌림을 받은 마음의 상처는 평생의 삶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피해자에게는 곧 고통이고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얼마나 깊은 고통일지는, 따돌림으로 피해자가 되어 자살한 사람의 영혼이 되기 전에는 가늠조차 힘들 것이다. 나는 아니라고? 내 자식은 해당 사항 없다고? 이런 말도 할 수 없다. 피해자들 부모 대부분은 자신의 자녀가 그런 고통을 겪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우리 자신도 따돌림의 대상이 되면 수치심에 내색조차 못 하지 않던가.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어쩌면 이런 행동조차 본능인지도 모른다. 역시 가슴이 서늘할 만큼 아픈 일이다. 그 외로움과 고독을 어떻게 위로해줄 수 있을까?
독일에 슈바이처가 있다면 일본에는 노구치 히데요가 있다는 말이 있다. 일본의 1천 엔 지폐에 새겨진 인물이 바로 노구치 히데요다. 민란에 가담한 그의 아버지는 관군에 잡혀 죗값을 치르고 평생 술과 노름에 빠져 살았다. 어머니가 가난 속에서 생계를 맡았고 노구치는 누나가 일해 번 돈으로 학업을 이어갔지만 그는 학교에서 심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다. 어릴 적 화상으로 뭉개진 조막손과, 가난 탓에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해 점심을 물로 채우는 것이 놀림의 원인이었다. 마음의 상처는 날로 심해졌고, 친구가 없는 것보다 희망이 없는 것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상처를 딛고 일어섰다.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손은 늘 까맣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밭에서 일하고, 호수에서 조개를 잡으며 일하기 때문입니다. 비 오는 날에도, 바람 부는 날에도, 어머니는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래서 손이 거칠고 갈라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어머니의 손이 좋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어머니의 손길이 닿으면 저는 아이처럼 편안해집니다. 꿈속에서 저는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 잠이 듭니다. 꿈속에서 본 어머니의 손은 그 어떤 보물보다도 밝은 빛을 냅니다. 그런 어머니는 제게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노구치는 작문 시간에 숙제로 쓴 이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러자 그동안 그를 따돌리며 괴롭히던 아이들의 마음이 달라졌다. 모두들 노구치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었고, 괴롭히는 대신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해주었다.
희망을 잃고 도망쳤던 노구치가 다시 세상을 향해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다. 아버지 대신 가장이 되어 가족을 돌보는 어머니의 손을 통해 노구치는 삶의 의지를 얻고 희망도 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이 다른 아이들에게 감동과 눈물을 선사하는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분명 다른 아이들 또한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노구치는 학업을 마치고 교사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조막손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조막손을 가진 교사를 채용해주는 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절망 대신 새로운 꿈을 꾸었다.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결국 그의 장애는 꿈과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그를 가로막지 못했다. 의사가 된 그는 록펠러 의학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었고, 매독균을 발견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으며, 노벨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나는 많은 청소년들이 노구치 히데요의 이야기를 알고 새로운 꿈과 희망을 위한 용기를 갖길 바란다. 신문을 펼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학교 폭력과 왕따 사건들을 보며 어른으로서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따지고 보면 가해 학생도 피해 학생도 없는, 이 사회 모두가 병들어 있어 생기는 피해자들이다. 우리 모두가 이런 일들을 만들었다는 데 공동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모두가 피해자다.
이렇게 아픈 우리들이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 용기를 가져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그 이유다. 우리가 어디의 어느 누구에게서 그토록 무한한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결국 우리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고독하고 외로웠으며 상처받았다. 혼자라고 느끼고 아무도 돕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언제나 늘 같은 자리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소홀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 손길은 무한한 치유의 원천이다. 살인자도 악마도 그 어떤 흉악범도 자신을 사랑하는 어머니 앞에서는 딱딱한 심장마저 부드러워진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 힘들고 고독할 때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을 떠올리자. 아픈 내 몸을 걱정스레 쓸어내리던 손길과, 말없이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주던 모습, 나를 향해 웃어주던 얼굴과 짜증 내고 투덜대도 들어주시던 모습 등 어머니의 사랑은 한계를 알 수 없을 만큼 무한하지만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마치 당연한 것처럼 늘 받기만 해서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오래 지치지 않고 계속되는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뿐이다. 외로울 땐 나를 가장 먼저 사랑해주는 사람을 생각하라. 노구치처럼 우리에게도 검은 손을 가진 어머니가 있다.
심장에 철갑을 둘러라: 불행을 딛고 일어서는 자의 가슴 깊은 곳에는 늘 희망이 있다. 그에게는 꿈을 꾸고 비전을 세워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꾀하겠다는 용기와 인내가 있다. 우린 언제나 더 나은 삶을 꿈꿔야 한다. 그것이 자신이 받은 상처를 이겨낼 유일한 희망이다. 먼저 단단하고 굳건한 심장이 비전인들의 가슴에 있어야 한다. 세상이 던지는 고통에 상처받아도 그 상처를 잊을 만큼 빨리 회복하는 치유의 힘이 그곳에서 나온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없다. 누가 치유의 힘을 더 많이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면역력이 강한 사람은 감기에 걸리지 않고 긴 겨울을 이겨낸다. 우리 스스로 마음의 건강을 돌보지 않는다면 세상이 터무니없이 안기는 상처에 매번 아파할 수밖에 없다. 두려워하지 말자. 상처받는 것을 겁내지 말자. 그 어떤 상처도 치유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우리의 심장을 단단하게 무장하자. 고통을 덜어줄 단단한 굳은살을 가진 자가 세상이라는 척박한 토지의 돌덩이를 골라낼 수 있다.
늘 긍정적인 생각과 밝은 기운으로 심장을 채우라. 나를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고, 가족과 친구를 가슴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혼자라는 고독에 빠질 때면 차라리 세상의 따뜻한 이면을 찾아보라. 정신을 맑고 강인하게 해줄 수 있는 운동도 빠뜨리지 말자. 이 모든 것이 비전인을 강건하게 해준다. 우리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고, 상처가 덧나지 않는 사자의 심장으로 만들어준다.
별로 어렵지 않다. 자신을 위해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여 운동을 하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은 그저 평범한 일상이지 않던가? 행복을 불러오는 방법과 희망의 끈은 늘 가까이에 사소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지극히 사소해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상처받지 않는, 상처가 주는 고통에 둔감한 사자의 심장을 가진 비전인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밀림의 왕 사자는 자신보다 덩치 큰 동물에게도 망설임 없이 달려드는 기개가 무쌍하다. 용맹한 사자에게 두려움이나 공포 따위는 없다. 감정이 없는 동물이라서가 아니다. 마음먹은 일은 길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본능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리도 그와 같은 도전을 해야 한다. 삶이라는 치열한 전투에 나약한 정신과 마음으로 임한다는 것은 매 순간 상처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타적인 삶도 중요하지만 내 자신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강심장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이 나를 진정 사랑하는 길이고 소중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상처받지 말자. 상처의 원인이 가치 없는 일이라면 더더욱 연연할 이유가 없다. 나를 향하는 세상의 왜곡된 시선쯤은 얼마든지 웃어넘기는 배포를 기르자. 때로는 남보다 나를 더 소중히 여기는 약간의 이기심이 필요할 때도 있다. 사자의 본능처럼 비전에만 충실하자. 꿈을 바라보고 용맹하게 달려드는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에 있으니 우리의 마음이 곧 사자의 심장이 될 수 있다. 두려움을 이긴 자가 비전을 이루는 영웅이 될 수 있다. 실패와 좌절, 절망과 상처, 이 모든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으로 이겨낼 수 있다.
제2장 행동에 따르는 보상은 반드시 존재한다 - 현재
나를 속이지 않는 삶의 브레이크
“형근아, 신이 다아 보고 있능겨. 그랑께 숨어서 나쁜 짓 하믄 안 되니라.” 어릴 적 내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다. 고만고만한 동네 꼬마 녀석들이 모여 수박이며 참외를 서리해서는 갯가에 앉아 놀다 먹는 꿀맛이 삼삼했다. 하지만 나는 그 틈에 끼지 못했다. 할아버지 말씀처럼 어디선가 신이 지켜보고 있다가 천벌을 내릴 것만 같았다. “죄를 짓고서는 절대 떳떳할 수가 없능겨. 언젠가는 들통 나서 천벌을 받는당께. 하늘이 알고 네가 아는데 비밀은 없어야. 천벌이 아니고라도 동네 어르신들 수고한 밭에서 그런 못된 짓 하믄 안 대제. 니는 똑똑하고 야무니께 이 할애비 말 알제?”
할아버지 앞에서 했던 다짐 때문일까? 나쁜 짓의 유혹에 빠지게 되면 주문에라도 걸린 것처럼 몸이 굳어졌다. 함부로 거짓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지켜보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할아버지의 충고 덕분이다. 순진하고 어리숙한 시절이었으니 ‘죄와 벌’에 대한 공포는 뼛속 깊이 각인되었다.
살면서 작은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삶을 살았노라 말할 순 없다. 탄생의 순간에 받은 순수와 선함이 내게 그대로 남아 있다 하기에는 나 역시 세상을 너무 알아버렸다. 그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에게 순수함이 가득했던 그때, 내 할아버지께서 신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던 것을. 그것은 내 삶의 브레이크였다. 세상이 나에게 적당한 타협이나 술수를 부리라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큰 부끄러움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이 나로서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누구나 늘 유혹받는 삶을 산다. 원칙을 벗어나 한 번쯤 일탈을 하는 것으로 유혹에 길들여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정도쯤이야’라며 자신의 일탈을 정당화하는 것에 능숙해진다.
비전을 세우고 성공시키기까지 흔들려서는 안 되는 원칙이 있다. 바로 원칙을 무시하는 곁길로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이 평범한 진리를 무시하는 순간 비전이 아닌 나락의 끝으로 내몰린다. 부를 좇거나 이익을 위해 바른 길을 무시할 때 비전이 갖는 의미는 퇴색된다. 아무리 올바른 가치관으로 세운 원대한 비전이라도 술수를 이용하는 순간 서서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옳은 길이 아니라면 무사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불의와 타협한 순간 얼마나 쓰디쓴 패배의 잔을 맛보게 될지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탐욕이 부른 재난: 논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내가 이 책을 쓰는 동안 숱한 재난이 일어났다. 생때같은 아이들이 바다에 생매장되었다. 사고가 미처 수습되기도 전에 보란 듯이 또 다른 사고들도 터졌다.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전 국민의 분노를 불러왔다.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된 사고들의 공통점이 있다.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주의 안일함이다. 불의의 끝은 언제나 참혹하다. 희생된 사람들의 설움은 가눌 수도 없다. 당하는 것은 늘 힘없는 사람들이고, 그 책임의 끝은 결국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나 기업에 돌아가게 된다.
그들의 비전은 무엇이었을까? 대단한 사업가로 재물을 쌓거나 권력으로 세상을 호령하던 사람들이었다. 애초 부와 권력만을 탐하진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원칙을 기만했고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비전의 성공 여부를 떠나 그들의 죄를 어떻게 단죄할 수 있을까? 비전이 아무리 훌륭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비전은 세상을 이롭게 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얄팍한 잇속과 권력의 결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올바른 길이 아니기에 반드시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어 있다. 올바르지 않은 권력과 기업이 영원히 흥하는 바를 역사 이래 아무도 찾아보지 못했다. 사람이 행복한 세상이 끝나는 것은 누군가의 탐욕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그 탐욕이 영원히 지속된 적은 분명 없다.
모든 것은 바른 길로 찾아가기 마련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하지 않았던가. 세상은 늘 스스로 자정 작용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바른 것, 선한 것으로 회귀하려는 성질을 띤 것이 세상의 이치다. 때문에 모든 것은 반드시 바른 이치로 흘러간다. 다만 그 과정에 늘 희생이 따른다. 바른 길이 아니라면 곁눈질도 하지 말아야 한다. 내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신이 보고 있고 하늘이 알고 있다. 지금 당장 눈앞의 이익이 우리를 영원한 행복으로 이끌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벨탑처럼 순식간에 무너질 모래성일 뿐이다.
비전을 세운 첫 마음을 유지하자. 미래의 안녕과 행복을 꿈꾸었던 선한 마음을 잃지 말자. 내가 이루어 타인까지 이롭게 하겠다는 마음이 유지되어야 한다. 사명감을 잃지 않는다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세상과 맞설 수 있다. 조금 느려도 원칙을 지킨다면 무너지지 않는 공든 탑이 완성된다. 비전으로 향하는 사람이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마음이다. 승자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있고,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있다고 했다. 『탈무드』에 담긴 이야기다. 비전을 채운 가슴에 탐욕이 들어서지 않게 하자. 성공이 느리다고 재촉하지도 말자. 천천히 한걸음씩 스스로의 힘으로 걷겠다는 원칙을 고수하자. 그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탐욕의 노예가 되고 꿈도 비전도 무너진다.
경거망동, 도취되지 말자: 비전은 인생 최종 목적지에 있다. 그 과정 중에는 비전을 이루기 위한 목표들이 존재하게 된다. 때문에 일련의 목표들이 단거리 경주라면 비전은 마라톤이다. 목표들을 하나둘 이루어나갈 때마다 성취감으로 행복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성공은 또 다른 성공을 불러들이는 ‘자신감’이라는 긍정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런데 성공 가도를 달리다 보면 기쁨에 도취되어 뜻하지 않은 상황이 닥치곤 한다. 모두 마음을 다잡지 못한 탓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들 중에 사례가 있다.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여 탄탄대로를 걷다가, 성공으로 거머쥔 부를 어느 순간 허투루 사용했다. 도박에 빠지거나 가치 없는 주식으로 한탕을 노리는 경우도 있었다. 성공의 대가는 달콤하다. 모두 이룬 것만 같은 기쁨으로 흥분하게 된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성공은 지켜낼 때 더 큰 성공을 불러온다는 것을 잊는다. 도취되니 경거망동하게 되고, 넉넉해지면 아낄 줄 모르게 되는 오류도 범한다. 쉽게 얻을수록 쉽게 잃는 이치다. 모두 잃고서야 후회하게 되니 인간이 참으로 어리석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