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 신화를 다시 쓰다
데이비드 버커스 지음 | 시그마북스
창조성, 신화를 다시 쓰다
데이비드 버커스 지음
시그마북스 / 2014년 11월 / 240쪽 / 13,000원
유레카 신화
우리는 천재적 아이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할 때 마치 그것이 갑자기 출현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리고 통찰 이전에 기울인 끈질긴 집중 과정이나 통찰 이후에 일어나는 아이디어의 추후 개발 과정에 따른 노고를 쉽게 도외시한다. 이런 식의 이야기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주인공인 경향이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디어가 부족한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려는 심리 때문인지 모른다. 즉 아직은 자신에게 아이디어가 찾아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와 뉴턴의 이야기 같은 유레카 신화를 좋아한다. 모두들 뉴턴의 사과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뉴턴이 사과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자연계를 설명하는 법칙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사과 하나가 떨어져 머리에 맞는 순간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모종의 힘이 작용해 사과가 땅으로 떨어진다는 이론을 세웠다. 그는 사과를 끌어당기는 힘이 달을 끌어당기고, 이것이 지구 주위를 돌도록 하는 힘과 동일하다고 봤다. 뉴턴은 유레카 순간을 맞이했고, 해답을 얻었다. 사과가 떨어졌고, 뉴턴은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정말 흥미진진하고 그럴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뉴턴의 사과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는 사건이었지만, 그토록 오랫동안 회자되었던 것이다.
뉴턴의 사과 이야기를 가장 먼저 언급한 기록은 윌리엄 스터클리가 남긴 것이다. 스터클리가 뉴턴의 전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두 사람은 뉴턴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난 뒤 차를 마시려고 정원으로 나갔다. 마침 정원의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하나 떨어졌기 때문에 두 사람은 중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토론은 물체의 크기가 그것의 중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되었다.
이것이 끝이다. 사과가 뉴턴의 머리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스터클 리가 서술한 사과 사건은 뉴턴이 이미 중력에 관해 알고 있었던 바에 새로운 어떤 것을 보태줬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사과 사건이 뉴턴이 중력을 설명할 수 있는 수학 공식을 도출하는 작업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볼테르 같은 저술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원래 정원에 떨어졌던 사과는 어느새 뉴턴의 머리에 떨어진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뉴턴의 사과 이야기 다음으로 유명한 유레카 신화는 바로 아르키메데스의 목욕 이야기다. 사실 유레카라는 용어는 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아르키메데스의 사촌인 히에론 왕이 아르키메데스에게 특별한 임무를 맡겼다. 히에론 왕은 금세공사가 순금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왕관이 정말 순금인지 밝히되, 왕관을 부수거나 녹이거나 자르지는 말라고 했다. 고민하다가 아르키메데스는 잠시 쉴 겸 욕조에 물을 채운 뒤 들어갔다. 그런데 욕조에 물을 담그자 물이 조금 넘쳤다. 그 순간 아르키메데스는 왕관을 물에 담근 뒤 물이 넘치는 정도를 측정하면 왕관의 밀도와 성분을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르키메데스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사실을 왕에게 알리기 위해 왕궁을 향해 거리를 뛰어가면서 “유레카!”라고 외쳤다고 한다. 유레카는 고대 그리스어로 “알았다!”라는 뜻이다.
뉴턴과 아르키메데스의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진실이든 아니든 두 이야기는 유레카 단계 이전의 노고를 외면하고 있다. 뉴턴의 경우 역사적 증거에 의하면 그는 이미 중력이 행성의 운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사과가 떨어진 사건은 기껏해야 뉴턴이 지구와 달 사이에 거대한 인력이 존재할 가능성과 행성처럼 생긴 작은 물체(이를테면 사과)에 대한 중력을 연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르키메데스의 사례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가 목욕을 하기 전에 진행한 작업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아르키메데스는 배수량으로 밀도를 측정하는 공식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목욕이 물의 양을 측정해 밀도를 계산하는 계기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유레카 신화와 앞서 언급한 두 이야기에는 우리가 이런 통찰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담겨 있지 않다. 만일 어떤 일이 갑자기 일어난다면 우리 정신 내부의 어떤 부분이 그것을 촉발시키는가? 사과를 떨어트리거나 욕실 바닥으로 물이 넘치도록 하는 것 외에 창조적 계시를 유도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어떤 역할이 있어야 한다.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바로 그 어떤 역할을 탐색해 왔다. 최근 수행한 연구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에서 그는 작가 로버트슨 데이비스와 저명한 과학자 라이너스 폴링과 조너스 소크를 포함한 91명의 유명한 창조적 인물들의 사고 과정을 조사했다.
칙센트미하이는 심리학적 검증이나 뇌 영상을 통해 그들의 정신적 작용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그들이 자신의 사고 과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집중했다. 칙센트미하이의 목표는 그들이 스스로 어떻게 창조적 통찰에 도달한다고 생각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는 유레카 순간에 도달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연구한 거의 모든 인물들이 준비, 숙성, 통찰, 평가, 정교화 등의 다섯 가지 단계로 구성된 창조 과정을 공유하는 점을 발견했다.
물론 칙센트미하이가 제시한 다섯 가지 단계에는 마치 모든 조각을 맞춰 퍼즐을 완성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통찰의 순간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유레카 신화는 이 통찰을 우연한 사건에 의해 떠오르는 것으로 여기는 반면, 칙센트미하이는 통찰의 순간을 더 폭넓고 더 정교한 과정의 한가운데에 배치했다. 그 과정에는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단계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숙성이다. 숙성은 잠시 작업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단계다. 여러 창조적 인물들은 의도적으로 잠시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고 육체적 휴식을 취하는데, 그들은 그 숙성 단계를 준비 단계에서 확보된 지식이 소화되고 의식적 정신의 문턱 아래에서 아이디어가 무르익기 시작하는 때로 간주한다.
실제로 어떤 창조적 인물들은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다루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의식적 정신을 하나의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동안 나머지 프로젝트들이 무의식에서 숙성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접근법은 뉴턴과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순간보다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에디슨, 미켈란젤로, 다윈, 반 고흐, 다빈치 등은 모두 이쪽저쪽을 정기적으로 오가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다뤘다. 칙센트미하이의 연구는 이 점을 고려한 것으로 설령 의식적 정신이 한 번에 단 하나의 대상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다고 해도 무의식적 정신이 다양한 아이디어의 동시적 숙성을 유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숙성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인지적 설명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도 모종의 정보처리 과정이 지속된다고 가정한다.”
숙성이 유레카 순간을 초래하거나 창조성을 증진시키는 까닭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있다. 일단 우리에게 정신적 휴식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 밖에 널리 알려진 설명 중 하나는 ‘선택적 망각’이다. 복잡한 문제를 부여받을 때 우리의 정신은 궁지에 몰릴 수 있고, 생각을 거듭하는 특정 통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떤 문제를 계속 다루다 보면 기존의 해법에 집착하게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종이 1장의 용도를 생각해내는 과제가 주어질 경우 새로운 용도는 생각나지 않고 계속 동일한 용도만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문제에서 한 걸음 물러나 전혀 다른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의 정신은 동일한 해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과거의 통로를 기억 저편으로 몰아낼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런 다음 원래의 문제로 회귀하면 정신은 새로운 가능성에 한층 열린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우연한 사건이나 관찰이 이런 회귀를 유발할 때 그 순간은 마치 뉴턴과 아르키메데스의 이야기에서 말하는 유레카 순간처럼 느껴질 수 있다.
숙성 기간 이후에 뉴턴은 중력 공식의 실마리를 찾았고, 아르키메데스는 왕관의 진위 여부를 판명할 방법을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정신적 휴식을 취했고, 우발적 관찰을 통해 원래의 문제로 돌아왔으며, 덕분에 우연히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해법 발견의 주역은 떨어진 사과나 넘쳐흐른 목욕물이 아니라 숙성이었다. 그런데도 이토록 유레카 이야기가 회자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역사에는 이야기 중심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이겠고, 떨어진 사과와 넘쳐흐른 목욕물 이야기가 사건의 진상보다 훨씬 더 솔깃하기 때문일 것이다.
1966년, 화학자 스펜서 실버가 쓰리엠(3M)의 연구개발 부서에 입사했다. 2년 동안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그는 회사의 기존 제품군 가운데 하나인 접착제를 개량하는 문제에 관심을 돌렸다. 이후 그는 5년 동안 간헐적으로 그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품질이 좋은 접착제를 개발하지 못하고, 기존 제품보다 접착력이 낮은 제품만 만들어냈다. 그는 품질이 떨어지는 접착제도 나름의 용도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실버는 그 제품을 회사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이 소개하면서 그들이 새로운 용도를 발견해주리라 기대했다.
실버는 언젠가 화공학 기술자인 아트 프라이에게 그 제품을 소개했다. 교회 성가대 단원이기도 한 그는 평소 찬송가집의 페이지를 깔끔하게 표시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책갈피를 써도 됐지만, 책갈피는 찬송가집을 펼치면 밑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그는 예배를 보다가 문득 스펜서의 접착제가 떠올랐고, 그것을 이용한 책갈피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두 사람은 반영구성 책갈피의 견본을 제작하는 일을 진행했고, 마침내 실버의 집 지하실에 제조시설을 마련했다.
7년 동안 연구에 몰두한 끝에 그들은 쓰리엠 내부의 사람들에게 견본을 보여줬다.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쓰리엠 관계자들은 탈착이 가능한 그 책갈피를 좋아했고,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두 사람이 만든 책갈피는 대부분 한 번만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책갈피를 붙인 뒤 다시 책을 읽을 때까지 책꽂이에 넣어뒀다. 나중에 책갈피를 다시 써야 할 때는 원래의 책에서 책갈피를 떼어내어 다른 책에 붙였다. 결국 그 책갈피는 시장 수요를 입증할 만큼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다.
몇 주 뒤 프라이는 책갈피와 무관한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또 다른 통찰에 도달했다. 그는 상사에게 제출할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특정 단락의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보고서에 별도의 메모를 남기거나 전화를 하는 대신에 그는 자신이 개발한 탈착식 책갈피를 이용했다. 그는 책갈피에 의문점을 적은 다음, 보고서에 붙여서 상사에게 제출했다. 얼마 뒤 상사는 보고서를 읽고 프라이에게 다시 보내왔다. 놀랍게도 상사는 프라이의 의문점에 대한 답변을 탈착식 책갈피에 적은 뒤 원래 프라이가 붙여둔 책갈피 바로 위에 붙여뒀다. 프라이는 그것이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프라이는 메모지로 이용하라는 당부와 함께 책갈피를 회사 전체에 배포했다. 몇 주 뒤 쓰리엠의 모든 사무실은 조그만 정사각형 종이로 뒤덮였다. 실버가 ‘품질 나쁜 접착제’를 개발한 지 12년이 흐른 1980년, 쓰리엠은 포스트잇 노트를 시장에 내놓았다.
표면적으로는 이 성공담도 또 다른 유레카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칙센트미하이의 5단계 창조적 사고 과정에 비춰 생각해보자. 실버와 프라이는 준비 단계에서 최대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제조법을 실험했고, 제조 과정을 고민했으며, 여러 동료들의 의견을 구했다. 그것은 예비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주요 프로젝트에 집중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예비 프로젝트는 숙성 기간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프라이가 접착제를 바른 종이를 책갈피로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첫 번째 통찰에 도달한 것은 숙성 기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프라이는 실버와 함께 자신의 첫 번째 통찰을 평가했지만, 결과는 신통찮았다. 시장성이 크지 않았다. 이후 다시 숙성 기간에 접어든 프라이는 두 번째 통찰에 도달했다. 책갈피를 메모지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평가와 정교화 단계를 거쳤고,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통찰에 도달한 뒤에도 유레카 순간의 통찰이 시장성 있는 제품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작업이 필요했다.
포스트잇 노트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찰나의 지혜는 사실 폭넓은 창조적 작업 과정의 일부분이다. 숙성이 들려주는 교훈은 창조적 과제나 어려운 문제의 해결에 전념하라는 것이고, 그러다가 난관에 봉착할 경우에는 잠시나마 정신적 피로를 푸는 차원에서 다른 것에 눈길을 돌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다시 원래의 문제로 돌아올 때 새로운 해법이 보일지 모른다.
고독한 창조자 신화
우리는 창조적 작업이나 혁신적 아이디어를 한 사람만의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하면 창조 행위를 고독한 노력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고독한 창조자 신화다. 잡지와 신문과 책에는 온통 고독한 창조적 천재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모든 위대한 혁신과 창조적 작업 이면의 진실, 그러니까 대개의 경우 창조적 천재들은 팀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천재들을 서로 이어주는 연결망과 그들이 소속된 팀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그 부분을 고려하는 경우에도 ‘독주자들’ 이야기의 각주로 취급할 뿐이다.
창조성이 팀의 노력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창조적인 팀을 육성하는 방법을 이해하면 멋진 아이디어를 훨씬 더 많이 이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탁월한 창조적 작업을 단 한 사람만의 업적으로 여길 때가 너무 많다. 이런 태도는 선택적 수정일 뿐 아니라 일종의 조작이다. 가장 유명한 발명품 중 하나이자 혁신의 상징으로 평가되는 발명품인 전구에 관한 이야기에 바로 그런 조작이 담겨 있다.
전구 발명을 둘러싼 이야기는 세 가지 점에서 거짓이다. 첫째,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했다기보다 개량했다. 전구에 알맞은 필라멘트를 찾기 위한 1만 번의 시도도 없었고, 아마 가장 중요한 점이겠지만 사실 에디슨은 그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에디슨이 혼자 작업실에서 1만 가지의 재료로 실험했다는 이야기는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맨 처음 에디슨의 입에서 나온 말일 가능성이 높다. 에디슨은 전구 판매에 보탬이 될까 해서 그런 이야기를 퍼트렸겠지만, 그 이야기는 점점 인기를 끌었고 결국 위험성을 내포한 신화로 굳어지고 말았다. 역사학자 로버트 프리델과 폴 이즈라엘은 전구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에디슨이 전구의 특허를 신청하기도 전에 백열등을 발명한 24명의 명단을 만들었다. 1845년에 특허를 신청한 직후 세상을 떠난 존 W. 스타도 에디슨보다 먼저 백열등을 발명한 사람에 속한다. 에디슨이 전등과 관련한 본인의 첫 번째 특허를 신청했을 때 특허청은 그것이 스타의 특허를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신청을 거부했다. 1878년, 원래의 디자인을 몇 군데 수정한 뒤 에디슨은 ‘전등 개량’이라는 제목의 특허를 신청했지만, 아직 적절한 필라멘트는 찾지 못한 상태였다.
에디슨이 완벽한 재료를 발견하기까지 실험한 필라멘트의 개수는 사료에 따라 700개, 1천 개, 6천 개, 1만 개 등으로 다양하다. 스미스소니언 협회에 의하면 에디슨은 무려 1천 600가지의 필라멘트를 실험한 끝에 탄화 대나무 섬유를 발견했다고 한다. 하지만 에디슨이 언론을 상대로 과장된 이야기를 많이 퍼트렸기 때문에 정확한 실험 횟수는 알기 어렵다. 에디슨은 발명 과정의 어려움과 새로운 전구의 우수성을 선전할 속셈으로 완벽한 섬유를 찾기 위해 세계 곳곳을 뒤졌다는 식으로 말했다. 게다가 어떤 재료를 실험했든지 간에 에디슨은 실제로 그것을 실험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구에 관한 에디슨의 연구 결과의 대부분은 그가 멘로 파크에 세운 연구소의 산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