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결혼을 디자인하라
황재복 지음 | 라이스메이커
너의 결혼을 디자인하라
황재복 지음
라이스메이커 / 2014년 10월 / 264쪽 / 14,000원
PART 1. 결혼을 결심한 당신에게
결혼이라는 문 앞에 선 당신
웹서핑을 하다가 재미있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떤 유부남이 후배에게 결혼에 대해 쉽게 설명해 준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너 혼자 사는 집에 여자친구가 놀러왔다고 하자.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뽀뽀도 맘껏 하고, 같이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고…. 너무 재미있겠지. 그런데 여자친구가 자기 집에 안 가는 거야. 너는 이제 컴퓨터 게임도 해야 하고, 혼자서 쉬고 싶은데 말이지. 근데 그랬다가는 바로 잔소리를 듣게 돼. 이런 게 결혼이야.”
그저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젊은 세대가 결혼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잘 드러나 있다. 천정부지로 솟는 집값과 허리를 휘게 만드는 자녀교육비 등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평생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은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부모에게서 독립해 혼자 사는 데 익숙해진 사람은 더욱 그렇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면 그만이었던 삶은 끝나고, 더 이상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결혼은 이전까지의 삶과는 전혀 다른, 인생의 새로운 장이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함께 인생의 새 장을 연다는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 이면에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이 도사리고 있다. 이미 결혼한 선배들의 신랄한 조언은 안 그래도 싱숭생숭한 마음에 망설임을 더한다. 철없는 친구들은 오히려 멋모르고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지만, 개인의 인생을 잘 설계하고 실천했던 사람일수록 결혼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이는 고스란히 심적인 부담이 된다. 결국 ‘내가 결혼이라는 것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막상 결혼만 생각하면 한없이 작아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꼭 해볼 만한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다. 어차피 후회할 것이라면 당연히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후회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랬다가 실패하면 안 했던 것만도 못하지 않겠느냐는 사람에게 나는 되묻고 싶다. 성공적인 결혼과 실패한 결혼의 기준은 무엇이며, 또 누가 감히 이를 판단할 수 있겠느냐고. 세상의 어떤 결혼도 성공과 실패로 구분할 수는 없다. 그러니 실패할까 두려워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주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
결혼이란 단순히 한 사람의 아내와 남편이 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며느리와 사위가 되는 일이기도 하며, 누군가의 엄마와 아빠가 되는 일이다. 결혼하기 전보다 인간관계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그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그 속에서 갖게 되는 배려심과 책임감은 개인을 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만든다. 나의 것을 포기하고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쉽지 않으며, 나 아닌 사람을 책임진다는 것은 버거운 일이지만, 그런 삶을 통해 느끼는 감동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벅찬 것이다.
만일 혼자만의 삶과 영영 이별하게 될 것 같아 결혼이 두렵다면 그 삶과 이별하지 않으면 된다. ‘결혼생활 = 개인적인 삶의 끝’이란 공식은 없으며, 옳지도 않다. 배우자의 책임은 모든 것을 같이 해주는 게 아니라 상대의 행복을 찾아주는 것이다. 주말 아침에 축구를 하거나 하루에 한 시간 게임을 하는 것, 가끔은 친구를 만나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떠는 것에서 남편과 아내가 행복을 느낀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줘야 한다. 배우자의 삶에 모든 것을 맞출 필요도, 배우자를 자신의 삶에 완전히 맞출 필요도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부부는 함께할 수 있다. 토요일 밤 반바지 차림으로 동네극장에 가서 심야영화를 볼 수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겼을 때 함께 나가 사 먹을 수 있고, 갑작스레 무슨 일이 생기면 주저 없이 연락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넘어 동반자라는 존재로 내 곁에 있는 것이다.
실패가 두렵고,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두렵고, 책임지는 게 두려워 결혼을 포기한다면 실패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고, 혼자만의 자유를 얻고, 책임감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겠지만,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무수한 기쁨 또한 포기하는 셈이다. 갑자기 밀려드는 두려움에 결혼을 망설이는 중이라면, 기억하자. 이전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호흡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결혼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나를 알아야 진짜 인연을 만난다
디자이너로서 오랜 시간 옷을 만들다 보니 항상 아이디어를 갈구하며 스스로에게 영원히 샘솟는 창의력을 기대하지만, 때로는 한계점을 느끼게 된다. 그 탈출구랄까? 젊은 피를 수혈 받고자 나는 몇 해 전부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에서는 매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첫 강의시간에 똑같은 과제를 낸다. 바로 ‘나에 대해 써보기’다. 자기에 관해 잘 알아야 본인이 만들고 싶은 옷과 그 옷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파악하는 시간을 먼저 주는 것이다. 막상 이런 질문들을 마주하면 학생들은 모두 당황한다. 이유는 딱 하나다. 누구나 자신에 대해서는 당연히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시간을 내서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탓이다. 이제 곧 사회로 발을 내디딜 성년이 지난 나이에도 자기정체성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사람이 꽤나 많다.
결혼을 하려는 사람들은 사랑, 안정 등 각자의 욕구를 충족하는 행복한 가정을 추구한다. 결혼하고 나면 이렇게 살아야지, 남편과 아내에게는 요렇게 해줘야지 하고 다짐한다. 그러나 결혼 이후가 아니라 배우자와의 만남부터가 바로 행복한 가정의 시작점이다. 내가 아무리 잘 살겠다고 다짐하며 노력해봤자 결혼생활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아무리 박수를 치려고 노력해도 엇박자요, 일단 띄운 배여도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애초에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는 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의 첫 번째 요소이다.
결혼 상대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옛날 어른들은 툭하면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했다. 남편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부인에 대한 대우도 달라졌던 과거와 달리 현대사회에서는 남편의 지위에 의존할 필요 없이 여자가 스스로 원하는 지위를 획득하는 시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어른들 말을 허투루 흘려들을 수는 없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없고, 말이 전혀 안 통하거나 폭력적인 성향의 남편과 산다면 나중에 가까스로 이혼한다고 해도 오랜 시간 깊은 상처가 남는 것처럼, 예나 지금이나 결혼 상대가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남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갈리고 삶의 질이 달라지는 건 남자가 여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괜찮은 결혼 상대란 대체 어떤 사람인가? 학벌, 경제적인 능력, 키와 외모, 부모님의 직업이나 성품 등등의 환경적인 조건들도 물론 중요하겠다. 조금 더 깊이 생각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랑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면 돼요.”, “제가 덤벙거리는 성격이라 반대로 꼼꼼한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아요.” 그러나 사실은 이 정도도 부족한 감이 있다.
자신에게 맞는 좋은 인연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나의 첫 수업 주제처럼 ‘나에 대해 써보기’를 추천한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꿈꾸는 결혼생활의 성공률을 높인다는 것은 옷을 만드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에게 맞는 파트너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디자이너가 옷을 만들기 전에 알맞은 천을 선택해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처음부터 맞지 않는 천을 선택하면 아무리 패턴을 잘 뜨고 바느질을 훌륭하게 해도 원하는 옷이 나오지 않는다. 결혼의 시작은 나를 먼저 알고, 그다음에 나와 맞는 상대를 만나는 일이다. 자신의 장단점과 원하는 결혼생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가정의 모습, 나아가 아이 교육 방침에 대한 의견이나 꿈꾸는 노년생활까지 쭉 적어보자. 그러면 내가 사람의 어떤 면을 특히 중시하는지 깨닫게 된다. ‘이런 사람이 좋다’고 결론 내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이런 사람은 절대 안 되겠다’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렇게 점점 윤곽이 잡혀가는 것이다.
이미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해도 자기에 대한 글은 꼭 한번 써보기를 권한다. 두 사람이 각자 작성해서 서로 교환해보는 것도 좋다. 어떤 부분이 잘 맞는지, 어떤 부분이 다른지 알게 되면 결혼 후 다툼이 생겨도 서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로 배우자와 한바탕 싸웠다고 하자. 그럴 때면 이전에 써둔 것을 읽어보는 거다. 그걸 보면 ‘아, 이건 내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신랑 결정이 맞는 것 같다’, ‘내가 조급한 게 확실해. 아내가 좀 느려도 꼼꼼하게 따지는 편이니까 이건 아내 말을 따르자’ 하는 반응이 나온다. 적은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자기의 장단점에 대해 짚어보면 보다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돼 있다. 그러니 먼
저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결혼이라는 옷 만들기를 시작해보자. 자기정체성이 섰다면 우선 행복한 결혼생활의 첫 단추를 끼운 셈이다.
PART 2. 새로 생긴 가족, 시댁
시댁을 기분 좋은 덤이라고 생각해라
한 주말연속극으로 인해 퍼진 유행어 ‘시월드’는 이제 마치 고유명사처럼 굳어져버렸다. 시댁이 얼마나 짜증나면 그런 말까지 다 생겼는지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시’ 자가 붙은 건 무조건 싫어서 심지어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많은 며느리들이 시댁 식구들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주부들이 많이 방문하는 온라인 사이트에는 고약한 시모로 인한 고민과 푸념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미혼 여성들로 하여금 결혼을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기막힌 사연들이다. 그렇다고 닥치지도 않은 시월드 문제로 독신 선언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혼하기로 결심한 이상 그리고 남편이 천애고아가 아닌 이상 거부할 수 없는 게 시댁과 시댁 식구들이다.
안타깝게도 어떤 예비신부들은 시부모를 만나기도 전부터 거부감을 갖고 있다. 시월드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TV프로그램, 만나기만 하면 시댁 험담을 늘어놓는 유부녀 친구들로 인해 지레 겁을 집어먹거나 무조건 피하려고만 한다. 사실 매체에서 다룰 정도의 이야기는 그만큼 특이한 일이라는 뜻이다. 친구들 또한 시댁과 정말 큰 갈등이 있다면 그리 가볍게 흉을 보지는 못할 것이다. 시부모를 대하는 게 자꾸만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니까 실제로 부담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결국 결혼하면 같이 연결될 수밖에 없는 관계인 것이 사실인 이상 쓸데없는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말고 나의 생각을 일단은 긍정적으로 세워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새로운 가족이 새기는 것은 개인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인맥이 넓어지고, 힘든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곳이 한군데 더 늘어나며, 하다못해 부부에게 사정이 생겼을 때 하루라도 애를 맡길 곳이 생긴 셈이다.
그저 남편 한 명과 살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그와 연결된 시월드와의 관계를 귀찮은 짐으로 여기지 말고, 패키지 상품에 들어 있는 기분 좋은 덤이라고 생각하자. 패키지 상품은 고른 사람의 취향에 맞을 만한 물건들을 골라 묶어놓은 것이다. 시댁도 마찬가지다. 가족이란 먹는 음식부터 사고방식까지 많은 것을 공유하며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기준에 따라 남자를 골랐다면 그의 가족들 또한 내 취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리란 얘기다. 또한 때로는 덤을 보고 물건을 사기도 하지 않는가. 시댁의 화목한 분위기와 시부모님의 인품을 보고 ‘이런 가정에서 자란 남자라면 믿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결혼을 결심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싫다, 싫다 하면 더욱 싫어지고, 반대로 좋다, 좋다 하면 조금씩 좋아지는 게 이치다.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우선 시댁 식구들은 좋게 봐야 한다. 남편의 부모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이에 속한다. 생각해보면 이 각박한 시대에 새로운 ‘내 편’이 되어주신 분들이다. 남편의 부모를 내 부모처럼 생각하기란 어렵지만, 내 부모가 소중한 만큼 상대에게도 그 부모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상대의 소중한 사람까지 품어주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가. 오랜 세월 지나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면 시부모님도 친부모님처럼 느껴지는 때가 올 것이다.
아직도 버거운 ‘내 방식’대로의 사랑
일이 많은 아들 내외 대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집안 청소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될지 모르겠다며 고민했던 선배가 있다. 집 근처에 있는 아들 부부 아파트에 가보니 냉장고 안이나 바닥 청소도 제대로 못하고 사는 듯 보였단다. 부부 모두 일 때문에 워낙에 바빠서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파트타임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와 함께 가서 좀 치워줄까’ 하는 선배에게 좀 더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며느리를 편하게 해주려는 뜻은 너무나 잘 알지만, 그렇게 하면 며느리가 정말 편할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없는 사이 집이 깨끗해지면 일을 덜었다며 좋아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 살림살이에 다른 사람의 손이 닿는 것을 거북하게 여기기도 한다. 냉장고 안이 엉망이고 빨랫감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습을 시어머니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자존심 센 며느리도 많을 것이다. 신경 써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보다 치부를 드러내는 민망함이 더 클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애정을 표현하기에 앞서 먼저 상대의 스타일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솔직하기는 어렵다. 이게 문제다. 며느리들은 정확하게 자기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시어머니는 힘들고 자기는 불편한데 시어머니 눈치를 보느라 싫다는 소리를 못하는 며느리는 시어머니도 좋아하지 않는다.
내 방식대로의 사랑은 ‘사랑’ 이전에 ‘내 방식’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무엇이든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는데도 남편과의 사이가 자꾸만 벌어지는 아내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자기 방식대로 상대에게 최선을 다했던 거다. 그러나 정말 사랑한다면 자기 마음을 왜 모르냐며 원망하기 전에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없는 사랑은 자기의 감정에 대한 도취일 뿐, 정말 상대를 위한 마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이심전심의 효과를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남편이, 시어머니가, 친구나 지인이 내 진심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보자. 제대로 표현하지도 않고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닌지,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내 방식대로만 표현한 것은 아닌지.
PART 3. 이제는 내 집이 아닌 친정
딸 가진 부모 마음
십 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한 모녀가 있다. 웨딩드레스를 고르기 위해 딸이 친정엄마와 함께 나를 찾아왔는데, 결혼을 앞두고 자주 부딪치는 다른 모녀와 달리 두 사람은 사이가 참 좋았다. 응접실에서 상담을 기다리는 동안 딸을 무릎에 앉혀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를 보며 나는 조금 당황했다. 나 또한 누구 못지않게 딸을 아낀다고 자부했지만, 아이의 사춘기가 지난 이후로는 집 밖에서 무릎에 앉힌 기억이 없었다. ‘딸이 예쁘다고 해도 어쩜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두 사람이 다정해 보이면서도 보기에 어색한 면이 없지 않았다. 딸을 저리 키워 버릇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선입견이 들었다.
그런데 웨딩드레스를 입기 위해 피팅룸으로 들어선 그 딸이 갑자기 뒤돌아서 몸을 숙이더니 자신이 벗어놓은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는 게 아닌가. 당시에는 피팅룸 구조가 신발을 벗고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 수백 명이 넘는 예비신부들을 만났지만,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가면서 신발이 바깥쪽을 향하도록 정리해놓고 들어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자식을 그토록 귀여워하면서도 예의범절을 확실하게 가르친 엄마의 사랑 또한 얼마나 바르고 깊은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