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아라 아니면 만들어라
현병택 지음 | 원앤원북스
길을 찾아라 아니면 만들어라
현병택 지음
원앤원북스 / 2014년 9월 / 340쪽 / 14,000원
1장 남들처럼 하고 있으면 길은 보이지 않는다
만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비즈니스맨은 누구일까? 만날 고객이 없는 사람이다. 잘 차려입고 다양한 이론으로 무장한 비즈니스맨이라도 만날 고객이 없다면 슬프고 처량할 것이다. 처음부터 고객이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즈니스 세계는 정글과도 같다. 무조건 고객의 문을 밀고 들어가야 한다.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영업은 죽은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로 멋진 상품을 만들어낸들 판매를 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꽃이 되듯이, 상품은 팔아서 수익을 남겨야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품의 주인공인 고객을 만들어야 하고, 고객을 만들려면 그게 누구건 일단 만나야 한다.
하루 시간의 80%를 현장에서: 세일즈맨이 사실 갈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여려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준비가 되지 않아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자기보다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다. 즉 세상엔 만나지 못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이 지점 가까운 곳에 있었다. 거액의 자금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업체와 거래를 맺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직원들을 시켜 그 업체와 접촉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가는 직원들마다 허탕을 쳤다. 업체의 자금 담당 직원들을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른 은행과 돈독한 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 나는, 그 기업체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보망을 총동원해 그 기업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으다가 그 업체 사장이 교회에 다니고, 특히 새벽기도를 열심히 나간다는 것을 알고 나도 그 교회에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업체 사장에게 접근하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에 나는 먼발치에 자리를 잡았다. 나의 마음을 알게 된 직원들이 동참했다. 꽤 오랜 시간 새벽기도에 참석하고서야 그 사장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새벽기도를 참석하는 나를 오랫동안 눈여겨봤다며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이를 계기로 그분과 친분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50억 원을 예금으로 예치시키는 성과를 얻어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어려운 상대라도 노력하면 된다. 세상에 못 만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고 내가 먼저 포기하기 때문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열한 번 찍고, 그래도 안 된다면 전기톱으로 잘라내자. 그러면 반드시 넘어가게 되어 있다. 될 때까지 부딪치고 또 부딪쳐라.
노력하면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 생각해보라. 그 옛날 밭에서 마(麻)나 캐던 서동이라는 가난한 시골 총각이 어떻게 선화공주를 만나 결혼까지 했겠는가.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 만나지 못할 사람이라도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면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
초임 지점장 명을 받고 개점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주변 아파트 단지에 기업은행의 개점을 알리는 안내장을 돌려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신문에 안내장을 끼워 넣는 것이었지만 성의가 없어 보여 전단지를 들고 고객을 일일이 찾아가 전달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데 문제는 신도시 아파트는 경비가 철저해 건물 입구에서는 경비원들이 낯선 사람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 직원들은 경비가 소홀한 경비원들의 새벽 교대시간에 신문배달원이나 우유배달원 복장을 하고 아파트에 들어가서 ‘개점 안내문’을 나눠주기로 했다. 그리고 안내문 상단에는 ‘아파트에 못을 박아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아파트 특성상 낮에 못질을 해야 되는데 남편들은 출근하고 주부들이 못을 박을 수 없어 난감해하는 고객이 의외로 많다는 점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우리 직원들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주부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다른 은행이 비싼 돈을 들여 신문에 광고하던 것과는 다른 방법을 택한 결과였다. 이 모두가 쉽게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업에 성공한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그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대가 누구든 만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만날 사람이 없다고 푸념만 할 게 아니라 일단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서야 한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야 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은 그 누구든 내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람을 만나야 한다. 세상에 만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직과 고객을 위해서라면 욕먹기를 두려워마라
비즈니스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비록 욕을 먹는 일이 있더라도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치고, 남이 싫어하는 말도 필요할 땐 할 줄 안다. 잘못한 직원을 단호하게 질책하는 사람,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별하는 사람, 때로는 다소 야박하다 싶은 사람, 그런 사람들이 정상에 오른다.
필요하다면 당돌한 놈이 되어야 한다: 1978년 2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기업은행에 출근했다. 내 전공이 무역이었던 터라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하던 외환 업무 분야에 배치되었다. 그런데 나는 예금계를 자원했다. 당시에는 온라인 시스템이 구축되기 전이라 모든 업무가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불특정 다수 고객들의 입출금 업무, 이자 계산 등을 모두 수작업으로 처리해야 하니 예금계는 업무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특히 고객의 통장에 이자를 넣어주는 결산기가 되면 수만 개의 고객 계좌의 이자를 계산하느라 전 직원들은 초주검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예금계는 서로 미루던 자리였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그 자리를 자청했다. 일을 배우기엔 예금계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힘든 입출금 업무를 자청했으니 직원들에게도 내가 꽤 별나고 신선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일찍 다녔던 버릇은 은행에 출근하면서도 여전했다. 덕분에 다른 직원들의 출근이 빨라졌다. 다른 직원들이 꺼리는 일들을 자청해서 해결했고, 여직원들이 힘들어하는 일은 모조리 가져다 했더니 여직원들이 하나둘 내 편이 되었다. 창구에서도 까다로운 고객은 내가 먼저 맞이했다. 고객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나를 찾는 고객들이 많아졌고, 다른 직원들에게 자극제가 되었다.
실패의 기억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밀어낸다: 내 장점 중 하나가 실패를 빨리 잊는다는 것이다. 실패에 얽매이기보다 실패한 원인을 분석해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실패의 기억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초임 지점장으로 발령받았을 때 내 나이는 43살, 당시로선 젊은 지점장이었다. 나이 어린 지점장답게 눈에 띄는 돌출 행동을 많이 했다. 그때 내가 한 행동들 중에는 지금에 와서야 빛을 보는 것들이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나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상당히 피곤했을 것이다. 남들이 하지 않을 일들만 골라서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지점이 소재하던 지역은 개발이 되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곳이었다. 고급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강남에 살던 주민들이 많이 이사를 왔다.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교육 수준도 높았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하려니 다른 곳보다 몇 배로 힘이 들었다. 더욱이 기업은행은 기업만을 상대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인식을 가진 똑똑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와이셔츠 색깔을 바꾸는 일이었다. 당시 은행 복무규정에 와이셔츠는 흰색만 입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직원들에게 색깔 있는 와이셔츠를 권했다. 직원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튀는 색깔을 찾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파격을 넘어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근처에 있던 백화점에서 와이셔츠 상품권을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색깔 있는 와이셔츠로 갈아입으라는 특별 지시이자 특별 선물이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향수와 헤어크림을 갖추어 놓았다.
그러자 직원들의 패션이 바뀌었다. 와이셔츠 색깔이 바뀌자 제일 먼저 반긴 것은 직원의 부인들이었다. 흰색 와이셔츠에 비해 빨래가 쉬웠다. 색깔 있는 옷을 입으니 넥타이가 변했다. 직원들이 패션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헤어스타일이나 양복 색깔까지 신경을 쓰게 되었다. 부인들은 남편의 충실한 코디네이터가 되었다. 화목해진 가정 분위기는 근무 현장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부인의 내조가 좋아지면서 업무 능력 또한 향상되었다. 고객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흰색이 가진 권위적인 모습이 사라지면서 은행을 편안하게 생각했다. 그런 모든 것들은 실적에 반영되었다. 와이셔츠 하나가 직원들의 어깨에 신바람의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고객들 속으로 부지런히 뛰어든 덕분에 나는 부행장 자리까지 올랐다. 고객평가에서 늘 1등을 하던 지점장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당시 나와 함께 일하던 직원들과는 지금도 연락을 한다. 당시엔 나를 어려워하던 직원들이 이제는 나를 그리워한다. 나와 함께 일하던 시절이 행복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고객을 위해서라면 욕먹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예전에는 조직 관리를 잘하는 직원을 최고로 삼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요즘 시대에 최고의 직원은 상사를 최우선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을 최우선으로 대하는 사람이다.
2장 겸손과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길이 보인다
겸손한 을의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라
겸손하게 친구를 만들어라: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일본의 국제선 승무원 이즈키 아키코는 퍼스트 클래스 승객들을 담당하면서 그들에게서 공통점들을 발견했다. 그것은 사소한 공통점이었지만, 성공한 사람 대부분에게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그중 첫 번째가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으며 펜을 빌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전기나 역사서를 읽었으며 바른 자세를 유지했다. 특히 승무원을 대하는 태도가 겸손하고 부드러웠다. 부탁할 일이 있을 땐 “미안하지만”이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들의 태도는 길지 않은 비행시간에 승무원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힘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친화력은 성공의 원동력이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 혼자 건너면 미끄러지고 떠내려가지만 친구가 던져준 밧줄이 있다면 미끄러지더라도 떠내려가진 않을 수 있다. 든든한 친구 두어 명이 잡아주고 밀어준다면 강을 건너는 일은 더 수월해진다. 빈손으로 건너는 것보다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건넌다면, 그 역시 쉽게 강을 건너는 방법이 된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고, 성공은 혼자 이루어가기 어렵다. 조력자가 필요하고 동행이 있어야 한다. 친구를 만들고 조력자를 만들고 동행을 만드는 능력은 성공하는 능력과 같은 힘을 지녔다.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능력, 세상에 혼자 내버려져도 친구들이 다가와 도와줄 수 있게 만드는 능력, 그 능력은 겸손함에서 나온다.
방송사에 부임한 이후, 출근하면 복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빠짐없이 인사했다. 무조건 머리 숙여 인사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청소하는 분에게까지 먼저 허리를 굽혔다. 직책은 대표였지만, 그들은 경험 면에서는 모두 나보다 선임인 사람들이다. 미리 방송사에 입사를 했고, 나보다 더 풍부한 방송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금융과 관련된 업무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방송은 달랐다. 전혀 생소한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그들보다 높은 직책을 가졌다고 우쭐거릴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부임한 그 순간부터 신입사원의 심정으로 인사를 했고, 겸손하게 그들의 가르침을 배워나갔다.
을의 마음으로 살아라: 나는 은행에서 30여 년간 일했다. 행원으로 시작해서 지점장, 본부장을 거쳐 부행장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중에는 승승장구하며 동료들보다 빠르게 승진한 직원도 있었고, 일찍 은퇴하고 사회로 나간 동료도 있었다. 또 일부 직원들 중에는 좀 더 좋은 직책을 제안받고 경쟁회사로 옮겨 가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론 부러웠고 또 한편으론 안타까웠다. 특히 사직을 하고 사회로 나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대부분 안타까움이었다. 사회는 거센 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은 곳이다. 격랑 속으로 떠나가는 동료의 뒷모습은 당당했지만, 지켜보는 시선은 안쓰러움이었다.
그들이 성공을 하고 당당히 자신의 자리에 선 뒤에 만났다면 당연히 부러운 일이고 축하해줘야 할 일이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를 하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는 일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들이 사회에 나가서 자리를 잡는 과정들을 지켜보니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을의 맛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과거의 화려함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 어떤 직책이었건 어떤 대학을 나왔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건 성공했다. 은행에 근무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점장으로 오랫동안 몸담았다가 은퇴를 하고 개인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동료들을 보면 그만둔 뒤에도 지점장으로 사는 경우가 많았다. 지점에서 떵떵거리던 그 맛을 버리지 못하고, 지점장이었던 영화로운 시절만을 기억한 채 고객들을 대하다 보니 싸늘한 냉대와 사업 실패로 이어졌다. 실패를 모르고 살았던 삶이 마침표를 찍기 직전의 실패로 모두 망가져버리고, 잘 살았다고 자부했던 삶을 의심하고 자책하게 된다. 겸손한 을의 자세로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이 내게 을이 되어 다가오게 되어 있다. 돌이켜보면 끝까지 나와 함께 가는 사람들은 내가 을이었을 때 만난 사람들이다.
나를 만나준 고객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자
어떤 경로를 통해 만났건 일단 만난 사람이라면 그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 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그 인연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한 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가길 원하고, 그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하는 일 중 하나가 사람을 만나고 나면 곧바로 감사편지를 보내는 일이다. 감사편지에 많은 내용들을 담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만난 그 인연의 소중함을 기억하기 위해 ‘만난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라는 짤막한 내 감동의 기록을 적는 정도다. 나는 누구를 만났건, 만난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떻게 내가 그 사람을 만났는지,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다른데 어떻게 만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신기하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그 짤막한 편지 한 통에 감사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편지를 보내준 나와 친구가 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만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내 편지는 고객은 물론 고객의 입을 통해 다시 다른 고객에게 전해진다.
나에게 시간을 내준 모든 고객에게 감사하라: 비즈니스 현장에선 나를 만나준 것만으로도 고객에게 더욱 감사해야 한다. 수없이 많은 경쟁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냉혹한 정글과도 같은 그곳에서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준 고객이야말로 나와 친구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고객들이 있다. 신도시에 있던 초임 지점장 시절이었다. 허허벌판과도 같은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람들의 입주가 시작되면서 시끌벅적해졌다. 신흥 부촌을 형성하며 자리를 잡기 시작한 고객들을 유치하려는 은행들의 경쟁은 치열했다. 이미 주거래 은행이 있던 VIP 고객들을 상대로 전개되고 있던 마케팅 경쟁 속에서 다른 은행보다 늦게 영업점을 개점한 우리로서는 새로운 고객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인근에 있던 고물상 주인들이었다.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레 고물상들이 많이 생겨났다. 고물상이라는 이유로 다른 은행들은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나는 일부러 그들을 찾아갔다. 나는 고물상을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으로 보았다. 고물상을 하고 있음을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명함에 있는 회사 이름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애매하게 표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찾아가 같이 성장하자고 말했다. 모두가 어렵다는 IMF 외환위기 시절, 그들은 자원을 재활용하고 낭비를 줄이는 녹색 산업의 선두에 서 있었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 더 당당해야 한다며 그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명함과 문패에 ‘녹색 기업’이란 글자를 넣도록 권유했다. 시간이 지나자 기업은행에 계좌를 만들고 금융 거래를 시작하는 고객이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