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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경영하라

김태우 지음 | 창해
내 삶을 경영하라

김태우 지음

창해 / 2014년 7월 / 386쪽 / 15,000원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우주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세상의 물질을 쪼개고 나누면 마지막엔 무엇이 남을까?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되어 19세기의 과학자들까지 이어져온 의문이다. 마침내 과학자들은 이 의문의 답이 분자와 원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원자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이루어졌으며, 다시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하여 20세기 전반까지는 전자와 양성자, 중성자가 물질의 최소 기본 단위인 소립자로 알려졌는데, 그 후 양성자와 중성자가 다시 쿼크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쿼크는 내부 구조가 없는, 즉 더 작은 그 무엇으로 분리될 수 없는 입자로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항상 다른 쿼크들과 결합하여 생긴다. 이 밖에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을 전달하는 소립자의 정체도 밝혀졌다. 그 소립자는 광물성, 식물성, 동물성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형태로도 존재한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에너지이며, 그 에너지의 입자가 쿼크라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의 근원과 나의 에너지는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지역과 국가는 물론 지구별을 넘어서 더 나아가 범위를 확대해보면, 나의 몸과 마음을 이루고 있는 에너지는 태초부터 우주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지구별에 ‘사람’이라는 생명의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다. 나의 원초적인 에너지의 고향은 본래 우주인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지구별에서 살다가 다시 우주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에서 시작해서 우주로 돌아가는 우주적 존재, 우주인 것이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부모님의 몸을 거쳐서 태어난다. 이것은 육체적인 탄생이다. 그러나 그 탄생 이전에 우리 생명의 근원인 에너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물질은 자연에서 왔다. 각종 원소들과 물, 공기, 햇빛이 어우러진 물질들이 다양하게 모여서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물질들은 본래 우주와 자연에 이미 다 존재하던 것들이다. 그것도 최근이 아니라 인간의 집착으로는 감히 계산하기도 벅찬, 태초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들이다. 그 물질이 우주 안의 인간에게 ‘몸’이란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몸의 고향은 결국 지구별이고, 은하계이며, 우주이다. 이것은 엄연한 과학이고 사실이다. 다양한 원소와 물질이 인간의 육체가 되기에 적합하도록 모인 ‘모임’의 준말이 곧 ‘몸’이 된 것이다. 이처럼 모든 우주와 자연의 물질이 사람의 형상으로 모여 육체를 만들고, 그 안에 마음을 담고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죽음과 돌아가심의 차이

성현들은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되는 것은 영적인 자아의 발견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을 꺼낸 지가 수천 년이 넘었는데도 인간은 생명 존재의 근원인 영적인 것은 찾지 않고, 이 지구별에 와서 악착같이 경쟁하며 돈 벌고 출세하려고 권력을 잡거나 물질에 사로잡혀 사사로운 잡생각 속에서 근심걱정하며 살다가 죽는다. 기껏 뭔가 이루었다고 해도 그 생각의 가치가 끝이고 전부인 듯 감정에 치우치고 물질에 대한 욕심에 빠지고 만다.

원초적인 고향,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모두 잊어버리고 생각 속에만 살다가 숨이 멎으면 ‘죽었다’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영적인 존재임을 알고, 나의 고향이 우주와 하나라는 것을 알고 살다가 죽으면 내가 본래에 있었던 고향으로 ‘돌아가셨다’라고 한다. 신에게서 왔으니 신에게 돌아간 것이요, 우주에서 왔으니 우주로 돌아간 것이요,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나무가 불이 되고, 불은 재가 되어 흙으로 가고, 흙은 땅속에서 압력의 변화로 바위와 금속이 되고, 그 속에 물이 나며, 그 물이 다시 나무를 살리는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의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돌고 도는 이치의 순리와 때가 있다. 이런 자연의 순리를 알고 때를 따라 자연스럽게 살고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의 차원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자연인이 진정 살아 있는 사람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길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서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생길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철학적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가야 한다. 이건희 회장도 회사를 경영하며 늘 스스로에게 묻고 전문가에게도 물어보면서 배웠다고 한다. 그 물음들을 살펴보자.

‘이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났는가? / 이 일의 뿌리는 무엇인가? / 이 일의 핵심기술은 무엇인가? / 이 일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 이 일의 경쟁력의 핵심은 무엇인가? / 이 일의 전문가는 누구이며 누가 추진할 것인가? / 고객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 우리의 경쟁사는 누구이며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인가? / 우리의 현 수준은 어디인가?’

이 회장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그 일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고, 그 본질로부터 앎에 이르러 현 위치를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알아차리고 연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를 아는 것, 그것으로 가는 길은 어떤 것이고, 그 길은 어디에 있을까?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배로, 그 길은 바로 내 안에 있다. 외부의 조건에 맞추어 가치기준을 세워 따라가다가는 그 ‘무엇’도 없이 혼란스러운 생각들만 춤을 출 것이다. 따라서 ‘내 안의 더 큰 나를 찾기’ 위해서는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을 해야 한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앎의 세계에서 바라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영혼의 세계로 가야 한다. 무엇이라고 하는 이름 지어진 명사의 생각 속에 갇혀 살면 안 된다. 그냥 그것으로 느끼고 존재에서 보내주는 주파수를 맞추어 수신하기 위해서는 가슴에서 느끼는 느낌의 세계로 가야 한다. 그래야 이성으로 생각하는 판단 위주의 세계가 아닌, 그냥 그것으로 보이는 사실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당신 삶의 스승을 만나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지식의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누굴 만나느냐가 나의 삶에서 또 다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스승을 잘 만나고, 어떤 교육을 받는가에 따라서 인생이 바뀐다는 소리다. 내가 잘하면 되지 굳이 스승이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자기 수준에만 머무를 뿐이다. 나는 이것을 ‘화분의식’이라고 칭하고 싶다. 화분 안에 있는 화초가 자라봐야 그 화분 안에서일 뿐이고, 그것도 물을 안 주면 말라죽는다. 스스로 잘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배 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엄마라는 스승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나의 삶은 달라지게 마련이다.이런 만남 자체가 ‘만나’이다. 성경에 보면 만나는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내려준 하늘의 떡이다. 우리가 험난한 광야 같은 삶에서 참다운 스승을 만나는 것이 생명의 떡인 진정한 ‘만나’가 아닐까? 인생길을 걸으며 스승을 만났다고 생각할 때마다 바짝 다가서야 ‘착실’한 것이 된다. ‘착’ 하고 바짝 붙어야 ‘실’하다는 말이다. 나무가 살려면 땅에 착 붙어 뿌리를 내려야 실하듯이 스승을 만나 착실해야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스승을 만나 마음이 새로워지고, 그래서 꿈을 키우며, 태도가 바뀌고 그 태도에 따라 배우고 혁신하고, 지식을 습득해서 구체화시키고, 계획을 세워 끊임없이 연습해서 체득시키고 습관화될 때까지 노력하며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은 관계이다



관계를 회복하라

법정 스님은 저서 『아름다운 마무리』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그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법정 스님 말마따나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이고 그 관계이다.

오늘날 인간은 산업사회와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인간 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채 자기 삶을 물질의 노예로 만들어서 힘들게 살고 있다. 아무리 “삶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라고 말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가지고 싶어 하니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삶은 관계이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빌리면 “삶은 관계를 관계케 하는 관계만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삶에서 그때그때 알맞게 관계하는 것이 바로 무소유이고 잘 사는 삶의 비결이란 것이다. 내 삶과 관계하는 많은 것들(상대와 사물, 공간, 지역, 나라, 지구와 우주)을 관계케 하고 존재케 하는 주관자[神]의 관계만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에도 대상은 있다. 첫째 신과의 관계, 둘째 자연과의 관계, 셋째 사람과의 관계, 넷째 나 자신의 몸과 생각과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또 관계에는 질서가 있다. 그래서 만일 관계의 질서가 잘못되었다면 먼저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하늘과 영혼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바로 ‘하늘엔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땅에 평화의 질서 회복을 하는 것이 ‘땅에는 평화’이다. 부모, 가족, 이웃, 나라, 세계 등과의 관계질서 회복이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며, 나의 몸과 마음을 잘 관계하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현재를 살아라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얽매여 원망하고 탓하며 실망하고 후회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로 근심과 걱정 속에 살고 있다.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 사실이 아닌 생각에 매몰되어 헛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꼭 기억해야 할 말이 있다. “삶은 현재적 사실만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시대, 지금 이 순간만이 영원하게 진행되는 영원한 현재성이다.

다음의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을 생각해보자. ‘우리의 앞날은 ( )를 어떻게 사느냐로 만들어진다. 그러니 앞날을 잘 맞는 방법은 바로 ( )를 잘 살아내는 것. 화려했던 어제의 미련으로 ( )를 못 사는 자는 바보. 두려운 내일의 걱정으로 ( ) 잠들지 못하는 자도 바보. 올 날들은 모두 ( )에 충실한 삶으로 만들어지는 것. 늘 처음처럼 다가오는 ( )를 잘 사는 것이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이 무엇인가. ‘지금’ 혹은 ‘현재’가 아닐까?



몸과 마음의 건강을 경영하라



몸의 건강을 경영하라

세계보건기구(WHO) 헌장에 “건강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ㆍ정신적ㆍ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과거에는 건강이란 육체적으로 질병이 없고 개인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신체 상태를 말했으나, 오늘날에는 질병이 없는 상태라는 수동적 건강에서 한층 더 나아가 금주ㆍ금연 등 생활습관의 변화나 적극적으로 건강해지려는 노력 등의 능동적 태도가 강조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우울증, 긴장, 압박과 같은 정신적인 건강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결국 건강이란 적절한 운동과 균형 있는 식사 그리고 정신적 안정을 통한 자연스럽고 기가 충만한 심신합일의 상태를 말한다.

마음의 건강을 경영하라

마음이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느낌과 감각을 합쳐서 알아차리는 것을 총체적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잘 다스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마음을 잘 주고받으면 인간관계가 좋아지고 삶도 행복해진다. 인간사(人間事) 모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일어나지 않으면 일이 아니다. 일어나니까 일이 되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삶을 통해 경험하고 산다. 그래서 저마다 그 일에 대한 생각의 해석 수준이 곧 각자의 삶이 된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다면 그 일에 대한 생각의 해석을 점검해 봐야 한다. 왜 어렵고 힘든지, 그렇게 어렵고 힘든 것이 정말 사실인지 생각점검이 필요하다. 그 생각은 진실이고 참이고 진리이고 사실이고 올바른지. 생각을 선택하고 해석한 것이 부정적이지 않았는지. 신과 소통하겠다는 사랑의 길로 걸어간 것은 맞는지. 이처럼 마음을 건강하게 경영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느끼고 주고받을 줄 알아야 가능하다.



자기 삶을 경영하라



경영은 ‘천을 짜는 일’

경영은 인간이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해서 가치를 만들고 관리하며 지속적으로 행동하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영(經營)이라는 한자를 파자해서 살펴보면, 실(絲)로 천과 비단을 짜듯 세로줄과 가로줄의 엮음을 반복하고 조직화하여 도구를 이용해 바르게 작업하는 일을 뜻한다. 그리고 그 천(옷감) 짜는 일을 통해 불을 두 개나 밝히고 열심히 일하여 자기 집을 늘려간다는 뜻이다. 그 시대에는 옷이나 비단 천을 짜는 일이 가장 중요한 사업이었고 돈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경영이란 말의 근원이 되었다.

세종대왕에 따르면 경영이란 조상의 좋은 책인 ‘경서(經書)’를 읽고 진리를 깨달아 몸에 영위하고 쓰는 것이다. 좋은 경서를 몸에다 담는 것을 체(體)라 했고,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을 용(用)이라 했다. 그래서 경영은 곧 ‘체와 용’인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것, 즉 수신(修身)이 경영의 기본이다. 영어로는 Management이다. 이 글자는 세 조각의 음절과 뜻으로 나눌 수 있는데, man(사람) + age(삶, 수명) + ment(동작, 수단, 결과, 상태)가 그것이다. 결국 ‘자기 삶을 관리하는 것’이 경영이라는 답이 나온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톰 피터스도 모두가 ‘자기 삶을 경영하는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각자가 자기 삶을 경영하는 CEO이며 자기 삶을 경영하는 대표이사라는 것이다.

사서삼경 중에 『대학』의 핵심은 본래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소질과 재능을 깨달아 그것을 덕으로 밝히는 것이다. 요점을 정리해보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전에 수신제가(修身齊家)하고, 그 전에 먼저 성의정심(誠意正心)하며, 그러기 위해서 맨 먼저 해야 할 것이 격물치지(格物致知)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격물치지, 곧 사물을 연구한다는 것은 만물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큰 힘이다. 그런데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자신을 알고 남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격물치지 성의정심. 자기 한 몸 처신이라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뜻과 마음을 가져야 하고, 올바른 뜻과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물을 궁구하여 그 앎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라는 것이 『대학』의 큰 가르침이다.

자기 삶을 경영하라는 것은 먼 곳을 향하여 나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 현존하는 현실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찾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머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신이 법이라는 진실을 찾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신이 깨달음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깨달음은 이렇게 명확하고 분명한 것이다. 안개 속에서 금붙이를 찾으려는 허황된 술래잡기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자기 삶을 경영하는 경영자가 되어 자기 삶의 아름다운 천을 짜보라!



꿈을 설계하라



생각을 정리하면 꿈이 보인다

사람들은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산다.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 때문에 잠도 못 자고, 꼬일 대로 꼬인 혼돈 속에서 고민하다가 그 기간이 오래되면 우울증이 생기기도 한다. 컴퓨터 하드에도 용량이 많이 차면 필요 없는 자료들은 정리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저장 공간의 여유가 생기고 속도도 빨라진다. 마찬가지로 내가 가지고 있는 지저분하고 어수선하고 어지럽게 널려 있는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단순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활성화하라. 가볍게 살려면 먼저 생각의 체계와 구조가 정리정돈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나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계획이 없다면 원대한 야망이라도 개꿈에 불과하다. 목표를 세울 때에는 그 목표가 크거나 작다는 데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달성 가능성이 높은가 아닌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니 달성가능성이 높은 목표를 세우는 일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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