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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버리기 연습

브렌다 쇼샤나 지음 | 예문
걱정 버리기 연습

브렌다 쇼샤나 지음

예문 / 2014년 4월 / 264쪽 / 13,500원



걱정이 인생을 먹어치우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걱정이란 무엇인가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당연이 ‘없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드물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확실히 해둘 것은 걱정과 고민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걱정과 고민의 차이 - 뿌리부터 다르다: 고민의 출발점은 사고, 즉 ‘생각’이다. 생각은 인간을 동물과 다른 차원의 존재로 만드는 우리 뇌의 작용이다. 사고하는 인간은 자연히 자기 자신과 타인, 외부 세계에 대해 인식하고 수많은 모순을 발견한다. 그리고 모순에 관해 깊이 생각할수록 고뇌에 빠져든다.

한편 걱정의 뿌리는 ‘불안감’에서 찾을 수 있다. 불안은 인류의 뇌용량이 지금의 절반도 되지 않을 때에도 존재했으며, 사실상 현재까지 인류를 존재하게 한 생존 본능이다. 불안을 느끼는 능력 덕분에 우리 조상들은 살아남았다. 자연에서는 맹수들을 피했고, 문명사회에서는 적의 공격이나 동업자의 배신,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목숨을 부지했다. 다가오는 위험과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 그것이 바로 불안의 정체이다. 흔한 생각과 달리 불안 그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본능이 이성을 만나면 문제가 발생한다. 불안에 상상력이 발휘된 결과 실재하는 위험뿐만 아니라 위험할 ‘수도’ 있는 것, 위험할‘지도’ 모르는 것들이 머릿속을 잠식한다. 걱정을 털어내려 해도 생각처럼 되지 않는 건, 그것이 불안이라는 본능에 거머리처럼 딱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걱정은 불안이 생각을 만나 부풀려진 결과이다.

랄프 에머슨의 말대로 고민은 정신 발달의 과정이며,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고 영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걱정은 정반대다. 걱정은 정신을 약하게 하고, 용기를 앗아가며,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아무런 고민 없이 살아선 안 된다. 그러나 걱정 없이 사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그것은 집착과 망상에서 벗어나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걱정의 다섯 가지 얼굴



첫 번째 얼굴 : 걱정은 망상이다

불안이 상상력(생각)을 만나 증폭된 것, 그것이 바로 걱정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예언가라도 되면 모를까, 우리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공상에 불과하다. 실제로 연구자들에 따르면 걱정의 90퍼센트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모르고 사는 즐거움』의 저자인 심리학자 어니 제린스키는 그의 책에서 좀 더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퍼센트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며,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고, 22퍼센트는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소하다. 4퍼센트는 걱정해봤자 어쩔 수 없고, 나머지 4퍼센트는 충분히 우리 힘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문제이다. 결국 걱정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는 얘기다. 만약 당신이 걱정 많은 사람이라면 이제까지 자신의 걱정이 얼마나 현실성 있는 것인지, 그리고 과연 걱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돌이켜보라. 그리고 지금 걱정하는 한 가지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대답해보라. ㉠ 지금 어떤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가?(판단이나 주관을 빼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기술한다.) ㉡ 위의 일에 관해 무엇을 인지했는가? ㉢ 무엇을 걱정하는가? ㉣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상의 질문은 공상의 세계로부터 현실의 세계로 당신의 이성을 끌어당긴다. 즉 외부 상황과 인지상태를 점검하고, 현실에 기반해 현재를 생각하게끔 한다.

두 번째 얼굴 : 걱정은 집착이다

떠돌이 도둑 세 명이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을은 가난한데다, 마침 흉년이 들어 곡식 한 톨 찾아보기 어려웠다. 두 명이 마을을 떠나려는 찰나, 다른 한 명이 마을 사람들을 붙들고 묻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서 가장 걱정 많은 사람이 누굽니까?” 사람들이 일제히 가리키는 두 집을 찾아가니, 한 집은 어린아이가 병들어 있었고, 다른 한 집은 딱히 나쁠 것이 없어 보이는 집이었다. 도둑이 두 번째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밤에 이 집을 털자.”

그 말을 듣고 두 명이 따라 그 집 담을 넘으니, 과연 집 안 구석진 방에 식량과 보물이 있었다. “겉보기엔 다른 집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어찌 이 집에만 보물이 있을 걸 알았나?”라고 두 사람이 물으니, 나머지 한 명이 답하였다. “잃을 것이 많을수록 걱정이 많은 법이지!” 이 이야기의 교훈은 자명하다. 소유욕과 집착이 클수록 걱정도 많다는 것이다.

한편 통제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자연적인 통제와 인위적인 통제가 그것이다. 자연적인 통제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몸과 마음의 균형이 잘 이루어지고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하게 한다. 그와 달리 인위적인 통제는 두려움에서 비롯되고 과대망상을 일으키는데, 평정을 위협하는 뭔가가 발생하면 분별력 없이 무조건 이를 억누르고자 하는 것이다.

집착은 곧 인위적인 통제에 대한 욕구라 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과 주변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우리가 흔히 ‘강박관념’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어진다. 인간관계, 돈, 시간, 일, 음식, 성, 느낌, 생각, 행동 등 모든 것을 일일이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강박관념이다. 이러한 강박관념에게 지배당하면 인생은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해야 하는 감옥이 되고 만다.

통제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이유를 이해하면 한발 물러서서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다.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없애면 불안이 사라지고 삶의 균형을 되찾아 원활한 삶을 살 수 있고, 통제가 우리 삶을 옥죄는 존재였으며 사랑과 선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통제하고자 하면 긴장감만 높아지고 삶의 균형을 잃게 되며, 통제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욕망의 대상을 잃게 될까 봐 걱정만 깊어진다.

세 번째 얼굴 : 걱정은 한계이다

불안을 느끼면 몸은 딱딱하게 굳고 이성적인 판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안의 한 가지 형태인 걱정 역시 마찬가지다. 걱정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한다. 걱정에 사로잡히면 한 발 앞으로 내디딜 용기가 나지 않고, 오히려 ‘잘 안 되면 어떻게 하지’,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의 쳇바퀴에 갇히게 된다.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을 염려하느라 눈앞의 기회를 놓치고, 할 수 있는 일도 안 하는 것이다. 또한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상황을 통제하려다 보면 점점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좁아진다. 자신의 한계를 그어놓고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일만을 추구하게 된다. 이처럼 근심, 걱정, 불안 같은 상자에 자신을 가둬버리면, 상자 밖에 무한한 삶의 가능성이 펼쳐져 있음을 결코 알 수 없다. 한편 영어에서는 재능을 ‘선물(gift)’이라 표현한다. 이 단어가 나타내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신에게 부여받은 능력을 한 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은 우리에게 공평하게 선물을 나눠주셨다. 그런데 선물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진작부터 그것이 선물임을 알아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부여받은 재능을 발전시키며, 신의 축복을 삶의 자양토로 삼는다. 그런가 하면 아예 선물 그 자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신이 자신에게만 선물을 주지 않았다고 원망한다.

그런데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도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걱정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 선물을 열면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겁을 먹기도 하고, 그 선물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사고감옥 안에 앉아 그 위험에서 멀찌감치 떨어지려고 노력한다. 즉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면서 자신이 인생을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식이다. 그러나 신이 주신 선물의 진가는 바로 ‘가능성’에 있다. 삶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모든 가능성에 도전할 때, 재능은 비로소 제 빛을 발하고 인생은 성취, 몰입, 환희 같은 긍정적인 것들로 가득 찬다.

긍정적인 것들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실패나 고통은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 아니, 실제로 겪게 되면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쁘지 않음을 깨달을 것이다. 지금 당장 선물상자를 열어라. 감사한 마음으로 재능을 받아들이고 잠재력을 일깨우는 모든 도전에 임해라. 당신이 걱정하는 어떤 일도, 신이 주신 삶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보다 끔찍하지는 않다.

네 번째 얼굴 : 걱정은 게으름이다

걱정은 우리가 행동에 나서는 것을 방해하고, 일을 차일피일 미루게끔 만든다. 예를 들어 내키지 않는 상대와 전화통화를 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걱정 많은 사람은 ‘제대로 용건을 말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상대가 화를 내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5분이면 끝날 간단한 통화를 위해 그 두 배가 넘는 시간을 걱정하느라 흘려보낸다.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국 게으름을 피운 셈이다. 여기서 게으름이란 나태함이나 권태로움과는 다르다.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못하는 것이 아니다!) 망설이고 미루느라 삶의 에너지를 저하시키는 것이 필자가 말하는 게으름이다. 한편, 걱정은 100퍼센트 현재가 아닌 미래를 향해 있다(종종 과거에 관한 걱정도 있기는 하지만). 미래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으면 현재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없다. 결국 걱정을 핑계 삼아 오늘 할 일을 미루게 되어버린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현명한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명한 선택에는 신중함과 치밀함뿐 아니라 시의적절한 판단력과 직관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을 크게 뜨고 직면한 문제를 살피며, 지금 현재를 살아야만 한다. 그러나 걱정은 우리의 생각을 자꾸만 과거나 미래로 데려간다. 이전에 있었던 일을 곱씹거나 미래의 일을 상상하느라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소모하게끔 만든다. 걱정이 깊어질수록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강해지므로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움츠러들게 된다. 두렵기에 회피하고, 한 번 피하게 되니 현실에 충실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하지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쩐지 내키지 않아서 ‘안 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 만약 걱정이 많아 지금 할 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게으름뱅이가 된 것이다.

다섯 번째 얼굴 : 걱정은 불신이다

걱정 많은 사람 중에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제대로 해낼지 모르겠으니 염려되고, 내 운명을 믿을 수 없으니 그 또한 근심이다. 이러한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인생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건 완벽한 망상이다. 그러나 그런 망상에 젖은 사람들은 통제할 수 없는 데 대해 큰 불안을 느끼고 이는 걱정의 악순환을 낳는다. 한편 타인에 대한 불신 역시 걱정의 요인이 된다. 타인과 세상에 대한 불신과 불안, 걱정은 심해지면 증오나 분노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걱정과 결별하기 위한 7가지 열쇠



Key 1 -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라: 어떻게 하면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되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굳건하고 안정적인 자기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진정한 자아를 찾고 진정한 삶을 살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매 순간 충실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의 기준에 얽매이거나 외부에 관심을 두느라 내면의 목소리를 놓치는 일이 없게 된다.

기대를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라: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거짓 자아가 만들어놓은 거짓 요소들을 없애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헛된 기대와 그에 따른 걱정이 대표적이다. 거짓 자아는 환상에 근거한다. 가면을 써야만 다른 이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환상, 타인 위에 군림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내 뜻대로 조종할 수 있고 세상이 나를 위해 돌아갈 것이라는 환상 등. 이처럼 실체가 없는 환상, 즉 헛된 기대는 번지르르하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삶에 고통과 괴로움을 더한다. 내면 깊숙이는 그것이 허상임을 알기에 불안감이 들고 걱정이 엄습해온다. 진짜 자신을 찾으려면 이 같은 허상(거짓 자아, 헛된 기대, 걱정 등)에서 벗어나 현실과 마주해야만 한다.

걱정이 오래 머무르게 놔두지 마라: 주인과 손님의 역할은 확연히 다르다. 주인은 손님을 맞이하는 환경을 만들고, 손님을 환영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손님은 방문지에 도착하면 주인이 어떤 것을 제공하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고, 돌아갈 때에는 감사의 마음을 충분히 전해야 한다. 따라서 주인이 손님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고, 손님이 주인처럼 행동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당신이 주인이고 걱정은 손님이다. 자신의 역할을 지켜라. 주객이 전도되면 삶이 전도된다. 손님인 걱정은 왔다가 가는 존재이며, 주인인 우리는 안정적으로 한곳에 머무르며 오가는 손님을 맞이하는 존재이다.

Key 2 - 욕망의 덩치를 줄여라

좋고 싫음의 잣대를 버려라: 걱정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배우는 동안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좋고 싫음을 가르지 않는 것이다. 열망의 덩치가 커질수록 좋아하는 것만 찾게 되어 집착 욕구에 지배당하고, 또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을 거부하게 된다. 소중한 삶의 에너지 절반을 집착하는 데 쓰다 보면 다양한 경험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절반밖에 남지 않는다. 또한 집착은 행복이 지속되는 것을 방해하고, 외적 조건에 따라 증발되게끔 만든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집착을 버리면, ‘좋고 싫음’이라는 구식 잣대를 없앨 수 있고, 좋고 싫음을 구분 짓는 것이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당연히 중요하지 않은 잣대를 삶의 토대로 삼을 이유가 없다.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을 놓아버려라: 위대한 선승 도겐은 어렸을 때 불교를 연마하기 위해 중국으로 향했고, 중국에 수년간 머문 후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가 일본에 도착하자 소문을 전해 들은 많은 이가 그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모여들었는데, 사람들이 도겐에게 수년간의 수행을 통해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소유하지 않는 마음을 배웠소.”

무소유는 걱정뿐 아니라 우리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의 해법이 되어주는 귀중한 가르침이다. 소유한 것이 없으면 집착할 대상도 없으므로 항상 여유롭고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 무소유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관계 맺는다. 또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며, 상대가 보답하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렇듯 무소유는 언제라도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선사한다. 그래서 그 어떤 것이라도 맞이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Key 3 - 생각을 멈추고 행동을 시작하라

지금 여기, 이 순간의 나를 인식하라: 걱정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의 정신과 에너지를 모두 과거 혹은 미래로 향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현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전력을 다하라. 그럼에도 걱정은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틈만 나면 당신을 지배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현재를 인식하려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의식하는 연습을 통해 걱정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서 한 걸음씩 내딛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의식하는 연습은 단순하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얼굴에 닿는 공기와 발바닥에 느껴지는 땅의 감촉은 어떠한가? 음식을 만들 때에는 그것에 완전히 몰입하고, 식사를 할 때는 한 입 한 입 느껴지는 맛을 만끽하라. 무엇을 하든지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깨어 있어라. 공상 속에 빠져 삶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연습이 처음에는 불편하겠지만 곧 습관처럼 익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과 세상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이 커질수록 쓸데없는 근심은 적어질 것이다. 이러한 자기 수행은 일생에 거쳐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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