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당신 없는 회사에 가고 싶다

이민영 지음 | 라이스메이커
당신 없는 회사에 가고 싶다



이민영 지음

라이스메이커 / 2014년 5월 / 332쪽 / 14,500원





PART 1 총성 없는 사무실 전쟁



5시 58분, 그들이 퇴근 태세를 갖추는 시간

시곗바늘이 5시 30분을 가리키면 많은 직장인들의 마음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제 업무를 마무리하고, 적어도 5시 55분까지는 책상과 가방 정리가 끝나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집중력을 높여서 일한다. 드디어 5시 58분, 오늘도 무사히 끝났다고 안심하는 순간 팀장이 외치는 말 “오늘 저녁 안 먹을 사람?” 이 한마디로 ‘칼퇴근’의 계획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연차가 얼마 안 된 병아리 팀원들은 절망감에 무릎을 털썩 꿇는다. 아니 대체 ‘오늘 저녁 먹을 사람’도 아니고 ‘오늘 저녁 먹지 않을 사람’이라니, 어떤 배포 있는 팀원이 손을 번쩍 들어 칼퇴근의 의사를 밝히겠는가 싶다. 이처럼 팀장님과 팀원들 사이에서 퇴근시간을 두고 벌어지는 팽팽한 기(氣)싸움은 전국 곳곳의 사무실에서 일상이 되었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정한다.”고 근로계약서나 회사 내규에도 정해져 있건만, 왜 이토록 한쪽은 질 수밖에 없는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매일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기업현장에 강의를 가서 세대차이를 가장 많이 느끼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퇴근에 대한 것이다. 팀원들은 대개 8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내에 업무를 집중적으로, 밀도 있게 끝내려고 한다. 그러나 팀장님들의 생각은 또 다르다. 팀장인 내가 외투를 손에 쥐지도 않았는데도 감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버르장머리 없는 팀원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신입일 땐 안 그랬는데….”라는 탄성만 절로 나온다. 한 공간에서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벌이는 신경전의 골은 의외로 깊다. 팀장들은 신입사원일 때 자신의 상사가 문밖을 나서지 않는 이상 자기가 먼저 자리를 뜰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이 조직 내에서 무언의 룰이었고 규칙이었던 것이다. 늘 자신보다 조직이 우선이었던 그들에게 사생활이란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일로 여겨진다. 그렇게 몇십 년 동안 조직생활을 한 이들에게 개인사, 가정사가 어떻게 감히 퇴근의 이유가 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자신의 사생활을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 후배들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인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똑똑하고 젊은 팀원들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간배분이 직급 차이로 무시당하는 것 같지만 강의를 하다 보면 더 깊은 속내를 읽을 수 있다. 고릿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팀장들의 불만 뒤에 숨은 걱정에는 사실 생각보다 처절한 ‘전우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상사에게 등을 보이고 바람처럼 퇴근하는 것은 감정이 상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후배들보다 더 많은 기간 동안 조직생활을 경험한 선배로서 인간적인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밥벌이의 공간인 회사라는 조직이 연차가 조금 쌓이고 조직의 생리를 파악하면 가끔 어떤 면에서는 만만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실상은 무척이나 치열한 경쟁의 사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정의 바깥은 사실상 정글이고 전장이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고 그 안에서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과 조직이 그 흐름에 따라가지 못한다면 결국엔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밥벌이에서 내가 소외되는 것을 의미하고, 개인의 실패이자 가정에는 크나큰 위기이다. 이런 과정과 사례들을 몸소 지켜보고 직접 겪어온 이들에게 조직과 회사는 편하지만 동시에 어려운, 또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조직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해온 상사들은 부하직원들이 이처럼 치열한 경쟁과 위기감을 함께 느껴주기를 원한다. 그러니 이들은 부하직원들이 단순히 일찍 퇴근하는 것을 아니꼽게 보는 것이 아니라, 6시만 되면 총알같이 튀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만약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직원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상사들은 팀과 조직을 위해 애쓰고 있는지를 통해 부하직원의 총체적인 잠재력을 본다. 또한 상사라면 당연히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부푼 마음으로 입사를 하여 ‘나인 투 식스’가 조직의 룰이고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신세대 팀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어쩌면 이런 상사의 입장도 버거울지 모른다. 그리고 불안정한 미래를 걱정하며 더 이상 회사가 나를 지켜줄 수 없다는 생각이 뿌리 깊은 팀원들에게 어쩌면 이는 당연한 충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세월을 지나쳐온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겨운 일들을 경험했고 누구보다 치열한 기업의 경쟁을 겪은 사람들이다. 조직 내의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입장에 있는 젊은 세대가 함부로 이들을 판단하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경력이고 노하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삐딱한 시선으로 팀원들을 바라보는 감정적인 상사로 생각하기보다,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을 함께해나갈 파트너가 따뜻한 마음으로 보내는 걱정의 시선으로 생각하길 바란다. 그들에겐 분명 배울 것이 있다.

상사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과거와는 달리 더 넓은 세계를 자신들보다 빨리, 그리고 더 많이 경험했을 젊은 세대들의 개인적인 생활도 존중해주길 바란다. 일은 오직 사무실에서만 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났다. 세상과 부대끼고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얻는 정보도 다 이들의 스펙이고 역량이다. 그러니 부디 상사로서 넓은 아량을 베풀어주길!

팀장님, 제발 블록킹, 언팔, 친삭 요망이요!

한동안 우리 사회에 ‘SNS 리더십’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스마트폰이 일반화되고, 모바일을 통한 소셜 커뮤니티가 성행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신조어다. 그 시작은 국내 대기업 CEO들 일부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활용하여 임직원이나 일반인들과 허물없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이 기삿거리로 회자되어 유명세를 탄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을 뿐, 평소에는 우리의 삶과 너무 멀기만 한 대기업 사장님, 회장님들이 딱딱하고 관료적인 예의 이미지를 벗고, 사뭇 다른 인간미를 보여주자 사람들은 색다른 반전 매력을 느끼면서 환호했다.

가장 잘 알려진 SNS 리더의 대표주자는 2012년 두산그룹의 수장이 된 박용만 회장이다. 기존에 형제경영, 족벌기업의 향기가 강했던 두산그룹의 사령탑을 박 회장이 맡게 되자 그 자체만으로도 뉴스거리가 되었다. 왜냐하면 박용만 회장은 일반석에 앉아 야구를 관람하는 등 기존의 재벌임원들에게서 기대되는 모습과는 달리 소탈한 성향의 리더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발 빠른 젊은이들만 한다는 SNS의 날개까지 달았으니 많은 사람들이 환호할 만했다. 한번은 신문에 그의 트위터 사건이 크게 기사로 실린 적이 있다. 박용만 회장이 자신의 트위터 친구로부터 “아들이 팔을 다쳤다.”는 메시지를 받았고, 다친 아이가 좋아한다는 두산 베어스 김현수 선수의 친필 사인볼과 장난감, 그리고 얼른 나으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 이후 ‘트위터하는 회장님’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는 여러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퍼나르기를 통해 일반인에게까지 널리 알려졌다.

박용만 회장뿐만 아니라 신세계의 정용진 부회장, 그리고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 박원순 서울시장과 같은 정치인들까지도 SNS를 활용하여 열린 리더, 지각 있는 사회 지도층의 모습을 제시하면서 긍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은 전자기기나 스마트폰에 익숙지 않은 직장인들까지도 SNS를 시작하게 만드는 등 상당한 파급력이 있었다.

특히 2010년 이후 2G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시장이 급변하면서, 문자메시지 하나 보내는 데도 끙끙대던 많은 중장년층 팀장들이 갑자기 달라진 것이다. 어느 날은 새벽녘에 페이스북을 통해 20년 동안 자신의 직장생활에 대한 소회를 올리기도 하고, 회식자리에서 부하직원들과 어색하게 어깨동무를 하여 찍은 셀카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꽉 막힌 팀장의 모습을 벗고, 젊은 사람들의 트렌드에 열심히 동참하려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 노력이 가상하기도 하다. 하지만 상사들의 이런 노력이 그저 가시적인 액션에 그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근본적인 마인드는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예전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단지 페이스북에 사진 몇 개 올렸다고 해서 팀원들을 자신의 열광적인 팬으로 만들 수는 없다. 심지어는 SNS를 통해 팀원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인상을 준다면 이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심하게 말해, ‘열린 리더 코스프레’에 불과한 이중적 행동은 소통은커녕 ‘진화된 불통’의 일면일 뿐이다.

당신이 팀장이라면, 자신이 팀원이던 때를 생각해보라. 아니, 당장 당신의 상사나 임원이 당신에게 격 없는 사적 관계를 맺자며 갑작스러운 제안을 한다고 해보자. 과연 이것이 달갑기만 한 일인가? 누구나 자신의 ‘갑’은 어렵고,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팀장인 당신이 그러하듯, 당신의 팀원 역시도 같은 기분이다. 회사 내에서도 갑인 상사가 맘 놓고 편히 쉬고 싶은 사생활에까지 나타나 ‘갑질’을 하는 건 누구도 원치 않는다. 단언컨대, 나이 차가 많은 팀원과의 SNS 소통은 이제 그만해도 좋다. 팀원들을 웃겨주는 개그맨이 되어줄 필요는 더더군다나 없다. 팀원들은 SNS로 자기들과 허물없는 대화를 하는 상사보다, 조금은 위트가 떨어지더라도 위엄 있고 배울 점 많은 상사를 더 선호하니 말이다.

쿨하든지, 아니면 제대로 각을 잡든지

관리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여러분의 팀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사는 어떤 스타일일 거라 생각하세요?” 그러면 이런 답변들이 나온다. ‘일 많이 시키는 팀장’, ‘성격 까칠한 팀장’, ‘밥 잘 안 사주는 팀장’… 그런데 이 가운데 정답은 없다. 똑같은 내용을 가지고서 20대와 30대 초반의 사원, 대리급 직장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기 전에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여러분이 가장 싫어하는 상사는 어떤 스타일인가요?” 그러면 의외로 ‘일 많이 시키고 성격 까칠한 팀장’이라는 답은 별로 없다.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팀장은 바로 ‘쿨한 척하면서 뒤로는 권위를 세우는 이중적인 팀장’이다. 한마디로, 자기는 좋은 상사인 줄 알고 있는데, 알고 보면 꼰대 같은 팀장이 제일 싫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상사의 꼰대짓으로 가장 많이 꼽는 행동 중에는 ‘먹는 것’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장 많은 불만은 점심이나 회식 메뉴를 결정할 때 이를 팀원들에게 결정하라고 하는 것이 그들에겐 큰 부담이 된다고 했다. “팀장님께서 점심 메뉴를 고르라고 하시면 정말 불편해요. 차라리 본인이 드시고 싶은 걸 말씀해주시는 게 훨씬 좋아요.” 아니, 메뉴를 자기들한테 고르라고 하는 것도 싫다니 대체 왜일까?

“메뉴 선택권이 정말로 저희한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사실 저희에게 메뉴를 선택하라고 하는 건 그분들의 취향에 맞는 답안지를 내놓고 자리까지 잡아놓으라는 의미예요. 메뉴 따위 선택하는 데 자기 품까지 들이고 싶지 않다는 거죠. 정작 저희가 원하는 메뉴를 먹은 적은 한 번도 없는걸요.”

내가 의구심이 들어 물었다. “그런데 팀장님이 그깟 메뉴 고르는 걸로 그렇게까지 각을 세우실까요?” 그러자 팀원들이 헛웃음을 지으며 다들 ‘뭘 모르시네.’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때 보면 차라리 쿨한 척 우리한테 메뉴 정하라고 하시는 상사보다 그냥 위에서 정해주시는 게 깔끔하고 좋아요. 제일 싫은 게 쿨한 척하면서 실제로는 엄청 각 잡는 그 일관성 없는 모습이에요.” 즉, 식사 메뉴 정하기 에피소드는 팀원들이 생각하는 ‘팀장의 이중성’의 단면이었다.

늘 깐깐하고 일도 많이 시키고 ‘까라면 까야지.’라는 태도를 고수하는 팀장들에 비해, 기분 좋은 때는 한턱 크게 내기도 하고 개인적인 사정을 봐주며 조기퇴근도 눈감아주곤 하다가도 제 감정이 좋지 않을 때는 “아니, 도대체 얼마나 풀어줘야 제대로 일을 할 거야?”라며 정색하는 팀장들을 더 싫어한다. 언제나 권위를 세우는 팀장에게는 늘 저자세로 긴장하고 있으면 되겠지만, 평소에는 마치 친한 형처럼 부하에게 고민을 털어놓아보라는 둥 요즘 애로사항은 없느냐는 둥 하다가, 느닷없이 돌변하는 팀장에게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갈등은 386세대보다는 오히려 X세대 팀장과 신세대 팀원들 간에 더 자주 목격된다. 왜냐하면 386세대의 경우, 신세대 팀원과의 세대차나 괴리감을 인식하고 일관성 있게 어른스러운 ‘각’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아랫사람의 경우에도 나이 차가 제법 나는 하늘 같은 상사한테 알아서 조아릴 줄 안다. 또 부모님 심부름하듯, 이분들에게 커피 한 잔 타드리는 것이 그렇게 감정적으로 억울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X세대 팀장들의 경우는 다르다. 40대 초반 정도의 이들은 외국물도 먹어보고, 개인주의적 성향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젊은 사람들이 아는 영화나 음악 그리고 요즘 뜨는 이슈들에 대해서 크게 괴리감 없이 잘 흡수하고 이해한다. 자기관리도 잘하는 편이라 외모적인 부분에서도 30대 부하직원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이질감이 적다. 하지만 그런 젊은 40대가 젊은이의 가면을 벗고 진짜 속내를 보이면 그때부터 신세대들은 뜨악한다. “아, 이 사람도 역시 구세대구나!”

이들은 “조직의 생존이 개인의 삶에 우선한다.” 혹은 “적어도 조직이 개인보다 우선하는 ‘척’은 해야 한다.”는 직장인 제1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요즘 신세대들과 굳이 부딪치고 싶지 않은 기존의 386세대를 대신하여 아랫사람이 모난 돌처럼 굴면 강하게 정을 내리치는 것 역시도 이들 X세대 팀장들이다. 그들은 쿨한 가면을 벗고 각을 세우며 말한다. “나도 다 겪어봐서 아는데, 우리 땐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 마흔 전후의 팀장들이여, 이렇게 얘기했다간 팀원들이 당신과 밥 먹기 싫어서 차라리 점심을 굶는 걸 선택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제발 기억하길 바란다.



PART 2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팀장과 팀원



당신은 나의 부하요, 동료요, 친구이니…

부하직원이 저녁을 강탈당하는 이유는 가지가지다. 상사의 아들이 시험을 망쳐서, 와이프와 싸워서, 어머니가 아프셔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성과를 냈을 때 하는 저녁식사와 술자리는 이해할 수 있지만, 다분히 개인적인 심경의 변화 때문에 갑작스럽게 생기는 퇴근 후 시간은 너무나 곤욕스럽다고 많은 팀원들이 고백한다. 어쩔 수 없이 따라는 나왔지만 오가는 술잔 속에 어리디어린 팀원들의 반응은 갈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한다. 이들은 명절마다 부부간에 피 터지는 신경전이 오고 가는 결혼생활을 알 턱이 없으며, 성적은 떨어지면서도 호시탐탐 아버지의 주머니만 노리는 교활한 10대 아이들의 심정도 알 수가 없다.

“상사들이 사적인 통화를 스스럼없이 자리에서 받는 걸 보면 너무 놀라워요. 받는 것 자체가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에요. 문제는 듣고 싶지 않은 상사의 사생활까지 제 귀에 들린다는 거예요. 그건 정말 공해에 가까워요.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면 그걸 들은 제가 내색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못 들은 척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내색하면 엿들은 게 되고, 모르는 척하면 정 없는 놈이라고 생각할까 봐 신경 쓰이죠. 가정사나, 개인적인 고민같이 너무 깊숙한 부분까지 가끔 툭툭 내뱉는 경우가 많은데, 너무 거북해요. 사적인 부분은 자기 또래나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얘기 아닌가요? 그렇다고 제가 친구처럼 대응해줄 수는 없잖아요.”

저녁을 빼앗기는 건 그래도 운이 좋은 경우다. 상사가 팀원에게 감정적 교류를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도 있다. 바로 업무 외적인 일로 물리적인 노동을 시킬 때다. 경영대학원에 다니는 부장의 레포트를 대신 써주는 일부터, 수업시간에 발표할 파워포인트를 작성하는 일도 한 경험이 있단다. 또 예약을 받지 않는 병원에서 순번을 받고 대기했다는 부하직원부터, 출장 가는 상사를 공항까지 데려다주고 자기는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취업포털 ‘인크루트’에서 직장인 8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67퍼센트가 상사에게서 업무 외적인 일로 지시를 받아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