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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는 놈 꿈만 꾸는 놈 꿈을 이루는 놈

정진일 지음 | 책이있는풍경
꿈이 없는 놈 꿈만 꾸는 놈 꿈을 이루는 놈

정진일 지음

책이있는풍경 / 2014년 5월 / 272쪽 / 15,000원





Part 1 한 가지 꿈만 꾸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길다



나는 전라북도 장수의 시골마을 출신이다.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춤에 빠져 살았다. 춤에 관한 책도 사보고 시간 날 때마다 혼자 열심히 연습을 했다. 1학년 여름방학 때는 서울로 올라가 학원에 등록해 춤을 배웠다. 서울에서 기본기를 익히고 돌아온 후에도 시간만 나면 연습에 매달렸다. 이렇게 익힌 춤 실력을 가을 소풍 때 전교생 앞에서 보여주었다. 내가 브레이크 댄스를 추자 모두가 열광했고, 그날 이후 나는 전교생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학생 시절 나는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춤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북대 자원공학과에 진학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공 수업은 재미가 없었고 지루했던 대학 생활의 돌파구로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혼자 춤을 추고 즐기는 데서 끝나지 않고 댄스 서클을 만들어 다른 학생을 가르쳐주고 함께 공연도 했다. 댄스 서클이 유명세를 타면서 공연 의뢰가 들어왔고 돈도 꽤 벌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평생 춤을 추면서 사는 것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러나 평생 한 가지 일만 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호기심이 많고 변화를 즐기는 나로서는 한 가지 일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일, 저 일 하면서 죽도 밥도 아닌 삶을 살기도 싫었다. 하고 싶은 일을 다양하게 하면서도 성공하고 싶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 것이 10년 법칙이었다. 이것은 어떤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원한다면 최소한 10년은 투자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법칙은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어떤 일을 시작해 성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이 10년이라면 10년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이루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지금 20대이니 80대까지 살 수 있다면 10년마다 한 번씩, 일곱 번이나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다. 나는 10년마다 어떤 꿈을 꿀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생 춤을 추기 어렵다면 20대만큼은 원 없이 춤에 미쳐 살고 싶었다. 춤으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전문 춤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다. 문제는 30대부터였다. 나는 교육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30대는 교육행정 공무원이 되는 쪽을 택했다. 40대 때의 꿈은 전문 강사인 지식 에듀테이너로 정했다. 강사를 꿈꾼 이유도 큰 맥락은 같다. 내 지식과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댄스 서클을 만들고 회원들을 가르치고 노하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는 이미 확인했다. 40대 중반인 지금 나는 20대 비보이, 30대 교육행정 공무원을 거쳐 로드맵대로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꿀 꿈이 더 많다. 50대는 창업이나 경영을 도와주는 전문 컨설턴트로 살고 싶고, 60대는 이벤트 기획자, 70대는 바텐더, 80대는 플로리스트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이런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나는 평범했던 사람들이 새로운 꿈을 꾸고 삶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종종 확인하곤 한다.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고 꿈을 찾고 이루는 쪽을 선택하면 누구든 꿈을 이룰 수 있다. 이런 사람 중에는 내 아내도 있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춤을 추다 쓰러진 적이 있었다. 서클 활동에 매달려 밥도 제때 먹지 못하고 미친 듯이 춤을 추다 보니 병이 나고 말았다. 이후 시골집에 내려가 요양하던 중 아내를 만났다. “우체국에 친절하고 예쁘장한 아가씨가 왔는데, 아주 참하게 생겼더라.” 아버지의 말을 듣고 호기심에 우체국에 가보니 정말 귀엽고 예쁜 여직원이 있었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슈퍼마켓 판매 대금을 입금한다는 핑계로 우체국을 들락날락하다가 사랑이 싹텄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결혼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20대 때는 내가 춤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우체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아이 셋을 키우느라 아내는 지쳐갔다.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마침내 9급 공무원이 되었지만 공무원 월급만으로는 다섯 식구가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아마도 이루고 싶은 꿈이 없었다면 그 상황을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묵묵히 그 힘든 생활을 견뎌냈지만 늘 미안했다. 나는 내 꿈을 향해 한 걸음씩 가고 있는데 아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꿈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아내도 자신의 꿈을 찾고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몇 년이 지나 아이들이 컸을 무렵,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꿈이 뭐야?” “꿈? 나야 아이들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게 꿈이지.” “그거 말고, 자신을 위한 꿈이 뭐냐고?” “사실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하고 싶었어.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선생님이 되면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그러면 선생님 되면 되겠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살림하랴 애 키우느라 바쁜데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어. 지금은 머리가 굳어 임용고시에 붙을 자신도 없어.” “아니야. 나보다 머리 좋잖아. 나도 공무원 시험 공부해서 합격했는데 당신이 못할 이유가 없잖아.” 내 말에 반신반의하던 아내도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꿈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용기를 냈다.

다행히 중국 문학을 전공했던 아내는 대학 시절 교직을 이수해 중등교사 자격을 갖고 있었다. 아내는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교대를 나와야 했는데, 다행히 그때는 교대 편입이 가능했다. 아내는 곧바로 2001년부터 교대 편입을 준비했고, 2002년 당당하게 전주교육대학교에 합격했다.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교대 편입에 성공하자 아내는 자신감이 붙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해 보였던 선생님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교대에 3학년으로 편입해 졸업할 때까지의 2년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세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는 해냈고 졸업과 동시에 임용고시까지 합격했다. 누구든 꿈을 꾸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Part 2 꿈은 내 안에 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꿈이 워낙 마음속 깊숙이 숨어 있어 자신조차도 모를 뿐이다. 꿈을 찾으려면 먼저 나를 알기 위한 질문부터 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하고 신나는지를 자문해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내 경우 20대까지만 해도 춤은 절대적이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춤추는 것이 좋았고, 춤을 출 때 제일 신났고 행복했다. 그래서 춤은 20대 때 내 꿈이 되었다. 자신에게 묻고 답하면서 좋아하는 일, 행복한 일,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찾았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면 꿈을 확실하게 찾을 수 있다. “몇 번을 되풀이해도 여전히 즐겁고 재미있는가?” 단순히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면 할수록 더 재미가 붙고, 그 일을 할 생각만으로도 설레며, 일이 끝난 후에도 쉽게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일일수록 꿈에 가깝다. 자신에게 묻는 것만으로 확신하기 어렵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괜찮다. “내가 무엇을 할 때 제일 신나고 재미있어 보여?” “내가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해 보여?” 이런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던져보면 새로운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세계적인 톱 모델 장윤주 씨의 어릴 적 꿈은 개그맨이었다. 남을 웃길 때 행복하고, 실제로 유머감각도 뛰어났지만 그녀는 개그맨이 아닌 모델이 되었다. 그녀가 개그맨의 꿈을 접고 모델의 꿈을 꾼 데는 중학교 때 수학 선생님이 한 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원래 그녀는 자신의 젓가락처럼 마르고 가는 다리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그녀의 다리를 보고 감탄하며 “윤주, 너 다리 예쁘구나. 모델 해도 되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미처 몰랐던 강점을 선생님을 통해 발견한 그녀는 그때부터 모델이 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처럼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해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자신이 미처 찾지 못한 꿈을 찾을 수도 있다.

미치도록 가슴을 뛰게 하는 그런 꿈이 있어야 꿈을 이루는 과정도, 꿈을 이룬 후에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 미치도록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아직 진짜 꿈을 찾지 못한 것이다. 취업을 앞둔 학생들은 가슴이 뛰기보다는 빨리 원하는 직장에 취업해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어 한다. 물론 원하는 직장은 가슴보다 머리가 말하는 직장이다. 연봉, 근무조건 등을 따져 안락한 미래를 보장하는 직장 말이다. 내 수강생 중에 졸업을 앞둔 여대생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안정적인 직장을 꿈꾸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음과 같은 내 강연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꼭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할 이유가 있을까요? 1년쯤 늦더라도 정말 가슴 뛰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내 말에 공감하면서도 어떻게 가슴 뛰는 일을 찾을지 막막해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녀가 찾아왔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았다고 했다. 뜻밖에도 강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저도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는 그녀를 선뜻 축하해주지 못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강사를 꿈꾸지 않은 학생이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슴이 하루 이틀 뛰고 그만이라면 그것은 진짜 꿈이 아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한두 달쯤 더 기다려보고 여전히 변함없다면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겠죠.” 실망한 기색으로 돌아갔던 그녀가 한 달 후 밝은 얼굴로 다시 찾아왔다. “계속 가슴이 뛰어요. 내가 누군가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짜릿하기까지 해요.” 그제야 나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지금 그녀는 환경가전 업체 교육팀에서 사내 강사로 활동 중이다.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K-POP 스타 시즌 3에서 유난히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참가자가 있었다. 어렸을 때 트로트 신동으로 불렸던 소녀 홍정희 양이다. 트로트를 불러 유명세를 얻고 방송에도 많이 출연했지만 정작 홍정희 양은 트로트가 싫어 가출까지 했다. 그녀는 트로트 가수가 아닌 발라드 가수를 꿈꾸었다. 발라드 가수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익숙해진 트로트 창법을 버리려고 고생도 많이 했다. 발라드 가수가 되기 위해 K-POP 스타에 참가했던 홍정희 양은 Top 10을 결정하는 예선전에서 결국 탈락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탈락에 가슴 아파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트로트를 좋아하지 못한 그녀가 안타깝기만 했다. 만약 그녀가 트로트 가수를 꿈꾸었다면 이미 그녀는 꿈을 이루고도 남았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일치하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여기서 잘하는 것은 재능이다. 재능이 있으면 그만큼 꿈을 이루기가 쉽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아이들의 꿈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에서 꿈을 찾고, 부모들은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찾아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잘하는 것을 할 때 성공확률이 높다 보니 부모들이 잘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성공했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을 무시하고 잘하는 것을 선택하면 성공 가능성은 클지 몰라도 그렇게 이룬 성공이 행복한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좋아하면서도 잘할 수 있는 꿈을 꿀 때만이 행복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나는 내 꿈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다양한 꿈을 꾸는 것이 반드시 나처럼 직업을 바꾸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굳이 직장을 바꾸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 같은 자리에서 판을 새로 짜면 그동안 불평불만을 늘어놓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꿈을 볼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었던 교사가 되었는데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아 고민에 빠졌던 선생님 한 분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졸거나 딴짓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 수업하는 게 점점 재미없어지고 아이들도 싫어졌다. 그렇게 몇 년쯤 지나니 교사라는 직업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내 강연을 듣고 용기를 냈다. 10년마다 직업을 바꾸며 사는 내 삶이 큰 자극이 되었다며 도움을 청해 왔다.

나는 교사를 포기하고 새 삶을 찾겠다는 그녀의 생각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방법을 찾아보도록 권했다. 찾아보면 분명 길이 있다. 실제로 그 선생님은 교사를 그만두기 전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마지막 최선을 다한다는 심정으로 수업 방식을 바꾸었다. 강의식 수업 대신 질문을 많이 하는 토론식 수업을 했고 수업이 지루해지면 재미있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몰라보게 좋아졌고, 자연스럽게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도 친밀해졌다. 지금 그 선생님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상담교사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과 깊이 소통하면서 학생들이 의외로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어 외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편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상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사례처럼 새로운 꿈은 꼭 큰 판을 바꿀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현재의 판에서 조금만 판을 짜도 새로운 기분으로 가슴 설레며 일을 할 수 있다.



Part 3 꿈을 이루는 프로세스는 모두 통한다



머릿속에서 꿈만 꾼다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What과 How를 생각하기 전에 Why부터 생각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요즘 20대가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가 공무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안정성 때문이다. 일반 기업의 경우 40대만 되어도 정리해고의 불안감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니 정년 보장이 되는 공무원이 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공무원이 된 이유는 다르다. 10년마다 직업을 바꾸는 꿈을 꾸는 내게 정년 보장은 큰 의미가 없다. 나는 우선 간접적으로 대한민국 교육에 기여하고 싶었다. 교육행정 공무원이 되어 학교가 아이들이 마음껏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배움터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또한 나는 가능한 한 다양한 일을 경험하기를 원했다. 공무원은 일반 기업과 달리 2~3년마다 계속 보직을 바꾸어주며,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일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처럼 공무원이 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한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What과 How보다 Why부터 착실히 한 덕을 톡톡히 보았다. 나는 67일이라는 짧은 기간 시험을 준비해 단번에 합격했다. 붙어야 할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에 시험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처럼 Why는 꿈을 계속 꾸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외풍에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주고, 다시 앞으로 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준다.

꿈을 이루었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한 이유는 꿈을 이루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당연한 것은 꿈으로서의 감동이 없다. 재벌 2세가 젊은 나이에 사장이 되는 것을 보고 감동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없다. 그가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의 주인이 될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기 때문이다. 꿈은 그 자체가 반전을 품고 있다. 재벌 2세가 그룹 회장이 되는 것은 꿈이 될 수 없지만 그룹의 말단 직원이 회장이 되는 것은 꿈이 될 수 있다.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룹 회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보다 절대 될 수 없는 조건과 이유가 수도 없이 많다. 그 많은 악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전을 꾀하는 것이 바로 꿈이다. 꿈 자체가 반전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꿈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현실이나 조건도 달리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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