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인생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와키타 요시노리 지음 | 더숲
성공하는 인생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와키타 요시노리 지음
더숲 / 2014년 1월 / 240쪽 / 13,000원
1장 성공하는 인생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여, 홀로 사는 삶을 두려워 마라
요즘 학생들은 혼자 있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두려워한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을 때도 혼자서는 먹지 못한다. 잠깐이라도 휴대폰이나 스마트폰이 울리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한다. ‘혼자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이들은 혼자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전혀 모르고 있다. 물에 기체, 액체, 고체의 상태가 있듯이 인간에게도 상태가 있다. ① 타인과 함께 있는 자신, ② 혼자 있지만 밖으로 의식을 향하고 있는 자신, ③ 혼자 있으면서 안으로 의식을 향하고 있는 자신. 이렇게 상태로 나눌 수가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③ 혼자 있으면서 안으로 의식을 향하고 있는 자신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③의 자신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①과 ②가 있으면 된다. 하지만 ③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질은 ③에 있기 때문이다. ③의 ‘안으로 의식을 향하고 있는 자신’의 특징은 고독하다는 점이다. 인간은 혼자서 태어나서 혼자서 죽는다. ‘혼자’란 한 개인으로서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이런 모습을 싫어한다.
혼자 있기를 꺼리는 것은 인간의 본래 모습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거기에서 도망칠 수가 없다. 본래 할 수가 없는 일을 하려고 하고 있으니 당연히 점점 괴로워진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의식적으로 혼자가 되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혼자 있을 때의 장점을 발견하게 된다. 홀로 있으면 분명히 쓸쓸하지만, 그 쓸쓸함 속에는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정취가 있다. 타인과 관계를 맺어 기쁜 이유는 외로움이 치유되기 때문이니 홀로 있으면서 타인을 생각하면 외롭지 않게 마련이다. 이 말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도 한층 더 ‘나 홀로 생활’을 즐겨봐야 한다.
가령 왁자지껄했던 파티가 끝난 자리는 쓸쓸하고 공허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쓸쓸함을 맛보아야만 사람과 관계를 맺는 기쁨을 알게 된다. 또한 진정한 자신을 알기 위해서도 ‘고독한 생활’은 빼놓을 수 없는 체험이다. 프랑스 소설가 샤토 브리앙의 말처럼 “고독은 영혼의 역량을 강화시켜 준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친구들과 모여 잡담을 나누는 일보다 오히려 홀로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스마트폰으로 친구를 찾아다니는 젊은이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젊은이여, 혼자 있기를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젊음은 더욱더 고독을 맛봐야 할 최적의 순간이다.”
고독을 즐겨야 하는 이유
“그래도 역시 혼자 있으면 외로워요.” 싱글로 사는 어느 편집자의 말이다. 맞는 말이다. 특히 도시에서 느끼는 고독감은 산속에 혼자 있을 때보다 심하다고 한다. 유명 배우의 아내가 네 살짜리 아이를 남기고 자살한 일이 있었다. 향년 42세,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을 텐데 그녀는 도시의 고독에 무릎을 꿇은 것인지도 모른다. 신문 기사는 “병든 부모 시중에 지치고, 다른 학부모들과 만나는 일도 없고, 남편도 집에 없고”라고 제목을 달았다. 많은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고독의 3박자가 모두 갖춰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조건하에 있더라도 모두가 동일한 행동을 보이지는 않는다. 잔혹한 말이지만, 그녀는 고독을 즐기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이메일, SNS 등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은 그것만으로 고독감에서 해방되지 못한다. 사람은 역시 직접적인 만남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독의 3박자가 갖추어져 있는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독을 스스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고독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하면 고독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고독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이 아무리 고독하다고 해도 도망쳐서는 안 되며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놀랍게도 어떤 일이든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면 거기서 의미나 가치를 찾아낸다. 암이란 사실을 받아들이면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자 생각하는 것처럼. 다만 마음이 건전하게 기능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반대로 사물을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같은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사람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어느 경영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아침에 파리 근교의 공원을 조깅하는데 매일 같은 의자에 외롭게 앉아 있는 노인이 있었다고 한다. 점차 서로 낯이 익게 되어 인사를 주고받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대뜸 노인에게 물어보았다.“매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 건가요?”
“죽은 아내 생각을 하고 있다네.”
“아, 그러세요. 외로우시겠어요.”
그러자 그는 갑자기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 않네. 아내와 즐겁게 보냈던 나날을 생각하고 있지. 그래서 여기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네.”
사람의 마음에는 방어기제가 있어서, 어떤 일이라도 자신에게 편리한 쪽으로 생각하려는 특성이 있다, 상황에 적응하여 마음속의 불안이나 공포를 가라앉히려고 하는 것이다. 고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그 상황에 맞는 긍정적인 감정을 이끌어낼 수가 있다. 긍정적인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결코 고독으로부터 도망쳐서는 안 된다. 고독을 두려워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2장 혼자 사는 삶을 즐기는 방법
인생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확실한 세 가지 방법
많은 회사원들은 대체로 성실하지만 삶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면이 있다. 또한 집단행동은 뛰어나지만 개인행동은 서툴기까지 하다. 혼자 살게 되면 어찌해야 좋을지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인생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세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필요하다. 어린아이들은 무엇이든 궁금해하고 호기심을 갖는 반면, 나이를 먹게 되면 사물에 대한 흥미나 관심이 사그라지게 마련이다. 무슨 일이 생기든 대체로 짐작할 수가 있으며, 가끔 흥미를 돋우는 대상을 만나도 “이제 와서 뭘……” 하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습관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사고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방법 중 하나는 평소에 하던 방식과는 다른 기분과 태도를 갖는 것이다. 보통 친구나 지인들이 “이거 재밌어요.”라고 권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그래요? 재미있겠네요.” 하며 맞장구를 치게 마련이다. 자신의 평소 생활을 이런 마음과 태도로 해보는 것이다. 특히 유행이나 화제가 되고 있는 것 또는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이런 자세를 가지면 매우 좋다.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솟아오른다.
두 번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지레짐작하지 말고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소박한 마음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다. 성인이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이든지 자신이 만든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 법이다. 아이들이 사소한 것에도 재미있어하는 까닭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소박한 마음을 갖게 되면 거부하는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포용력이 커지고 사람들이 호감을 갖고 다가오게 된다.
세 번째는 어떤 일이든지 긍정적인 태도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가령 홀로 사는 것이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내 인생은 실패작이 아닌가”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된다. 이런 생각이 확대되면 점점 더 우울해진다. 우울증 중에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이 있다. 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대체로 성실하고 꼼꼼하며, 맡은 일을 확실하게 하고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서 애를 쓴다. 겉보기에는 밝고 활발한데 마음속에는 “……해서는 안 된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마음이 파탄되기 쉽다.
앞서 말한 이런 세 가지 사고습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길지 몰라도 실제로 실천하기는 무척 힘든 습관들이다. 하지만 일단 습관이 되면 홀로 살아가게 되도,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 놓이더라도 언제나 자신 있게 극복해나가고 인생을 자기 뜻대로 즐길 수 있게 된다. 어떤 순간이라도 즐길 수 있어야 최고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화이부동과 부화뇌동은 다르다
“화(和)가 가장 존귀하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화’는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기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는다는 뜻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화(和)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의 뜻을 오해하여 화를 남과 같이 행동하는 것 즉 동(同)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화에는 ‘사이좋게 지내다’, ‘협조하다’라는 뜻이 있고, 동에는 ‘동의하다’, ‘보조를 맞추다’라는 의미가 있다. 언뜻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거리가 있는 말이다. 그 차이는 『논어』의 다음 글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는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되 주체성을 잃지는 않지만, 소인은 화를 추구할 생각으로 주체성 없이 동조하는 부화뇌동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이처럼 『논어』에서는 두 개의 뜻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것과 ‘홀로 사는 삶’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앞으로 닥쳐올 혼자 사는 사회를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주체성이 요구된다. 가령 “넌 뭘 하고 싶어?”라고 물었을 때,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라는 말이면 충분했다. 앞으로는 이런 태도는 통하지 않는다. 셀프 임플로이드(self employed)란 말을 알고 있는가. “스스로 고용된다” 즉 자영업자라는 뜻이다. 회사원도 앞으로는 점차 셀프 임플로이드가 되어갈 것이다. “회사원도 우두머리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셀프 임플로이드형 회사원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 가령 단골고객으로부터 “이런저런 일을 하고 싶다”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하자. 그때 “회사에서 검토한 후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 자리에서 함께 어느 정도 결말을 짓고 “남은 문제점은 검토한 뒤 답변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야만 한다. 회사는 일일이 감독의 사인을 보지 않고 시합을 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한 것이다. 회사는 조직 안에서 셀프 임플로이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화이부동의 자세다. 요컨대 별생각 없이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주체성을 갖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전이라면 “단골고객의 제안이니깐” 하며 일단 그 자리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회사에 들고 가서 상사에게 결정을 맡기는 주체성이 없는 태도가 통했지만, 앞으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직무 권한 안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화를 추구한다면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책임을 회피해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유럽의 비즈니스 사회는 이미 주체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조화를 이루는 것은 중요하지만 주체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 이런 주체성이 없으면 국제화된 시대를 살아갈 수가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주위의 모습을 살펴보고 다수파에게 동조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낮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타인에게 영합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인생을 결정하며 살아가야 한다.
3장 고독이 남자의 그릇을 크게 해준다
고독에 강해지면 인생은 즐거워진다
혼자 산다는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쓸쓸하겠네요”라고 판에 박힌 듯한 말을 건넨다. 1년 중 10개월 이상을 아내와 떨어져서 생활을 하고 있는 지인도 “수십 번도 더 들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실제 생활은 어때요?”라고 물었더니 “아주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아내도 별 불만 없이 혼자 생활하고 있다니, 이 또한 부부의 모습이다. “혼자 사는 게 쓸쓸하다면 그전까지 꽤 행복했겠네요.” 아이가 자립한 뒤 남편을 잃고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60대 여성이 한 말이다. 그녀는 남편의 횡포를 견디며 살아온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혼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안심하고 살게 되는 삶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창 일하는 30세 전후의 싱글 여성이 “혼자 귀가해서 어두운 방에 불을 켜는 것이 싫어요” 하며 신세를 한탄한다. 어떤 때 쓸쓸함을 느끼는가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마련이다. 게다가 요즘은 아무도 없는 방이라도 밖에서 간단하게 불을 켤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나도 때로는 쓸쓸하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그것은 내 처지나 환경 때문이 아니라 음악회에서 명곡을 듣거나 좋은 그림을 감상했을 때, 쓸쓸함이 묻어나는 시를 읽었을 때다. 예를 들어 쇼팽의 음악은 쓸쓸한 느낌에 아름다움이 더해져 애절한 느낌을 준다. 이럴 때 느끼는 쓸쓸함은 결코 기분 나쁜 것이 아니다. 쓸쓸하게 살기 싫다며 나 홀로 생활을 망설이는 사람은 고독에 과잉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요컨대 ‘쓸쓸하다’라는 말에 심리적으로 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사계절의 변화, 애별리고(愛別離苦: 부부, 부자, 형제 등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헤어지는 괴로움을 이름.) 등이 자아내는 쓸쓸한 정취에 익숙해지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쓸쓸함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느낌이 든다. 앞으로는 틀림없이 혼자 사는 사회가 된다. 우리는 좀 더 고독감에 강해질 필요가 있다. 강해지면 삶이 즐거워진다. 더욱더 인생의 높은 곳에 갈 수가 있다. 고독에 지면 비참한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
궁지에 빠졌을 때 고독의 힘이 빛을 발한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과감히 고독해지자. 경영자의 세계에서는 “손색없는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죽을 정도로 큰 병을 앓든지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요컨대 고독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 경영자는 고독하게 마련이다. 왜 고독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걸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깊이 생각할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이상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사건을 겪는다. 그러다 보면 골똘히 생각할 틈이 없고 좀처럼 성장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석가모니도 아내와 자식이 있었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홀로 수행을 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마호메트도 동굴에 틀어박혀 알라신의 계시를 받았으며,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예수에게도 찾아볼 수 있다. 대성한 사람은 한결같이 혼자서 보낸 시간을 갖고 있다.
가수 야자와 에이키치가 아사히신문에 쓴 <일하는 힘>이란 칼럼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고독하게 보내는 시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그는 거품 경제가 한창일 때 오스트레일리아에 26층 빌딩을 세우는 사업을 벌였다. 그 무렵 일본의 연예인 사이에서 유행했던 부동산 투자다. 그런데 그는 직접 현지에 가서 사업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당연한 결과라고나 할까. 그는 배신을 당해 엄청난 빚을 짊어지게 되었다.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지만 법률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이 터지고 난 후 그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스타로 항상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던 생활에서 어느 날 갑자기 고독한 세계에 틀어박혔다. 은둔형 외톨이가 된 것이다. “이로써 나의 인생도 끝이라는 생각이 들고 마치 캄캄한 어둠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일주일을 그렇게 하고 있었더니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고 어느 날 문득 깨달았지요. 이것은 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자, 인간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이번에 난 배역에 따라 지금 이 역할을 맡았을 뿐이라고. 그런데 도중에 오스트레일리아 사건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고……. 인생, 뭐 있어. 즐기며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