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으로 배우는 처세기술
자전 지음 | 부광
중국 고전으로 배우는 처세기술
자전 지음
부광 / 2013년 11월 / 240쪽 / 13,000원
PART 1 : 처세의 기술
위험을 피해 살아남는 기술
세상의 흥망성쇠에 자신을 맡기고 흐름에 순응하라: 진晉나라 사람 혜강은 은사隱士 손등孫登을 따라 3년 동안 산으로 유랑을 했던 적이 있다. 혜강은 줄곧 그에게 가르침을 얻고자 했으나 어떠한 대답도 듣지 못했다. 헤어질 무렵 참다못한 혜강이 손등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하실 말씀이 없으십니까?”
그러자 손등은 이렇게 답했다. “자네는 불에 대해 아는가? 불이 아무리 밝게 빛나는 성질을 가졌다 해도 쓰지 않는다면 그것을 낭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사람의 재능 역시 어둠 속의 불빛과 같으니 만약 쓰지 않는다면 재능을 낭비해 없애는 것과 다름없네. 불빛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비와 바람을 막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외부세계에 순응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네. 세상에 대한 명확한 식견을 가진 자만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지. 내가 보기에 자네는 세속에 순응하지 못하고, 여유는 있지만 근성이 없으며, 재기는 출중한데 견식이 짧은 사람이네. 아마도 현 세상에선 빛을 보기가 힘들 것 같네.” 손등의 예상대로, 혜강은 줄곧 조정에 등용되지 못했고, 결국 여안사건呂安事件(혜강의 친구인 안씨의 처와 그의 형의 간통이 발각된 사건)에 휘말려 옥에 갇힌 후 사마씨司馬氏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옛말 중에 이러한 글귀가 있다.
“사실이 아닌 말로 사람을 계속 비난하니 금덩이인들 녹지 않겠느냐. 깃털도 수가 많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흙먼지도 양이 많으면 차바퀴의 굴대를 부러뜨리니. 사실이 아닌 말이라 할지라도 너무 많으면 한 사람의 명성을 무너뜨릴 수 있음이다.”이와 관련해서 역사상의 성현들에 관한 몇 가지 우스운 소문을 살펴보자.
노자老子 이이李耳는 서역으로 향하기에 앞서 서역인의 복장을 했고, 우임금은 나체족 부락을 지날 때 스스로 옷을 벗었으며, 공자는 무인과 친분을 나눌 때 무예를 겨루고 사냥을 했다고 한다. 또한 산의散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뇌물도 바쳤고, 중옹仲雍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머리를 자르고 문신을 새겼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이런 일화들을 듣고, 성현들의 지혜도 바닥이 드러나는 때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현들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지혜가 얕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행동한 것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보호했기 때문에 이상을 실현할 수 있었다.
당나라 중종中宗 신룡神龍 원년에 무측천武則天이 중환으로 앓아눕자, 재상 장간지張柬之의 무리가 장역지張易之와 장창종張昌宗 형제를 제거한 뒤 무측천을 폐하기 위한 모의를 했다. 당시 대총관으로 있던 요숭姚崇 역시 주둔지에서 경성으로 이동하여 거사에 참여했다. 거사가 성공한 뒤 무측천은 황위를 박탈당했고 양궁陽宮으로 쫓겨났다. 한편 군공君公에 봉해진 장간지, 항언범恒彦范, 최현崔玄, 원서기袁恕己, 경휘敬暉 등은 서로 축하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양현梁縣 제후에 봉해진 요숭만은 오히려 슬퍼하며 대성통곡했다. 이것을 보고 놀란 장간지 무리가 물었다.“지금이 어찌 눈물을 흘릴 땐가? 자네는 처벌이 두렵지도 않은가?”
그러자 요숭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이 거사에 참여한 것은 당연한 일로 큰 공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래전부터 측천무후(무측천)를 섬겨왔는데 이제 결국 옛 주인을 배반한 셈이 되지 않았습니까! 신하된 자로서 한결같은 절개를 지킬 수 없으니 내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일로 처벌을 받는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사실 요숭이 대성통곡을 한 이유는 무측천의 조카인 무삼사武三思가 아직 조정에 남아 있으므로 언젠가 다시 정세가 뒤집히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훗날 무삼사와 위韋 황후가 결탁하여 권력을 장악하니, 장간지의 무리 대부분이 처형당했으나 오직 요숭만은 운 좋게 화를 면했다. 위와 비슷한 일화로, 동탁董卓이 처형된 후 모든 백성들이 기뻐하며 춤추고 노래할 때 오직 채옹蔡邕만은 이를 슬퍼하다가 결국 죽임을 당한 일을 들 수 있다. 두 가지 사건이 같아 보이는데도 상반된 결과를 낳은 이유는 무엇일까? 요숭은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군자의 도리를 이유로 들었으므로 장간지 무리의 반격을 피하는 동시에 훗날 숙청도 면할 수 있었다. 반면, 채옹의 눈물은 은혜를 입은 한 개인의 진심이었기 때문에 일벌백계의 희생양이 됐던 것이다.
기회를 읽고 상황에 순응하는 기술
시기에 맞게 행동하고 기회가 오면 움직여라: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어떻게 시기를 잘 포착하여 이용할 것인가를 매우 중시했고 모든 일이 그 시대의 추세를 위반할 수 없다고 믿었다. 이와 관련해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관중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성인은 추세에 따르고 시기를 포착할 수 있지만 시기를 거스를 수는 없고,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 세운 계책이라도 추세에 순응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聖人能輔時不能違時智者善謀不如合時).” 또한 범려도 이런 말을 남겼다. “철이 아직 이른데 식물의 성장을 강요할 수 없듯, 상황이 허락하지않을 때 억지로 성공을 이루려 하지 말라(時不至不可璟森, 事不容不可强成).”
그러므로 모든 전략과 책략은 반드시 당시의 추세 및 현지의 상황에 맞게 세워야 하고 때를 놓친 전략은 빨리 잊어야 한다.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과거에 좋았던 방법이 지금도 맞으리란 법은 없다. ‘각주구검刻舟求劍(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그 자리를 표시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고사)’의 주인공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사태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시각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융통성 없이 행동한 점이다. 자신의 실력만 믿고 함부로 뛰어들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시기와 기회를 잘 선택해야 한다. 실력을 갖추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진晋나라의 문공文公은 즉위한 후 전력을 다해 백성들을 훈련시켰고, 다음 해에 전쟁을 벌이고자 했다. 그러나 이때 자범子犯이 나서서 진문공을 설득했다. “진나라가 오랜 전쟁을 치르면서 백성들은 이제껏 근심 없이 즐겁게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무엇이 ‘의로움’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찌 또 그들을 전쟁으로 몰아가십니까!”
이 말을 들은 진문공은 외교활동에 주력하며 민생에 힘썼다. 그러자 백성들은 차츰 생계에 관심을 갖고 만족스럽게 살게 되었다.
얼마 후에 진문공이 군사를 일으키자 자범이 말했다.
“우리 백성들은 아직 ‘신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공께서도 그들에게 ‘신의’의 쓰임을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다.”그의 말을 듣고 진문공은 원原을 정벌할 때 3일 이내에 원의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군대를 물리겠다고 약속했다. 3일이 지나도 원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진문공은 약속대로 군대를 30리 밖으로 후퇴시킴으로써 국내외에 자신의 신의를 보였다.
진문공의 이러한 행동은 백성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 진나라의 상인들은 속임수를 쓰지 않는 등 상도를 지키며 장사를 했다. 그리고 상인을 시작으로 신용을 지키는 분위기가 점차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진문공이 자범에게 “이제는 만족하겠는가?”라고 묻자 자범은 이렇게 답했다.“백성들이 아직 귀천에 따른 예를 지키지 못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자 진문공은 병사들에 대한 대규모 검열을 통해 예의를 엄히 지킬 것을 강조했고, 법집행관들로 하여금 관료들을 단속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자 백성들이 의심 없이 명령에 복종하게 됐다. 그때서야 전쟁에 나선 진문공은 초나라와 송나라의 군대를 격파해 단 한 번의 전쟁으로 제후국들을 제압하여 패자覇者가 됐다.
시기가 무르익을 때가 되면 시간은 점점 촉박해진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눈여겨보다가 기회가 오면 바로 낚아채고 심지어 없는 기회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모든 일이 순조롭고 적은 노력으로도 큰 효과를 본다. 그러나 우매한 사람은 이를 깨닫지 못하니 코앞에 놓인 기회조차 놓치고 만다.
신의를 세우는 기술
신용을 쌓을 때도 노력이 필요하다: 사업에서 성공하거나 공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용이 중요하다. 신용은 처세의 기본이고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쌓아야 한다.
춘추시대에는 각 제후국 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해에 제 나라가 계속 패전을 면치 못하자 조급해진 제경공齊景公은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훌륭한 장수를 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안영의 추천으로 전양자를 수장에 임명했다. 원래 일개 하급관리에 불과했던 전양자는 수장에 임명된 뒤 경공에게 이렇게 요청했다.
“미천한 지위의 신이 하루아침에 수장으로 임명됐으니, 사병들이 제 말에 잘 따르지 않고 문무대관들이 저를 신임하지 못할까 심히 염려됩니다. 이는 또한 제게 주어진 권한이 미비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 높은 지위의 대신을 보내시어 신을 돕게 하시면 사기를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경공은 전양자의 청을 받아들여 즉시 자신이 총애하는 장가庄賈를 파견했다. 전양자와 장가는 다음 날 정오에 성문에서 만나 함께 출발하기로 약속했다. 이윽고 날이 밝자 전양자는 일찍 군대를 정비하여 성문 앞에서 장가를 기다렸다. 하지만 장가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거들먹거리면서 걸어왔고 이를 본 전양자는 매우 화를 내며 그를 추궁했다.
“장대인 대체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한편 경공의 총애를 받는 장가는 늘 방자하고 오만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어 하찮은 전양자 따위를 신경 쓸 리 없었다.“친구들이 송별회를 열어준다기에 가서 몇 잔 마셨네.”
“적군이 바로 앞에 당도하여 대왕께선 걱정이 태산이시고 사병들은 도처에서 죽고 있으며 백성들의 생명 또한 위급한 이때에, 대인께선 어찌 군법을 무시하고 주연을 여실 수 있습니까?”
전양자가 따져 물어도 장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를 나무랐다.
“너무 으스대지 말게나. 장군이 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나한테 훈계를 하는가!”
하지만 전양자는 전혀 기죽지 않고 큰소리로 외쳤다.
“군법을 위반한 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러자 주위의 병사들이 모두 답했다.
“참수해야 합니다!”
전양자는 오만방자했던 장가를 즉시 참수하여 그의 머리를 깃대에 꽂아 군법의 지엄함을 널리 알렸다. 전양자의 이러한 행동은 군대의 사기를 올렸고 장수들도 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게 됐다. 몇 달 후 전양자가 적군을 물리치고 돌아오니 경공이 직접 마중을 나왔고 그를 대사마에 봉했다.
PART 2 : 사람을 다루는 기술
정확한 예측을 하는 기술
자극을 주어 상대를 떠보고 진심을 파악하라: 상대에게 자극을 주면 사람의 감정과 신념에 동요가 일기 때문에 상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을 다루고 조정하는 일종의 심리자극법이다. 중국에는 이와 관련하여 “장군에게 청하기보다는 자극하는 것이 더 낫다.”라는 말도 있다. 자극의 수단은 언어가 될 수도 있고 행동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상대방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오대10국伍代十國 시대에 남당南唐의 조나라 왕 이덕성李德誠이 강서江西에 진주하고 있었다. 그때 그곳의 점쟁이 한 명이 사람 얼굴을 한 번만 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귀천을 분별해낼 수 있다고 떠들고 다녔다. 호기심이 발동한 조왕은 그 점쟁이를 불러서, 가희들과 부인에게 모두 같은 옷을 입히고 화장과 장신구까지 똑같게 한 다음 부인을 가려내라고 했다. 명을 받은 점쟁이가 몸을 구부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인의 머리 위에 노란색 구름이 있습니다.”
그러자 여러 가희들이 모두 부인의 머리 위를 쳐다봤고 부인은 혼자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점쟁이는 곧 여러 가희들이 주시한 그 사람이 바로 부인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특성에 맞게 일을 맡기는 기술
장점은 키우고 단점은 피하라: 지혜로운 자의 눈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사람의 재능을 어떻게 발굴하여 어디에 쓸 것인지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반면 이 점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 쓸 만한 인재를 찾을 수가 없다고 늘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전국시대 맹상군의 식객이었던 노중련魯仲蓮은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재빠른 원숭이도 나무 위가 아닌 물에서는 물고기나 자라만큼 활발하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뛰어난 준마라도 험준한 산을 넘는 데는 몸이 가벼운 여우나 너구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옛날 노나라 명장 조말曹沫이 세 자짜리 보검을 휘둘러 제환공齊桓公을 협박할 때는 쟁쟁한 장수들도 어찌하지 못했지만, 만약 그에게 칼을 버리라 하고 괭이와 호미를 주어 밭일을 시킨다면 농부 하나도 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장점을 버리고 단점만 본다면 요순과 같은 성인조차도 필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 때문에 사람을 믿지 못하거나 혹은 단점이 있다고 하여 그의 장점까지 다 포기함으로써 인재를 가치 있게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인심을 잃고 고립되어 결국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인재를 추천하면서 한 말은 사람의 특징에 맞게 배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첫째, 각종 복잡한 예식의 순서를 잘 알고 지휘하는 데에는 음붕陰朋이 저보다 나으니 그에게 맡기십시오. 둘째, 농업을 발전시키려면 저보다 영척寧戚이 자리를 잘 알고 밭을 개간하는 데 능하니 그를 이용하십시오. 셋째, 군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데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진 공자 성부城父가 저보다 낫습니다. 그를 대사마에 봉하십시오. 넷째,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하여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데에는 저보다 빈긍원賓肯元의 능력이 한 수 위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일은 그에게 맡기십시오. 다섯째, 권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충언을 하는 강직함에서 동곽아東郭牙가 신보다 나으니 그를 간신諫臣으로 삼으십시오. 주군께서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하신다면 이 다섯 명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만약 천하를 호령하시려면 이 관중을 믿으시면 됩니다.”
한편 제갈량은 일찍이 여러 인재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노자의 사상은 정신함양에는 좋지만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모자라고, 상앙은 법치에는 능하지만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교화하는 데는 미숙합니다. 또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유세에 매우 능하지만 그들에게 동맹을 체결하는 일을 맡기면 위험합니다. 그리고 백기白起는 방법에 능하지만 민중을 단결시키는 능력은 없고, 오자서伍子胥는 뛰어난 지략가이지만 자기 생명을 보호할 줄 모릅니다. 미생尾生은 신용을 잘 지키지만 임기응변은 부족하고, 진秦의 판관이었던 왕가王嘉는 명군을 만났기에 다행이지 우둔한 왕은 섬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음의 글은 진나라 말기의 은사인 황석공黃石公이 말한 용병술이다.
“지략을 갖춘 자들끼리는 서로 경쟁하며 공을 세우도록 하고, 용감한 자는 그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놔두며, 재물을 탐하는 자는 재물을 모으도록 하고, 아둔한 자는 용감히 희생할 수 있게 하라. 네 종류의 사람들을 그 특성에 맞게 사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용병술의 기본이다.”
평소에 사람을 쓰는 것도 이 용병술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별 재주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단체라도 그 단체의 장이 사람들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피하면서 능력에 맞게 잘 배치하면 정예부대 못지않은 훌륭한 조직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용병술을 갖췄느냐의 여부가 바로 걸출한 지도자를 가려내는 가장 중요한 잣대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에게도 단점은 있고 아무리 부족한 사람에게도 장점은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