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
김경수 지음 | 명진출판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
김경수 지음
명진출판 / 2013년 7월 / 250쪽 / 15,000원
PART 1 마흔 살 남자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사막에 갔다
마흔 살 남자의 가슴에 모래바람이 불었다
열망은 조용히 왔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어렸을 때는 내가 아주 특별하고 멋있는 인생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린 나이부터 짊어진 생활의 무게에 몇 번 짓눌리자 급속도로 쪼그라들었다. 결국 적지만 따박따박 월급을 받고, 정년 보장도 확실한 9급 공무원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성실한 직장인으로, 가장으로, 아빠로, 그렇게 보통 남자로 살아갔다.
2001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고 있었는데, 프로그램이 바뀌더니 화면 가득 누런 사막이 펼쳐졌다. 카메라가 지면을 향해 다가가자 멀리 점처럼 보이던 게 사람이었음이 서서히 드러났다. 마라토너들이었다. 그 순간 내 가슴에 한 줄기 바람이 불어 들었다. 그 후에도 사막의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겨울이 시작되자 가슴앓이로 발전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거기에 관심을 끊어야 할 이유를 열심히 생각했다. 억지로 짜내지 않아도 그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열망은 냉정한 이성의 힘으로는 이겨낼 수 없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정도는 저질러도 괜찮아. 나 김경수, 이 정도에 인생 망가질 만큼 허술한 인간 아니야!’ 마음을 바꾸니 결심은 금방이었다.
나 말이지, 한 번은 끝까지 가보고 싶어: 어느 날 저녁, 나는 아내에게 조심스레 마이너스 통장을 내밀었다. “갑자기 웬 마이너스 통장…? 아니, 대체 어디 쓰려고 이 큰돈을 대출받은 거예요?” “나, 내년에 사하라사막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싶어. 거기 필요한 경비 하려고 그런 거야.”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아내는 갑자기 꽥 소리쳤다. “사하라라고요? 당신 미쳤어요? 대체 거긴 왜 가려는 건데요?” “가고 싶으니까.” 나의 간결한 대답에 아내는 더욱 기가 막히는 모양이었다. “당신,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예요? 뜬금없이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고 5백만 원이나 되는 남의 돈을 갖다 써요? 당신, 가장이에요. 애들 생각은 안 해요? 무슨 헛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신 차려요!”
사실 이런 예민한 문제를 한 번에 담판 지으려는 것 자체가 지나친 욕심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지금 얘기한 것들, 나도 그간 수없이 생각하고 고민했어. 그런데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접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어. 이렇게 포기해버리면…, 앞으로 난, 점점 더 무의미하게 살게 될 것 같았어. 무난하게는 살겠지만 말이야. 몇십 년 만에 지금 겨우 눈을 뜰 기회를 발견했는데, 이번에도 그냥 보내버리면…. 난 이제 그렇게 살기 싫어, 여보.”
사막을 견딜 수 있는 체력 훈련을 시작하다
아내의 동의를 얻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문제가 또 있었다. 사막 마라톤을 완주할 만한 체력을 기르는 일이었다. 그간 내가 달려본 경기라고는 15킬로미터 단축 마라톤대회를 시작으로 고작 마라톤 풀코스 두세 번이 전부였다. 사하라사막 마라톤은 완주거리가 200킬로미터를 훨씬 넘었다. 거기에 15킬로그램이 넘는 식량과 장비를 짊어져야 했다. 그렇게 6박 7일 동안 계속 달려야 하므로 보통 체력 가지고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나는 운동 계획을 세우고 다음 날부터 곧장 연습에 들어갔다. 우선 집이 있는 쌍문동에서 직장인 강북구청이 있는 수유역까지 뛰어서 출근했다. 점심시간엔 팔굽혀펴기나 아령으로 상체 운동을 했다. 또 계단이 있으면 뛰어서 오르내리고, 매달릴 만한 구조물이 보이면 매달려서 턱걸이를 했다. 퇴근할 때도 당연히 뛰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 후 몽유병 환자처럼 집을 나와 중랑천 변을 달렸다.
주말에는 북한산을 주로 달렸다. 산악 구보에 완전히 적응한 후부터는 훈련 강도를 더 높였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달려야 하기에 어깨를 강화하는 훈련이 필요했다. 중랑천 변을 달릴 때엔 배낭 속에 6킬로그램가량 책을 넣고 달렸다. 출퇴근 때는 1킬로그램짜리 모래주머니를 양 발목에 차고 뛰었다. 한편 한두 달 정도 지나면 아내의 완강한 태도가 누그러질 거라는 나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어느덧 참가자 신청 마감일도 가까워졌다. 책상머리에 앉아 미리 작성해놓은 신청서를 바라보며 며칠을 끙끙대다 두 번째 폭탄의 안전핀을 뽑아 당겼다. 결국 아내의 동의 없이 신청서를 내기로 한 것이다.
미친놈이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아내의 허락을 얻기 위해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사하라로 출발하기까지 이제 2주도 안 남았어. 그동안 당신 동의도 없이 내 멋대로 준비해온 거, 미안해. (중략) 여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해보는 이 엉뚱한 짓을 끝까지 할 수 있도록 당신이 도와주면 좋겠어. 당신에겐 무리한 부탁일지 모르겠지만, 뜻을 세우고 목표를 이룬 자랑스러운 아빠, 남편이 되고 싶어. 그래서 난 당신의 지지와 격려가 정말 필요해. 부탁해, 여보.’ 다음 날 이 편지를 식탁 위에 두고 출근했다. 편지를 읽고 아내와 극적인 화해까진 아니더라도 아내의 표정에 약간의 온기라도 보이길 기대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아내의 찬바람은 가실 기미가 안 보였다.
그 후 어느 날 저녁 나는 필수 장비들을 배낭에 꾸역꾸역 쑤셔 넣고, 모두 잠든 한밤중에 탈지면을 손톱만 한 크기로 자르고 있었는데, 그만 그 모습을 아내한테 들키고 말았다. “뭐 하는 거예요?” “여, 여보. 탈지면 자르고 있었어. 물집 치료할 때 필요하거든.” “저것도 물집 치료하는 데 쓰는 거예요?” 아내는 나일론 실을 감은 실패와 바늘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바늘에 실을 꿰어서 물집을 터뜨리면….” 그러나 아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휙하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나왔다.
“나일론은 안 돼요. 이거 써요.” 아내의 손엔 면실이 감긴 실패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사막은 일교차도 크고 바람도 많이 분대요….”라고 말하며 내게 쇼핑백을 던져주고는 다시 휭하니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쇼핑백 안에는 방풍재킷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아내가 사막에 가는 것을 허락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저절로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나는 안방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 정말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PART 2 사막을 내 발로 뛰어 횡단한다는 것
참아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첫날부터 배낭 무게에 어깨뼈가 빠지는 것 같고: 2003년 4월 6일 드디어 30여 국가에서 온 671명의 참가자가 출발선 앞에 섰다. 잠시 후 출발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와아~~~!” 모래밭을 울리는 함성과 함께 선수들이 일제히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처음엔 자갈길을 한참 동안 달려야 했는데, 고르지 못한 노면과 배낭 무게 때문에 자꾸 중심을 잃었고 몸이 휘청거렸다.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여봤지만 1킬로미터도 채 가지 못하고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미 와버렸는걸. 이렇게 사막을 실제 달리고 보니 완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큰 욕심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체면이 있지, 첫날부터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오늘 하루, 아니 첫 번째 CP까지라도 가자고 마음먹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출발했지만 얼마 못 가, 한 달 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다쳤던 오른쪽 오금이 심하게 땅기기 시작했다. 걱정했던 일이 실제로 발생한 것이다. 손으로 그 부위를 주물러가며 오른쪽 다리를 절면서 걷다 뛰다를 반복했고, 마침내 CP1에 도착하자마자 진행요원이 주는 1.5리터짜리 물통을 받아 들고 곧바로 주저앉아버렸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진행요원이 “Are you OK?”라고 물었지만 대답할 힘도 없어 고개만 끄덕거렸다. 나는 물통째로 입에 대고 정신없이 물을 들이켰다.
아, 사막에 대한 내 모든 생각은 환상이었고 사치였구나: 그래도 물을 마시며 잠시 쉬고 나니 생각이라는 걸 할 여유가 생겼다. 조금 전까지는 CP1까지만 가서 포기하자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사나이 체면이 있지, 죽어도 오늘의 레이스는 마치고 죽자고 결심했다. CP1에서 CP2까지는 10킬로미터, CP2까지 거의 기다시피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CP2에서 캠프까지 4킬로미터, 가까스로 첫 번째 스테이지 캠프에 도착했다. 첫날의 레이스를 완주한 기쁨이나 성취감 같은 건 떠오르지도 않았다. 오직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밖에 들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물 세 통을 받아들고 81번 텐트를 찾아 들어갔고,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선수들 소리를 듣고 나는 부스스 잠에서 깼다. 내가 굉장히 늦게 온 줄 알았는데 나보다 늦게 온 선수들이 많았다. 첫날 탈락하거나 포기한 선수도 16명이나 되었다. 상황표에서 내 기록을 보니 평균 시속 5.98킬로미터, 레이스 시간 4:10:42로 462위를 기록했다. 내일의 레이스는? 솔직히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사막은 지난 1년간 내가 계획하고 준비한 모든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웠고 허황된 것이었는지를 하루 만에 확인시켜주었다.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빅듄의 실체를 마주하다
다음 날 나는 두 번째 경기에 도전하기 위해 수많은 선수와 함께 출발선에 섰다. 조금 바보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선수 중 아무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다시 배낭을 멨다. 사막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지형이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벌판 중간중간 듄(모래산)이 파도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자갈밭과 광야, 돌산, 마른 호수 등이 있다.
그날 햇빛을 받아 거대한 황금처럼 빛나는 듄을 처음 대면했을 때, 내가 사막에 와 있다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듄을 빨리 오르는 비결은 중간에 멈추지 않는 것이다. 곤충들이 벽을 타고 기어오르듯 단숨에 파바박 하고 뛰어 올라가야 한다. 잠깐이라도 멈췄다가는 올라온 거리만큼 뒤로 미끄러져 내리거나 자칫 중심을 잃고 뒤로 굴러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요령을 터득하지 못한 나는 고작 100미터 높이의 듄에 오르는 데도 기어올랐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듄의 바다를 건너 CP2를 지나 이제 마지막 CP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 거대한 모래 장벽이 나타났다.
높이가 족히 700미터는 되는 빅듄이었다. 입에서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듄에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이것만 넘으면 마지막 CP가 있다. 그러면 오늘 경기를 완주할 수 있다….’ 지금 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 건 ‘저기까지만’이라는 주문이었다. ‘저기까지만 가자. 저곳만 넘으면 CP가 있다.’ 그렇게 수많은 ‘저기까지만’을 되뇌며 나를 독려해왔다. 이번에도 ‘저기까지만’이란 주문을 외며 빅듄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빅듄에 압도당해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걸음은 더욱 느려지고 체력도 소진되어갔다. 결국 나는 듄의 절반도 못 가서 완전히 지쳐버렸다. 잠시 쉬었다 가기 위해 거대한 빅듄의 중턱에 주저앉았다. 나는 일사병을 막기 위해 재빨리 서바이벌 블랑킷을 꺼내서 뒤집어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가 아까 지나온 건너편 듄의 정상에 사람의 형체가 불쑥 나타났다. 그는 듄을 뛰어 내려와 모래밭을 달려 잠시 후 내가 앉아 있는 빅듄의 아래쪽에 도착했다. 사슴처럼 가볍게 듄을 오르는 그의 동작을 보며 감탄하는 사이에 그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독일 선수인 그는 나를 발견하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Are you OK?”라고 물었다. 내가 답이 없으니 걱정스러운 듯 계속 뭐라고 말하는데 너무 빨라서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distress’라는 단어가 귀에 탁 걸렸다. ‘distress는 조난이란 뜻인데…. 그럼 내가 조난당했다는 거야?’ 나는 힘들어서 잠시 쉰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눈엔 내가 조난 상태로 보였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그의 말을 유심히 들어보았다. 그의 말은 이런 빅듄의 중간에서 지체하다 조난이라도 당하면 구조대가 와도 구조를 할 수 없으니, 올라가든 내려가든 빨리 결정을 하라는 거였다. 그제야 나는 조금 전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당장 벌떡 일어났다. 한순간이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 듄의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숨이 턱에 차올라 죽을 것처럼 괴로웠지만 잠시도 쉬지 않았다. 마침내 듄의 정상에 올라섰을 때,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 바람 한 줄기로 그간의 모든 고통과 시름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조난의 위기를 극복하며 롱데이를 통과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다. 나도 어쨌거나 사막에 서서히 적응해갔다. 아니, 적응했다기보단 거기서 살아남을 방법을 하나하나 찾아갔다는 게 맞을 것이다. 사막 마라톤의 하이라이트인 롱데이는 무박 2일 동안 밤을 새워 달리는 것이다. 82킬로미터라는 장거리를, 칠흑같이 어두운 시간에도 달려야 한다는 사실에 선수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나도 그 점이 제일 걱정됐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선수들이 괴성을 지르며 우르르 몰려나갔다. 1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CP1까지는 거대한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이어졌다. 그리고 거북 등짝같이 갈라진 마른 호수를 지나니 21킬로미터 지점에 CP2가 나왔다. CP3는 32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는데, CP2에서 CP3까지는 바위산과 나무들이 우거진 계곡이 이어졌다. 그런데 4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CP4 바로 다음 구간은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광야와 뾰족한 자갈밭이 펼쳐졌다. 그래도 CP4까지는 무사히 달려왔다.
그런데 CP5까지 반도 못 온 상황에서 해가 지기 시작했다. 어둠에 잠긴 사막을 보고 있으니 공포감에 압도당하는 것 같았다. 한번 공포에 휩싸이면 이성을 잃기 쉽다. 그러면 눈앞에 뻔히 있는 푯대도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다. 나는 주로를 가리키는 희미한 야광 표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앞선 선수의 흔적을 따라 정신없이 뛰고 걷기를 반복했다. 초긴장 상태에서 쉼 없이 달려온 탓인지 CP5에 도착하자마자 곧 쓰러질 것처럼 체력이 급격히 저하됐다. 잠시 쉬는 것으론 회복될 것 같지 않았다. 여기서 저녁을 지어 먹고 체력을 충분히 회복한 뒤 출발하기로 했다.
그리고 4월 10일 새벽 1시경에 68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CP6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니 오른쪽 다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이 다리로 어떻게 CP6까지 왔는지 내가 보기에도 신기할 정도였다. 만약 그때 CP에 있는 의료진에게 보였다면 경기 중단을 선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고질병인 ‘여기까지 왔는데’가 다시 발동했다. 나는 근육이완제와 비행기에서 얻은 진통제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약을 먹은 후 잠시 눈을 붙이고 가려고 침낭을 바닥에 깔고 누웠다. CP6 곳곳에 야간 레이스에 지친 선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다들 지쳐서 쓰러져 있기도 했지만, 아예 CP에서 비박을 하고 새벽에 떠날 요량으로 침낭에서 자는 선수들도 있었다. 나도 처음엔 여기서 비박을 하고 새벽에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잠들었다가 새벽에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힘들더라도 캠프까지 곧장 가기로 했다.
그런데 CP6를 나서 새벽 3시가 지나면서부터 약 기운에 시야가 흐려지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들이 대형버스로 보이기도 하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처럼 보이기도 했다. 군대에서 행군할 때 졸면서 걸었던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의식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약 기운이 사라지고 제정신이 들면서 내가 방향을 잃고 주로에서 벗어났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정신이 번쩍 나면서 공포가 밀려들었다. ‘조난’이란 단어가 퍼뜩 떠올랐다. 머리칼이 쭈뼛 서며 식은땀이 흘렀다. 서둘러 보조가방에서 호각을 꺼내 힘껏 불기 시작했다. “삑~! 삑~!” 호각 소리가 어두운 사막에 퍼져 나갔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사람은 버나드라는 이름의 프랑스 선수였다. 그도 길을 잃고 헤매다가 내 호각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고 했다. 생판 모르던 사이지만 그런 상황에서 만나니 너무나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