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웃라이어들
김영상 지음 | 북오션
한국의 아웃라이어들
김영상 지음
북오션 / 2013년 12월 / 336쪽 / 15,000원
Part 1 자발적 아웃라이어들 - 남의 눈 아랑곳없이 자발적으로 아웃라이어가 되다
자유로운 영혼, 당당한 고졸_ 크리에이터로 돌아온 남궁연
직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남궁연: 재즈 뮤지션, 방송인, 공연 기획자, 대학 강사 등 숱한 타이틀의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 대한민국 방송가에 거의 사상 최초로 빡빡 민 머리를 들이댄 기인(奇人). 독학으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드럼 실력자가 된 드러머.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달변가라는 호칭과 함께 성 담론을 공개적으로 내밀어 화제가 된 파격적 언어 마술사. 학력을 숨기기 바쁜 세상에서 당당히 고졸임을 커밍아웃해 화제가 된 학력 파괴의 프런티어. 고졸 출신의 첫 대학 강사. 가방끈이 짧음에도 해외 석학과 최첨단 지식을 막힘없이 논하는 모습을 보여 준 신지식인. 게다가 학생 때는 나이트클럽에 가는 등 일탈의 삶을 살다가 아버지로부터 정신 차리라고 고발당해 소년원까지 갈 뻔했던 문제아. 직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인물. 바로 남궁연이다.
그는 지금 ‘크리에이터(creator)’로 살고 있다고 했다. 크리에이터? 그게 뭘까. “전 마흔 살까지는 주로 방송과 음악을 했습니다. 지금은 크리에이터로 일하고 있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는 다릅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광고나 디자인을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크리에이터는 ‘창의력으로 성취를 이뤄 내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공상과 상상은 차이가 있어요. 공상은 생각만 하다 끝나는 것이고, 상상은 공상이 구체화돼 현실로 될 수 있는 것이죠. 크리에이터는 허무맹랑하다고 지탄받는 공상을 상상으로 발전시키고, 결국에는 현실화시켜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제가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도 크리에이터가 뭘 하는지 어렵다고 하자, 그는 잠시 뜸을 들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전 봉이 김선달입니다. 누군가가 궁금해하는 것을 나에게 물어보면 해답을 찾아 주는 일을 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공연 기획 같은 것만은 아닙니다. 장사 안되는 유통업체의 매장 마케팅일 수도 있고, 유권자 표심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는 정당의 허점을 짚어 주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일 수도 있고, 휴대폰의 계층별 구매 전략일 수도 있죠. 요점은 클라이언트가 답을 못 찾는 일을 (의뢰가 들어오면) 제가 상상력을 발휘해 구해 주는 것이죠.”
내 운명을 송두리째 바꾼 ‘체로금풍(體露金風)’: 남궁연 크리에이터는 고졸이다. 가난해서, 집안 환경이 좋지 않아서, 공부가 싫어서 고졸이 된 것이 아니다. 고졸은 그가 선택한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졸임을 굳이 밝히지 않고 혹은 숨기기도 하지만, 그는 달랐다. 학력이 인생 서열을 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일찌감치 주창해 왔다.
남궁연을 만나는 날은 공교롭게도 지난 11월 7일, 수능 날이었다. 점수 잘 나왔다고 환호하는 이들이 있고, 한쪽에서는 우울한 이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학부모와 학생들의 희비가 교차하는 날. “결과가 안 좋은 학생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절대 낙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키가 아주 작은데 단 한 번의 ‘농구’로 시험을 치러 모든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고 우열을 규정하는 그런 느낌에 좌절감도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재수를 하든, 취업을 하든,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인생길을 걷든 ‘배움과 성공’은 ‘대학’이라는 장소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생기고 열중하면 자동적으로 찾아온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자신이 걸어온 길이 뒤돌아보면 대학과 전혀 관계없었다는 자신감에 이같이 적확한 말을 던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라톤 경기를 할 때, 4분의 1 정도인 10km 지점에서 누군가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를 우승 후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능 시험의 결과 하나로 모든 가능성과 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뒤처진 그룹도 얼마든지 우승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사회가 열린 눈으로 바라봐 줘야 합니다. 모든 물건이 나름대로 쓸모와 기능과 형태를 가지고 각각의 최고 만족을 주면 되듯이, 사람도 세상의 여러 부문에서 각기 다른 꿈, 역할, 능력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데 그 가능성을 ‘대학’ 하나로 잘라 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남궁연이 신학대 2년째였을 때다. 은사 교수 중 한 분이 계셨는데, 독특했다. 선불교로 기독교를 해석하는 신선한 시각으로 유명했다. 교수님이 어느 날 체로금풍(體露金風)에 대해 얘기했다. ‘체로’는 ‘본체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뜻이고, ‘금풍’은 ‘서쪽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뜻한다. 직역하자면 ‘가을바람에 나무의 본체가 완연히 드러난다’라는 것이다.
어원은 이렇다. 가을날 스님 두 분이 단풍놀이를 하러 산에 올라갔다. 그런데 마침 단풍이 다 져 버렸다. 그 광경을 보고 동자승이 울상을 지었다. 스님이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동자승은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기껏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단풍이 모두 져 버렸으니 헛수고를 한 것이 아니냐’고 했다. 스님은 이에 ‘너의 눈에는 단풍이 지고 드러난 저기 나뭇가지의 선과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느냐. 그리고 그 나뭇가지로 지나가는 바람의 아름다움은 어떠한가. 너는 네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 함으로써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꾸짖었다는 얘기다.
교수님의 이 이야기를 듣고 남궁연은 무릎을 탁 쳤다고 한다. “제가 처음 대학에 떨어져서 재수 생활을 할 때에 느꼈던 상실감이나 두려움은 되돌아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대학은 떨어졌지만 나에게는 재수를 할 기회가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친구들도 그대로 남아 있었죠. 그런데 내가 보고자 했던 ‘대학’, 그 하나가 사라지자 주변의 아무것도 안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얘기들을 묶어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들만을 보면서 내 인생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보고서를 본 교수님의 말이 이랬다. “남궁연, 너는 비유를 써서 냈는데, 그렇게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은 네가 깨달았다는 증거다. 알고 있는 자만이 비유할 수 있다. 너는 다 깨달았다.” 그런 얘기를 들은 후 다음 주에 수업에 출석했는데, 교수님은 ‘남궁연, 자네는 지난주에 이미 깨달았는데, 학교를 왜 왔나’라고 묻더란다.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 말씀이 진리로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네, 저는 깨달았으니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라며 학교를 나온 것이죠.”
정말 그랬다. 그는 다시는 학교를 가지 않았다.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남궁연이 대학 간판을 걷어찬 것이 바로 이 일화 속에 녹아 있다. 인생 방향을 정한 그가 독학으로 드럼을 마스터할 수 있었던 것도, 학력 껍데기를 의식하지 않고 음악 인생에 정진할 수 있었던 것도, 다소 종교적 철학을 풍기며 달변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젊은 날의 깨달음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학 간판이 중요하지 않다고 일찍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공부에 대한 미련을 접은 것은 아니다. 그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공부한다. 남궁연은 남들과 거꾸로인 인생을 산다. 그는 남들이 잘 때 깨어 있으며, 남들이 깨어 있을 때 잠을 잔다. 밤을 새워 일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는 사람에게는 ‘절대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이 창의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정규 교육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을 해야 하고, 또 나아가 절대적인 자기 시간이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는 있어야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정규 교육을 많이 받아도 그것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면 창의와 상상이 생길 수 없는 것이죠.”
남궁연은 말한다. “살아갈 때 길이 막히면 질문하세요. 자신의 삶의 접점에 갈등이 있을 때 물어보면 됩니다. ‘나는 공부에 원래 관심이 없으니까’, ‘나는 고졸이니까’, ‘세상은 원래 그러니까’ 등의 마음으로 포기하지 말고, 질문을 통해 열정과 한계 사이의 접점을 만드세요.” 당당한 고졸, 당당한 지식인, 남궁연이 살아가는 법의 동력은 바로 ‘질문’인 셈이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질문하세요. 제 트위터(@Namgoonyon)로 얼마든지 연락하세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Part 2 왜 학력 파괴 시대여야 하는가
대한민국에서 고졸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졸, 언제까지 주홍글씨여야 하나?: 고졸(高卒). 이 단어처럼 우리 사회에서 계층 간의 장벽을 극명하게 노출하는 표현이 또 있을까.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대학을 나온 사람과 나오지 않은 사람을 구분한다. 대졸자(大卒者) 세상이다 보니 고졸은 뭔가 미흡하고 상대적으로 열등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대학만능주의가 낳은 뿌리 깊고 왜곡된 시각이다. 마라톤으로 따지면, 인생 42.195킬로미터의 반환점을 이제 막 돌았을 뿐인데 잠시 앞서가는 사람을 위너(winner)로 대접하고 뒤따라가는 이는 루저(loser)로 규정한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 고등학교 졸업생은 63만 2600여 명. 이 중 5만 3000명만이 곧바로 취업 시장에 진출했다. 고등학교 졸업생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했다는 의미다. 이들 5만여 명의 고졸 취업자에게 ‘성공’이라는 단어는 낯설고 요원하다. 대졸 취업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오를 수 있는 사다리가 너무 짧아 보인다.
한 설문이 이를 대변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국내 20~30대 남녀 직장인 314명에게 ‘대한민국에서 성공하기 위한 요건’을 물었더니 가장 많이 꼽힌 것이 ‘학벌과 출신 학교(26.1%)’였다. ‘인맥과 대인 관계 능력(24.2%)’은 두 번째였다. 인맥도 따지고 보면 학벌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젊은이의 반 정도는 출세의 지름길을 ‘학력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인맥’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학력과 인맥이 시원찮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젊은 세대의 인식이 이 정도니, 이들보다 보수적인 40대 이상의 학력ㆍ인맥 우선주의는 더 팽배할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수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적성과 상관없이 일단은 좋은 대학 졸업장 따기 경쟁에 자녀들을 내몰고, 자녀들 역시 마지못해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의 학력 파괴 문화는 점점 요원해지고, 고졸의 좌절감은 더 깊어만 간다.
창조형 리더 길 터주는 신고졸시대
영역 간 크로스 오버 문화 정착을 기대하며: “한 번 부품을 만지면 영원히 부품을 만져야 하는 게 싫습니다. 창조적 열정으로 제가 부품 1인자가 되면, 그 열정으로 회사 경영리더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길은 막혀 있는 게 현실이죠.” 고졸 취업자들을 현장에서 만나면 처음에는 ‘최고의 장인이 되겠다’는 고정 멘트를 하는데, 조금 친해져 가슴을 열고 대화하면 꼭 이 같은 하소연이 뒤따른다.
기능직으로 입사했다고 하더라도 열정을 인정받으면 새로운 기회의 문을 두드림으로써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로 변신할 수 있는 기업문화, 고졸 취업자들은 이 같은 영역 간 ‘크로스 오버(cross over)’ 문화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상론일 수 있다. 기업이 고졸자 중 경영 능력이 있는 이를 발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구축하기에 버거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기술자 중에서 탁월한 사람, 뒤늦게 자신에게 경영리더 마인드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열정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서서히 ‘창조 공간’에 발을 들이게끔 해 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창조형 인간이 학력과 무관하다는 것을 입증할 기회를 그들에게 제공하고, 이를 시스템 개선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 어린 기술직이 경영 능력을 키우기 위해 더 공부하며 퇴사하지 않고 회사에서 그 꿈을 펼치고 싶다면 그 기회를 넓혀 주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대한민국의 향후 50년을 먹여 살릴 탁월한 ‘마켓 크리에이터(market creator, 시장 창조자)’가 지금 눈여겨보지 않고 있는 기능직이나 엔지니어에서 나올는지 말이다.
Part 3 역경을 극복한 아웃라이어들 - 거대한 장벽을 열정으로 무너뜨리다
세탁기와 평생 살았다_ LG전자 54년 사상 첫 고졸 사장 조성진
고졸 출신 최초로 LG그룹 사장 등극: 2012년 연말 LG전자 인사에서 히어로 한 명이 탄생했다. 바로 고졸로 입사한 후 36년 만에 사장에 오른 조성진 HA사업본부장(사장)이다. 그는 LG전자 54년 역사상 첫 번째 ‘고졸 사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LG전자 주요 사업 중 하나인 가전을 책임지는 자리인 만큼 사장 중에서도 핵심적인 위치다. 고졸 사장은 LG그룹 전체에서도 최초였다는 점에서 재계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고졸 출신 첫 부사장으로 등재된 지 6년 만에 사장까지 오른 그는 ‘세탁기맨’으로 불린다. 1976년 고졸로 입사해서 36년간 오로지 세탁기만 만들었고, LG 세탁기를 세계 1등으로 굳혀 놓은 공로를 인정받아 사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흔치 않은 성공 신화다.
몇 년 전 세탁기 신제품 발표회 때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조 부사장이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것은 잘 알지 못합니다. 전 세탁기밖에 몰라요.” 당시에는 순진하기도 하고 순수하게 보이기도 해 조금은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세탁기에만 매달린 그의 일관된 인생이 몇 년 후 사장까지 오른 비결이었던 셈이다. 그의 고졸 성공기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입사 후 흔한 야간대학도 다니지 않고, 오로지 세탁기와 씨름했다는 점 때문이다. 나중에 부산대 경영대학원을 나와 만학의 꿈을 이뤘지만, 세탁기 1인자라는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퇴근해서도 잠자기 전까지 종일 세탁기만 생각했다. 확신, 자신감, 열정과 사명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학력이 아닌 실력으로 정면 승부해 성공했다는 점에서 대기업 고졸 성공 신화의 종결자이다.
36년간 세탁기 개발에 열정 바친 외곬 인생: 조성진 사장은 명실상부한 LG 세탁기 1등 신화의 주역이다. 그의 인생 스토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36년 이상을 세탁기만 바라보았다. 일본 기술에 의존하던 전자동 세탁기를 100퍼센트 국산화한 데 이어, 1995년부터 유럽의 선진업체만 만들던 드럼세탁기에 매달려 1999년에 세계 최초로 모터 직접 구동 방식(DD, Direct Drive) 시스템을 개발해 낸 사람이다. 2005년엔 세탁기 사업부장을 맡아 세계에서 처음으로 세탁기 내부 양쪽에서 스팀을 내보내는 ‘트롬’세탁기를 만들었으며, 세탁기와 관련해 국내외 특허 출원한 건수가 4000건이 넘는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세탁기 인생’을 달려왔을까. 조 사장은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 입사하면서 LG전자와 첫 인연을 맺었다. 국내 세탁기 보급률이 1퍼센트도 안 됐고 기술력이 없어 모두가 세탁기사업부를 기피하던 때였다. 그는 용산공고를 졸업한 뒤 산학우수장학생으로 입사, 선뜻 세탁기설계실을 자원했다. 당시 함께 입사한 대졸사원은 대부분 세탁기사업부를 외면했다. 장래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다들 외면한 세탁기사업부를 제 발로 선택하자 주위에서 ‘이상한 녀석’ 취급을 했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18개월 동안 세탁기에 관한 집중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세탁기에서 자신의 꿈을 무궁히 확장할 단초를 발견했다. 세탁기 개발 초창기 10년 동안은 일본 기술을 도입해 제품을 출시하는 데 열중했다. 말이 기술 도입이지, 일본의 설계를 그대로 베껴 내는 게 주업무였다. 당시 한국에 독자적 기술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카피’였다. 세탁기 설계 쪽에 배정되면 ‘비전이 없다’고 그만두던 동료들이 많았던 것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