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일만 할 것인가?
백만기 지음 | 이담북스
언제까지 일만 할 것인가?
백만기 지음
이담북스 / 2013년 11월 / 244쪽 / 13,000원
1강 언제까지 일만 할 것인가?
마흔, 은퇴하기로 결심하다
우리나라 경제가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있던 1977년 겨울, 대학을 졸업한 나는 금융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샐러리맨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도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밀려드는 업무 외에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는 없었고, 그저 직장과 가정을 쳇바퀴 돌듯 오갔다. 그러다 어느새 마흔이 되었다. 열정과 희망으로 들끓던 청춘은 간데없고 벌써 마흔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일순간 알 수 없는 허무가 밀려들었다.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해야 할까? 아니,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렇게 한동안 깊은 고민을 하다가 나는 50세에 은퇴를 하기로 결심했다.
한 번뿐인 삶을 일만 하며 보낼 수는 없다. 50세까지만 직장생활을 하고 그 이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사실 당시에는 은퇴한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 놓은 게 없었다. 다만 50세를 나만의 정년으로 정했다. 일단 은퇴 시기는 정했으니 은퇴 후 할 일에 대한 윤곽은 남은 10년간 은퇴 준비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라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우선 재정적 자립을 위해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불필요한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열심히 저축을 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50세가 되었다. 10년을 계획해 온 은퇴였지만 실천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직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나 자신도 은퇴 준비가 미흡했다. 그렇게 또 3년이 지나갔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사표를 제출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검소한 생활을 하면 밥은 먹고 살 것 같았다.
혹자들은 은퇴자금으로 7억~10억 원은 필요하다고 하여 공연히 사람 주눅 들게 하는데, 그건 금융회사에서 자신들의 금융상품을 팔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일 뿐이다. 은퇴 이후 부부의 생활비를 200만 원으로 예상하면 목돈이 그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지만 목돈을 마련하기보다는 생활비에 상당하는 현금 흐름을 창출하면 된다. 은퇴 시까지 경제활동을 한 사람이라면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으로 어느 정도의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직장생활 중에 차근차근 준비해 놓은 연금들이 은퇴 후 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은퇴 생활에서 이런 안정적인 자금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찾는 것이다.
나는 국립암센터에서 6개월간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를 회상해 보면,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도, 더 크게 성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에 떠밀려 다음에 해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소소한 꿈과 바람들이었다. 어쩌면 은퇴는 일에서 손을 놓는 게 아니고 미뤄두었던 도전을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은퇴란 직업을 바꾸는 일
뒤늦게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남자가 있었다. 의대 입학을 준비하던 사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의대에 진학한다 해도 6년이란 시간이 지나야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였던 것이다. 하루는 그 남자가 한 친구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6년 후면 난 마흔네 살이 돼! 너무 늦지 않을까?” “늦는다고? 의대를 다니지 않는다 해도 6년이 지나면 자넨 결국 마흔네 살이 될 텐데?” 남자는 친구의 대답을 듣는 순간 망설임 없이 학교로 달려가 입학 서류를 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선 은퇴 이후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은퇴한 많은 사람들이 생산적인 일을 하기보단 그저 막연히 시간만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은퇴를 했다고 해도 앞으로 살날이 수십 년인데 그냥 허송세월을 한다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은퇴는 자기가 원하던 일로 직업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은퇴 대신 인생 재창출이란 용어를 쓰자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오래전 지인의 소개로 정신과 의사인 L 박사를 만날 기회가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독서에 관한 화제에 이르렀는데 그분은 1주일에 5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고 했다. 나보다 연배가 훨씬 높으신데도 불구하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이었다. 그분은 의대 교수 정년퇴임을 앞두고 총장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총장님, 저는 정년퇴임식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퇴임 축하란 말도 어쩐지 듣기 거북하고, 무엇보다 후배와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물러나야 하는 제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참에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제 대학 사회에서라도 정년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해 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65세의 정년퇴직은 일반 직장보다 길기는 하지만 교수에 따라 그 실력을 그대로 사장하기가 아까운 경우도 있습니다. 시원찮은 교수라면 그 전에라도 나가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언뜻 들으면 자신감을 넘어서 거만하게까지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직 충분히 활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남아 있는 나이에 현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교수의 아쉬움이 더 진하게 와 닿는다. 그분은 이제 곧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여전히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고작 나이 50에 다 늙었다는 듯이 삶의 희망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요즘 사람들이 부쩍 정신력이 약해진 건 아닌가 싶다. 젊어서 몸 관리를 잘하면 나중에 나이 들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처럼 모든 것에는 꾸준한 준비가 필요하다. 평소 직장생활을 하면서 업무수행에 필요한 지식뿐만 아니라 앞으로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 꾸준히 준비한다면 퇴직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2강 나를 발견하는 시간
외로운 존재, 그 이름은 아버지
영국문화원이 비영어권 102개국의 국민 4만 명을 대상으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를 조사한 결과, 1위가 어머니였다. 그 뒤를 이어 열정과 미소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으며, 사랑은 4위, 평화는 11위였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몇 위였을까?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70위 안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이렇듯 아버지라는 존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머니만큼 인정받지 못한다. 아버지는 어머니 못지않게 자식에게 애정을 갖고 헌신하지만 부정과 극복의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가족의 철저한 무시 속에서 외톨이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버지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언제나 먼저 해야 할 일의 뒤로 미뤄 놓기 마련이다. OECD 국가 중 가장 일을 많이 한다고 알려진 우리나라의 근로자들은 거의 하루 종일 일에 매여 지낸다. 게다가 언제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지 몰라 항상 가슴을 졸이며 살아야 한다. 사회생활을 오랫동안 해서 친구가 많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못하다. 일 때문에 이해관계로 맺어진 관계는 진정한 친구로 남기 어려운 법이다. 그동안 일만 하느라 친구들과도 멀어져 고민을 솔직히 터놓고 의논할 사람도 마땅찮다.
아이들에게 비친 아버지의 모습도 문제다. 사춘기 무렵의 자녀에게 비치는 아버지의 모습은 대개 부정적인 이미지이다. 청소년에게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1위가 큰소리치는 사람, 2위가 술 마시는 사람, 그 뒤로 TV 보는 사람, 잠자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집안의 가장으로 위상이 높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아버지라고 왜 고민이 없겠는가? 과도한 업무에서부터 실업에 대한 공포,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 자녀와의 대화 단절,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 ‘나는 누구일까?’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지만 다만 가장이라는 책임감 하나로 묵묵히 버텨 내야 한다. 아버지들은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거치며 가족을 부양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이제는 남자들에게 가정에 돌아와서도 흠잡을 데 없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실상 그 모든 것을 해내기는 쉽지 않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남자들은 자신의 고민을 쉽게 꺼내지 못하고 쌓아만 놓다가 결국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나이 들어 직장에서 내몰리고, 가정에서도 자리를 잃은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이 아쉬운 요즘이다.
남자들, 탈출을 모의하다
오래전부터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갖는 독서모임이 있다. 한번은 독서모임에서 『길들이는 여자들 길들여진 남자들』이라는 책을 선택해 독서토론을 한 적이 있다. 제목을 보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시리즈가 아닐까 싶겠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독일에서 처음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엄청난 항의가 쏟아졌다고 한다. ‘여자는 남자를 부리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 일을 하는 노예’라는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반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는 달리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게 착취당한다고 주장한다. 여자는 남자로 하여금 여자를 위하여 일하고, 여자를 위해 사고하며, 여자를 책임지도록 만드는데, 막상 남자는 자신이 여자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분명히 저자가 남자일 것이라고 추측하겠지만 놀랍게도 저자는 여자이다. 『길들이는 여자들 길들여진 남자들』의 저자인 에스테 빌라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독일계 이민자로 주로 독일에서 활동했다. 사회학을 전공했으나 의사, 수필가, 희곡 작가로도 활동했다. 혹자들은 에스테 빌라가 일하는 직장인이었으니 가정주부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직장과 가정 두 가지 일을 병행했다. 그리고 직장의 업무에 비하면 가정주부가 하는 가사노동은 그야말로 일 같지도 않은 일이라고 폄훼한다. 그런데 보통 남자들은 여자가 가사를 꾸리고 아이들을 양육하느라 몹시 힘이 들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여자를 위해 일터에서 더욱 열심히 일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심지어 여자들이 남자의 외도를 원하는데 그것은 외도를 묵인해주는 데 대한 미안함을 이용해 부차적인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한다.
또한 저자는 여자가 기사도라든가, 매너라는 개념을 만들어 남자로 하여금 여자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에 맞는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타이타닉호 사건을 떠올릴 수 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도 보트가 부족하자 남자들은 여자들을 먼저 태우고 자신들은 죽음을 감수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부산을 떠난 여객선에 불이 나자 남자들은 여자들을 보트에 먼저 태우고 자신들은 바다에 몸을 던졌다. 다행히 모두 구조되었지만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저자의 주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어린 시절의 교육까지 지적한다.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레고를 조립하며 이것저것 일을 처리하는 법을 배우고, 여자들은 인형놀이를 하며 어머니에게 남자를 조종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받은 이런 교육은 커서도 이어지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들은 일을 하기 편하게 머리를 짧게 깎고 옷도 넉넉하게 입으며 심지어 손톱도 짧게 깎는다. 반면 여자들은 일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머리도 길게 기르고 치마를 입으며 손톱도 길게 손질한다. 남자들은 여자의 가사 노동을 줄여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끝에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기계를 만들어 여자들에게 선사한다. 그러면 여자들은 더욱 한가해진 시간에 쇼핑을 하며 인생을 즐긴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가치 있는 노예가 되려면 몸이 튼튼하고 일도 잘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일을 잘한다는 건 돈을 많이 번다는 뜻이다. 그래서 미혼 여성들이 신랑감을 고를 때 1순위가 경제력이다. 그녀들은 남자의 외모 따위에 관심이 없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여자 없이 존재할 수 없게끔 여자가 남자를 길들여 놓았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의 요구라면 뭐든지 다 듣는다. 그는 삶을 위해 투쟁하며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사랑은 여자에게는 권력을, 남자에게는 굴종을 의미한다. 사랑 때문에 여자는 자기에게 이득이 돌아오는 행동을 하고, 남자는 스스로 손해 보는 짓을 한다. 결혼하고 난 뒤 여자는 사랑 때문에 더 이상 일하지 않고, 남자는 사랑 때문에 두 사람 몫을 일한다. 사랑은 그 둘 모두에게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그러나 한쪽은 승리를 통해, 다른 한쪽은 패배를 통해 생존한다.”
나와 친구들은 책을 다 읽고 기분이 묘해졌다. 저자의 주장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긴 요즘 전과 달라진 아내의 행동을 생각해 보니 저자의 주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는 오랫동안 의견을 나눈 끝에 우선 노예의 삶에서 탈출하기로 결의했다. 각자 한 가지씩 아이디어를 내니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의견이 모아졌다.
1. 지금까지는 흉내만 냈지만 이제부턴 어려운 이웃이나 우리 사회를 위해 온몸을 던져 봉사하겠다. 2.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분야에 전념해 탁월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어떤 흔적을 남기겠다.3. 이것저것 욕심을 덜어 내고 초야에 묻혀 수도자와 같은 생활을 하며 살겠다.
4. 꼭 무엇이 되려 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역할에 감사하며 즐겁게 삶을 살겠다.
물론 앞으로 우리가 각자 어떤 길을 걸어갈지는 모두 가치관이 다르니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 다 쉬운 것도 아니다. 이러다 그냥 주저앉게 되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우리 속에는 변화를 싫어하고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노예근성이 꿈틀거리고 있지 않은가.
3강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
처음 분당FM에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는 청취자들이 과연 어떤 내용의 프로그램을 듣고 싶어 할지 몰라 무척 고민스러웠다. 이후 여러 시행착오 끝에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코너로 프로그램을 꾸미게 되었다. 청취자들이 자기 주변 이웃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차츰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꽤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인 <스토리코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2003년 10월 뉴욕의 그랜드센트럴 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당시 91세였던 세계적인 구술 전문가 스터즈 터겔이 첫 방송을 시작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 이 순간부터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을 세상에 알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랜드센트럴 역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건물을 지은 건축가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누가 여기 철근을 박았습니까? 누가 벽돌을 쌓았을까요? 오랫동안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이 땅의 사람, 바로 여러분입니다.”
내가 진행했던 프로그램도 이와 비슷했다.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때는 내가 초대 손님에게 궁금한 것들이나 관심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지만 방송이 거듭될수록 나는 초대 손님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세상사도 그렇지만 방송을 진행하면서도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내가 초청한 분들은 대부분 방송에 처음 출연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무척 긴장했다. 그러나 말문이 트기 시작하면 저마다 자신들의 속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한번은 부부간에 장기이식수술을 한 남편이 출연했다. 아내가 신부전증을 앓아 신장이식이 필요했는데 검사 결과 형제자매 중에는 아내와 조직이 맞는 사람이 없었다. 대개 신장이식수술은 형제자매나 부모자식 간에 하기 때문에 남편은 아예 검사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고민하던 차에 자신의 신장을 남에게 기증하고, 아내의 신장조직과 일치하는 다른 사람의 신장을 이식받도록 하기 위해 장기이식센터를 찾아 조직검사를 했다. 그런데 며칠 후 놀랍게도 자신과 아내의 신장조직이 잘 맞는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다른 사람의 신장을 구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결국 부부간 신장이식수술이 이뤄졌고, 현재 아내는 자신의 신장을 이식받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