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도 잘 산다
이상화 지음 | 시그널북스
나 혼자도 잘 산다
이상화 지음
시그널북스 / 2013년 11월 / 304쪽 / 15,000원
Part 1. 나는 ‘솔로’다
나 혼자 산다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더구나 아주 빠르게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1인 가구가 450만이 넘는다. 전체가구의 약 25%를 넘어섰다. 네 집 가운데 한 집은 1인 가구다. 앞으로 10여 년 뒤인 2030년에는 전체가구의 34.3%가 1인 가구로 전체가구의 3분의 1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서울만 하더라도 1년에 약 1만 6천 가구씩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정말 놀라운 증가추세가 아닐 수 없다.
1인 가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뚜렷한 추세다. 미국의 경우 성인가구의 절반 이상이 독신가구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전체가구의 28%가 1인 가구라고도 한다. 세계에서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나라는 스웨덴으로 무려 47%나 된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주거시설 약 60%가 독신자들을 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가까운 일본도 31%가 1인 가구다.
어떤 이유로든 이미 독신을 선택했거나 혼자 살기로 결심한 자발적 독신주의자들은 전통적인 가족제도와 그 근원이 되는 결혼이라는 인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형태를 스스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바람직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우리의 인생은 단 한 번뿐인 인생이다. 지나간 날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에 연습이나 실험은 있을 수 없다. 어떻게 살든 행복해야 인생의 보람이 있다. 다시 말하면 대다수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과 다르게,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더라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충분히 행복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사나, 솔로, 싱글, 싱글턴
혼자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자면 먼저 그에 대한 정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을 혼자 사는 사람, 독신자, 독신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정의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솔로(solo), 싱글(single), 싱글턴(singleton)은 우리나라 및 서양의 선진국에서 흔히 쓰는 말로, 혼자인 사람 또는 혼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쉽게 말해 나홀로족이라는 뜻이다. 솔로나 싱글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싱글턴은 좀 생소할 것이다.
‘싱글턴’은 솔로, 싱글과 비교하면 훨씬 깊고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혼자 사는 독신자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신념이나 주관ㆍ관념 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싱글턴이며, 어떤 조직의 구성원들과 동떨어진 외톨이도 싱글턴이다. 그런가 하면, 독신자로서 가족을 이루지 않고 혼자 살아가지만 애인이나 부정기적인 동거자가 있는 경우도 싱글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상당한 복잡성과 다양성을 지닌 현대사회는 구성원들의 삶의 형태나 주거형식, 가족의 개념이나 구성에서도 전통성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솔로, 싱글, 싱글턴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무척 어렵다. 우리가 살펴보려는 독신세대, 1인 가구도 그렇다.
어떤 이유로든 혼자인 사람, 혼자 살고 있는 모든 유형의 싱글들, 이들의 갖가지 현상과 문제점, 미래예측 등을 한꺼번에 다루기에는 너무 광범위하다. 따라서 그보다는 범위를 좁혀 오늘날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는 ‘혼자 살려는 사람’ 특히 자발적으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젊은 세대’들의 갖가지 현상과 문제점들을 흥미 있게 살펴보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러자면 솔로, 싱글이라는 표현보다 ‘독신’, ‘독신주의자’라는 표현이 더 쉽게 와 닿는다.
현대사회에서 독신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배우자가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독신주의’는 평생 배우자 없이 혼자 지내려는 주의를 말한다. 물론 부모의 보호를 받는 미성년이나 성년이라 할지라도 결혼적령기에 이르지 못했거나 분명한 결혼의사를 갖고 있지만 아직 미혼이어서 배우자가 없는 사람은 제외된다. 따라서 결혼적령기를 지나서도 배우자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을 독신이라고 할 수 있다.
독신의 미래는 어떨까
외국의 미래학자, 전문가 50명이 미래를 예측하고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한 책이 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출간된 『왓츠 넥스트(What’s Next)』다. 우리말로 ‘미래는 어떨까’, ‘궁금한 미래’쯤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연애, 성, 결혼 등에 대한 몇몇 항목들이 들어 있다. 먼저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인 조이 브라운 박사가 지적하는 연애와 결혼의 미래를 옮겨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데이트를 일종의 쇼핑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인터넷 데이트를 통해 멋있는 사람을 만나고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실제로 데이트도 한다. 그리고 그가 분명히 마음에 드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선다. ‘분명히 이 사람보다 더 멋진 사람이 있을 거야.’ 하면서 인터넷 명단을 다시 한 번 체크한다. ……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이라는 제도나 관계의 형식 같은 개념 없이도 얼마든지 사랑에 빠진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갖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앞에서 언급한 과거의 연애 절차나 과정을 따라가는 젊은이들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그 과정의 일부만 택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데이트(연애)가 결혼생활로 이어지는 ‘온전한’ 과정이 파괴되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미국의 정신심리학자 존 고트먼 교수도 『왓츠 넥스트』에서 결혼의 미래를 예측했다. 그는 ‘결혼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가장 큰 희생을 하며 가장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담은 일종의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모든 부부가 무조건 서로를 위해 헌신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대부분의 경우, 서로에게 부분적으로만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어떤 거래를 할 때,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제시하듯이, 부부도 각자 마음속에 어떤 조건 같은 것을 걸어놓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아직 결혼이 다급하지 않은 20대 초반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평생 혼자 사는 생애독신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 서울의 경우만 하더라도 해마다 결혼건수가 줄어들어 20년 사이 약 30%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독신증가의 원인 가운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앞부분에서 언급한 결혼에 대한 개념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변화에 따라 무조건적인 참된 사랑보다 연애는 쇼핑이 되고, 갖가지 조건을 앞세운 거래, 계약이나 다름없는 상행위로서의 결혼이 대세가 되고 있다. 아울러 헌신과 배려는커녕, 각자 특별한 개성과 양보하지 못하는 수많은 요구조건들을 지닌 남녀의 결합은 서로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부담을 안고 굳이 결혼하는 것보다 아예 결혼을 포기하고 자기의 모든 역량을 자신에게 투자할 수 있는 독신이 한결 행복하지 않을까? 물론 갖가지 사회여건과 개인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결혼하지 못하는’ 비자발적인 독신자도 많지만, 그와 같은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 부담감, 혐오감 등으로 결혼을 기피하고 포기하는 젊은 남녀들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자발적 독신자의 증가에 따르는 사회적 문제나 전망은 아직 예상하기 어렵다. 자발적 독신자들은 독신의 미래에 대한 사회적 해답과 혜택을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평생 행복하기 위한 자발적이고 빈틈없는 준비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Part 2. 혼자 사는 어려움
결혼 안 하니?
서른 살이 넘어서도 결혼을 못 했거나 안 한 젊은 남녀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넌 결혼 안 하니”, “결혼을 안 하는 거냐, 못 하는 거냐” 등 남들이 자신의 결혼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그런 질문이 얼마나 귀찮은지 30대 미혼자의 86%가 ‘결혼 안 한 것에 대해 거짓말로 둘러댄다’라고 대답한다는 조사통계가 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귀찮고 짜증 나고 지겨운 질문들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보편화된 만혼현상이다. 현재 우리의 결혼 평균연령은 남자 32세, 여자 29세가 조금 넘는다. 평균적으로 20대 중반인 결혼적령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주변에 30대 후반인데 결혼 안 한 남녀가 수두룩하다. 이런 현실에서 서른 살이 넘었다고 해서 결혼을 강요하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음은 무엇보다 독신, 1인 가구의 가파른 증가가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전체가구의 4분의 1이 1인 가구일 만큼 독신이 보편화됐다. 서른 살이 훨씬 넘어서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자녀들 때문에 걱정하는 늙은 부모들을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당연히 독신, 1인 가구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주위에 온통 결혼 안 한 30대 젊은이들이 넘쳐나는데 ‘넌 결혼 안 하니’는 얼마나 부질없는 질문인가.
그다음, 우리의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팍팍해지는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청소년은 입시경쟁 때문에 오로지 끝없는 공부에 시달리고, 젊은이들은 취업난에 시달리고, 주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물가에 시달리고, 샐러리맨은 과중한 업무와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에 시달리고, 노후대책이 전혀 없었던 노인들은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살맛 난다’, ‘사는 게 재미있다’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경제사정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도 결혼을 못 하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다. 남자백수와 결혼할 여자가 어디 있으며, 취업도 못 한 주제에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가당치 않다.
어찌 되었든 서른을 넘어선 솔로, 싱글이 ‘너 결혼 안 하니’라는 질문을 더 이상 듣지 않는 것도 한결 마음을 가볍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이 사라지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말 듣기 싫은 귀찮은 질문이지만 그 질문에는 상대방의 친밀감과 유대감이 담겨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어려울 때 도움을 얻기도 어렵다. 독신주의자는 이제 모든 것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편견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독신, 1인 가구가 4백만이 훨씬 넘어섰지만, 독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아직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며 사회적 편견이 존재한다. 30세가 넘어서 결혼하지 않은 남녀는 가족, 일가친척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나는 독신주의다. 나는 죽을 때까지 혼자 살려고 한다.”라고 말하면 오히려 부쩍 더 큰 관심을 보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 이유를 한사코 캐묻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자발적 독신자는 ‘남과 다른 인간’으로 보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편견은 독신, 1인 가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앞으로 차츰 사라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혼자 사는 것이 ‘새로운 삶의 형태’로 보편화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독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편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반발할 일은 아니다. 귀찮고 힘들더라도 혼자 살기로 결심했다면 감수해야 한다. 독신자들이 현실적으로 겪어야 하는, 보다 더 괴로운 것은 갖가지 사회적 불이익이다. 서양의 선진국들에서는 남다른 삶을 사는 독신자나 동성애자들에게도 기혼자와 똑같은 사회보장과 각종 혜택을 부여하는 추세지만 우리나라의 독신자들은 아무런 사회보장도 혜택도 받지 못한다.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가령 독립생활을 하려는 젊은이들에게 경제적으로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주택마련만 해도 독신자는 무척 불리하다. 처음 내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 특히 젊은 세대를 위해 ‘생애최초 주택대출’이라는 것이 있다. 대출이자를 크게 낮춰주고 취득세도 면제해주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된다.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자격도 연령을 35세에서 30세로 낮췄다. 기혼자는 20세부터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독신자는 이 혜택에서 제외된다. 결혼을 안 했으며 부양가족이 없다는 이유다. 독신자는 여전히 35세가 돼야 취득세를 면제받는다. 종합소득에서도 독신자는 불리하다. 부양가족이 없기 때문에 소득공제가 거의 없으니 기혼자보다 훨씬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앞으로 독신의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이들에 대한 편견도 차츰 사라지고 사회보장제도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독신생활에는 여러 장점들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단점들도 많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하며 그것을 감당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독신생활에서 기쁘고 즐거울 때는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못한다. 기혼자의 생활과 특별히 차이 나는 것도 없다. 하지만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아플 때, 여러 이유로 고통을 겪을 때, 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못해 좌절감을 느낄 때 등등은 가족이 있거나 배우자가 있는 기혼자보다 훨씬 견디기 어렵다. 곁에서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슬프고 괴롭고 우울할 때 독신자는 어찌해야 할까? 독신을 포기해야 할까? 그런 얘기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독신을 결심하거나 독신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몇 가지 마음의 준비와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첫째, 고독감이나 고립감 그리고 결핍감 등이 당연하다는 마음가짐이다. 그럴 줄 모르고 자발적으로 독신을 선택했거나 혼자 살다 보니 그런 마음의 고통을 절감하게 됐다면 크게 착각한 것이다. 너무 자유나 해방감 같은 긍정적인 면만 상상하고 독신을 결정한 셈이다. 독신에는 부정적인 면도 있을 것이고 갖가지 애로사항도 많을 것이라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독신에서 오는 갖가지 문제점들을 기꺼이 수용하고 껴안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즐길 수 있어야 독신생활이 행복하다.
둘째, 고통을 대하는 태도다. 고통에는 정신적 고통도 있고 육체적 고통도 있다. 질병, 과로 등의 육체적 고통은 개인적인 고통이다. 기혼자나 미혼자나 독신이나 모두 똑같다. 독신이라고 해서 고통이 더 심한 것은 아니다. 정신적 고통은 여러 가지 상황이 있겠지만 그 범위가 아무래도 독신자는 기혼자보다 좁다. 고통을 주는 요소들이 기혼자보다 독신자가 적다는 얘기다. 그조차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면 독신으로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신적 고통이든, 육체적 고통이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껴안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행복하다. 독신자에게 더욱 그렇다. 기혼이든 독신이든, 매일같이 기쁘고 즐거운 좋은 날만 계속될 수는 없다. 기쁜 날이 있으면 슬픈 날도 있고, 즐거운 날이 있으면 슬픈 날도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햇빛이 쨍쨍한 맑은 날들이 이어지면 대지가 마침내 사막으로 변한다고 한다. 흐린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어야 오히려 대지가 비옥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흐린 날, 비 오는 날이 있어야 화창한 날이 더욱 상쾌하다.
Part 3. 나 혼자서도 잘 산다
사랑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젊은 남녀가 사랑하기 싫다면 문제가 있다. 그런데 요즘 사랑하기 싫어하는 젊은 남녀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그야말로 요상한 노릇이다.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의 주축을 ‘에코 세대’라고 부른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 1955년부터 1964년에 태어난 세대다. 전쟁도 끝나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에 넘쳐 당시의 부모들이 아이를 많이 낳아 베이비붐을 이루었던 것이다. ‘에코(Echo) 세대’는 그들의 자녀이므로 대략 현재 24세에서 34세에 이르는 젊은이들이다.
부모들은 귀한 자녀들을 왕자, 공주로 여기며 아낌없이 베풀고 지원했다. 어려서부터 자녀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었다. 윤택한 가정에서 부모에게 온갖 귀여움을 받으며 부족함이나 부러움 없이 자란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좌절감을 모르고 전혀 고통도 모르고 자랐다는 것은 인생의 숱한 굴곡과 우여곡절, 고난, 역경을 극복하며 살아가기엔 큰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은 그들이 인생의 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좌절에 부딪혔을 때 자기 능력으로는 아무런 대처방안도 찾아내지 못하게 했다. 더욱이 부모의 일방적인 베풂에 익숙해진 그들은 오로지 받을 줄만 알았지 남에게 베풀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게 됐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에코 세대’의 특징이며 특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