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의 세계
포 브론슨, 애쉴리 메리먼 지음 | 물푸레
승부의 세계
포 브론슨, 애쉴리 메리먼 지음
물푸레 / 2013년 8월 / 356쪽 / 15,800원
승부는 경쟁에서 시작된다
스카이다이빙과 볼륨댄스
반복을 통한 상황 통제력, 엣지워크: 다인저는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독일 모젤의 어느 소형 비행장으로 갔다. 생애 최초로 스카이다이빙을 시도해보기로 결심한 열여섯 명의 실험 참가자들도 그녀와 함께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 전후, 다인저는 참가자들에게 스펀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에 넣고 씹은 뒤 실험 튜브에 뱉어내도록 했다. 참가자들의 타액을 분석함으로써 스카이다이빙이라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어떤 생리현상으로 나타나는지를 알아내려는 것이었다. 참가자들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분비되는 신경내분비 혼합물을 분석해낼 수 있었다.
다인저는 그날 그들에게 세 번이나 낙하하게 했다. 초보자가 반복적으로 스카이다이빙을 했을 경우, 그것에 점점 익숙해지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익숙해진다면 당연히 스트레스의 정도도 달라질 것이다! 샘플로 추출한 실험참가자들의 타액을 분석해보니 다인저의 예상대로 첫 낙하에서만 아주 강한 스트레스를 느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후에는 낙하를 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4분의 1 정도씩 줄었다. 세 번째 낙하할 때도 여전히 스트레스가 있기는 했지만 평균적으로 첫 번째 낙하 때 느꼈던 스트레스의 반에 불과했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자유낙하에 매우 빨리 익숙해진다는 점이다. 자, 이제 공중낙하를 볼륨댄스와 비교해보자.
볼륨댄서의 스트레스와 승부근성: 독일 도르트문트의 니콜라스 로레더 또한 격렬한 활동을 할 때 분비되는 신경내분비 혼합물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실험도 스카이다이빙 실험과 비슷했다. 그는 실험 대상자들에게서 채취한 타액을 ‘연습하는 날’, ‘쉬는 날’, ‘대회에 참여하는 날’로 구분해서 비교했다. 그의 실험 대상자들은 남녀 한 쌍의 볼륨댄서들이었다. 이들은 연습하고, 쉬고, 대회에 참석하는 과정을 수년 동안 반복해온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참가자들이 더 편안하게 대회에 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댄스 동작이나 플로어크라프트에서 약간의 실수만 있어도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의 눈에 확연히 들어올 것이고, 모든 동작들이 점수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그 대회에 참여한 댄서들은 대개 130번 정도 댄스 대회를 거쳤고 8년 동안 꾸준히 참여했으나, 대회에 나가는 것은 여전히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로레더는 댄서들을 대회 경력에 따라 세 그룹으로 구분했다. 첫째 그룹은 대회 경력이 80회 이하인 사람들로 대부분 2~3년의 경력자에 불과했다. 둘째 그룹은 대회 경력이 80회 이상으로 춤을 춘 지 제법 오래된 경력자들이었다. 셋째 그룹은 대회 경력이 170회 이상인 사람들로 10년 이상 춤을 춘 전문가들이었는데, 그 정도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라면 춤을 출 때 의도적으로 몸동작을 제어할 필요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스트레스 반응은 세 그룹에서 똑같이 강하게 나타났다. 볼륨댄스 세계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그들은 아무리 오랫동안 그 세계에 몸담았어도 여전히 두려움과 긴장을 느꼈다. 어떻게 위험한 스카이다이빙에는 그렇게 금방 익숙해지면서, 안전한 볼륨댄스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일까? 차이는 신경내분비적인 환경에 있었다. 전문 댄서들은 대회에 나가 경쟁하고 있었지만, 공중낙하에 참여했던 공중낙하 초보자들은 대회에 출전한 것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스트레스를 유발한 것은 춤이 아니라, 판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승패가 달려 있는 상황이었다. 대회에 나가 경쟁하는 것은 특별한 상황이다.
이제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지금까지의 통념에 따르면, 성공은 무슨 일을 하든지 10년 이상 꾸준히 노력하고 열심히 연습하면 얻는 결과라고 여겼다. 다시 말해 성공은 ‘피나는 연습이 우리를 전문가로 만들어주니까 열심히 연습하면 대가가 될 수 있다’라는 뜻이었다. 이런 주장이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고는 있지만, 그 성공의 공식에는 연습을 하되 어떻게 연습해야 하는지가 고려되지 않았다. 연습은 경쟁과는 다르다.
경쟁의 목표, 아레타스: 경쟁은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초이며 성장 동력이다. 경쟁은 혁신을 일으키고, 세계시장을 움직여 우리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게 해준다. 물론 아직도 경쟁을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경쟁을 협력의 반대로 여긴다면 핵심을 놓칠 수 있다. 경쟁에는 쌍방의 동의하에 정한 규칙이 있게 마련이고 또 그 규칙에 대한 상호협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건강한 경쟁은 협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한편 우리는 순응적인 경쟁과 비순응적인 경쟁을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순응적인 경쟁에는 어려움에 맞서려는 각오와 끈기, 규칙을 존중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이것은 지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만족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순응적인 경쟁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것에서 반드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이 땀 흘려 훈련을 거듭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를 갈망한다. 순응적인 경쟁은 우리 모두를 감동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내게 해준다.
반면 비순응적인 경쟁에는 심리적 불안정과 빗나간 조급함이라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경쟁의 일부인 ‘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모든 것에서 최고가 되어야 직성이 풀리며 이미 경기가 끝난 후에도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기가 이길 수 없을 때는 속임수를 쓰는 것도 불사한다. 이 책에서는 주로 순응적인 경쟁을 다루는데, 처음에는 경쟁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풀어서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왜냐하면 영어에서는 ‘비순응(maladaptive)’과 ‘순응(adaptive)’의 차이가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망라하는 ‘경쟁(competitiveness)’이라는 말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경쟁’을 묘사하는 적절한 말을 찾다 보니 ‘경쟁’이라는 것을 정말 좋게 받아들이고 높이 평가했던 인류 역사의 첫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대 그리스 문화였다. 그리스에서 경쟁의 최고 미덕은 마음과 몸을 연마하는 것이었다. 경쟁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른바 ‘아레타스(aretas)’, 즉 ‘탁월함’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경기를 통해 얻어지는 아레타스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대단한 미덕이었다. 원래 올림픽 경기는 종교적 축제였으며 사람들이 자신의 아레타스를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승리를 부르는 생리적 요인: 2008년 중국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개최됐다. 중국의 국립 수영센터인 워터 큐브에서 400미터 남자 프리스타일 계영 최종 결선이 있었는데, 프랑스 팀과 미국 팀이 1위 자리를 노리며 5번 레인과 6번 레인에서 경기를 펼치게 되었다. 미국과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맞수였던 호주 팀도 3번 레인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올림픽에서는 최고의 기량과 실력을 갖춘 국가 대표들이 경쟁하기 때문에 부담감이 큰 데다가 서로 라이벌 의식이 있는 경우에는 선수들의 결과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 우승하려면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이 완벽한 경기를 펼쳐야 한다. 완벽한 경기란 선수들이 각각 자기 계주에서 생애 최고의 기록을 내는 것을 의미한다.
첫 번째 계주에서는 호주의 설리반이 47.24초에 들어오는 압도적인 기록을 냈다. 미국의 펠프스가 그 뒤를 따랐고 이어서 프랑스 팀이 뒤따랐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계주에서는 프랑스 팀이 미국 팀을 2미터 정도 앞서고, 호주는 3위로 떨어졌다. 마지막 계주는 미국 올림픽 참가 선수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서른두 살의 레젝이 맡았다. 레젝은 “대부분의 수영선수들이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수영합니다. 그러나 50미터 지점을 지나면 달라집니다. 100미터 경기를 치를 때면 10미터 지점부터는 숨을 쉬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레젝은 프랑스팀의 버나드가 일으키는 물거품을 맞으면서 레인라인 옆에 바짝 붙어 따라갔다. 반환점을 돌아올 때 레젝은 버나드보다 1.5미터 정도 뒤처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레인 바로 오른쪽에서 그를 앞지르고 있는 버나드를 보았다. 그 순간 그는 희망을 버렸다. “나는 더 이상은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버나드는 세계 신기록 보유자였으니까요. 나는 마음을 비우고 그냥 남은 경기에 최선을 다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어요.” 그러나 희망이 사라지는 상황은 오지 않았다. 갑자기 몸에서 힘이 솟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조금씩 그를 따라잡았어요. 버나드의 엉덩이까지 따라잡자 자신감을 갖게 되었죠. 바로 그 순간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레젝이 숨 쉬지 않고 수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바로 그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그 생각은 그의 몸에 엄청난 에너지를 일으켰다.
남은 15초 동안 레젝은 버나드를 따라잡았고 팔을 길게 뻗어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그 경기를 지켜보던 전 세계 수영 팬들은 레젝의 기록에 충격을 받았다. 46.06초, 세계 기록보다 더 빠른 기록이었으며 그가 세운 기록 중에서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그의 경기기록을 아무리 살펴봐도 그날의 경기는 엄마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차를 들어 올린 것 같은 기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 주된 원인은 무엇보다 경기가 주는 긴박감이다.
레젝이 버나드를 뒤쫓고 있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미국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과 심한 라이벌 관계였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물론 레젝은 우승하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겠지만 진다고 해도 그가 비난받을 일은 없었다. 바로 그것이 레젝의 생리적인 상태를 바꾸었다. 또한 관중들의 함성도 한몫했다.
그가 우승을 거머쥐게 된 또 다른 요인은 미국 선수들이 전에 열렸던 두 번의 올림픽에서 땄던 은메달이 그들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잘한 팀’으로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우승에서 패배한 낙오자’로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요소는 계주에서 버나드의 엉덩이까지 따라잡았던 순간이다. 그 순간 레젝은 기회를 잡았다고 확신했고 그것은 그가 우승하는 데 필수 요소였다.
레젝이 그런 승부의 순간을 만들어낸 데는 생리적인 요인이 있었다. 생리적인 요인이란 엄청난 심리적 부담을 느낄 때, 오히려 더 높은 기량을 펼치게 만드는 몸 안의 유전적 요인에서부터 엄마의 뱃속에 있던 태아 시절 호르몬의 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의미한다. 경기 전날 분비된 생화학 물질이 그의 세포 안에 있는 유전자들을 깨웠고, 당일 경기에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의 생성을 높였던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그의 몸에 엄청난 호르몬 분비가 있었으며, 출발 신호가 떨어지는 순간에 또 다른 호르몬 분비가 있었다. 그 결과 그의 몸은 몇 초 만에 에너지로 충만해졌다. 몰론 거기에는 팀이 주는 영향도 있었다. 그는 이틀 후에 개인종목 최종 결승전을 치렀는데 47.27초라는 상대적으로 느린 기록으로 경기를 마쳤다. 수영경기에서 레젝에게 총체적으로 작용했던 그 모든 요소들은 학생이 SAT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때, 회사원이 회사에 큰 이익이 되는 엄청난 계약을 성사시킬 때, 군인이 매복공격 속에서 살아남을 때와 같이 큰 성과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든 동일하게 작용한다.
획득 중심 vs 방어 중심: 여러 연구를 통해 그리스 사람들이 경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바로 사람들이 경쟁할 때 실력이 더 향상된다는 것이다. 이기고 싶어서건, 꼴찌를 하고 싶지 않아서건 경쟁은 우리의 마음에 동기를 불어넣는다. 별로 내키지 않는 상태에서 끌려가듯 경쟁에 참여하게 될 때조차 다른 사람들과 비교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승부본능을 자극한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과의 비교, 재정적 보상 같은 외부의 힘에 영향 받지 않을 때 창조성 있는 천재들이 많이 배출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경쟁은 창조성을 말살시키지 않는다. 경쟁은 동기를 유발시키고 추진력을 불어넣어 창조성이라는 아웃풋을 더욱 촉진시킨다. 경쟁은 창조적 정신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한편 경쟁에서 성공하려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험을 감수하려다 보면 누구나 두려워서 망설이게 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위험 감수에 개인적인 한계치가 있으며, 바로 그 한계치가 경쟁에 대한 두려움보다 경쟁을 통한 유익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다. 흔히 이기는 데 비중을 많이 두는 사람들은 경쟁에 더 많이 뛰어든다. 그러나 승패의 확률을 따져보는 데 비중을 두는 사람들은 경쟁에 덜 뛰어든다. 이 두 성향은 사람이 경쟁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승부근성은 타고나기도 하고 또 길러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생물학적인 요소가 타고난 것이거나 영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 역시 명확하지 않다. 우리 몸 안에는 생리적 요소들과 심리적 요소들 사이에 더 큰 세력을 장악하기 위한 싸움이 항상 있다. 생리적인 것이 몸 안에서 더 큰 세력을 장악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정신은 그 흐름을 바꿀 수 없고 생리적 물결의 희생양이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몸의 반응과 그 결과로 인해 우리는 이중으로 손해를 본다.
탁월한 경쟁자들과 아마추어 경쟁자들의 차이는 정신력에 달려 있다. 경쟁을 잘하려면 정신력이 강해야 한다. 그러면 그 정신 상태가 우리의 생리 상태를 바꿔준다. 이것을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다면 몸의 생리 상태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내용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피해야 뭔가를 잘해내는 사람들이 있고, 반면에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있어야 최고의 역량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승자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
승패의 비밀
성취 중심 vs 방어 중심: 어떤 사람들은 이기는 데 집중하며 승리를 위해 뛰어든다. 그들은 도전을 받으면 노력을 배로 하며, 재투자를 하고 시장을 공략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손실을 줄이고 이윤을 보호하며 새로운 시장 진입자들이 빨리 물러나주기를 바란다. 이런 사람들은 도전에 직면하면 비용을 대폭 낮추고 미래에 대한 투자를 줄이며, 기존에 알고 있는 것에 더욱 의지하면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이기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은 전력투구한다는 점과 위험을 계속 감수한다는 점이다. 이와는 반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보수적으로 경영하면서 실수가 실수를 낳는 상황을 피하는 방식의 안전책을 사용한다.
2006년 윔블던 여자 테니스 단식 결승전, 아멜리 모레스모와 저스틴 에넹에게 타이틀을 거머쥘 기회가 왔다. 첫 세트에서 에넹은 이기는 데 집중하는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다. 테니스 경기에서 대개 자기 범실은 경기 중 양쪽 선수가 날린 전체 서브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편인데, 이 경기에서 에넹은 다른 우승자들에 비해 범실을 두 배나 많이 했다. 그래도 그녀는 첫 세트를 6:2로 이겼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모레스모는 첫 세트 경기에 대해 기자들에게 “그랜드 슬램의 최종 결승전에서 나는 6:2로 저스틴에게 지고 있었어요. ‘그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이 경기를 내 방식으로 풀어 나가지?’라는 생각을 했고, 그 순간 온몸에서 힘이 솟구치는 걸 느꼈어요. 나는 긴장을 풀고 함성을 질렀죠. 이미 두 번째 세트가 시작되기 전부터 더 공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두 번째 세트에서 에넹은 방어에 주력했고 모레스모가 이겼다. “그때 저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어요. 그래서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바뀐 거죠.”라고 에넹은 기자단에게 말했다. 마지막 세트에서도 에넹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반복해서 포핸드로 공을 받아쳐서, 모레스모가 경기를 리드하도록 허용해주는 실수를 범했다. 반복된 실수도 치명타로 작용했다. 샷을 안전하게 날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범실을 범했다. 그래서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