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잘 될 거야!
폴 J. 마이어 지음 | 책이있는마을
괜찮아, 잘 될 거야!
폴 J. 마이어 자음
책이있는마을 / 2013년 7월 / 184쪽 / 12,000원
프롤로그
퍼킨스와 랜돌프는 출입문을 밀고 거리로 나섰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거리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회의는 점심시간까지 이어졌다. 새로 개점할 백화점의 경영자 선정 문제를 놓고 두 사람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기 때문이었다.퍼킨스는 J그룹 최고경영자의 인척으로 어려서부터 부모가 정해준 진로를 무리 없이 걸어온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의 출신성분을 중요하게 여겼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의 많은 부분이 정해져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반면에 랜돌프는 누구에게나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과 같은, 잠재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것을 스스로 발굴해 내기만 한다면 누구라도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인해 두 사람은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마다 언쟁을 벌이곤 했다.“나도 자네의 주장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네. 하지만 모험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안전한 배경을 가진 인물을 내세우자는 게 뭐가 잘못됐단 말인가?”랜돌프는 흥분한 퍼킨스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네 부모의 재력이 자네로 하여금 그 무엇을 깨울 기회를 주지 않았네. 자네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자네는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네. 새로운 것에 도전해볼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았어. 자네에게 다른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도 없이 자네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정해진 길을 순순히 걸어왔을 뿐이네.”랜돌프는 조용하지만 신념이 담긴 목소리로 퍼킨스를 설득했다.
“물론 자네만큼 주어진 유산을 축내지 않고 잘 지켜낸 사람도 드물지. 확실히 자네는 성실하고 훌륭한 인재야. 하지만 지금 같은 불황에는 회사를 창의적으로 이끌어갈 사람이 필요하네. 슈마허 씨를 추천한 이유도 그 때문일세. 수많은 역경을 딛고 말단에서부터 올라온 슈마허 씨야말로 적당한 인물이라고 생각되지 않나? 신중하게 검토해보게.”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1장 Hope_ 피터, 희망으로 삶을 일으키다
길모퉁이에 한 남자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앉아 소리 없이 날리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허름한 양복 위에 빛바랜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그는 오래전에 일자리를 잃고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아무데서나 쓰러져 잠이 들고, 빵 한 조각을 구하려고 하루 종일 걷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피터. 누구에게 불려본 지 오래되었지만 그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이 도시에 공황이 닥치기 전까지는 직장도, 작은 아파트도, 꿈도 있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쫓기기 시작하면서 그에게도 불행이 닥쳐왔다. 그가 해고를 당하던 날, 은행 계좌엔 겨우 서너 달분의 집세와 식료품을 살 최소한의 비용이 남아 있었다. 피터는 그 엄청난 불행이 턱 앞에 입을 벌리고 다가왔을 때까지도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알아보지 못했었다.해고를 당하고 나서도 피터는 마음만 먹으면 곧 다른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몇몇 회사를 방문한 그는 채 5분도 안 돼서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면접은 고사하고 서류를 들이밀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한 달 동안 무수히 많은 회사들의 문턱을 드나들며 거절당하기를 거듭하자 점차 두려움에 휩싸였다.계속해서 집세가 밀리자 집주인은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막상 집을 나서려니 눈앞이 캄캄했다. 피터는 한동안 멍하니 방 한 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피터는 부랑자가 되느니 차라리 자신의 방에서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갖가지 죽는 방법들을 생각하며 끔찍한 공상으로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한 피터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섰다.구걸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냉정한 거절이나 사람들이 내뱉는 거친 욕설에 강한 분노와 수치심을 느꼈지만 날이 갈수록 그 감정들은 무뎌져갔다. 굶주림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으므로 수치심 따위는 전혀 장애가 될 수 없었다. 누구라도 자신을 보고 딱하게 여겨 빵 한 덩이를 내주기만 한다면 비굴한 구걸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영혼의 불이 꺼지고, 육체에 남은 질긴 생명력만이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가는 유일한 이유였다.
***
그날은 아침부터 하늘이 스산하더니 오후 들어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며칠째 굶주린 탓에 피터의 몸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오전 내내 거리를 배회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피터는 모든 걸 체념하고 대형건물 처마를 지붕 삼아 비를 피하고 있었다.그때 두 명의 남자가 그의 앞을 지나갔다. 피터의 몸이 저절로 일으켜졌다. 삶에 대한 본능이 텅 빈 머릿속과는 상관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는 남자의 옷자락을 붙들고는 절박한 목소리로 그의 동정심에 호소했다.“배가 고파요. 도와주세요.”
남자는 피터의 행색을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남루한 코트와 봉제선이 터진 신발, 덥수룩한 머리에 얹힌 낡은 모자……. 남자는 한동안 말없이 피터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허기를 채우고 난 후에는 뭘 할 거요?”
수개월 동안 거리에서 빵을 구걸해 왔지만 이런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어디 가서 일자리를 구해봐야죠.”
“구해본다구요?”
남자가 되물었다.
“네. 별로 가능성은 없겠지만요. 사흘도 넘게 굶었습니다. 제발 좀 도와주세요. 먹을 것을 주세요.”순간 남자가 냉정한 눈빛으로 피터를 쳐다보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아니요, 난 당신을 도울 수 없어요. 누구라도 당신을 도울 수 없을 겁니다.”
“알아요. 하지만 당장 먹을 것을 좀 나눠줄 수는 있잖아요.”
원망 섞인 피터의 말에 남자가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먹을 것이 아니오.”
피터는 다소 퉁명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뭐란 말입니까?”
“바로 당신 안에 있는 것, 그것을 깨우는 게 더 급하오. 그것이 당신을 불행에서 건져줄 빵이 될 거요.”“그……것이라니? 지금 죽어가는 사람에게 고작…….”
희망이 꺼지자 가까스로 곧추세웠던 피터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자리를 뜨려던 남자가 다시 피터에게로 다가왔다. 남자는 안타까운 듯 피터를 바라보며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최면술사처럼 피터의 코앞에서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달걀을 한번 생각해볼까요? 달걀은 살짝만 부딪혀도 깨지고 마는 약한 껍질에 둘러싸여 있죠. 껍질 안에는 물렁하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단백질 혼합물이 들어 있소. 하지만 그것이 달걀의 전부는 아니오. 껍질을 깨고 부화하기만 하면 완벽한 생명체가 되지요. 놀랍지 않나요? 달걀껍질 안에 그 모든 재료가 갖추어져 있었다는 게. 딱딱한 부리와 보드라운 깃털, 뼈와 살이 모두 들어 있단 말이오.”피터는 멍한 표정으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한 게 아니오. 당신이면 충분해요. 당신이 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단 말이오.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세요.”피터는 이 이상한 남자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그의 눈 속에 자신에 대한 멸시나 경멸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피터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일말의 연민조차 엿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피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값진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피터의 가슴속에서 미약하나마 수치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실로 짧은 순간이었다. 수치심은 깜깜하게 불이 꺼진 피터의 영혼을 가로지르며 날카로운 통증을 일으켰다. 피터는 남자의 옷자락이라도 붙들고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들의 의미를 알아낼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는 빵을 구걸할 때보다도 더 간절한 마음으로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때 줄곧 남자의 뒷전에 서 있던 또 다른 남자가 다가왔다.
“이봐, 랜돌프! 다 부질없는 짓일세. 어서 가세. 저런 사람이라면 거리마다 발길에 채일 정도로 많지 않은가. 그가 자네 말뜻을 알아듣기나 하겠나?”그가 남자의 팔을 잡아당겼다. 남자는 급히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피터에게 건넸다.
“당신이 그 껍질 속에서 빠져나오게 되면 나를 찾아오시오.”
피터는 빵을 살 수도 없는 명함 따위를 건네받게 된 것이 못내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욕설과 냉대 대신 친구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말을 건넨 남자의 강렬한 기세에 눌려 받은 명함을 주머니에 넣었다.피터는 남자가 동행과 함께 멀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앉았던 자리로 돌아왔다. 좀 전에 만났던 남자의 눈빛이 피터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피터가 수개월 동안 몸에 켜켜로 껴입은 절망의 덧옷을 벗기려 하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인 머릿속에서 작은 불씨 하나가 다시 깜빡이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피터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명함을 만지작거려 보았다.잠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린 다리를 끌며 걸음을 떼어놓았다.
“그 무엇이라고?” 피터는 입속말로 중얼거려 보았다. “이미 내 안에 있는 그 무엇?”
그는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거리를 배회했다. 무심히 건물들을 바라보며 걷던 피터의 눈에 당구장 간판이 들어왔다. 그는 비에 젖은 몸으로 스며드는 한기를 느끼며 당구장 계단을 올라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따뜻한 공기가 피터의 몸을 감쌌다.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자 스르르 눈이 감겼다.당구 테이블 위에서는 여러 가지 색깔의 공들이 무심히 구르다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딪치곤 했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노곤하게 녹이기 시작하자 피터는 혼곤한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피터는 기지개를 켜며 긴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몸을 일으켜 당구장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꿈속의 그는 몸도 마음도 가벼운 상태였다. 두려움도, 배고픔의 고통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잠들어 있는 남루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저것이 나인가?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젊은이들이 흔히 가지는 자잘한 희망들을 품고서 내일이, 또 다른 내일이 다가오기만을 고대하며 살고 있었는데…….’ 피터는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채 잠들어 있는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불현듯 피터의 귀에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기를 채우고 나면 무얼 할 거요?”
피터는 남자의 질문과 함께 당장 허기를 채우기 위해 돈을 받아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러자 돈을 들고 달려가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자신이 떠올랐다. 그런 다음 편히 잠들 곳을 찾고, 그렇게 연장된 목숨에 안도하고 다시 거리로 나와 더욱 적극적으로 낯선 사람들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모습이 활동사진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남자의 목소리가 참담하게 서 있는 피터의 가슴을 때렸다.“당신이면 충분하오. 당신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소. 절망도, 희망도, 신념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들어 있소. 당신은 그 안에서 먼저 무엇을 꺼내고 싶소?”피터는 잠든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 주술이라도 걸듯 또렷한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이 안에 모든 것이 있다고? 그렇다면 지금 내가 꺼내고 싶은 건 바로 신념이오.”
그때 누군가 피터의 어깨를 거세게 흔들었다. 순간 피터는 잠에서 깨어났다. 현실과 꿈속을 분간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피터의 귀에 거칠고 성마른 목소리가 날아들었다.“이봐! 썩 꺼지지 못해? 내가 너 같은 부랑자에게 공짜 잠자리나 제공하려고 장사하는 줄 알아?”피터는 사내의 성난 목소리를 뒤로 하고 비칠비칠 당구장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속에선 시원한 샘물처럼 무언가 자꾸만 솟아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는 그쳐 있었고, 구름 저편으로 말간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터는 걸음을 떼어놓으며 무심코 중얼거렸다.“이제 곧 태양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2장 Change_ 두려움을 떨치고 변화를 갈망하라
도시를 뒤덮고 있던 검은 구름 사이로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며 거리 곳곳에 잠들어 있는 냉기를 벗겨냈다. 피터는 쓰고 있던 너덜너덜한 모자를 벗어 쓰레기 더미 위에 던져버렸다. 피터는 허리를 꼿꼿하게 편 후 또박또박 걸음을 떼어놓았다. 현재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나자 마음속 무거운 구름마저 걷히는 것 같았다.그때 작은 체구의 소년이 피터의 곁을 지나갔다. 소년은 꽤 많은 짐 꾸러미들을 들고 언덕길을 몇 걸음 오르더니 이내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평소 같으면 자신이 지고 있는 불행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 누구를 도울 힘 따위는 없다고 여겼을 그가 선뜻 소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내가 좀 들어줄까?”
그러자 소년이 반가운 얼굴로 들고 있던 짐을 절반쯤 덜어서 피터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피터는 소년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다. 소년은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 이름은 바비예요. 아저씨는요?”
“난 피터란다.”
두 사람은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갑자기 소년이 쾌활한 목소리로 외쳤다.
“와, 무지개다!”
멀리 산자락 위로 선명한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피터 아저씨, 내일은 틀림없이 날씨가 맑을 거예요. 그렇죠?”
피터도 무지개를 쳐다보며 힘주어 대답했다.
“그래,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배달을 마친 피터와 바비는 가벼운 걸음으로 다시 언덕을 내려가 번화가로 접어들었다. 바비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시 피터에게 물었다. “저는 저기 보이는 백화점에서 일해요. 아저씨는 무슨 일을 하세요?”
피터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도 곧 직업을 얻게 될 거란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백화점에 다다르자 바비는 피터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한 다음 백화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피터도 바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피터는 바비가 사라진 매장 뒤편으로 걸어 들어가 한창 작업 중인 창고 안을 기웃거렸다. 중년의 한 남자가 피터를 발견하고는 다가와 물었다.“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피터는 어깨를 펴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일하러 왔습니다.”
남자는 서류가 끼워진 보드를 들여다보며 다시 물었다.
“소속이 어딘가요? 누가 당신을 보냈죠?”
피터는 잠시 대답할 말을 생각하며 서 있었다. 그때 누군가 급히 남자를 불렀다. 남자는 피터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수신호를 남기고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창고 안에는 배송할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사람들이 분주히 물건을 상자에 담아 포장하고 있었다. 피터는 작업대 앞으로 다가가 포장을 돕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30분쯤 지나자 점차 일이 손에 익었다.피터는 허기진 몸으로 작업을 하느라 눈앞이 어찔어찔했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의 정신은 어느 때보다도 명료했고,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잠시 후 입구에서 만났던 남자가 허둥지둥 돌아와 피터를 가리키며 말했다.“정신없이 바빠서 기다리라고 했던 당신의 존재를 잊고 있었군요. 이 포장실에 임시로 채용된 사람인가요?”피터는 작업을 계속하며 대답했다.
“네, 피터 앤드류스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남자는 뭔가 물으려다가 그만두고 서류에 펜으로 몇 자 끼적이더니 자리를 떠났다.
작업이 종료되자 피터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주임의 책상 앞에 줄을 섰다. 사람들은 자신의 차례가 되면 번호표를 내고 작업시간을 체크한 다음 일당을 받았다. 피터는 작업반장에게 번호표를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작업반장은 처음 피터가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만났던 남자였다.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피터에게 번호표를 떼어주었다. 피터에겐 두 시간 분의 급료가 지급되었다. 돈을 받아든 피터의 손은 기쁨으로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