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습관이 나를 바꾼다
김근종 지음 | 중앙경제평론사
사소한 습관이 나를 바꾼다
김근종 지음
중앙경제평론사 / 2013년 3월 / 332쪽 / 12,900원
습관이 인생을 지배한다
나를 존중하는 습관을 기르자
“항상 나만 힘들어”, “왜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거야?”, “이제는 포기해야겠어” 등 살다 보면 힘든 경우에 이런 말을 한두 번쯤 해보았거나 주변에서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은 자신을 포기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자신이 스스로 존중하지 않으면 누가 존중해주겠는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 인생의 주체는 바로 ‘나’다. 내가 바로 인생의 주인공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자기 존중감이 있어야 한다. 자기 존중감이라는 주제로 40년 이상 연구해온 나사니엘 브랜든은 그의 저서 『나를 존중하는 삶』에서 자기 존중감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고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주장할 자격이 있으며,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또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베이비루스는 통산 전적 714개의 홈런, 2,212타점을 올린 선수로 미국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화려한 전적만 기억할 뿐, 그의 어려운 실패와 좌절의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엄청난 홈런을 날리기 전에 1,020여 점의 무실점 안타, 투수로서의 전적 94승 46패로 승률의 반이 실패였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존중해가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 역사에 남는 대선수가 된 것이다.
나를 존중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평소의 생활습관이 아주 중요하다. 언제나 ‘나는 안 돼’라는 부정적인 시각과 ‘나는 왜 이럴까’라면서 자신을 불신하는 자세, ‘친구는 잘 되는데 나는 왜 안 되지’라고 비교하는 행위는 모두 평소 자신을 불신하는 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존중하는 습관을 어떻게 들일 것인가? 간단하다. 자신에 대한 장단점을 과감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디 나만 단점이 있나. 다른 사람도 단점은 있는 거야”라면서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다”라고 평소 입버릇처럼 외친다. 또한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해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나 스스로 칭찬하면 된다. 그리고 남에게 도움 받을 만한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부탁한다. 자존심을 생각하고 몸을 사리면 안 된다. 자존심이 너무 세다 보면 오히려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자세가 경직될 수 있다.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설사 완벽하다고 해도 그 사람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자기를 존중하는 습관 중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실패했네. 도대체 왜 그럴까?’라고 비통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실패할 수도 있는 거야’라면서 스스로를 용서하고 자신을 추스르는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평소의 습관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나 자신을 존중하는 습관을 오늘부터 과감하게 실천해보자.
이름을 불러준다
중학교 때의 일이다. 봄소풍을 갔는데 우리 학급은 전체 인원이 60명으로 조금 많았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해 시냇물이 흐르는 양지 바른 쪽에서 쉬고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오셔서 출석을 점검하겠다고 하셨다. 아니 여기까지 출석부를 가지고 오셔서 출석을 점검한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출석부를 보고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출석부도 없이 즉석에서 무려 60명의 이름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중간중간 오지 않은 학생은 수첩에 적으며 이름을 부르셨다. 나는 그 당시 선생님이 출석부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60명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 일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옛말에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알아주는 것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다. 물론 자신을 알아준다는 것이 단지 이름만 기억하는 것을 일컫는 말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이름, 아랫사람의 이름, 처음 만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대학에 입학해서 미팅을 한 그다음 날 “OO씨, 어제 즐거웠습니다. OO씨는 친근감을 주는 이름입니다”라고 한번 해보라. 그러면 대부분 당신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다. 어제 좀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었어도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똑똑히 적어 문자를 보내고 친근한 이름이라고 칭찬까지 해주면 당신을 보는 시간이 달라질 것이다. 사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과 첫 인사를 할 때 당연히 서로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가. 그때 이름을 외우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절대 쉽지가 않다. 여기에도 평소의 습관이 작용한다. 명함을 주면 반드시 이름을 기억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회사 이름만 보고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바로 생활습관이다.
자신을 호감 가는 사람으로 만든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에 익숙해지자. 감사를 받을 만큼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풀었는데도 상대방은 당연한 듯이 그냥 가버리는 경우 몹시 씁쓸한 기분을 누구나 한두 번 경험해보았으리라.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에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존심이 굉장히 상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에 너무 인색하다.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사라는 습관도 평소 익숙하지 않으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평소의 대화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다면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친근감을 줄 수 있으면서 거기에 은혜를 입었다는 의미까지 가장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용어가 바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다.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은 특별할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밤 아무 탈 없이 잠을 잘 잔 나 자신도 어떻게 보면 고마운 일이고, 아침에 식사를 준비해준 아내에게도 감사해야 하며, 밥을 맛있게 먹어준 남편도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감사한 것이다. 이뿐인가. 목적지까지 태워다준 택시 기사도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택시 기사 역시 자신의 택시를 이용한 고객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은 무척이나 친근감을 준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익숙한 사람은 불평불만도 많지 않다. 일을 하면서도 짜증을 내지 않으며, 윗사람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친구 사이에도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해보라. 당신을 대하는 친구의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 “저 사람은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은 주변으로부터 외톨이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시작하자.
예스 화법으로 쉽게 친해진다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행동이 중요하다. 여기서 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말하는 습관, 태도, 용모, 복장 등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과 처음 만나는 순간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해주는 것은 바로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첫마디가 왜 저래?’, ‘아니,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나?’ 하면서 이내 상대에게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게 된다.
이렇다 보니 처음 만나는 순간 긴장이 된다. 과연 어떤 말을 어떻게 처음부터 꺼내야 할지, 그리고 내가 묻는 질문에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물론 입고 있는 복장은 기본이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우선 보여주는 것이 겉모습이니 최대한 노력을 하고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나 말은 쉽지 않다. 처음 만나는 순간 호감 가는 말투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까지 간 경우도 상당히 많다. 단지 말 한마디에 상대가 확 반해버릴 정도로 감동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확실한 것은 호감이 가는 말을 함으로써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스(YES) 화법이란 상대가 복잡하게 생각하고 긴장할 수 있는 질문을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나는 때의 계절이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첫 질문을 “벌써 낙엽이 떨어지고 있군요”라고 하면 상대방은 거의 100% “네, 어느새 가을이네요”라고 한다. 이렇게 일단 상대방에게 아주 쉽고, 특히 NO라는 답이 나올 수 없는 질문만 던지는 것이다.
일단 상대로부터 YES라는 답변이 나오면 계속해서 다음번에도 YES라는 답변이 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 만약 처음부터 “죄송합니다만,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면 아마도 거의 모든 여성들은 “아니, 그런 난처한 질문을 쑥스럽게……” 하면서 말끝을 흐릴 것이다. 상대방이 처음에 대답하는 말이 NO라면 이는 큰 문제이다. 왜 좋은 말을 두고 처음부터 NO라고 하였을까. 그 해답은 간단하다. 바로 질문자가 NO라는 답변이 나올 수 있는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일단 상대방에게 아주 작은 부탁과 질문으로 부담감을 없애는 것을 전문용어로는 ‘foot in the door’라고 한다. 문에 발을 슬쩍 갖다 댄다는 뜻이다. 일단 발만 들여놓아도 성공한 것이다. 처음에 YES를 하면 다음번에도 상대방은 YES라고 할 확률이 높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일관성을 갖지 못하면 심리적으로 불안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처음부터 계속 YES라고 했는데 갑자기 NO라고 대답하기는 무척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YES라고 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NO라고 말한 것보다는 한층 더 상대에게 친근감과 애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유형의 대화에 길들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몸에 배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전에서는 거의 활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든지 일단 YES라는 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에 길들여져 있어야 한다. 말하는 습관은 처음부터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평소 대화를 하면서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해야 YES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일상생활 대화습관에서 그 말이 쉽게 나와야 한다.
상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라
“제가 박 과장님의 입장이라도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누구라도 당신 입장이라면 똑같은 일을 했을 것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와 같은 말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변호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확실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특히 비즈니스를 하는 데는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의 대통령인 루스벨트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자유자재로 상대방과 서슴없이 대화를 했다고 한다. 매일 각 분야의 유명한 전문가를 만나는 대통령으로서 각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자유롭게 상대방과 대화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루스벨트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과 관련된 분야의 지식을 사전에 철저하게 연구한 후 만났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공이 무엇인지, 심지어는 상대방의 취미까지 세밀하게 정보를 입수하여 미리 습득한 후에 만났다고 한다. 그와 면담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대통령이 어떻게 그 어려운 것을 알고 있었을까’라고 생각하며 무척 놀라워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바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일종의 역할 연기를 제대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를 아는 것은 더 중요할 수 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는 상대방이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취미나 좋아하는 음식, 스포츠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두면 상대를 대하기가 훨씬 편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대를 안다는 것은 연구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잘못된 습관 고치기
보이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말자
“그 사람 신경질적이고 상대하기가 힘들어”, “만나는 사람마다 싸움을 거니까 상대도 하지 말라고”, 이런 말을 가만히 분석해보면 제3자를 아주 얕잡아보거나 욕하는 말이다. 상대와 단둘이 이야기하는데 왜 제3자를 욕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을 욕하기도 하고 흉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마다 습관적으로 남의 흉을 보거나 남이 가지고 있는 단점만 파헤치며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말을 듣고 있는 상대방은 “그런 말을 하면 안 돼요”라고 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속으로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욕하는 것을 보니 내가 없는 데서 나를 욕하겠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평소 잘 아는 선배 한 분이 있는데 이 분은 누가 보아도 실력이 뛰어나다. 게다가 상당히 미남이며 후배들에게도 잘해주는 선배이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선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배를 보는 사람들의 평은 좋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선배님은 다 좋은데 대화를 하다 보면 항상 남을 험담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평가해”라는 말이 확 퍼진 것이다. 문제는 선배의 습관이다. 남을 험담하는 습관을 자기 자신은 전혀 모른다. 한참 이야기해놓고도 자신이 어떻게 말했는지, 남을 험담한 것이 잘못된 일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저 습관일 뿐이다. 인간관계에서는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남을 험담하거나 욕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소문은 날개를 달고 금방 퍼져나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소문이 무섭다는 것이다. 처음에 본인이 한 말과 한 바퀴 빙 돌아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소문은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된다. 소문의 발원지에서는 쥐를 본 것을 가지고 나중에는 호랑이를 보았다고 소문이 난다.
남을 험담하고 싶어 입이 간지럽다면 다른 공상을 하고 명상에 잠기자.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입에 올리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주제는 얼마든지 있다. 굳이 사람을 주제로 하여, 그것도 험담과 욕설을 주제로 하여 대화를 할 필요는 없다. “박 과장은 능력이 너무 없어. 아주 형편없는 자식이야” 하기보다는 “박 과장은 요즘 힘든 일이 있는 모양이야. 고민거리가 있나?”라고 넌지시, 능력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대화를 해야 한다. 오늘 하루도 나는 과연 누구를 험담하고 욕설을 했는지 늘 반성하고, 주변에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칭찬하자.
상대방을 화나게 하는 휴대폰 통화
“여보세요, OOO씨 휴대폰입니까? 다름이 아니라……” 하면서 상대방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마침 휴대폰을 받은 당사자는 그 시간에 상담을 하고 있는 중인데,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 사람은 다짜고짜 자기 말만 하는 것이다. 적어도 에티켓이 있는 사람이라면 “죄송합니다만 OOO씨 휴대폰입니까?”라고 말한 다음 곧바로 “지금 통화가 가능하신지요?”라고 물어봐야 한다. 휴대폰을 받는 사람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화를 건 사람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운전 중인 경우도 있고 긴급회의를 할 수도 있다. “지금 통화가 가능합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상대방은 기분이 좋을 수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휴대폰뿐만 아니라 전화통화를 하는 데도 상당한 예의가 요구된다. 전화통화는 상대방을 볼 수 없으므로 상대방의 목소리만 듣고 파악해야 한다.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누구세요?” 하는 사람도 있다. 참으로 황당한 말이 아닌가. 또한 전화를 거는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밝혀야 하는데도 첫마디로 “나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누구인지 상대방이 잘 알고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굉장한 실례이다.
전화를 받을 때 예쁜 목소리로 매너를 갖추어서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상이 아주 좋겠는데. 목소리가 아름다운 것을 보니 미인이겠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목소리에 홀려 그날은 기분이 좋다. 얼굴도 보지 않은 채 목소리 하나만 가지고도 상대방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지금 통화가 가능하신가요?”라는 말까지 덧붙인다면 더할 나위 없다. 예쁘고 예의바른 목소리는 남성이라도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