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거침없이 달려라
강남구 지음 | 국일미디어
청춘, 거침없이 달려라
강남구 지음
국일미디어 / 2013년 3월 / 320쪽 / 13,500원
1부 꿈과 스토리로 스펙을 이긴다_ 강남구스타일
강남 스타일이라는 노래로 가장 덕을 많이 본 사람은 싸이가 아니라 바로 나다. 내 이름 강남구는 아들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버지께서 직접 지어주신 것이다. 특이한 이름 덕분에 나는 유명세를 탔다. 내 이름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넌 돈 많이 벌어서 강남 가서 살아야겠다.”라고 말했고, 나 또한 그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름 말고도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또 있다. 바로 23살의 CEO라는 나의 명함이다. 그것도 대학을 나오지 않은 고졸 CEO. 남들 다 가는 대학을 포기하고 일찍 사회에 뛰어든 나를 달갑게 보지 않았던 기성세대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나에게는 모든 시간이 수업 시간이었고, 모든 사람이 선생님이었고, 당면한 모든 것이 과제였다. 나는 스펙도 없다. 대외 활동이나 봉사활동란도 텅텅 비어 있고, 남들 다 있는 토익 점수도 없고, 명문대는커녕 학력란에 적을 학교조차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이력서보다 훨씬 화려한 누군가의 이력서를 보고 그 사람을 뽑는 CEO다. 여러분이 이력서를 위해 택한 스펙이라는 두 글자 대신에 내가 택한 꿈이라는 한 글자, 나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장. 청춘, 잃을 건 시간밖에 없다
나는 어려서부터 특별히 잘하는 게 없었다.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잘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잘하지 못한다면 잘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친구들을 모으는 것, 그 자리가 바로 리더의 자리였다. 그런데 리더가 되려면 다른 친구들보다 눈에 띄어야 한다. 공부나 운동을 잘하지 못하던 내가 선택한 것은 철학적이게도 ‘선택’이었다. 쉽게 말해 ‘의사결정’이다. 어릴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남구야, 이거 어때?”였다. 친구들이 나에게 자신의 선택을 위임하는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친구의 부탁을 귀찮아 한 적이 없다. 큰 고민이든 작은 고민이든 마치 내 일처럼 머리를 싸매고 답을 찾았다. 공부도 운동도 못하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반장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아이들에게 ‘내 선택을 위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주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나는 내 미니홈피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입는 옷이나 아이템을 판매하기로 하였다. 초기 자본금 2만 원으로 동대문 시장 등을 오가며 물건을 구해 미니홈피에 올렸다. 큰 자본이나 특별한 마케팅도 없이 반년 만에 학생으로서는 만져보기 힘든 천만 원대의 순수익을 냈다. 처음 벌인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두자 나는 돈의 맛을 알아버렸다. 이후 공부보다 사업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벗어나고 싶었던 그 시절이 어느새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잃을 게 없을 때 새로이 도전할 수 있다고.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잃을 게 조금이라도 있어야 잃지 않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하게 된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시간은 있다. 돈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시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잃을 게 시간밖에 없다며 무조건 했다.
사람이 잃었던 것을 되찾으면 더욱 집착하게 된다. 나 역시 어느 순간 더 큰 성공과 돈을 좇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돈으로 보였다. 그 시절 나에게는 목표도 돈, 수단도 돈, 나를 기쁘게 하는 것도 오로지 돈뿐이었다. 그 시기와 맞물려 아버지 사업도 다시 일어섰고, 잃어버렸던 원래의 내 것을 모두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찾지 못했던 단 하나, 그것은 바로 나의 꿈이었다. 더 이상 순수함을 찾아볼 수 없는 속물이 되어가던 나를 바로잡아 주신 분이 부모님이다. 하루는 어머니가 나를 앉혀놓으시고는 “너 그러다 사기꾼 된다.”라고 하셨다. 그 말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어린 나이에 큰돈을 만지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나에게 해주신 따끔한 조언이었다.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항상 돈이 아니라 꿈을 좇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다. 그 뒤로 나는 단순히 돈을 버는 창업이 아니라 의미 있는 창업을 목표로 삼았다. 현실에 부딪혀 내가 잊고 있던 원래 강남구의 꿈, 재능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는 일, 바로 그 꿈을 다시 찾은 것이다.
2장. 스펙보다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 되라
나의 최종 학력은 고졸이다.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은 철저히 내 선택이었다. 공부를 못해서 포기한 게 아니다. 대학에 가야 할 뚜렷한 목표도, 배우고 싶은 전공도 없었기 때문에 갈 이유가 없었다. 대학에 한정하지 말고 내가 잘하는 걸 찾은 후 그다음에 공부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잠시 자신의 전공에 대해 생각해보라. ‘왜 이 전공을 선택했는지’ ‘대학에서 몇 년 동안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그리고 ‘대학에서 배운 것이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를 한번 쭉 적어보라. 세 질문 중 하나라도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해결될 때까지 밤을 지새워서라도 고민해야 한다.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혹시 세 가지 질문에 모두 답하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대학에 다닐 이유가 없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세상으로 나와라. “지금까지 해온 게 있는데”라는 미련, “남들 다 하는 졸업은 해야지”라는 구색 맞추기는 나도 고민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아까워서 잘못된 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는 것은 더 큰 낭비이다. 그대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목표도 의미도 없이 허비하는 것이 안타깝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다. 대체 언제 행복해지려고 행복을 자꾸 유예시키고 하고 싶은 일을 미루는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면서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스펙만 좇다가 졸업을 한다. 그리고 아무 색깔도 없는 자신을 세상에 겨우 끼워 맞춰 살아가는 게 정말 당신이 대학에 간 이유인가? 대기업에 들어가서 엄청난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곳에 있든지 자기 색깔을 발현하는 원석이 되라는 말이다. 남들 다 가는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같은 경험을 할 필요는 없는 거다. 나는 그저 사람들과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선택한 일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부족하지만 내가 그 증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고졸의 CEO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2010년은 소셜커머스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때였다. 창업을 준비하고 있던 나는 그 물결에 동참했다. 남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느냐는 포부를 가지고 소셜커머스서비스 업체인 ‘반띵이’를 기획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반띵이를 접고 당시 소셜커머스 업계의 선두주자였던 티켓몬스터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것은 나에게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계속 리더의 자리에 있었고 소셜커머스 사업을 준비까지 했던 내가 인턴사원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도 어린 나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처음 해보는 조직 생활에서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일했다. 오기가 통한 것인지, 숨겨진 능력이 있었던 것인지 나는 티켓몬스터에서 세일즈 전체 1등이자 문제아가 되었다. 영업사원 1명이 평균 한 달에 5개의 딜을 따왔다면, 나는 한 달에 20개 이상의 딜을 따왔다. 온 회사가 나를 주목했다. 하지만 우수사원이라고 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딜을 올리기만 하면 클레임이 들어온다고 해서 CS(Customer Service)맨이라고 불렸다. 사람들은 “딜을 많이 따오면 뭐하냐, 문제가 생기는데”라며 내 실적을 깎아내렸다. 분명 남들보다 열심히 하고 잘 하는데 칭찬이 아닌 질타를 받으니 정말 힘들었다. 그때 내 나이 고작 21살이었다. 그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질타를 시기와 질투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당시 회사 직원들은 대부분 30대 초반이었고 내가 가장 어렸다. 나는 그곳에서 미운 오리일 수밖에 없었다. ‘나 같아도 내가 부럽겠다.’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고, 그저 내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릴 수 있었다. “우선 치열하게 임하라. 아무리 큰 실수를 해도 세상은 여러분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 실수를 하고 배우고 느끼면 되는 거다. 실수는 잘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기죽지 말자.”
티켓몬스터에서 질타도 많이 받았지만 나는 명실상부한 에이스였다. 회사는 나를 위해 전국적으로 각 지역을 확장시키는 ‘지역 확장팀 팀장’이라는 없는 직책까지 만들어 주었다. 두 단계 승진이라는 파격적인 초고속 승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부산 지역을 확장시키는 일이었다. 6주 만에 2개 지역을 4개 지역으로 확장시켜야 했다. 1개 지역을 확장하는 데 평균 한 달이 걸린다. 시험당하는 기분이었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다. 나는 바로 부산으로 투입되었고 미친 듯이 일했다. 처음에 부산 지사 직원들은 “저 어린애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무시했다. 하지만 나의 열정과 결과물을 보고 직원들도 점점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내 영업 철학은 감성 세일즈였다. 신뢰와 교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업체에 가서 청소도 도와주고, 점심도 꼭 업체에서 먹었다. 당시 부산의 모든 먹자골목의 가게를 다 들어가서 딜을 따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많아서 유배 왔다는 생각으로 정말 치열하게 일했다. 그 결과 나는 7주 만에 2개 지역을 7개로 확장하고, 매출은 4배 이상, 시장점유율은 16%에서 48%로 끌어올렸다. 그 후로 울산, 광주, 목포 등을 관리하고 체계를 바꾸면서 6개월 만에 본사로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본사로 복귀하면서 본부장으로 승진할 줄 알았다. 본부장이 되면 임원진 회의에 참석할 수 있고 회사의 전반적인 그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승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는 사원교육 팀장직을 제안했다. 이 업무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때 같은 소셜커머스 업체인 그루폰의 한국 지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22살인 나에게 회사는 임원진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고졸이라는 학력이 아닌 내가 이뤄놓은 결과물과 열정만으로 나를 인정해 준 곳이었다.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운 필드 경험과 소셜커머스 시장에 대한 방향 제시는 어린 나이라는 약점을 뛰어넘을 큰 자산이었다. 덕분에 나는 그루폰 49개국 지사 최연소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그루폰 코리아는 20조 원의 가치를 가진 글로벌 기업이었고 나스닥에도 상장되어 있는 기업이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 넓은 물에서, 더 높은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갈 이유는 충분했다. 성장은 나의 동력이었고 최고의 가치였기 때문이다.
3장. 멘토링 아닌 멤버링하라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부모님, 친구, 연인보다 멘토인 것 같다.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을 대신해서 이제 우리는 유명한 멘토들의 강연을 듣고 그들의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이렇게 멘토 포화 상태가 된 이유는 뭘까? 혹시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해서가 아닐까? 재미있는 것은 우리 각자가 너무나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데 멘토로 꼽는 사람은 하나같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100만 명의 청춘들이 성공한 사업가를 멘토로 꼽고, 300만 명의 청춘들이 자신이 다니지도 않는 대학의 교수를 멘토로 꼽는다. 과연 여러분은 그 멘토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인생의 갈피를 잡고 있는가?
나의 첫 번째 멘토는 20살 때 함께 사업을 했던 나의 사촌 형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사촌 형을 찾아갔다. 그리고 형이 하고 있던 Kbrothers라는 회사에 들어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Kbrothers는 뒷면에 광고가 담긴 A4 용지를 무료로 공급하는 서비스 업체이다. 형이 하고 있는 일에 내가 투입된 것이기 때문에 나는 형이 모아놓은 자료와 인맥을 거저먹은 셈이다. 나는 얄밉게도 형을 철저히 벤치마킹했다. 사업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사람을 만날 때의 매너나 대화법, 손짓과 눈빛 하나까지 모두 다 따라 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따라잡으려 노력해도 형은 항상 나보다 앞서 있었다. 그게 내가 형을 멘토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형과 같이 했던 사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일로 인해 형과 나는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고, 지금은 둘도 없는 좋은 사촌이자 사업 파트너로 잘 지내고 있다. 20대의 하루는 변화하기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언만 있다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런 잠재력이 있다. 20대가 당장 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 먼 미래에 대한 조언만 듣기 때문이다. 정말로 멘토가 필요하다면 다 아는 뻔한 이야기 말고 당신만의 멘토를 찾아라. 진정한 의미의 멘토는 당신보다 한 걸음 앞서 있는 누군가다. 그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가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라. 그래야 당신의 현재가 변한다.
나의 멘토는 언제나 한 명이다. 하지만 언제나 같은 사람은 아니다. 나의 현재를 바꿔줄 사람이 진정한 멘토라면 내 현재가 발전함에 따라 멘토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 티켓몬스터에 입사했을 때 나의 멘토는 당시 영업 1등이었던 정규화 팀장님이다. 연세대를 졸업했고 티켓몬스터 개국 공신인 그는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가 당시에 독보적인 에이스였기 때문에 나는 당장에 그를 따라잡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대들거나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진짜 누군가를 뛰어넘고 싶을 때는 그 사람과 적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사수로 모시면서 그의 영업스타일과 일하는 방식,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까지 모두 모니터링했다. 그리고 나만의 장점과 스타일을 살려서 ‘강남구스타일’로 재탄생시켰다. 처음 하는 조직 생활이지만 좋은 롤 모델이 있었기에 나는 빠른 시간에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언제나 내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멘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성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가 그루폰 임원진으로 스카우트된 후 나의 멘토는 자연스럽게 그루폰 코리아의 조경수 부사장님으로 바뀌었다. 그는 일을 아주 쉽게 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이 우선인지에 대한 판단이 아주 명확했다. 원래의 꿈인 창업을 위해 그루폰 코리아를 퇴사하고 나만의 회사를 운영하는 지금 나의 멘토는 티켓몬스터 신현성 대표님이다. 티켓몬스터를 떠나 그루폰 코리아로 옮기고 지금은 내 힘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어찌 보면 나는 이제 대표님과 업무적으로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히려 나의 포부를 알아주고 지지해주면서 이제는 직원과 대표가 아닌 대표 대 대표로 나를 인정해주신다. 대표님을 보면서 작은 벤처회사가 대기업이 될 수 있는 힘은 리더가 자신과 팀원 그리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나의 멘토는 변할 것이다. 내가 성장하고 역할과 목표가 바뀜에 따라 나의 멘토도 내 주변의 누군가로 옮겨갈 것이다. 당신도 성장하고 싶다면 현재를 바꿔주는 멘토를 찾고, 변해가는 현재에 맞게 멘토를 재설정하라. 당신의 지금 위치에서 가야 할 목표를 찾아서 방향키를 잡아라. 열심히 달리다 보면 분명 당신의 삶도 변할 것이다.
2부 청춘은 ingstory다_ ingstoy는 함께 꾸는 꿈
사막을 달리는 마라토너 - 윤승철
윤승철, 그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아는 사람이다. 자신이 물을 마시지 않고 며칠을 버틸 수 있는지, 얼마나 발이 아파야 뛰는 것을 멈추는지를 안다. 자신을 끝까지 몰고가본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는 왜 사막 마라톤에 도전했을까? 돈이 한두 푼 드는 일도 아니고 위험하며 완주한다는 보장도 없고 딱히 스펙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