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경영 36계
소공자 지음 | 코스모스북
우주경영 36계
소공자 지음
코스모스북 / 2012년 12월 / 434쪽 / 18,000원
우주경영 36계
36계의 탄생
‘36계 줄행랑’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가 강하면 달아나라’는 뜻이다. 언뜻 들으면 매우 비겁한 자의 행동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 어느 때 어느 곳에든 더 강한 강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승자는 있을 수 있다. 강자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만물은 언젠가 파괴된다. 그러나 세상 모든 만물의 형태가 사라진다 해도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곧 이 우주다. 또한 지구상의 모든 것들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십억만 년이 지났어도 이 지구는 없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곧 영원한 승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36계는 이로부터 태어났다.
한편, 인간이 우주의 비밀을 밝혀 놓은 학문은 무수히 많지만, 학설이 아닌 몸과 눈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학문이 있다면, 그것은 곧 중국 고대의 기하학적 도표로 구성된 「주역(周易)」이라는 성리학이다. 우리 눈에 바르게 존재하고 있는 모든 만물은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힘과 안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힘이 동시에 균등하게 있기 때문에 지금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힘, 이것을 주역은 ‘양(陽)’이라고 한다. 그리고 안으로 끌어당기고자 하는 힘, 이것을 주역은 ‘음(陰)’이라고 한다. 이렇게 음과 양이 균등한 상태로 있을 때 만물은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여, 음양의 균등한 상태를 ‘태극(太極)’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가려고 하는 힘과 들어오고자 하는 힘이 동일하게 존재한다고 해서, 나가려고 하는 성질과 끌어당기는 성질마저 정지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때문에 끌어당기는 힘이 약해지면, 나가려는 힘은 곧 형태를 부숴 버리게 되고, 끌어당기는 힘만 남게 되면 그 형태는 조각나 버린다. 결코 어느 한쪽만 존재할 수는 없다. 이렇게 두 성질이 동시에 있기 때문에 세상은 수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코스모스센타는 이와 같은 현상을 ‘아프락사스(Abraxas)의 원리’라고 한다.
덩어리가 점점 커지기 위해서는 응축력이 절대 필요하다. 지구 위의 모든 것들이 부서져도 멀리 사라지지 않고 지구에 남을 수 있는 것은, 지구가 갖고 있는 응축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응축력에 의해 지구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용수철이 응축하면 할수록 멀리 튀어오를 수 있듯이, 36계는 바로 이렇게 구축력을 토대로 창조되었다.
36계의 구성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움직이고자 하는 성질의 세계와 응축하고자 하는 성질의 세계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 움직이고자 하는 양의 성질의 세계를 주역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류와 같다 하여 하늘(天)이라 칭하고, 응축하려고 하는 성질의 세계는 대지와 같다 하여 땅(地)이라 칭한다. 그 중간에 끌고 미는 불균형을 통하여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사람의 정신력이 하늘과 같은 기류를 움직여 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여 땅과 하늘 사이에 만물의 주재자로 사람(人)을 두었다. 주역은 이렇게 세 가지 세계를 한 몸으로 묶어 그 몸을 괘(卦)라고 한다. 우리나라 태극기 네 귀퉁이에 그려져 있는 네 개의 모양이 각각 하나의 괘인 것이다. 즉 태극기는 태극을 중심으로 네 개의 괘를 방패삼아 유지한다는 뜻이다.
주역의 역(易)은 곧 변화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나가고자 하는 성질과 끌어당기고자 하는 성질이 동시에 있는 한, 변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변화에는 ‘현재에서 미래로’가 항상 있게 마련이다. 때문에 주역은 두 개의 괘를 겹쳐서 아래로부터 위로 현재에서 미래를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우리도 어떤 형태를 척 보면 그것이 단단할 것인지 흩어질 것인지 알 수 있듯이, 그 형태가 그 상태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괘가 겹쳐져 있는 상태, 그것이 정확한 형태를 표현한 주역이다.
영원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응축력을 갖추어야 한다. 분명한 응축력만이 영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36계는 모두가 끌어당기고 있는 여섯 개의 음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여섯 개의 음 에너지는 모든 양 에너지를 흡수하여 응축되었기 때문에, 용수철이 튀듯 생명력을 갖는다. 그래서 주역은 이것을 대지(大地)라고 이름 붙였으며, 대지는 생명력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석한다. 응축하려는 에너지가 확실해야, 구축할 수 있는 창조력(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생명력이 곧 계(計)다. 계(計)는 현재와 미래를 뜻하는 여섯 개의 음 에너지를 뜻하여 ‘6’이라고 표시하며, 그 ‘6’이 또다시 여섯 개의 창조력을 갖는다 하여 6 곱하기 6은 36, 즉 ‘36계’가 탄생한 것이다.
36계는 곧 영원한 구축을 위한 창조력이 서른여섯 번의 작용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처방인 것이다. 그중 서른여섯 번째가 곧 우리가 알고 있는 ‘36계 줄행랑’이라는 방법이다. 36계는 이상에서 밝힌 바와 같이 총 여섯 개의 상황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으며, 여섯 개 각 상황마다 여섯 가지 대응책으로 그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여섯 개의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대응할 수 있는 여섯 가지 대응책을 합쳐서 총 서른여섯 가지 계책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제1부 승전계 - 차도살인: 남의 힘을 빌려 적을 쳐라
본 36계는 엄격히 말해, 승리를 위한 ‘힘의 법칙’을 근거로 한 것이지만, 이 법칙의 작용에 걸리는 것은 자신의 이득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뭔가 열중해 있는 사람은 강풍이 아닌 다음에야, 바람이 흐르는 것을 미처 느낄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자기 이득에 눈이 어두워지면, 벌어지는 상황이 위계(僞計)에 의한 것인지 사실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다. 모든 위계로부터 벗어나고, 또 위계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무욕(無慾, 우주심)을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주심은 코스모스센타 용어로, 뻗어나가는 마음을 말한다. 그래서 우주심은 항상 앞을 살필 수 있다. 반대로 끌어당겨 뭉쳐진 마음은 자아(ego)라고 하며, 자아가 욕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앞을 살피지 못하고 유혹에 빠져 결국 36계에 걸려드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진정 36계를 수족 움직이듯 자유롭게 구사하길 바란다면 먼저 그대의 욕심에 자신이 빠져들지 말라. 그래서 마음이 진정 여유롭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여유인 것이다. 그리고 그 진정한 여유를 통해서라야 잽싼 몸놀림을 취할 수 있다.
고대 병법서를 살펴보면, 동맹국이나 남으로부터 원조를 바라는 것은 하책(下策)이고, 적으로부터 적의 힘, 적의 경제력, 적의 지모(智謀) 등을 교묘히 빌려서 적을 붕괴로 몰고 가는 것을 최상으로 하고 있다. 싸울 힘이 없다고 해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 있는 상대의 힘을 통해 상대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차도살인이라 함은 곧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죽인다는 뜻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여유다. 만약 여유가 없다면 당신은 강한 적을 보는 순간, 싸우기도 전에 먼저 마음이 패하여 도망치다 뒤통수를 맞는 격이 될 것이다. 여유는 비록 갖춘 힘이 없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강한 마음의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 중, 중국 군대에서는 싸움이 불리해지자 일본군에게 투항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 그중 중요한 직책에 있던 간부급이 적측에 넘어간다면 비밀이 누설되어 적은 대활약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 중국에서는 무선으로 다음과 같은 명령을 지시했다. ‘구국 용사 OO가 신명을 바쳐 적지에 뛰어들었다.’ 물론 그것은 암호 무선이었지만, 일본군이 충분히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보낸 말이다. 또 때로는 ‘반역자 OO가 도망쳤다. 일본군 점령 지구에 잠입해 있는 게릴라는 그를 죽여라’ 하고 지시했다. 그들의 무선이 반역자라고 욕을 한 사람은 스파이이고, 구국용사라고 칭찬한 사람은 도망자다. 갖고 있는 정보를 일본군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도망자를 없애려고 칭찬한 것이다. 내가 죽일 도망자를 적의 손과 적의 칼로써 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결국 차도살인이란 이간모략이다. 이런 뻔한 책략에 말려들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생각되지만, 우리 주위에서 의외로 많이 벌어지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끼리의 심리에는 욕심으로 인한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할 줄 아는 자와 못하는 자, 동향인 자와 아닌 자, 국제 활동을 경험한 자와 못한 자, 잘사는 자와 못사는 자, 이것이 사회의 팀워크를 문란하게 한다. 리더는 물론 이것을 조정해야 하지만 그보다도 모두가 잘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무욕(無慾)을 통해 정진하는 것, 그것은 해보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제2부 적전계 - 격안관화: 진정한 경영법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우리 인간도 자신이 처해 있는 자기의 울타리를 떠나서는 결코 잘될 수가 없는 것이다. 장애란, 그리고 못 견딜 것만 같은 장벽이란 마치 물속의 바위나 돌과 같아서, 오히려 그로 인해 영양분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물고기가 물을 떠나듯 자신의 일터를 떠나는 것이다.
사실 성공을 했다는 사람들 모두는 똑같은 장애나 장벽을 만났을 때 오히려 그 장애로부터 중요한 배움을 터득하여 극복하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자신의 꿈을 실현시킨 사람들이다. 즉 바위 위에 휴식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사실 물고기보다 못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인류는 문명을 창조했고, 물고기는 주어진 자연에 살고 있을 뿐, 인간과 같은 문명과 문화를 이룩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장애나 장벽을 피해 일터를 떠나는 사람보다는 장애나 장벽에 휴식처를 만들어 사는 물고기가 보다 훌륭하지만, 물고기는 결코 문명을 이룩해 낼 수 있는 경영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다면 과연 인류가 물고기보다 훌륭한 점은 무엇일까? 물고기는 물이 없이는 살 수 없지만, 물이 있기 때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즉 물에 의해 살 뿐, 물의 소중함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가정과 직장, 더 나아가서는 사회와 국가, 그리고 자연에 이르기까지 그 소중함을 자각할 수가 있다.
일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어려운 장애를 만났다 하여 결코 그 일터를 떠나지 않는다. 사회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사회에 해가 되는, 질서의 파괴나 공중도덕 위반 등을 하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사회를 향상시키기 위한 문화가 탄생하며, 직장과 가정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문명이 창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안목과 노력이 곧 경영인 것이다.
만일 직장에서 꼴 보기 싫은 사람이나 어려운 장벽에 부딪힌다 하여 그 직장을 떠나려 하지는 않는가? 그대가 그와 같은 이유로 자주 직장을 바꾼다면 그대는 틀림없이 물고기보다 못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일터의 소중함을 아는 자. 일의 고마움을 아는 자. 그리고 어려운 난관을 극복해 내는 슬기. 바로 이와 같은 관문을 극복했을 때 그대는 인생에 있어 진정한 경영법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물속의 바위는 틀림없이 물고기에게는 장벽일 것이다. 마음의 눈이 물속에 있는 한 분명 장애로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눈이 물 밖에 있다면, 그리하여 물의 소중함을 안다면 그 물고기는, 바위란 단지 장애를 주기 위함뿐만 아니라 그 물고기를 살릴 수 있는 영양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공장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훌륭한 휴식처도 제공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영의 눈’이다.
고난 뒤에는 반드시 영양분이 숨겨져 있다. 경영에 능통한 자는 고난을 통해 영양가를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고 있으며, 마음껏 자유로울 때 장애가 나타날 수 있는 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제3부 공전계 - 타초경사: 지혜로 싸워라
‘매사에 조바심을 가져라.’ 이것은 선도(仙道)의 장생술(長生術) 제1수칙이다. 또한 장생의 최고의 비결이라 할 수 있는 경지는 마음의 평정이다. 조바심과 평정, 이것은 무슨 함수 관계일까?
어떤 사람들은 ‘못살아도 마음만 편하면 좋다’라든가, ‘물질보다는 마음이 우선’이라는 등의 말을 자주 한다. 결국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생활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먹을 것도 없이 어떻게 마음이 편안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와 같이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 세 끼는 먹을 수 있으며, 세 끼가 안 되면 두 끼라도 먹으며 살면 되지 않겠느냐는 뜻이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세상이 결코 그 사람의 몸을 편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흐르는 물 위에 뗏목을 만들고 앉아 마음만 편히 가지면 된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물결은 항상 잔잔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뗏목이 큰 바위에 부딪혀서 그 사람을 떨어지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갑자기 절벽에서 떨어져 아예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사람들의 말은 단지 무능에 대한 정당화이며, 또 그런 자세로 살기 때문에 결국 무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나라 때 당도현(當塗縣)의 지사인 왕로(王魯)라는 사나이는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관리였다. 어느 날, 주민들이 연명으로, 그의 부하들이 뇌물을 받았다고 고발해 왔다. 깜짝 놀란 그는 얼떨결에 그 고발장에다 이렇게 써 놓았다. ‘너희들은 풀을 쳤지만, 이것은 이미 뱀을 놀라게 했다.’ 즉 백성들이 친 것은 풀뿐이지만 나로서는 풀 속에 숨어 있는 뱀이 놀라듯 깜짝 놀랐다는 뜻이다. 타초경사는 이와 같은 유래에서 나온 이름이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으면 정찰로써 확인하여 정황을 완전히 파악하고 나서 행동해야 한다. 정찰을 거듭하는 것은 숨어 있는 적을 발견하는 중요 수단이다. 적의 병력이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은 음모를 숨겨 놓고 있다는 증거다. 맹목적으로 자기 힘만 믿고 쳐들어갈 것이 아니라 그 선봉을 모조리 수색할 필요가 있다.
손자병법의 손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군의 진로에 험한 지형이나 못이나 늪, 수초가 무성한 습지, 숲이나 잡풀로 덮여 있는 곳이 있으면 신중히 수색할 필요가 있다. 이것들은 모두 적이 비계(秘計)를 꾸미고 있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매사에 조바심을 통해 반응을 살펴 승리를 취하지만, 지혜가 없는 사람은 무조건 취하고자 하는 욕심만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이상한 반응을 일으켜 도리어 고된 일을 만든다. 승리자는 일어날 수 있는 반응을 미리 흡수하여 그 결실을 취하며, 패배자는 먼저 취하고자 행동하기 때문에 그 반응으로 결실을 잃는다. 그러므로 승리자는 항상 정황과 함께 살며, 조바심을 통해 상황의 흐름을 항상 감지하며, 그 상황을 통하여 승리를 창조하는 것이다.
제4부 혼전계 - 혼수모어: 상대가 강할 때는 먼저 그 균형을 깨라
건재하다는 사실은, 곧 적당한 균형이 잘 조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힘이 센 사람도 균형을 잃고 비틀거릴 때는 그 힘을 사용할 수가 없다. 중심은 곧 균형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며, 중심이 힘이 되어 나타나기 위해서는 적절한 균형에 의해 사용되어야 한다. 모든 조직이나 또는 사회 역시 정치, 경제 모든 면이 골고루 균형이 잘 잡혀 있어야만 부강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이 크거나 작으면 그만 중심을 잃기 때문이다. 각 조직을 경영하는 경영자나 통치자가 고심해야 할 과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적 생활에 있어서도 역시 같은 적용을 받는다.
우리는 흔히 ‘나’라고 자신을 지칭했을 때, 그 ‘나’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일컫는 자아를 말한다. 그것은 아무런 책임도 갖지 않으며, 외부와 아무런 연관도 갖지 않는다. 그것을 코스모스센타는 ‘개인적 자아’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나’가 첫째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을 가지며,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직장, 사회, 국가, 크게는 인류와 세계, 또는 자신의 연구 분야 등, 자신과 함께하는 세계관을 갖는다. 이때의 자아는 개인적 자아와 구분하여 코스모스센타는 ‘사회적 자아’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