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을 버리고 자부심을 가져라
박모란 지음 | 글로세움
자존심을 버리고 자부심을 가져라
박모란 지음
글로세움 / 2012년 11월 / 239쪽 / 13,800원
가위로 완성하는 헤어 디자인계의 가우디 - '파비엔에이치' 민경 원장
아트커트를 넘어 힐링커트를 선보이다
"과학적 이론에 근거한 좋은 헤어 디자인은, 튼튼한 뼈대에 인테리어까지 잘 갖춘 건축물과 같습니다. 헤어를 점으로 인식하여 1cm씩 섹션을 나눠 잘라가는 커트는 손님마다 다른 얼굴형과 두상 구도에 따라 전체적인 조화를 만듭니다."
민경 원장은 비달 사순의 정규 코스를 마친 이후, 오랜 기간 영국을 오가며 만든 자신만의 커트 철학을 얘기한다. '아트커트', '헤어성형'이 주특기로 대변되는 민경 원장의 커트 테크닉은 비달 사순의 미용철학과 교육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민경 원장은 1996년 미국으로 떠나 비달 사순, 토니앤가이, 피봇 포인트, 다다 아카데미 등 다양한 교육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실력을 쌓았다. 그 후 2010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휴가를 사용해 영국 런던의 비달 사순을 방문해 트렌드를 읽고 있다. 그녀는 21년 차의 교육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트렌드를 한국 정서에 맞는 스타일로 재해석해 풀어낸다. 바로 '아트커트'가 그것이다. 아트커트는 유니크하고 구조적인 그녀만의 디자인과 커트로, 부피감과 형태를 '굿 밸런스'로 추구하는 커트 기술이다.
2012년 민경 원장은 '아트커트'의 상위개념인 '힐링커트'로 '파비엔에이치Fabien.H'의 역할과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이 또한 비달 사순의 선견지명과 일맥상통하는 그녀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단순한 휴식을 넘어선 치유와 자연으로의 회귀가 헤어 디자인의 초점이 된다. 완성도 있는 디자인을 위한, 한 시간에 이르는 커트 시간은 손님에게 안정감과 심리적 충족감을 준다. 다음 손님을 위해 쫓기는 불편한 마음 없이 존중 받고 편안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볼륨만을 위한 펌을 지양하고 커트로만 볼륨을 살려 불필요한 드라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녀의 오랜 손님들이 연령대와 상관없이 모근이 튼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잦은 드라이는 앞머리 모근을 손상시키고 탈모를 부릅니다. 나이가 들면 점점 모량이 줄어드는 앞머리 때문에 드라이를 계속하는 악순환을 커트로 차단하는 것이지요."
민경 원장의 커트는 '자신감 회복'이다. '힐링커트' 중 가장 근본적인 치유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손님이 가진 이목구비 중 매력적인 부분은 돋보이게 하고, 납작하고 굴곡진 두상은 공과 같이 볼륨을 실어 밸런스를 갖추게 한다. 한 치의 양보 없는 그녀의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완성도 높게 표현한다.
할리우드도 극찬한 그녀의 디자인
미용의 첫 시작에서 '이가자 헤어비스'의 교육이사까지 16년을 함께한 민경 원장은 이가자 원장을 '마음의 스승'으로 여기고 있다. 스태프 시절 민경 원장은 바닥을 쓰는 것조차 당당하고 즐거웠다. 민경 원장이 커트에 빠진 계기는 이가자에 교육부가 생기면서부터였다
민경 원장은 커트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연고지도 없는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 35번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앞 '본소피' 살롱에 입사하는 조건으로 한국인 원장의 집에서 기거를 시작했다. 민경 원장이 가진 돈은 200만 원이 전부였다. 물론 영어도 못했다. 민경 원장은 귀동냥으로 뉴욕에서 자리 잡은 1세대 한국 헤어 디자이너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그에게 전화했다. 5애비뉴 34번가에 위치한 '김선영 뷰티 살롱'은 디자이너들에게 소정의 비용을 받고 자신이 50%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좋은 강사를 초빙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민경 원장은 자신의 사정을 얘기하고 뵙고 싶다고 했다. 김선영 원장은 자신도 디자이너들을 키워 놓으면 그만두고 나가는 아픔이 많았다며 민경 원장의 진심을 읽고 받아들였다.
김선영 원장은 3일간 진행되는 호주 명문 미용학교 '피봇 포인트Pivot Point' 강사의 강의를 들어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경 원장은 당장 일을 하고 싶다고 했고, 주 5일 근무를 허락 받았다. 6개월 정도 근무할 때쯤 김선영 원장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뉴욕 다운타운에 위치한 '다다 아카데미'에서 살롱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민경 원장도 5일은 일을 하고 2일은 교육을 받았다. 그때 클린섹션Clean Section(커트를 하기 위해 나누는 부분을 깨끗하게 뜨는 법), 스몰섹션Small Section(커트를 하기 위해 나누는 부분을 1~2cm의 적은 양으로 뜨는 법)의 개념을 처음 배웠다. 배우는 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민경 원장의 커트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해졌다. 2001년 런던 비달 사순 정규 과정을 들으면서도 그녀만의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창고를 개조한 방에서 자르고 또 자르고 자신의 것을 만들어 갔다. 교육 과정에서 졸업 작품을 위해 6시간 동안 머리를 자르기도 했다. 자신만의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한 고투였다.
용기와 신념이 만든 무한의 목표
민경 원장은 미용계에서 가장 학구적인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후배를 양성하는 교육자로도 활동하는 그녀의 신조는 '준비되지 않으면 교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교육자는 교육생들에게 완벽한 이해와 기술습득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자신만의 커트 세계를 확립한 그녀이지만 공부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민경 원장은 현재 성균관대 디자인대학원 디자인매니지먼트과에 재학 중이다. 브랜드 매니지먼트 수업을 통해 '파비엔에이치'의 확고한 브랜드 전략을 세웠으며, 디자인 씽킹, 디자인 이노베이션 등의 과목을 공부하며 이를 브랜드 전략에 접목시키고 넓혀 나갔다.
"살롱 이름인 파비엔에이치Fabien.H는 브랜드 콘셉트이자 경영이념입니다. Freedom(자유), Art(예술), Brave(용기), Innovation(혁신), Expression(표현), New(새로운), Hair(헤어)의 약자이지요. 파비엔에이치의 첫 글자 F, 즉 Freedom은 혁신적인 스타일을 제공하는 디자이너로서 느끼는 자유와, 드라이나 손질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볼륨이 살아나는 스타일을 통해 손님이 느끼는 자유를 말합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식지 않는 학구열만큼 집념이 강한 민경 원장은 2008년 '파비엔에이치'를 오픈했다. 당시 청담동 살롱이 스폰화되면서 자본에 의해 정체성이 퇴색되는 가운데 민경 원장은 협소하지만 내실 있고, 색깔이 분명한 살롱 오픈에 역점을 두었다. 그런 그녀의 살롱 확장 이전은 '파비엔에이치'를 아끼고 성장을 지켜봐준 고객을 향한 답례이기도 했다. 이제 그녀는 보다 적극적으로 '파비엔에이치'를 알리고, 탄탄한 베이식 교육을 담당하는 아카데미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민경 원장은 비달 사순의 테크닉과 자신이 만든 테크닉을 더해 재교육에 목마른 지방 원장이나 헤어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5명 정원으로 시작되는 이 아카데미의 특징은 완벽한 이해가 끝날 때까지 진행된다는 것이다. "커트 시 모발의 데미지, 손가락의 텐션, 모발의 양, 커트가 시작되는 점, 선, 면의 역할 등을 완벽하게 교육할 것입니다. 교육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저서 『노트북』을 함께 부교재로 사용할 것입니다." 기술 교육은 물론 매달 한 권씩 책을 읽고 챕터별 토론을 벌이며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시간을 갖는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디자이너 개인의 역량 확대를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키우고자 하는 것이다.
'파비엔에이치'의 디자이너 승급 시험은 프레젠테이션의 형식을 띤다. 커트 테크닉을 기반으로 전체 콘셉트를 잡고, 그 콘셉트에 대한 인문학적, 예술 사조에 대한 역사를 발표하고 모티브를 헤어에 접목한다. 발표와 더불어 직접 시술한 모델들이 쇼와 같은 형식을 갖는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풍부한 역량을 가진 디자이너로 탄생한다는 것이 그녀의 승급 시험의 취지다. 그녀는 이러한 아카데미와 후배 양성을 통해 더욱 진보적인 꿈도 계획하고 있다.
헤어 디자이너와 포토그래퍼의 사이 - '애비뉴준오' 김세호 원장
헤어 + α로 프로페셔널에 힘을 더하다
김세호 원장은 두 가지 버전의 명함이 있다. 하나는 '애비뉴준오'의 크리에이티브 팀 디렉터로서, 또 하나는 '스튜디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포토그래퍼로서의 명함이다. 국내에서 헤어 디자이너와 포토그래퍼라는 두 가지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은 김세호 원장이 유일하다.
헤어 디자이너이자 포토그래퍼인 그의 작품세계는 다양하고 색다르며 신선하다. 유럽에서 각광 받는 발레리나 김지영 씨와의 작업도 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작업 중 하나이다. 그녀의 헤어스타일을 만들고 나면 사진으로 남긴다. 재미있게 작업하고 그 결과물을 보고 서로 평가하고 흥분하기도 한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소통을 해야 합니다. 인물 사진에 비중을 많이 두다 보니 피사체에 대한 공감이 많아야 편해지고 좋은 작업이 나옵니다. 제가 가진 열정을 헤어 디자인과 포토,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으로 표현하여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김세호 원장은 김지영 씨의 발레를 보고 움직임이 둥글둥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손, 팔꿈치로 넘어가는 곡선이 그렇게 보였다. 다양한 컬을 통해 텍스처가 다른 러프 컬, 일반적인 컬 등 둥근 느낌의 헤어스타일로 표현해 '무제Untitled'라는 제목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가 느끼는 디자이너와 포토그래퍼와의 연계성, 그리고 이를 통한 시너지는 무엇일까.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졌기에 인물 사진을 찍을 때 누구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피사체와 교감하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헤어 연출은 덤입니다. 이 때문에 화보 진행에 있어 헤어 스타일링과 사진 촬영을 같이 진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김세호 원장은 헤어 디자이너가 거울이라는 프레임 안에 비친 고객의 머리 형태와 균형을 잡는 사람이라면, 포토그래퍼는 카메라 뷰파인더란 프레임 안에 모델을 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두 가지의 직업을 병행한 덕분인지 한 번도 매너리즘이나 슬럼프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헤어를 하며 생기는 스트레스를 사진을 하며 풀 수가 있었고, 사진을 하며 남들이 못 보는 디테일함과 느낌을 헤어 디자이너의 감성을 통해 풀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학으로 이룬 열정, 김중만의 제자가 되다
김세호 원장의 독특하고 색다른 프로필의 시작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사준 캐논 카메라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그의 머리를 해주던 두 명의 헤어 디자이너가 영향을 줬다. 고등학생 시절 학교 앞 개인 살롱에서 남자 원장에게 머리를 맡겼다. 당신 김 원장은 친구들과 함께 '알아서'가 아닌 '어떻게' 해달라고 주문하는 범상치 않은 감성의 고객이었다. 1980년대 후반,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인 더블 커트Double Cut(윗부분은 볼륨감 있고 아랫부분은 슬림하게 한 커트)를 외국 잡지에서 본 대로 요구했다. 두발검사로 오래 못 갈 헤어스타일이었지만 김세호 원장과 친구들의 감각을 충족시켜 주는 '실력 있는 원장님'으로 기억하고 있다.
부모님의 반대로 사진도 미용도 전공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는 고교 시절부터 유학을 가기 위해 토플 준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이철 헤어커커' 본점에 들어가 스태프 생활을 시작했다. 디자이너 바로 전 단계인 '스탭장' 제안을 거절하고, 김 원장은 영국 비달 사순 정규코스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영국 유학을 통해 기술적인 테크닉은 물론 선진 시스템을 배우고 싶었다. 비달 사순 정규 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주중에는 공부하고, 주말엔 비달 사순 살롱에서 일했다. 비달 사순 살롱에서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허락을 얻어냈다.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급여 없이 샴푸라도 하겠다며 토요일엔 살롱으로 향했다. 마사지 개념이 없던 그곳에서 김 원장은 두피마사지로 팁을 받는 샴푸 잘하는 미용인이었다.
영국 비달 사순 정규 과정을 이수한 그는 기술적인 부분에도 실력을 발휘해 한 클래스의 최우수 학생에게만 주어지는 'Best Student' 상도 받았다. 그는 영국에 있는 동안 비달 사순의 크리에이티브 코스, 런던 비달 사순 어드밴스드 아카데미, 토니앤가이의 어드밴스드 코스, 웰라의 스튜디오 컬러 코스 등을 모두 수료했다.
귀국 후 김세호 원장은 '조성아뷰티폼'에 입사해 자신의 길을 확고히 다져갔다. 헤어 디자이너는 기술에 대한 연마 과정이 길어 한 우물을 파기에도 어려운 현실에서, 그는 독학으로 본격적인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 사진을 업으로 시작한 사람 이상으로 이론에 집중했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실습을 하며 카메라의 기계적인 이해에 매진했다. 화보의 헤어 스타일리스트로 참여하게 되면 포토그래퍼들의 촬영 기법이나 조명을 어깨 너머로 유심히 살폈다. A4용지에 촬영 환경 및 조명 세팅을 그려놓고 촬영을 마치면 자신의 카메라로 연습을 했다.
사진에 대한 정규 교육의 기회가 없었던 그에게 포토그래퍼로서 역량을 키울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초급 디자이너가 주로 담당하는 화보촬영을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경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출장을 나섰다. 패션매거진 《마담 휘가로》 화보의 담당 포토그래퍼가 김중만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하는 3일간의 촬영 스케줄에 직접 참여했다.
"김중만 선생님이 사진집 『애프터 레인After Rain』을 출간했던 2003년이었습니다. 그 책을 가져가 사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진을 찍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내일 올 때 사진 갖고 와 봐라'고 하셨지요. 선생님은 제 사진을 보시고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으니 도와주겠다'며 과제를 내주셨어요. 그리고 선생님의 화보 촬영이 있을 때 헤어스타일리스트 역할을 해드렸죠." 그는 김중만의 제자가 됐다. 그리고 김중만의 개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포토그래퍼가 됐다.
"'사진을 찍기 전에 기계를 제압하라. 네가 가진 그 카메라를 네가 네 맘대로 컨트롤할 때 비로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김중만 선생님의 말씀은 제가 더 노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습니다. 저도 주위에 사진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말입니다. 비단 사진에 국한되지 않고 미용에도 해당되는 말이지요. 예전과 달리 장비와 약품을 많이 사용하는 현재의 미용 비즈니스에 그들의 사용방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열린 자세 그리고 색깔 찾기
그는 헤어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과 당당함이 밑천이다. 또한 자신 스스로가 만족하는 기술력으로, 진정한 프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기 검열을 마쳤다. 그는 항상 자만을 배제한 생각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 그 변화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여 자신의 색깔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은 기술뿐만 아니라 접객에도 해당된다고 한다.
자신의 몸을 날이 선 감각에 비유하는 그는 길을 걷는 중에도 영감을 얻곤 한다. 그냥 보는 게 아니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캔하듯 훑는다. 멀리 있을 땐 전신, 중간쯤 있을 땐 상반신, 가까이 있을 때는 클로즈업으로 본다. 현재 사람들의 모습은 그 시대의 삶을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물의 형태나 질감에서도 영감을 얻는다. 그래서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철학을 좋아한다. 안도 다다오의 저서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3번이나 읽었다. 이 책의 주요 문구를 형광펜으로 밑줄을 칠 정도로 아끼는 애장도서 중 하나다. 5번 읽으면 편지를 쓸 계획이라는 그는 오사카 사무실 주소도 알아놓았다고 한다. 사인을 받기 위해서다. 프로복서 출신의, 독학으로 건축을 배운 안도 다다오는 건축물에 후광을 주는 대가로 알려져 있다. 김세호 원장은 자연과 함께하는 일본의 전통 가옥을 자신의 의지로 표현한 그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그의 철학이 크리에이티브 팀을 운영하는 자신의 철학과도 부합한다고 한다.